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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그냥 평범하면 안 되나요?

장애학 코드로 미디어 읽기

  • 작성자차미경
  • 등록일 2020-11-20
  • 조회수501

유네스코(UNESCO)에서 1989년 발간한 「장애인에 관한 사회인식 핸드북」(Hand Book an Community Awareness Programmes Concerning Disability)에 의하면 첫째, 강하고 특별히 성공한 장애인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말 것, 둘째,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이나 모두 같은 동질 집단으로 보지 말 것, 셋째, 장애인의 ‘문제’보다 ‘사람’을 부각시키고, 손상보다 능력에 초점을 맞출 것, 넷째,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품위를 손상시키는 용어를 쓰지 말 것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이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지금, 이 기준으로 우리의 미디어를 바라보면 어떨까. 언뜻 생각해 보아도 미디어를 통해 드러나는 장애인의 이미지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장애가 있지만, 장애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극복하고 등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성공한 슈퍼 장애인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렇지 않은 장애인은 항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불쌍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한 마디로 모 아니면 도이고, 중간이 없는 셈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 자체보다 그의 장애를 묘사하는 데 집중하며 장애 때문에 불편해하거나 좌절하는 모습이 장애인이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요 서사가 된다.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장애를 비하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이 쏟아지고 장애인이 저지른 범죄 기사는 장애가 강조되어 마치 장애인, 특히 정신장애인은 사회질서를 해치는 잠재적 범죄자인 것처럼 오해받기 쉽게 일반화된 기사가 넘쳐난다.

끊임없이 양산되어온 슈퍼 장애인의 이미지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장애인을 무능하거나 불쌍하다고 인식해 왔는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장애인은 불쌍하거나 무능력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활용한 것이 슈퍼 장애인의 이미지일 테니까.

장애인고용안정협회의 <2017 장애인 고용 인식개선> 지하철 광고판
[사진제공] 필자

지하철을 타고 가던 어느 날, 지하철 안에 붙은 한 장애인 단체의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장애인들의 능력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고 계십니까? 그들의 능력은 경제적인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만큼 무한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정말 장애인의 능력은 그렇게 무한한가? ‘능력이 충분하다’도 아니고 ‘비장애인과 다름없다’도 아니고 심지어 무한하다니. 비현실적인 문구에 장애 당사자로서 슬쩍 기분이 상하기까지 했다.

“이 사람 좀 써줘 봐. 못하는 게 없어. 안 되는 게 없다니까!” 누군가가 나를 어느 기업에 소개하면서 이렇게까지 얘기한다면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이 정도 과대포장이면 이건 나를 위해 편들어 준다기보다 어떻게든 나를 빨리 떠넘기고 싶어 일단 내뱉고 보는 영혼 없는 허풍과 무엇이 다른가. 다른 비장애인들은 능력이 무한해서 채용되나? 왜 장애인은 무한한 능력을 가졌으니 제발 한번 채용해 보라고 과장 광고를 하는 걸까? 그렇게 어렵게 채용되고 나면 장애인은 되지도 않을 그 무한함을 증명하려고, 비장애인과 똑같이 할 수 있단 걸 증명해내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써야 하는가 말이다.

장애인은 무능력하지 않다고 말하기 위해서 능력이 무한하다고 말하는 방식이 바로 슈퍼 장애인이라는 장애 극복 프레임을 만든다! 장애를 극복한 슈퍼 장애인의 이미지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살아가는 다수의 평범한 장애인의 이미지를 지워버린다. 그 평범함은 무능해서도 아니고 불쌍해서도 아닌데도 무한한 능력의 슈퍼 장애인 이미지에 물든 사람들의 눈에 평범한 장애인의 모습을 초라해 보이도록 만든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의 발달장애인 천재 피아니스트 오진태(박정민)나 영화 <증인>의 지우(김향기)가 가진 놀라운 기억력, 또 드라마 <굿 닥터>의 뛰어난 발달장애인 의사 박시온(주원)이나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조승우) 등의 슈퍼 장애인 이미지만 보아온 사람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발달장애인에게 당연한 듯 그렇게 묻는다고 한다. 당신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느냐고, 잘하는 게 뭐냐고. 그런 편견 어린 시선과 질문이 우리 사회에 훨씬 더 많은 평범한 장애인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장애인은 특별한 어떤 존재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이 세상 수많은 사람이 가진 개성을 그려보라. 어떤 이는 키가 크거나 작고 어떤 이의 성격은 둥글거나 뾰족하다. 여자라서, 혹은 남자라서 특별한 성격과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듯, 장애인이라 특별히 착한 것도 아니고 장애인이라 모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장애’가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가 될 때 장애를 특별한 장치로 활용하거나 주인공이 장애인이라서 특별한 서사나 특성을 가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점에서 스페인 영화 <파라메딕 앙헬>(The Paramedic)은 좀 특별하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설명하면 ‘휠체어를 탄 남자 미저리’ 쯤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사고로 장애를 입고 휠체어를 타게 된 구급대원 앙헬. 그는 사고 후 더 예민해진 의처증 증세로 연인 바네사의 핸드폰에 해킹 프로그램까지 심어 감시하다가 그녀에게 들키고 만다. 더는 참지 못하게 된 바네사는 결국 앙헬의 곁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앙헬의 집요한 스토킹이 시작된다.

‘앙헬’은 스페인어로 ‘천사’라는 의미다. 이름 자체가 그동안 ‘천사’의 이미지로 고정되어 온 장애인의 이미지를 뒤집는다. 이 영화에서 앙헬의 장애는 특별한 의미의 서사를 갖지 않는다. 장애 때문에 그의 성격이 더 삐뚤어진다든가 더 비참해지거나 불쌍해지지 않는다. 앙헬에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그의 특별한 성격 때문이지 장애 때문이 아니다. 그는 장애를 입기 전에도 이미 찌질한 남자였으며 장애 때문에 더 무력하거나 무능해지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원래 그런 놈’인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장애인은 나쁜 스토커가 될 가능성이 많다’라거나 ‘장애인은 집착이 많고 찌질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영화 속 ‘악녀’를 보고 여자들은 원래 그렇게 잔인하고 악하다고 일반화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이 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성이 사회가 요구하는 성역할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개성을 지닌 존재로 그려져야 하는 것처럼, 장애인도 기존의 사회가 가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개성을 지닌 존재로 그려져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앙헬은 그만의 개성이 빛나는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유네스코가 제시한 기준을 다시 언급하자면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시대에는 세 번째와 네 번째 항목이 보다 철저히 지켜지면 좋겠다. 장애인의 ‘문제’보다 ‘사람’을 부각할 때 그 개성과 매력은 자연히 드러날 것이고 손상보다 능력에 초점을 맞추면 굳이 장애를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 또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품위를 손상시키는 용어를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은 미디어나 언론뿐만 아니라 모두의 의무이며 책임이다. 이미 30여 년 전 제시된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여전한 현실에 대한 민망함은 언제쯤 떨쳐버릴 수 있을까.

상세내용

차미경

작가

세상에 말을 거는 사람이다! 10여 년간 KBS 라디오에서 장애인 및 소외계층을 위한 방송에 참여했으며 ‘장애’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보는 장애학 연구자로서 문화·예술 관련 칼럼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