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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읽는 다양한 몸의 경험

트렌드 아픔은 몸 아닌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

  • 안희제 작가
  • 등록일 2021-08-25
  • 조회수1792

트렌드 리포트

책으로 읽는 다양한 몸의 경험

아픔은 몸 아닌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

안희제 작가

  • 『천장의 무늬』(이다울, 웨일북, 2020)

  •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미야노 마기코·이소노 마호,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최근 아픈 몸들의 글들이 점점 더 많이 세상에 나오고 있다. 의료 바깥의 일상에서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은 글이나 영상의 형태로 건강 중심 사회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끌어내고 있다. 질병 서사(illness narrative)라는 형식이 그 자체로 새롭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한국에서 유독 질병 서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질병 서사는 원래도 존재했으나, 한국에서 질병은 종종 그저 극복 대상으로서의 역경, 혹은 유명인들이 자신의 공백기를 설명할 때 “제가 사실은 그동안…”과 같이 고백해야 하는 무엇으로만 등장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 나오는 질병 서사들은 단순히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는 것을 넘어 질병을 다양한 관계 안에서 파악한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동녘, 2019)를 쓴 조한진희 작가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 ‘저항적 질병 서사’라고 말한다. 이는 질병이 개인의 자기관리 실패라는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서, 질병을 사회적 구조의 결과로 이해한다. 나아가 아프다는 이유로 경험하는 차별을 세상에서 드러내어 아픈 사람들의 언어로 삼는다. 아픈 몸은 실패가 아니고,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담긴 언어 말이다.(주1)

최근 1~2년 사이에 나온 책들은 질병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저항하는 이야기들을 꺼내 놓고 있었다. 치료의 대상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반려’의 존재로 질병을 그려내는 『아무튼, 반려병』(강이람, 제철소, 2020), 자신이 속한 공동체들에서 환대받지 못하고 소외된 경험을 섬세하게 풀어내는 『몸과 말』(홍수영, 허클베리북스, 2020), 아픈 여성으로서 이 사회를 살아나가며 고통을 직면하고 사회에 맞서는 삶을 보여주는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이유진, 다른길, 2021) 등,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세상에 나오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소개하려는 두 권의 책은 『천장의 무늬』(웨일북, 2020)와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다다서재, 2021)이다. 『천장의 무늬』가 어느 날 질병을 갖게 된 1994년생 이다울 작가가 그 이후 질병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의 분투를 담고 있다면,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은 유방암을 겪던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가 의료인류학자 이소노 마호와 질병과 죽음에 관해 나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얼핏 전혀 다른 기획으로 보이는 두 책은 사실 여러 측면에서 꽤 비슷하며, 이런 공통점은 최근에 유통되고 있는 질병 서사들과도 공유하고 있는 지점이다. 하나는 저자들이 모두 질병이라는 측면에서 사회가 인정하는 소위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질병은 대체로 병원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의 한 소재로만 다뤄졌고, 아픈 사람은 오직 생과 사, 입원과 퇴원의 기로에 서 있는 ‘환자’로만 등장해 왔다. 이런 재현 안에서 주인공은 질병도, 아픈 사람도 아닌 의사다.

하지만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그림과 사진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한 명의 작가, 그리고 의학이 아닌 학문을 전공한 두 명의 학자는 의료 바깥의 관점에서 계속해서 질병에 접근한다. 이다울 작가는 ‘평범하게 아픈’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과 예기치 못한 일들을 통해 질병과 함께하는 삶의 시작과 그 과정을 보여준다면, 두 학자는 자신들이 평생 해온 공부와 고민의 연장선에서, 종종 자신들의 사고를 뒤집어 놓는 질병의 경험을 다룬다.

이 책들에는 짧게 요약하기 힘든 깊이로 경험한 질병의 감각이 글자로 담겨 있는데, 거기서도 두드러지는 열쇳말은 무엇보다도 ‘관계’일 것이다. ‘극복 서사’는 질병이라는 역경을 극복한 ‘나’를 강조하기에 1인칭이라면, 의료적 관점에서 쓰인 글은 질병을 자기 바깥의 분석 대상으로 두기에 3인칭이다. 최근의 질병 서사가 이런 기존의 재현과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관계’라는 2인칭으로 질병에 접근한다는 것일 테다.

2인칭의 질병 서사는 모순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하다. 모순이 없는 글은 깔끔하고 단정적이기에 확장성도 없다. 모순 없이 부드럽게 재단할 수 있는 1인칭과 3인칭의 글쓰기는 그 자체로 완결되므로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기 어렵다. 그러나 2인칭의 질병 서사에 담긴 수많은 고민과 모순은 다른 아픈 이야기를 조각보로 덧붙일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이 가능성은 질병 서사를 더 넓고 다양한 관계들에 연결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관계라는 열쇳말 안에서 질병을 사회적으로 발화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픈 사람들이 이미 자신들을 만들어내고 또 배제하는 사회적 구조를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픔은 단지 나의 몸이나 의지 때문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관계 안에서 복잡하게 구성된다는 것이 드러날 때,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픔을 함께 끌어안고 살아내는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이 아닐까.

주1: 조한진희(2020), “우리 시대 건강권을 넘어, 질병권(疾病權)을 제안하다 - 질병권을 통한 상상력”, 『한국문화인류학회 추계 학술대회 자료집』, 168-178.

안희제

차별에 저항하는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의 칼럼니스트이자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난치의 상상력』과 『식물의 시간』을 썼고, [과학잡지 에피](16호-장애와 테크놀로지) 등에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2020)에 시민 배우로 함께했다.
dheejeh@naver.com

이미지제공.웨일북, 다다서재

2021년 9월 (23호)

상세내용

트렌드 리포트

책으로 읽는 다양한 몸의 경험

아픔은 몸 아닌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

안희제 작가

  • 『천장의 무늬』(이다울, 웨일북, 2020)

  •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미야노 마기코·이소노 마호,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최근 아픈 몸들의 글들이 점점 더 많이 세상에 나오고 있다. 의료 바깥의 일상에서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은 글이나 영상의 형태로 건강 중심 사회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끌어내고 있다. 질병 서사(illness narrative)라는 형식이 그 자체로 새롭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한국에서 유독 질병 서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질병 서사는 원래도 존재했으나, 한국에서 질병은 종종 그저 극복 대상으로서의 역경, 혹은 유명인들이 자신의 공백기를 설명할 때 “제가 사실은 그동안…”과 같이 고백해야 하는 무엇으로만 등장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 나오는 질병 서사들은 단순히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는 것을 넘어 질병을 다양한 관계 안에서 파악한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동녘, 2019)를 쓴 조한진희 작가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 ‘저항적 질병 서사’라고 말한다. 이는 질병이 개인의 자기관리 실패라는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서, 질병을 사회적 구조의 결과로 이해한다. 나아가 아프다는 이유로 경험하는 차별을 세상에서 드러내어 아픈 사람들의 언어로 삼는다. 아픈 몸은 실패가 아니고,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담긴 언어 말이다.(주1)

최근 1~2년 사이에 나온 책들은 질병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저항하는 이야기들을 꺼내 놓고 있었다. 치료의 대상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반려’의 존재로 질병을 그려내는 『아무튼, 반려병』(강이람, 제철소, 2020), 자신이 속한 공동체들에서 환대받지 못하고 소외된 경험을 섬세하게 풀어내는 『몸과 말』(홍수영, 허클베리북스, 2020), 아픈 여성으로서 이 사회를 살아나가며 고통을 직면하고 사회에 맞서는 삶을 보여주는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이유진, 다른길, 2021) 등,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세상에 나오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소개하려는 두 권의 책은 『천장의 무늬』(웨일북, 2020)와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다다서재, 2021)이다. 『천장의 무늬』가 어느 날 질병을 갖게 된 1994년생 이다울 작가가 그 이후 질병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의 분투를 담고 있다면,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은 유방암을 겪던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가 의료인류학자 이소노 마호와 질병과 죽음에 관해 나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얼핏 전혀 다른 기획으로 보이는 두 책은 사실 여러 측면에서 꽤 비슷하며, 이런 공통점은 최근에 유통되고 있는 질병 서사들과도 공유하고 있는 지점이다. 하나는 저자들이 모두 질병이라는 측면에서 사회가 인정하는 소위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질병은 대체로 병원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의 한 소재로만 다뤄졌고, 아픈 사람은 오직 생과 사, 입원과 퇴원의 기로에 서 있는 ‘환자’로만 등장해 왔다. 이런 재현 안에서 주인공은 질병도, 아픈 사람도 아닌 의사다.

하지만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그림과 사진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한 명의 작가, 그리고 의학이 아닌 학문을 전공한 두 명의 학자는 의료 바깥의 관점에서 계속해서 질병에 접근한다. 이다울 작가는 ‘평범하게 아픈’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과 예기치 못한 일들을 통해 질병과 함께하는 삶의 시작과 그 과정을 보여준다면, 두 학자는 자신들이 평생 해온 공부와 고민의 연장선에서, 종종 자신들의 사고를 뒤집어 놓는 질병의 경험을 다룬다.

이 책들에는 짧게 요약하기 힘든 깊이로 경험한 질병의 감각이 글자로 담겨 있는데, 거기서도 두드러지는 열쇳말은 무엇보다도 ‘관계’일 것이다. ‘극복 서사’는 질병이라는 역경을 극복한 ‘나’를 강조하기에 1인칭이라면, 의료적 관점에서 쓰인 글은 질병을 자기 바깥의 분석 대상으로 두기에 3인칭이다. 최근의 질병 서사가 이런 기존의 재현과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관계’라는 2인칭으로 질병에 접근한다는 것일 테다.

2인칭의 질병 서사는 모순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하다. 모순이 없는 글은 깔끔하고 단정적이기에 확장성도 없다. 모순 없이 부드럽게 재단할 수 있는 1인칭과 3인칭의 글쓰기는 그 자체로 완결되므로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기 어렵다. 그러나 2인칭의 질병 서사에 담긴 수많은 고민과 모순은 다른 아픈 이야기를 조각보로 덧붙일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이 가능성은 질병 서사를 더 넓고 다양한 관계들에 연결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관계라는 열쇳말 안에서 질병을 사회적으로 발화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픈 사람들이 이미 자신들을 만들어내고 또 배제하는 사회적 구조를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픔은 단지 나의 몸이나 의지 때문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관계 안에서 복잡하게 구성된다는 것이 드러날 때,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픔을 함께 끌어안고 살아내는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이 아닐까.

주1: 조한진희(2020), “우리 시대 건강권을 넘어, 질병권(疾病權)을 제안하다 - 질병권을 통한 상상력”, 『한국문화인류학회 추계 학술대회 자료집』, 168-178.

안희제

차별에 저항하는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의 칼럼니스트이자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난치의 상상력』과 『식물의 시간』을 썼고, [과학잡지 에피](16호-장애와 테크놀로지) 등에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2020)에 시민 배우로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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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제공.웨일북, 다다서재

2021년 9월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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