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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예술 접근성을 위한 제안

이음광장 공연장 접근성의 틈을 메꾸는 사람들

  • 문영민 장애예술연구자
  • 등록일 2020-11-13
  • 조회수1004

2018년 0set(제로셋)프로젝트는 <대학로 공연장 및 거리 접근성 워크숍>을 진행했다. 워크숍 참여자들은 대학로에 있는 120개 공연장을 직접 방문하여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85개 공연장은 접근이 완전히 불가능하고, 21개 공연장은 부분적으로 접근이 가능하며, 14개 공연장만이 접근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이었던 중·대형 공연장 중 일부는 출입구의 단차를 제거하거나, 운행하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가동하도록 하거나, 공연장 내 한두 좌석을 장애인석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장애인 접근성을 지원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공연장은 지하 혹은 3, 4층에 위치해 있고, 경사로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이 구조상 어려우며, 구조적으로 가능한 극장이라고 해도 영세한 소극장에게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워크숍에서 우리는 대안으로 ‘공연장 접근성 활동지원인’ 제도를 제안했다. 대학로 서울연극센터 등에 장애인 관객의 이동을 보조하는 공공 활동지원인이 상주해서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을 보고자 하는 장애인 관객이 요청한 경우 해당 극장으로 이동해 휠체어를 들거나 업기 혹은 원하는 방식으로 이동을 보조하는 것이다. 물리적인 시설 개선을 통해 접근성을 지원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지만, 대학로 소극장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 방법이 차선책이 아닐까.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장애인의 공연장 내 재난대피 워크숍은 연구결과 공유와 조별 워크숍, 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사진제공] 장애인의 공연장 내 재난대피 가이드 및 훈련 프로그램 워크숍 기획팀(촬영: 문소영)

우리가 제안했던 ‘공연장 접근성 활동지원인’ 제도의 구체적인 운용 방식은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지만 이와 같이 ‘사람’을 통하여 장애인 접근성의 빈 곳을 채우려는 노력은 예술 현장에서 여러 모양을 가질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극장에서 재난 시 장애인의 대피를 돕는 ‘재난대피 보조인력’이다. <2020 연극의 해>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10월 25일 이음센터에서 진행된 ‘장애인의 공연장 내 재난대피 워크숍’에 참여했다. 워크숍에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이음센터’라는 공연장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떠한 대피가 가능할지 고민했다. 이음센터의 공연장인 이음홀은 건물 5층에 있다. 불이 나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동이 어려운 사람은 어떻게 대피할 수 있을까? 이음센터에 재난 시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승강식 대피장치가 있다는 말을 언뜻 들은 적이 있으나, 실제로 장치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사용 가능한지 전달받은 적이 없었다.

휠체어를 이용하고, 난청이 있는 나의 상황에서 재난대피 시나리오를 고민해보았다. 사이렌이 울리고 정신없이 대피하는 상황에서 스태프 중 누군가가 내게 와서 대피 정보를 또박또박 전달해주면 좋을 것이다. 또한 스태프가 나를 업거나 안고 계단으로 대피한다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워크숍에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재난 상황에서 시스템과 편의시설의 도움보다는 재난 시 보조하는 스태프의 도움으로 대피하는 시나리오를 구성하여 발표했다. 재난대피를 담당하는 인력이 공연장 내에 있고 장애인 관객에게 공연 시작 전에 재난 시 지원방법(걷거나 업힐 수 있는지, 어떤 정보 전달방식이 편한지)에 대해 가볍게 전달해둔다면, 실제로 재난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라이아이 씨어터에서 서커스 훈련 중인 데이비드 엘링턴(David Ellington)의 사진 속에서 창작 조력자와 아티스트가 협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제공] 마이클 애트만(Micheal Achtman), 극단 그라이아이 접근성 매니저

접근성의 빈틈을 메우는 또 다른 방법은 장애인 창작자의 창작을 보조하는 ‘창작 보조인력’이다. 영국의 장애인 극단 그라이아이 씨어터(Graeae Theater)는 장애인 창작자의 창작이나 의사소통을 보조하는 ‘창작 조력자’(creative enabler) 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다. 창작을 지원하는 일은 일반적인 활동지원인에게 기대되는 것 이상의 능력이 필요하다. 특정한 훈련이 필요할 수 있고, 연기 디렉션(direction)이 필요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극단 그라이아이의 창작 조력인력은 창작자가 참여하는 예술 형식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들로 선발하며, 한 명의 예술인과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작업을 하게 된다.

국내에서도 시작 단계이기는 하지만 장애 예술인의 창작을 보조하는 활동지원인력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바 있다. 2019년 ‘장애인 예술 활동 여건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현행 장애인 활동지원인의 업무에 가사, 사회, 신체 활동에 대한 지원만이 포함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지원 영역에 예술 활동을 포함하여 활동지원을 하면 비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공연장이나 창작단체가 접근성 조력 인력을 자체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장애인 접근성의 책임을 모두가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좋은 접근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 창작자와 긴 시간을 함께 하고, 그의 몸에 익숙해지고, 가장 나은 방법으로 보조를 지원하는 일이 필요하다면 창작자와 늘 동행하는 활동지원사에게 접근성 보조를 지원받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어떤 장애 유형의 창작자인지, 어떤 접근성을 보조하는지에 따라 보조인력을 지원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통해 장애인 접근성의 틈을 메꾸려는 시도가 자칫 큰 비용이 드는 시설과 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손쉽게 ‘인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꼼수로 읽히거나 시도되지 않으면 좋겠다. 대학로 공연장 접근성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모든 공연장이 물리적으로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개선하는 것이다. 시설과 제도 개선이 해결해줄 수 없는 영역에서, 장애인 접근성의 틈을 그저 틈으로 남겨두지 않고 메꾸려는 고민과 시도들을 통해 장애인 관객과 창작자가 좀 더 자유롭게 공연을 관람하고 창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 글을 쓴다.

[참고자료]

문영민

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정체성, 장애인의 몸,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 극단 0set 소속으로 공연 <연극의 3요소> <불편한 입장들> <나는 인간> 등의 공연에 창작자로 참여하여 연극으로 장애인의 공연 접근성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saojungym@daum.net

문영민

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정체성, 장애인의 몸,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 극단 0set 소속으로 공연 <연극의 3요소> <불편한 입장들> <나는 인간> 등의 공연에 창작자로 참여하여 연극으로 장애인의 공연 접근성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saojungym@daum.net

상세내용

2018년 0set(제로셋)프로젝트는 <대학로 공연장 및 거리 접근성 워크숍>을 진행했다. 워크숍 참여자들은 대학로에 있는 120개 공연장을 직접 방문하여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85개 공연장은 접근이 완전히 불가능하고, 21개 공연장은 부분적으로 접근이 가능하며, 14개 공연장만이 접근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이었던 중·대형 공연장 중 일부는 출입구의 단차를 제거하거나, 운행하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가동하도록 하거나, 공연장 내 한두 좌석을 장애인석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장애인 접근성을 지원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공연장은 지하 혹은 3, 4층에 위치해 있고, 경사로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이 구조상 어려우며, 구조적으로 가능한 극장이라고 해도 영세한 소극장에게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워크숍에서 우리는 대안으로 ‘공연장 접근성 활동지원인’ 제도를 제안했다. 대학로 서울연극센터 등에 장애인 관객의 이동을 보조하는 공공 활동지원인이 상주해서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을 보고자 하는 장애인 관객이 요청한 경우 해당 극장으로 이동해 휠체어를 들거나 업기 혹은 원하는 방식으로 이동을 보조하는 것이다. 물리적인 시설 개선을 통해 접근성을 지원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지만, 대학로 소극장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 방법이 차선책이 아닐까.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장애인의 공연장 내 재난대피 워크숍은 연구결과 공유와 조별 워크숍, 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사진제공] 장애인의 공연장 내 재난대피 가이드 및 훈련 프로그램 워크숍 기획팀(촬영: 문소영)

우리가 제안했던 ‘공연장 접근성 활동지원인’ 제도의 구체적인 운용 방식은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지만 이와 같이 ‘사람’을 통하여 장애인 접근성의 빈 곳을 채우려는 노력은 예술 현장에서 여러 모양을 가질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극장에서 재난 시 장애인의 대피를 돕는 ‘재난대피 보조인력’이다. <2020 연극의 해>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10월 25일 이음센터에서 진행된 ‘장애인의 공연장 내 재난대피 워크숍’에 참여했다. 워크숍에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이음센터’라는 공연장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떠한 대피가 가능할지 고민했다. 이음센터의 공연장인 이음홀은 건물 5층에 있다. 불이 나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동이 어려운 사람은 어떻게 대피할 수 있을까? 이음센터에 재난 시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승강식 대피장치가 있다는 말을 언뜻 들은 적이 있으나, 실제로 장치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사용 가능한지 전달받은 적이 없었다.

휠체어를 이용하고, 난청이 있는 나의 상황에서 재난대피 시나리오를 고민해보았다. 사이렌이 울리고 정신없이 대피하는 상황에서 스태프 중 누군가가 내게 와서 대피 정보를 또박또박 전달해주면 좋을 것이다. 또한 스태프가 나를 업거나 안고 계단으로 대피한다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워크숍에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재난 상황에서 시스템과 편의시설의 도움보다는 재난 시 보조하는 스태프의 도움으로 대피하는 시나리오를 구성하여 발표했다. 재난대피를 담당하는 인력이 공연장 내에 있고 장애인 관객에게 공연 시작 전에 재난 시 지원방법(걷거나 업힐 수 있는지, 어떤 정보 전달방식이 편한지)에 대해 가볍게 전달해둔다면, 실제로 재난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라이아이 씨어터에서 서커스 훈련 중인 데이비드 엘링턴(David Ellington)의 사진 속에서 창작 조력자와 아티스트가 협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제공] 마이클 애트만(Micheal Achtman), 극단 그라이아이 접근성 매니저

접근성의 빈틈을 메우는 또 다른 방법은 장애인 창작자의 창작을 보조하는 ‘창작 보조인력’이다. 영국의 장애인 극단 그라이아이 씨어터(Graeae Theater)는 장애인 창작자의 창작이나 의사소통을 보조하는 ‘창작 조력자’(creative enabler) 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다. 창작을 지원하는 일은 일반적인 활동지원인에게 기대되는 것 이상의 능력이 필요하다. 특정한 훈련이 필요할 수 있고, 연기 디렉션(direction)이 필요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극단 그라이아이의 창작 조력인력은 창작자가 참여하는 예술 형식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들로 선발하며, 한 명의 예술인과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작업을 하게 된다.

국내에서도 시작 단계이기는 하지만 장애 예술인의 창작을 보조하는 활동지원인력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바 있다. 2019년 ‘장애인 예술 활동 여건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현행 장애인 활동지원인의 업무에 가사, 사회, 신체 활동에 대한 지원만이 포함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지원 영역에 예술 활동을 포함하여 활동지원을 하면 비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공연장이나 창작단체가 접근성 조력 인력을 자체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장애인 접근성의 책임을 모두가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좋은 접근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 창작자와 긴 시간을 함께 하고, 그의 몸에 익숙해지고, 가장 나은 방법으로 보조를 지원하는 일이 필요하다면 창작자와 늘 동행하는 활동지원사에게 접근성 보조를 지원받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어떤 장애 유형의 창작자인지, 어떤 접근성을 보조하는지에 따라 보조인력을 지원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통해 장애인 접근성의 틈을 메꾸려는 시도가 자칫 큰 비용이 드는 시설과 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손쉽게 ‘인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꼼수로 읽히거나 시도되지 않으면 좋겠다. 대학로 공연장 접근성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모든 공연장이 물리적으로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개선하는 것이다. 시설과 제도 개선이 해결해줄 수 없는 영역에서, 장애인 접근성의 틈을 그저 틈으로 남겨두지 않고 메꾸려는 고민과 시도들을 통해 장애인 관객과 창작자가 좀 더 자유롭게 공연을 관람하고 창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 글을 쓴다.

[참고자료]

문영민

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정체성, 장애인의 몸,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 극단 0set 소속으로 공연 <연극의 3요소> <불편한 입장들> <나는 인간> 등의 공연에 창작자로 참여하여 연극으로 장애인의 공연 접근성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saojungy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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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