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웹진 이음

[현장] 노들장애인야학 권리중심 예술노동

이슈 섞이고 어울리고 빛날, 동그란 춤의 자리

  • 김유미 노들장애인야학 상근활동가
  • 등록일 2022-09-28
  • 조회수882

이슈

화요일 낮, 노들장애인야학 교실. ‘노들 에스쁘와’ 일자리 출근 확인 시간.
“말로 대답을 하셔도 좋고, 손을 들어주셔도 좋고,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다른 식으로 해주셔도 됩니다.”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이름이 뭐예요?”라고 답하는 최 씨는 출근을 확인할 때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으~~” 소리를 반복하거나 손뼉을 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강사가 ‘최’까지 부르고 뜸을 들였는데, 최 씨가 “최○○” 하고 본인 이름을 외쳐주는 게 아닌가. 그 뒤로 그의 출석을 확인할 때는 ‘최’라고만 말한 뒤 기다리는 방식을 쓴다. 이 씨는 가나다순으로 이어지는 호명 시간 내내 다리를 떨며 수시로 눈을 비빈다. 이 씨의 차례가 되어 이름을 부르면, 하품을 하거나 다시 눈을 비비거나 배시시 웃을 뿐 대답하지 않는다. 다른 학생들이 손가락으로 이 씨를 가리키고, 또 다른 학생인 고 씨가 “있음. 네~” 하고 대신 대답해준다. 고 씨는 누군가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본인이 “있음. 네~”, 없을 땐 “없어” 혹은 양팔을 들어 엑스(X)자 표시를 해준다. 이외에 아무 소리 없이 아주 천천히 손을 들어주는 왕 씨, 교실 중간으로 걸어 나와 손을 드는 김 씨가 있고, 구내 카페에서 음료를 더 마시기 위한 갖가지 사투를 벌이느라 거의 매번 지각하는 박 씨, 샤워실에 들어가 몇 시간씩 나오지 않아 지각과 결근을 일삼는 형 씨가 있다.

노들장애인야학(이하 노들야학)은 2020년부터 서울시의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 일자리)를 수행하고 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현재 중증장애인 30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노동자에게 적합한 직무에 맞게 3개 팀으로 나눠 운영 중이다. 앞서 출근 확인 이야기에 등장한 분들은 ‘탈탈탈’ 팀에 속해 있는 노동자들이고, 대부분이 장애인 거주시설에 오래 살다 갓 지역사회로 나온 중증발달장애인이다.

성인 장애인을 대상으로 교육 활동을 해온 노들야학은 권리중심 일자리 이전에도 중증장애인 학생들에게 ‘일’을 찾아주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왔다. 일찍이 현수막과 인쇄물을 만드는 사회적기업 ‘노란들판’을 만들어 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일을 해왔고, 야학 내에 카페 ‘들다방’을 만들어 발달장애인분들의 일자리를 마련했다. 이런 자체적인 노력 외에도, 정부가 추진하는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을 활용해 야학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노동자들은 건물 곳곳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이나 급식 주방 설거지와 테이블을 닦는 일, 문서 파쇄 같은 행정보조 일을 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동과 불화하는 이들이 있었다. 대체로 인지나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중증장애인, 발달장애인이 우리 안의 ‘비노동’ 그룹으로 남았다. 하지만 2020년 권리중심 일자리를 시작하면서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일이라곤 해본 적 없던 이들이 한꺼번에 노동자로 탈바꿈하는 사건이었다.

권리중심 일자리 참여자들이 수행하는 업무는 크게 장애인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개선 강의 등 3개 직무로 이뤄져 있다. 이 중에서도 발달장애인이 많은 팀의 주요 업무는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짜여있다. 이 대목에서 왜 문화예술 노동인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일터의 의지로 중증장애인 노동자에게 문화예술 직무를 제공한 것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노들야학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는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일이 진행돼왔다.

필자는 노들야학에서 일하며, 문자 중심의 수업 시간이나 기성 노동의 영역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끼워 맞춰 보아도 자꾸만 어긋나던 이들이, 문화예술이 벌어지는 자리에서 ‘빛나는’ 주인공이 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어디서든 음악이 나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온몸을 흔들며 춤을 추던 남 씨, 이 노래 저 노래 이어달리기하듯 메들리가 구성진 김 씨, 정해진 음정과 박자의 이탈 속에 쾌감을 주는 이 씨가 있었다. 또한 비슷한 패턴의 선과 색을 바꿔가며 몇 시간씩 그림을 그려내는 최 씨, 아주 작은 동그라미를 사슬처럼 이어가며 빈 종이에 가득 채우는 옥 씨도 만났다. 이런 빛나는 장면들이 쌓이면서 노들야학의 중증장애, 발달장애인들이 함께하는 수업과 일자리는 점점 더 문화예술을 향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문화예술 노동은 중증장애인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낸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선택된 문화예술 노동은 다시 한번 일자리의 현장에서, 수행하는 노동자에 맞추어 수정되고 변형하는 과정을 거친다. 필자가 강사로 참여하는 노들 에스쁘와의 경우에도, 노동자들에게 맞는 공연의 형태를 구상하며 여러 시도를 해왔다. 노들 에스쁘와는 춤과 움직임을 바탕으로 공연을 열고, 이를 통해 시민들과의 접촉면을 만들고 넓히는 일자리이다. 2017년 무용단체 쿨레칸과 함께 노들야학의 낮수업으로 기획했고, 2020년부터는 권리중심 일자리의 업무로 전환했다.

노들 에스쁘와의 강사들은 초창기부터 춤 공연을 고민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시도와 실패의 경험들이 잘 쌓였다. 공통의 안무 동작을 만들고 이를 모두가 함께 추는 방식으로 공연을 구성했을 때, 학생들은 안무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춤을 추는 경우가 많았다. 신체 가동성이나 속도가 다른 이들이 일제히 한 동작을 취하면서 만들어지는 매력이 있었지만, 이런 형식엔 본래의 안무와 기준이 있기에, 그 기준이 되는 움직임 아래 다양한 동작이 배치되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다양함의 매력이 누군가에게는 부족함의 지표로 보일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를 해나가면서 강사들은 학생/노동자들의 고유한 움직임, 선과 리듬 같은 것에 매력을 발견했다. 고유한 움직임들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안정되었고 동작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강사들은 이런 하나하나의 매력을 잘 드러나게 할 공연의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2021년에는 노동자 한 명 한 명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어 보여주는 영상을 기획하고 댄스 필름 <아이엠마이스타(I Am My Star)>를 만들었다.

현재 노들 에스쁘와가 택하는 공연 방식은 일자리 시간 중에 진행하는 ‘커뮤니케이션 써클’을 전시장이나 광장에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서클은 크고 동그란 원을 만들어 둘러앉은 뒤, 자신이 춤추고 싶은 상대와 함께 합을 맞춰 자유롭게 춤을 추는 방식이다. 한 팀씩 원 안으로 나와 춤을 추고 들어가는 식으로 전체가 돌아가며 참여한다. 이는 아프리카 만딩고족 전통문화의 춤 형태로, 강사인 안무가 엠마누엘 사누의 기획으로 노들 에스쁘와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매번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서 써클(circle), 동그라미의 표현은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없이 모두 같다’는 의미를 갖는다.(주1) 동그라미 안에서 강사들은 학생들의 움직임에 결을 맞춰 함께 춤을 추며 듀오를 만들어간다. 학생들의 고유한 움직임을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듀오 구성을 바꾸거나, 새로운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 커뮤니케이션 댄스를 천천히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이 작업을 토대로 노들 에스쁘와는 2022년 4월 이음아트홀에서 《어라운드》라는 제목의 전시와 공연을 진행했다. 이어 『집으로 가는, 길』 출간 기념회에 초청되어 공연하기도 했고, 0set프로젝트의 공연 프로젝트 《다음 이야기-장소》에도 참여했다. 앞으로는 좀 더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섞여 어울리며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공원이나 광장에서 열린 공연을 진행할 계획도 갖고 있다.

노들 에스쁘와 멤버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음악과 춤을 나눌 때면 흥에 취해 기꺼이 원 안으로 섞여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원 언저리에 머물며 응원과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권리중심 일자리를 수행하는 중증장애인 예술노동자들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바로 이런 ‘자리’다. 우리는 이 자리를 통해 응답받고 싶다. 이 예술노동에 대한 응답을, 원 안팎을 드나드는 비장애 중심 사회가 해주길 기대한다. 노들 에스쁘와가 만들어내는 써클 안에서 이들의 춤과 에너지에 함께하며, 고립되어 지내온 이들이 사회 안에서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길 기대한다.

  • 노들 에스쁘와 노동자들이 전시장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모습. 다수의 사람들이 손을 위로 뻗거나 서로 마주 대는 등의 동작을 하고 있다.

    《어라운드》 닫는 공연을 하는 노들 에스쁘와. 전시와 퍼포먼스를 겸한 《어라운드》는 2022년 4월 7일부터 12일까지 이음아트홀에서 진행됐다. (사진. 정택용)

  • 노들 에스쁘와 노동자들의 집단 공연 모습. 야외 넓은 공간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이 원을 만들어 돌고 있다.

    0set프로젝트의 《다음 이야기-장소》 중 노들 에스쁘와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춤> 공연 장면. 2022년 9월 18일 성북천 분수광장에 펼쳐진 커뮤니케이션 써클의 모습이다. (사진. 노들장애인야학)

주1. 안무가 엠마누엘 사누 인터뷰 ‘사회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질문하는 춤’ 편과 그와의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만딩고족 문화에서 춤은 위-아래가 아니라 커다란 원과 같다. 그 원 안에 우리 모두가 동등하게 존재할 뿐이다.”(보코, 『춤과 땡땡』, 2022, p.38)

김유미

노들장애인야학 상근활동가이다. 야학 학생들과 함께 월요일엔 북을 치고 화요일엔 춤을 춘다. 계간 소식지 [노들바람]을 만든다.
slowda@empas.com

사진 제공.필자

2022년 10월 (35호)

김유미

김유미 

노들장애인야학 상근활동가이다. 야학 학생들과 함께 월요일엔 북을 치고 화요일엔 춤을 춘다. 계간 소식지 [노들바람]을 만든다.
slowda@empas.com

상세내용

이슈

화요일 낮, 노들장애인야학 교실. ‘노들 에스쁘와’ 일자리 출근 확인 시간.
“말로 대답을 하셔도 좋고, 손을 들어주셔도 좋고,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다른 식으로 해주셔도 됩니다.”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이름이 뭐예요?”라고 답하는 최 씨는 출근을 확인할 때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으~~” 소리를 반복하거나 손뼉을 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강사가 ‘최’까지 부르고 뜸을 들였는데, 최 씨가 “최○○” 하고 본인 이름을 외쳐주는 게 아닌가. 그 뒤로 그의 출석을 확인할 때는 ‘최’라고만 말한 뒤 기다리는 방식을 쓴다. 이 씨는 가나다순으로 이어지는 호명 시간 내내 다리를 떨며 수시로 눈을 비빈다. 이 씨의 차례가 되어 이름을 부르면, 하품을 하거나 다시 눈을 비비거나 배시시 웃을 뿐 대답하지 않는다. 다른 학생들이 손가락으로 이 씨를 가리키고, 또 다른 학생인 고 씨가 “있음. 네~” 하고 대신 대답해준다. 고 씨는 누군가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본인이 “있음. 네~”, 없을 땐 “없어” 혹은 양팔을 들어 엑스(X)자 표시를 해준다. 이외에 아무 소리 없이 아주 천천히 손을 들어주는 왕 씨, 교실 중간으로 걸어 나와 손을 드는 김 씨가 있고, 구내 카페에서 음료를 더 마시기 위한 갖가지 사투를 벌이느라 거의 매번 지각하는 박 씨, 샤워실에 들어가 몇 시간씩 나오지 않아 지각과 결근을 일삼는 형 씨가 있다.

노들장애인야학(이하 노들야학)은 2020년부터 서울시의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 일자리)를 수행하고 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현재 중증장애인 30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노동자에게 적합한 직무에 맞게 3개 팀으로 나눠 운영 중이다. 앞서 출근 확인 이야기에 등장한 분들은 ‘탈탈탈’ 팀에 속해 있는 노동자들이고, 대부분이 장애인 거주시설에 오래 살다 갓 지역사회로 나온 중증발달장애인이다.

성인 장애인을 대상으로 교육 활동을 해온 노들야학은 권리중심 일자리 이전에도 중증장애인 학생들에게 ‘일’을 찾아주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왔다. 일찍이 현수막과 인쇄물을 만드는 사회적기업 ‘노란들판’을 만들어 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일을 해왔고, 야학 내에 카페 ‘들다방’을 만들어 발달장애인분들의 일자리를 마련했다. 이런 자체적인 노력 외에도, 정부가 추진하는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을 활용해 야학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노동자들은 건물 곳곳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이나 급식 주방 설거지와 테이블을 닦는 일, 문서 파쇄 같은 행정보조 일을 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동과 불화하는 이들이 있었다. 대체로 인지나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중증장애인, 발달장애인이 우리 안의 ‘비노동’ 그룹으로 남았다. 하지만 2020년 권리중심 일자리를 시작하면서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일이라곤 해본 적 없던 이들이 한꺼번에 노동자로 탈바꿈하는 사건이었다.

권리중심 일자리 참여자들이 수행하는 업무는 크게 장애인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개선 강의 등 3개 직무로 이뤄져 있다. 이 중에서도 발달장애인이 많은 팀의 주요 업무는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짜여있다. 이 대목에서 왜 문화예술 노동인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일터의 의지로 중증장애인 노동자에게 문화예술 직무를 제공한 것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노들야학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는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일이 진행돼왔다.

필자는 노들야학에서 일하며, 문자 중심의 수업 시간이나 기성 노동의 영역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끼워 맞춰 보아도 자꾸만 어긋나던 이들이, 문화예술이 벌어지는 자리에서 ‘빛나는’ 주인공이 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어디서든 음악이 나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온몸을 흔들며 춤을 추던 남 씨, 이 노래 저 노래 이어달리기하듯 메들리가 구성진 김 씨, 정해진 음정과 박자의 이탈 속에 쾌감을 주는 이 씨가 있었다. 또한 비슷한 패턴의 선과 색을 바꿔가며 몇 시간씩 그림을 그려내는 최 씨, 아주 작은 동그라미를 사슬처럼 이어가며 빈 종이에 가득 채우는 옥 씨도 만났다. 이런 빛나는 장면들이 쌓이면서 노들야학의 중증장애, 발달장애인들이 함께하는 수업과 일자리는 점점 더 문화예술을 향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문화예술 노동은 중증장애인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낸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선택된 문화예술 노동은 다시 한번 일자리의 현장에서, 수행하는 노동자에 맞추어 수정되고 변형하는 과정을 거친다. 필자가 강사로 참여하는 노들 에스쁘와의 경우에도, 노동자들에게 맞는 공연의 형태를 구상하며 여러 시도를 해왔다. 노들 에스쁘와는 춤과 움직임을 바탕으로 공연을 열고, 이를 통해 시민들과의 접촉면을 만들고 넓히는 일자리이다. 2017년 무용단체 쿨레칸과 함께 노들야학의 낮수업으로 기획했고, 2020년부터는 권리중심 일자리의 업무로 전환했다.

노들 에스쁘와의 강사들은 초창기부터 춤 공연을 고민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시도와 실패의 경험들이 잘 쌓였다. 공통의 안무 동작을 만들고 이를 모두가 함께 추는 방식으로 공연을 구성했을 때, 학생들은 안무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춤을 추는 경우가 많았다. 신체 가동성이나 속도가 다른 이들이 일제히 한 동작을 취하면서 만들어지는 매력이 있었지만, 이런 형식엔 본래의 안무와 기준이 있기에, 그 기준이 되는 움직임 아래 다양한 동작이 배치되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다양함의 매력이 누군가에게는 부족함의 지표로 보일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를 해나가면서 강사들은 학생/노동자들의 고유한 움직임, 선과 리듬 같은 것에 매력을 발견했다. 고유한 움직임들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안정되었고 동작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강사들은 이런 하나하나의 매력을 잘 드러나게 할 공연의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2021년에는 노동자 한 명 한 명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어 보여주는 영상을 기획하고 댄스 필름 <아이엠마이스타(I Am My Star)>를 만들었다.

현재 노들 에스쁘와가 택하는 공연 방식은 일자리 시간 중에 진행하는 ‘커뮤니케이션 써클’을 전시장이나 광장에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서클은 크고 동그란 원을 만들어 둘러앉은 뒤, 자신이 춤추고 싶은 상대와 함께 합을 맞춰 자유롭게 춤을 추는 방식이다. 한 팀씩 원 안으로 나와 춤을 추고 들어가는 식으로 전체가 돌아가며 참여한다. 이는 아프리카 만딩고족 전통문화의 춤 형태로, 강사인 안무가 엠마누엘 사누의 기획으로 노들 에스쁘와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매번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서 써클(circle), 동그라미의 표현은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없이 모두 같다’는 의미를 갖는다.(주1) 동그라미 안에서 강사들은 학생들의 움직임에 결을 맞춰 함께 춤을 추며 듀오를 만들어간다. 학생들의 고유한 움직임을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듀오 구성을 바꾸거나, 새로운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 커뮤니케이션 댄스를 천천히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이 작업을 토대로 노들 에스쁘와는 2022년 4월 이음아트홀에서 《어라운드》라는 제목의 전시와 공연을 진행했다. 이어 『집으로 가는, 길』 출간 기념회에 초청되어 공연하기도 했고, 0set프로젝트의 공연 프로젝트 《다음 이야기-장소》에도 참여했다. 앞으로는 좀 더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섞여 어울리며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공원이나 광장에서 열린 공연을 진행할 계획도 갖고 있다.

노들 에스쁘와 멤버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음악과 춤을 나눌 때면 흥에 취해 기꺼이 원 안으로 섞여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원 언저리에 머물며 응원과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권리중심 일자리를 수행하는 중증장애인 예술노동자들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바로 이런 ‘자리’다. 우리는 이 자리를 통해 응답받고 싶다. 이 예술노동에 대한 응답을, 원 안팎을 드나드는 비장애 중심 사회가 해주길 기대한다. 노들 에스쁘와가 만들어내는 써클 안에서 이들의 춤과 에너지에 함께하며, 고립되어 지내온 이들이 사회 안에서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길 기대한다.

  • 노들 에스쁘와 노동자들이 전시장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모습. 다수의 사람들이 손을 위로 뻗거나 서로 마주 대는 등의 동작을 하고 있다.

    《어라운드》 닫는 공연을 하는 노들 에스쁘와. 전시와 퍼포먼스를 겸한 《어라운드》는 2022년 4월 7일부터 12일까지 이음아트홀에서 진행됐다. (사진. 정택용)

  • 노들 에스쁘와 노동자들의 집단 공연 모습. 야외 넓은 공간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이 원을 만들어 돌고 있다.

    0set프로젝트의 《다음 이야기-장소》 중 노들 에스쁘와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춤> 공연 장면. 2022년 9월 18일 성북천 분수광장에 펼쳐진 커뮤니케이션 써클의 모습이다. (사진. 노들장애인야학)

주1. 안무가 엠마누엘 사누 인터뷰 ‘사회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질문하는 춤’ 편과 그와의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만딩고족 문화에서 춤은 위-아래가 아니라 커다란 원과 같다. 그 원 안에 우리 모두가 동등하게 존재할 뿐이다.”(보코, 『춤과 땡땡』, 2022, p.38)

김유미

노들장애인야학 상근활동가이다. 야학 학생들과 함께 월요일엔 북을 치고 화요일엔 춤을 춘다. 계간 소식지 [노들바람]을 만든다.
slowda@empas.com

사진 제공.필자

2022년 10월 (35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