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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택 소설가

인터뷰 소외된 세계, 해체와 재설계의 매혹

  • 박정수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 등록일 2021-10-27
  • 조회수1533

인터뷰

2년 동안의 전지구적 코로나19 상황은 인류의 삶에서 비대면 가상세계가 차지하는 비중을 비가역적으로 증가시켰다. 4차 혁명의 물결 속에서 인공지능, 가상현실, 언택트 기술의 발전과 적용 속도는 한층 빨라질 것이다. 특히, 교육 분야의 급속한 변화가 예상된다. 2년 동안 쌍방향 화상 채널을 통한 비대면 교육 경험은 사이버 학교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한층 높였다. 물리적 이동과 신체 활동에 제약받던 사람들에게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한 학교와 강의실은 오히려 접근성이 높다. 그러나 지적·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사이버 학교는 기술적 장벽도 높거니와 학교로서의 기능을 거의 못한다. 발달장애인에게 학교는 단지 머리로 지식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대면 접촉과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통해 사회성을 학습하고 돌봄을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언택트 사이버 기술의 발전 속에서 발달장애인과 같은 소수자는 더욱 큰 배제와 차별의 위험에 맞닥뜨린다.

코로나19가 더욱 가까이 끌어당긴 미래 학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SF 소설이 나왔다. 최의택 작가의 『슈뢰딩거의 아이들』이 그것이다. 이 소설은 한국 최초 SF 장편소설인 『완전사회』(1967)의 저자 문윤성을 기념하여 2021년 제정된 ‘문윤성 SF 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문단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최의택 작가가 100여 명의 신인·기성 작가와 경쟁하여 제1회 대상의 영예를 얻었다. 근육위축증을 갖고 태어났으며 수술 후유증으로 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세상과 유리된 채 홀로 습작 활동을 해왔다는 점도 이 신예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더한다. 코로나19 상황과 병원 입원을 앞둔 작가 개인의 사정상 인터뷰는 비대면 문자와 메일로 이뤄졌다.

이 소설은 2040년 무렵 출범한 ‘완전몰입형 가상현실’ 공립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런 가상현실 학교라면 작가님처럼 정도가 심한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도 중도에 학교를 포기하지 않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소설 속 ‘학당’에는 작가님 자신을 투영한 중증 신체장애인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학당’이 출범한 이유는 장애인 포용이 아니며, 제 장애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학당이 저 같은 중증 장애인을 받아들이기에는 여전히 제약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소설 속에 저 같은 인물이 없는 것이죠.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시중에 유통되는 VR(가상현실) 고글이나 스마트폰의 AR(증강현실) 기능만 해도 저 같은 사람들한텐 그림의 떡에 불과합니다. 저도 포켓몬 고(GO)를 정말 해보고 싶거든요.

소설에서 ‘학당’이 설립된 직접적인 계기로 학생들의 안전에 관련된 재난사고가 암시됩니다. 안전을 위해 가상공간으로 학교를 옮긴 건데요. 그래서 ‘학당’은 현실의 차별을 해소하는 방향보다는 최대한 현실과 닮은 가상학교를 구현하려고 한 듯 보입니다.

‘학당’의 아바타는 유저들의 자의식에 기반해서, 각자가 생각하고 느끼는 자신의 모습을 기반으로 자동 생성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의 신체적 특성과 완전히 다른 자아를 형성하기 힘들죠. 만약 내가 ‘학당’에 다닌다면, 나의 자의식이 과연 휠체어 없는 내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가상현실이 바깥의 현실 사회와 너무 다르면 ‘학당’에 적응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요구될 것이고, 6년 동안 적응하다가 졸업 후 현실로 돌아올 생각을 하면 암담하기도 하죠. 결국 ‘학당’은 현실을 일부 대체하거나 보조할 뿐 장애가 없는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한참 먼 세상입니다.

소설에서는 아바타뿐만 아니라 각종 비품과 배경의 모습 역시 유저들의 의식에 기반해서 자동 생성된다고 했습니다. 개별적인 차이를 ‘평균화’ 시켜 가상의 현실이 구현된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자아든 현실이든 이렇게 유저들의 현실 ‘의식’에 기반하기 때문에 평균적인 의식과 현저히 다른 의식적 특성을 지닌 정신적 장애인들은 이 학교에서 배제되거나, 확률적으로 유령처럼 존재하게 된다는 거죠. 소설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인물의 모습이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합니다. 농인과 코다(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 다른 장애에 대한 정보와 이해는 어떻게 얻은 건가요?

원래 자폐증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 자폐증은 당사자들에 의해 ‘신경다양성’적인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자폐인을 일종의 정체성의 하나로 이해하자는 겁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농문화와 코다는 상대적으로 입지와 영향력이 크죠. 그렇다고 처음부터 작정하고 농인과 자폐인을 배치한 건 아닙니다. 특히 온시현의 ‘코다’라는 정체성은 화자로서의 중간자적 성격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된 설정입니다. 그렇게 인물들의 정체성이 정해지고는 자폐와 농, 코다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었죠. 특히 도움이 된 책은 『독특해도 괜찮아』(배리 프리전트, 톰 필즈메이어)와 『우리는 코다입니다』(이길보라, 이현화, 황지성) 『반짝이는 박수 소리』(이길보라)입니다.

요즘 드라마 <오징어 게임> 열풍이 대단합니다. 혹시 보셨나요? <오징어 게임>에 대한 비판 중에는 거기서 하는 게임들 태반이 여성과 장애인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는 ‘수인과 정령’이라는 증강현실 게임이 나옵니다. 수인은 손짓으로, 정령은 목소리로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는 공격을 하는데, 소음 때문에 정령이 불리한 낮과 캄캄해서 수인의 공격이 무효화 되는 밤이 수시로 바뀌고, 최후에 남은 한 명이 승자가 되는 설정입니다. 이 게임을 통해 참여자가 경험하는 건 뭘까요?

<오징어 게임>은 아직 안 봤습니다. 제가 유행에 둔감한 편이라서요. 소설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서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수인과 정령’이 보여줄 수도 있는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공을 들였습니다. 에필로그에서 다시 한번 반복해서 증폭시키는 게임의 효과는 다름 아닌 외로움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하는 동안 수많은 외로움을 요구받게 됩니다. 그래서 한 번쯤은 소수자성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시현과 아이들, 그리고 저는 기대합니다.

이 소설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지닌 화자 ‘온시현’의 말투도 그렇고 ‘학당’ 친구들의 말투가 유별나게 발랄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편으로는 작가님 학창 시절에 유행했을 법한 말장난이나 유행어도 시대착오적인 느낌으로 톡톡 튀고요. 작가님의 학창시설 교우관계가 투영된 건가요? 작가님의 단편 「나비가 되어」도 읽어 봤는데, 10대 여성 화자가 너무 생동감 있어서 작가님의 지정 성별이 91년생 남성인 걸 알고 살짝 놀랐습니다. 이 소설도 그렇고, 청소년 화자에 특화된 페르소나를 갖고 있는 건가요?

사실 이 소설의 발랄함은 저조차도 감당하기가 버거운 면이 있습니다. 도대체 이런 발랄함이 저의 어디서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학창시절이 좀 정신없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그 영향이 있는 것 같고요. 그렇다고 온라인에서 친구를 사귀거나 채팅을 즐겨 하는 편도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대체로 청소년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글을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저의 단절된 학력이 작용하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학교 3학년 여름에 척추를 교정하는 수술을 받고 그 후유증 때문에 고등학교를 겨우 다니다 자퇴했거든요. 그래서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저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그렇다면 좀 슬프네요. 다양한 글을 쓰고 싶은데 말이죠.

SF 장르의 매력은 뭘까요? 특히, 장애인의 관점에서 SF 상상력의 매력과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장애가 단순히 개인의 신체적 결함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불편함을 겪게끔 설계된 사회로 인해 발생하는 개념이라는 주장은, 저로서는 매혹적일 수밖에 없는데요, 그런 관점에서 SF는 그야말로 만능 도구입니다. 사회 자체를 해체하고 새로 설계할 수 있는 장르로 SF 만한 것이 없으니까요.

이후에 계획하고 있는 소설의 모티프나 소재, 이야기가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감사하게도 저에게 지면을 할애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최근에는 단편소설을 위주로 쓰고 있습니다. 당장 쓰고 있는 것은 사이보그 체육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액션 스릴러고요. 그렇게 쓴 단편소설들을 엮어 소설집을 내기로 되어 있고, 『슈뢰딩거의 아이들』 전에 쓴 포스트 아포칼립스(대재앙 이후)를 다룬 청소년 장편소설 원고도 출판사에서 검토 중이라 뒤이어 바로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후를 이야기하는 건 좀 막연하지만, 인공지능의 과적합(Overfitting)에 대한 중편 정도의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아, 이것도 청소년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일상생활 루틴이나 최근의 관심사를 공유해 줄 수 있을까요?

글쎄요, 너무 단순해서…. 일어나서 전날 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나 구경하고, 메일을 확인하고, 가볍게 빵을 먹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그다음에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보통 오후 4시 정도 되는데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침대에 누워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거나 전자책을 듣습니다. 정말 별거 없어요. 앉아서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 보니, 글 쓰는 일 외에 뭘 하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부터는 쭉 이 루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슈뢰딩거의 아이들』(최의택, 아작, 2021)

최의택

SF 소설작가. 선천적 근위축증으로 인한 체력적인 문제로 학업은 중단했지만, 10여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가상현실 교육 시스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10대 인물들의 성장 서사를 다룬 『슈뢰딩거의 아이들』로 제1회 문윤성 SF 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2019년 제21회 민들레문학상에서 「편지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으로 대상을 받았고, 「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로 예술세계 소설 부문 신인상을 받은 바 있다.

박정수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로서 책 읽고 세미나 하며 지낸다. 노들장애인야학 철학교사로서 이번 해에는 장애인의 관점에서 그리스 비극을 강독하고 있다. 장애인 언론매체 [비마이너] 객원기자로서 간간이 기사를 쓰고 있다. 작년에 탈서울하여 안양으로 이사해 경기도민이 되었다. 아내로부터 임금을 받으며 가사노동을 하고, 반려견 두 마리를 돌본다.
lizom@hanmail.net

사진제공.그린북 에이전시

2021년 11월 (25호)

상세내용

인터뷰

2년 동안의 전지구적 코로나19 상황은 인류의 삶에서 비대면 가상세계가 차지하는 비중을 비가역적으로 증가시켰다. 4차 혁명의 물결 속에서 인공지능, 가상현실, 언택트 기술의 발전과 적용 속도는 한층 빨라질 것이다. 특히, 교육 분야의 급속한 변화가 예상된다. 2년 동안 쌍방향 화상 채널을 통한 비대면 교육 경험은 사이버 학교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한층 높였다. 물리적 이동과 신체 활동에 제약받던 사람들에게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한 학교와 강의실은 오히려 접근성이 높다. 그러나 지적·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사이버 학교는 기술적 장벽도 높거니와 학교로서의 기능을 거의 못한다. 발달장애인에게 학교는 단지 머리로 지식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대면 접촉과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통해 사회성을 학습하고 돌봄을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언택트 사이버 기술의 발전 속에서 발달장애인과 같은 소수자는 더욱 큰 배제와 차별의 위험에 맞닥뜨린다.

코로나19가 더욱 가까이 끌어당긴 미래 학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SF 소설이 나왔다. 최의택 작가의 『슈뢰딩거의 아이들』이 그것이다. 이 소설은 한국 최초 SF 장편소설인 『완전사회』(1967)의 저자 문윤성을 기념하여 2021년 제정된 ‘문윤성 SF 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문단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최의택 작가가 100여 명의 신인·기성 작가와 경쟁하여 제1회 대상의 영예를 얻었다. 근육위축증을 갖고 태어났으며 수술 후유증으로 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세상과 유리된 채 홀로 습작 활동을 해왔다는 점도 이 신예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더한다. 코로나19 상황과 병원 입원을 앞둔 작가 개인의 사정상 인터뷰는 비대면 문자와 메일로 이뤄졌다.

이 소설은 2040년 무렵 출범한 ‘완전몰입형 가상현실’ 공립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런 가상현실 학교라면 작가님처럼 정도가 심한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도 중도에 학교를 포기하지 않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소설 속 ‘학당’에는 작가님 자신을 투영한 중증 신체장애인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학당’이 출범한 이유는 장애인 포용이 아니며, 제 장애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학당이 저 같은 중증 장애인을 받아들이기에는 여전히 제약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소설 속에 저 같은 인물이 없는 것이죠.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시중에 유통되는 VR(가상현실) 고글이나 스마트폰의 AR(증강현실) 기능만 해도 저 같은 사람들한텐 그림의 떡에 불과합니다. 저도 포켓몬 고(GO)를 정말 해보고 싶거든요.

소설에서 ‘학당’이 설립된 직접적인 계기로 학생들의 안전에 관련된 재난사고가 암시됩니다. 안전을 위해 가상공간으로 학교를 옮긴 건데요. 그래서 ‘학당’은 현실의 차별을 해소하는 방향보다는 최대한 현실과 닮은 가상학교를 구현하려고 한 듯 보입니다.

‘학당’의 아바타는 유저들의 자의식에 기반해서, 각자가 생각하고 느끼는 자신의 모습을 기반으로 자동 생성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의 신체적 특성과 완전히 다른 자아를 형성하기 힘들죠. 만약 내가 ‘학당’에 다닌다면, 나의 자의식이 과연 휠체어 없는 내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가상현실이 바깥의 현실 사회와 너무 다르면 ‘학당’에 적응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요구될 것이고, 6년 동안 적응하다가 졸업 후 현실로 돌아올 생각을 하면 암담하기도 하죠. 결국 ‘학당’은 현실을 일부 대체하거나 보조할 뿐 장애가 없는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한참 먼 세상입니다.

소설에서는 아바타뿐만 아니라 각종 비품과 배경의 모습 역시 유저들의 의식에 기반해서 자동 생성된다고 했습니다. 개별적인 차이를 ‘평균화’ 시켜 가상의 현실이 구현된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자아든 현실이든 이렇게 유저들의 현실 ‘의식’에 기반하기 때문에 평균적인 의식과 현저히 다른 의식적 특성을 지닌 정신적 장애인들은 이 학교에서 배제되거나, 확률적으로 유령처럼 존재하게 된다는 거죠. 소설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인물의 모습이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합니다. 농인과 코다(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 다른 장애에 대한 정보와 이해는 어떻게 얻은 건가요?

원래 자폐증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 자폐증은 당사자들에 의해 ‘신경다양성’적인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자폐인을 일종의 정체성의 하나로 이해하자는 겁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농문화와 코다는 상대적으로 입지와 영향력이 크죠. 그렇다고 처음부터 작정하고 농인과 자폐인을 배치한 건 아닙니다. 특히 온시현의 ‘코다’라는 정체성은 화자로서의 중간자적 성격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된 설정입니다. 그렇게 인물들의 정체성이 정해지고는 자폐와 농, 코다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었죠. 특히 도움이 된 책은 『독특해도 괜찮아』(배리 프리전트, 톰 필즈메이어)와 『우리는 코다입니다』(이길보라, 이현화, 황지성) 『반짝이는 박수 소리』(이길보라)입니다.

요즘 드라마 <오징어 게임> 열풍이 대단합니다. 혹시 보셨나요? <오징어 게임>에 대한 비판 중에는 거기서 하는 게임들 태반이 여성과 장애인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는 ‘수인과 정령’이라는 증강현실 게임이 나옵니다. 수인은 손짓으로, 정령은 목소리로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는 공격을 하는데, 소음 때문에 정령이 불리한 낮과 캄캄해서 수인의 공격이 무효화 되는 밤이 수시로 바뀌고, 최후에 남은 한 명이 승자가 되는 설정입니다. 이 게임을 통해 참여자가 경험하는 건 뭘까요?

<오징어 게임>은 아직 안 봤습니다. 제가 유행에 둔감한 편이라서요. 소설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서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수인과 정령’이 보여줄 수도 있는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공을 들였습니다. 에필로그에서 다시 한번 반복해서 증폭시키는 게임의 효과는 다름 아닌 외로움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하는 동안 수많은 외로움을 요구받게 됩니다. 그래서 한 번쯤은 소수자성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시현과 아이들, 그리고 저는 기대합니다.

이 소설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지닌 화자 ‘온시현’의 말투도 그렇고 ‘학당’ 친구들의 말투가 유별나게 발랄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편으로는 작가님 학창 시절에 유행했을 법한 말장난이나 유행어도 시대착오적인 느낌으로 톡톡 튀고요. 작가님의 학창시설 교우관계가 투영된 건가요? 작가님의 단편 「나비가 되어」도 읽어 봤는데, 10대 여성 화자가 너무 생동감 있어서 작가님의 지정 성별이 91년생 남성인 걸 알고 살짝 놀랐습니다. 이 소설도 그렇고, 청소년 화자에 특화된 페르소나를 갖고 있는 건가요?

사실 이 소설의 발랄함은 저조차도 감당하기가 버거운 면이 있습니다. 도대체 이런 발랄함이 저의 어디서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학창시절이 좀 정신없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그 영향이 있는 것 같고요. 그렇다고 온라인에서 친구를 사귀거나 채팅을 즐겨 하는 편도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대체로 청소년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글을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저의 단절된 학력이 작용하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학교 3학년 여름에 척추를 교정하는 수술을 받고 그 후유증 때문에 고등학교를 겨우 다니다 자퇴했거든요. 그래서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저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그렇다면 좀 슬프네요. 다양한 글을 쓰고 싶은데 말이죠.

SF 장르의 매력은 뭘까요? 특히, 장애인의 관점에서 SF 상상력의 매력과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장애가 단순히 개인의 신체적 결함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불편함을 겪게끔 설계된 사회로 인해 발생하는 개념이라는 주장은, 저로서는 매혹적일 수밖에 없는데요, 그런 관점에서 SF는 그야말로 만능 도구입니다. 사회 자체를 해체하고 새로 설계할 수 있는 장르로 SF 만한 것이 없으니까요.

이후에 계획하고 있는 소설의 모티프나 소재, 이야기가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감사하게도 저에게 지면을 할애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최근에는 단편소설을 위주로 쓰고 있습니다. 당장 쓰고 있는 것은 사이보그 체육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액션 스릴러고요. 그렇게 쓴 단편소설들을 엮어 소설집을 내기로 되어 있고, 『슈뢰딩거의 아이들』 전에 쓴 포스트 아포칼립스(대재앙 이후)를 다룬 청소년 장편소설 원고도 출판사에서 검토 중이라 뒤이어 바로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후를 이야기하는 건 좀 막연하지만, 인공지능의 과적합(Overfitting)에 대한 중편 정도의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아, 이것도 청소년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일상생활 루틴이나 최근의 관심사를 공유해 줄 수 있을까요?

글쎄요, 너무 단순해서…. 일어나서 전날 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나 구경하고, 메일을 확인하고, 가볍게 빵을 먹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그다음에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보통 오후 4시 정도 되는데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침대에 누워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거나 전자책을 듣습니다. 정말 별거 없어요. 앉아서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 보니, 글 쓰는 일 외에 뭘 하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부터는 쭉 이 루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슈뢰딩거의 아이들』(최의택, 아작, 2021)

최의택

SF 소설작가. 선천적 근위축증으로 인한 체력적인 문제로 학업은 중단했지만, 10여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가상현실 교육 시스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10대 인물들의 성장 서사를 다룬 『슈뢰딩거의 아이들』로 제1회 문윤성 SF 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2019년 제21회 민들레문학상에서 「편지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으로 대상을 받았고, 「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로 예술세계 소설 부문 신인상을 받은 바 있다.

박정수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로서 책 읽고 세미나 하며 지낸다. 노들장애인야학 철학교사로서 이번 해에는 장애인의 관점에서 그리스 비극을 강독하고 있다. 장애인 언론매체 [비마이너] 객원기자로서 간간이 기사를 쓰고 있다. 작년에 탈서울하여 안양으로 이사해 경기도민이 되었다. 아내로부터 임금을 받으며 가사노동을 하고, 반려견 두 마리를 돌본다.
lizom@hanmail.net

사진제공.그린북 에이전시

2021년 11월 (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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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3 11: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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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속 소설 줄거리만 봐도 SF장르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더 극대화 시킨 작품인 것 같아서 기대돼요 너무 궁금해서 오늘 슈뢰딩거의 아이들 책 사러 가야겠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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