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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 그 언저리

이음광장 심사후담

  • 김인규 작가
  • 등록일 2020-12-29
  • 조회수772

진우와 함께 한 시각장애 체험(2020.12)
[사진제공] 필자

얼마 전, 지역의 장애인복지관으로부터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미술공모전 심사 요청을 받았다. 지역의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상금이 꽤 큰 편이어서 그런지 참여가 많았다. 그런데 100여 편의 작품을 둘러보면서 좀 놀랍게 느껴진 것은 작품 중에 발달장애인을 표현한 것은 단 한 작품도 없다는 점이었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만날 수 있는 대부분의 장애인은 발달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품 안에 발달장애인은 없었다. 장애는 휠체어를 타거나 혹은 목발이나 의족을 하거나, 눈이 안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런데 나 또한 스스로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정말 막연했다. 학생들도 그렇게 발달장애인을 이미지로 나타낼 수 없음에 봉착했던 것은 아닐까?

교실에서 만날 수 있는 발달장애인은 신체적인 차이는 없으나 좀 이상하다는 인식일 것이다. 관계를 맺기 어려운 어떤 낯선 세계의 친구처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종종 우스꽝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 혹은 그들의 행동 때문에 일상이나 학습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것은 도움을 주거나 배려하기 전에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어떤 일이다. 그러니 그런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식을 개선하거나 어떤 행동을 제안하는 것은 막연한 일일 수 있다.

최근에 나는 진우와 함께 장애체험을 시도했다. 나는 휠체어를 타기도 하고 눈을 가리고 시각장애인이 되고, 진우가 나를 돌봐주는 설정이었다. 늘 돌봄의 대상이던 진우가 돌봄의 주체가 되도록 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 비해 내가 지적장애인이 되는 설정은 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우로 하여금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가정 아래 나를 돌봐주도록 요청하였는데,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그런 상황에서 진우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신체장애가 가지는 물리적 한계와는 다른 인식의 거리가 가로막고 있었다. 진우의 세계에 내가 동참할 수 없는 셈이었다. 거꾸로 진우 또한 나와 같은 비장애인의 세계에 그만큼 참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비장애인의 인식을 개선하고, 발달장애인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정말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이 서로 겹쳐지고 뒤섞이는 일은 몇 가지 도식으로 구성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닌 것이다.

심사를 하면서 또 하나 안타깝게 느꼈던 것은, 대부분 학생들의 표현이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초등학생들은 그래도 서로 사이좋게 놀고, 배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으나, 중학생으로 넘어가니 대부분 장애를 극복하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해낼 수 있다는 격려 혹은 어떤 동등성을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중·고등생 시기가 자기개발에 집중하는 때여서 학생들의 관심사가 더욱 그랬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과연 ‘할 수 있다!’는 구호가 앞서야 하는지 반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발달장애에 관심이 모아지면서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일을 찾아 해내는 이야기가 주목받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술계에서도 발달장애 예술인이 등장하고 그들 자신의 표현과 목소리를 담아내는 모습이 주목받는다. 언론과 미디어는 그들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여기에 반문이 든다. ‘발달장애인이 과연 정말 그렇게 홀로 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발달장애인의 장애는 매우 다양하고 정도의 차이도 크기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이 또한 비장애인 사회가 장애인의 성공신화를 소비하는 방식일 수 있다는 점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은 대다수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빠지는 함정이기도 하다. 나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장애 당사자와 부모가 함께 다른 지역에서 하는 발달장애인들의 미술 전시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의 그림들이 꽤나 그럴듯했는데, 다녀오는 길에 부모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왜 우리는 그런 식으로 지도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우리의 프로그램은 어떤 능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고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고 답했지만,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들에게는 아이들이 뭔가 더 잘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다른 부모들과 내가 소원해지는 지점이다. 그 장애를 우리가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느냐의 일이지,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는 나의 주장은 여전히 그들에게 공허하게 들리는 듯했다. 아마도 자녀가 세상을 살아갈 일을 걱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장애를 세상이, 사람들이, 어떻게 품어내느냐에 따라 그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하고 더하는 일이며, 또한 그것을 나누고 나누는 일일 수밖에 없다.

김인규

김인규 

발달장애가 있는 김진우의 아빠다. 그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부모회 활동을 하였고, 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하여 왔으며,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와 소통을 도모해왔다. 최근에는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하여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
kig8142@naver.com

김인규

김인규 

발달장애가 있는 김진우의 아빠다. 그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부모회 활동을 하였고, 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하여 왔으며,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와 소통을 도모해왔다. 최근에는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하여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
kig8142@naver.com

상세내용

진우와 함께 한 시각장애 체험(2020.12)
[사진제공] 필자

얼마 전, 지역의 장애인복지관으로부터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미술공모전 심사 요청을 받았다. 지역의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상금이 꽤 큰 편이어서 그런지 참여가 많았다. 그런데 100여 편의 작품을 둘러보면서 좀 놀랍게 느껴진 것은 작품 중에 발달장애인을 표현한 것은 단 한 작품도 없다는 점이었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만날 수 있는 대부분의 장애인은 발달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품 안에 발달장애인은 없었다. 장애는 휠체어를 타거나 혹은 목발이나 의족을 하거나, 눈이 안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런데 나 또한 스스로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정말 막연했다. 학생들도 그렇게 발달장애인을 이미지로 나타낼 수 없음에 봉착했던 것은 아닐까?

교실에서 만날 수 있는 발달장애인은 신체적인 차이는 없으나 좀 이상하다는 인식일 것이다. 관계를 맺기 어려운 어떤 낯선 세계의 친구처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종종 우스꽝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 혹은 그들의 행동 때문에 일상이나 학습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것은 도움을 주거나 배려하기 전에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어떤 일이다. 그러니 그런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식을 개선하거나 어떤 행동을 제안하는 것은 막연한 일일 수 있다.

최근에 나는 진우와 함께 장애체험을 시도했다. 나는 휠체어를 타기도 하고 눈을 가리고 시각장애인이 되고, 진우가 나를 돌봐주는 설정이었다. 늘 돌봄의 대상이던 진우가 돌봄의 주체가 되도록 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 비해 내가 지적장애인이 되는 설정은 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우로 하여금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가정 아래 나를 돌봐주도록 요청하였는데,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그런 상황에서 진우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신체장애가 가지는 물리적 한계와는 다른 인식의 거리가 가로막고 있었다. 진우의 세계에 내가 동참할 수 없는 셈이었다. 거꾸로 진우 또한 나와 같은 비장애인의 세계에 그만큼 참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비장애인의 인식을 개선하고, 발달장애인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정말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이 서로 겹쳐지고 뒤섞이는 일은 몇 가지 도식으로 구성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닌 것이다.

심사를 하면서 또 하나 안타깝게 느꼈던 것은, 대부분 학생들의 표현이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초등학생들은 그래도 서로 사이좋게 놀고, 배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으나, 중학생으로 넘어가니 대부분 장애를 극복하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해낼 수 있다는 격려 혹은 어떤 동등성을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중·고등생 시기가 자기개발에 집중하는 때여서 학생들의 관심사가 더욱 그랬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과연 ‘할 수 있다!’는 구호가 앞서야 하는지 반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발달장애에 관심이 모아지면서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일을 찾아 해내는 이야기가 주목받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술계에서도 발달장애 예술인이 등장하고 그들 자신의 표현과 목소리를 담아내는 모습이 주목받는다. 언론과 미디어는 그들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여기에 반문이 든다. ‘발달장애인이 과연 정말 그렇게 홀로 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발달장애인의 장애는 매우 다양하고 정도의 차이도 크기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이 또한 비장애인 사회가 장애인의 성공신화를 소비하는 방식일 수 있다는 점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은 대다수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빠지는 함정이기도 하다. 나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장애 당사자와 부모가 함께 다른 지역에서 하는 발달장애인들의 미술 전시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의 그림들이 꽤나 그럴듯했는데, 다녀오는 길에 부모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왜 우리는 그런 식으로 지도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우리의 프로그램은 어떤 능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고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고 답했지만,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들에게는 아이들이 뭔가 더 잘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다른 부모들과 내가 소원해지는 지점이다. 그 장애를 우리가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느냐의 일이지,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는 나의 주장은 여전히 그들에게 공허하게 들리는 듯했다. 아마도 자녀가 세상을 살아갈 일을 걱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장애를 세상이, 사람들이, 어떻게 품어내느냐에 따라 그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하고 더하는 일이며, 또한 그것을 나누고 나누는 일일 수밖에 없다.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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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가 있는 김진우의 아빠다. 그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부모회 활동을 하였고, 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하여 왔으며,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와 소통을 도모해왔다. 최근에는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하여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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