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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무장애예술주간 디자인 전시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리뷰 소통 불가능성에 관한 감각적 보고서

  • 최창희 감성정책연구소 소장
  • 등록일 2021-12-29
  • 조회수1381

리뷰

시각, 말, 인식

비장애 ‘시각’ 예술 분야 전문가는 익숙하게 전시장에 들어선다. 늘 그렇듯 입구에서 한 안내자는 친절하게 전시 관람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준다. “벽에 부착되어 있는 QR코드를 스캔하시면 전시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또, 전문가 역시 늘 그렇듯 미소로 대답하며 아랑곳하지 않고 전시장을 여유로운 태도로 둘러본다. 전시를 보는 것, 다소 어려운 작품들을 해석하는 것에 단련된 전문가로서 나름의 전시 보는 ‘법’을 알아서일까? 아니면 익숙한 ‘환경’에 대한 자신감에서일까? 여하튼 그 전문가의 기대는 이내 곧 무너졌다. 전시를, 작품들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시장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하얀 벽에는 검은색의 글이 7단으로 천장 바로 아래서부터 바닥에 내려앉을 때까지 벽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도무지 친절하지 않은 레이아웃이다. 게다가 읽으려 해도 해독 불가능한 외계어 같은 글이 한가득이다. 그 옆, 기역 자로 꺾인 벽에는 돋을새김 된 점 모양들이 찍혀있는 흰 종이가 액자에 걸려있다. 점자이다. 비장애인 전문가는 점자를 읽을 줄 모른다. 오른쪽 옆으로는 작품에 대한 설명인지 작품인지 알 수 없는 글이 가로로 3m도 넘게 길게 늘어져 대여섯 줄 쓰여 있는데, 몸을 오른쪽으로 몇 걸음씩 움직여 읽으려 해도 그다음 줄을 읽으려면 다시 또 왼쪽으로 몇 걸음을 옮겨가야 하기 때문에 읽기가 매우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읽기 자체가 어렵다.

“가능한 한 읽을 수 없도록 설정한 조건 속에서 과연 말을 쉽게 오지 않는다.”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리고 그 두 벽면 앞으로는 구불구불 기하학적인 모양의 연둣빛 책상이 길게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여러 모양의 나무 조각들이 잔뜩 놓여 있다. 쌓기 놀이라도 하라는 것인가? 그 뒤로는 엄청나게 큰 종이가 벽에 매달려 있거나 걸쳐져 있기도 하고 바닥에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바닥에 이런 안내가 있다. “벽 모서리에 걸린 8페이지와 바닥에 놓인 20페이지는 자유롭게 만지고 넘겨보면서 읽어주세요.” 친절한 설명에도 그 커다란 종이에 쓰여 있는 내용을 읽으려면 몸 전체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머리를 숙여 들여다보고 해야 하는데, 그나마도 내용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복사하다가 잘못한 것처럼 검정 잉크가 가리고 있어서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다. 해독 불가!!!

전문가는 이러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 아니 처음이다. 제아무리 어렵고 난해한 전시라 해도 나름 즐기면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경우는 어렵고 쉽고의 문제가 아닌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그리고 접근방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전시장 입구에서 친절한 안내자가 건네준 전시 소개 자료와 QR코드 스캔에 대한 안내가 떠올랐다. 아뿔싸!

시각+청각, 하나가 아닌 둘 이상의 감각

며칠 지나 그 비장애인 시각예술 전문가는 예술 행정에 종사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동료와 함께 다시 전시를 관람하였다. 시각장애인 동료는 QR코드를 통해 접근한 전시설명으로 전시를 머릿속에 그려가며 작품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전시 관람 경험이 적은 그에게 점자를 읽을 줄 모르는 비장애인 전문가는 ‘청각에 의한 시각화 과정’과 ‘시각에 의한 비시각적 인식’에 대해 질문한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정보가 지각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일방향적 폭력에 대하여 질문하기 시작하였다. 시각장애인 동료는 전시설명을 통해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작품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즐겁게 관람했다고 한다.

“저는 이 작품이 정말 좋았어요. 잔디 같이 펼쳐진 책상 위에 블록 같은 나무 조각들이 마치 집처럼 놓여있는 마을과 같은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공간에 놓인 장애인단체 이름이 적혀 있는 나무 조각들을 이렇게 저렇게 옮겨볼 수 있다고 하니 그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 점자로 된 작품도 재미있었어요. 설명을 들으니 점자라고 해서 손을 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유리로 덮여 있더라고요. 결국, 이 작품은 시각장애인도 비시각장애인도 동일한 경험을 가지게 되는 거잖아요. 흐흐”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시각 디자이너인 기획자는 시각언어를 시각장애인에게 전달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F. R. 데이비드의 노래 중 ‘Words don’t come easy’라는 가사에 착안하여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라는 전시명을 만들었다. 영어를 이해하는 것도,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이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듯 대화와 소통에는 늘 여러 장애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장애 속에서 비장애-정상-일반-보편적 언어는 이러한 의미에서 폭력적이다. “내 말 알아들었어?”라는 의미 속에는 많은 의미와 더불어 권력 관계를 보여준다. 라틴어 로고스(logos)는 이러한 ‘말’이라는 의미와 함께 ‘이성’이라고도 번역된다. 즉 로고스, 말, 이성, 숫자세기는 다른 음 같은 말이다. 이러한 의미를 연관해서 생각해 본다면 이 전시가 더 풍부하게 이해될 것이다. 이 전시에서 제공되는 음성해설(audio description)은 일반적으로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오디오 가이드(audio guide)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것은 작품의 이해를 돕는 전시설명으로서의 청각 자료가 아니라 ‘시각’ 중심의 전시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 ‘청각적 이미지’를 더한 것이기 때문이다. QR코드를 통해 접근하게 되는 음성해설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장애인, 비장애인, 전문가와 일반 관람객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전시의 한 구성요소인 것이다.

전시는 비장애인에게도 장애인에게도, 시각예술 전문가에게도 비전문가에게도 신선한 경험을 제공한다. 보려 하고 이해하려 해도 해독 불가능한 시각 정보들 속에서 연극의 방백처럼 청각으로 전달되는 음성해설은 전시의 또 다른 작품으로 전시를 완결시킨다. 그 둘이 합쳐져 전시를 관람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의 그림처럼, 하나의 이야기처럼 전시는 관람객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의사소통 합리성’을 주장하며, 이 세상이 전문화되는 과정에서 언어가 분화되어 합일된 소통이 불가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재현 불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이성 능력의 한계를 지적한다. 이성으로는 이 세상을 다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감각적 세계에 대해 보다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체철학자의 대표주자인 자크 데리다는, 움직이는 기차에서 다가오는 듯하면서도 멀어지는 표지판은 결국 정확히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처럼, 의미는 끊임없이 미끄러져 만날 수 없다는 ‘차연’(差延, différance)이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이 더 어려울 수 있지만, 저명한 철학자들 역시 중심이 존재하는 일방향적 소통과 이에 따르는 폭력적인 권력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어렵게 말하지 않아도 전시는 우리에게 무장애라는 것, 장애라는 것, 소통이라는 것, 의미전달이라는 것에 대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이제 ‘장애’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나아가 장애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든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말은 쉽게 오지 않기 때문에, 그 장애를 인정해야 한다. 장애는 누구에게나 속해 있는 것이고,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품 음성해설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여러분과 공유한다. 전시가 청각적으로 연극적으로 다가올 수도 혹은 시각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시각장애인의 관람 경험에 관한 이해를 도와주신 조영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주임께도 감사 인사를 드린다.

  • 정사록, <네모들>

  •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작품 음성해설
    바로가기(링크)

  •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전시 코멘터리
    영상 출처.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유튜브 바로가기(링크)

2021 무장애예술주간 디자인전시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 2021.12.1.-12.12. ∣ 이음센터 갤러리

디자인과 접근성에 관한 고민을 담은 전시로, 예술 생산과 소비의 측면에서 디자이너로서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한다. 더 나아가 ‘그래픽 디자인이 다른 언어로 번역될 수 있는가? 혹은 번역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전시정보 바로가기(링크)

최창희

문화예술공동체를 위한 감성정책연구소 소장. 「랑시에르 사유에서 예술과 노동의 문제」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론과 현장의 가교 역할을 하는 실천적 이론가의 꿈을 가지고 있다. 예술을 통한 함께 살기에 대한 연구 및 실천적 활동 등을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mediaaura@hanmail.net

사진 제공.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촬영. 박수환)

2022년 1월 (27호)

상세내용

리뷰

시각, 말, 인식

비장애 ‘시각’ 예술 분야 전문가는 익숙하게 전시장에 들어선다. 늘 그렇듯 입구에서 한 안내자는 친절하게 전시 관람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준다. “벽에 부착되어 있는 QR코드를 스캔하시면 전시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또, 전문가 역시 늘 그렇듯 미소로 대답하며 아랑곳하지 않고 전시장을 여유로운 태도로 둘러본다. 전시를 보는 것, 다소 어려운 작품들을 해석하는 것에 단련된 전문가로서 나름의 전시 보는 ‘법’을 알아서일까? 아니면 익숙한 ‘환경’에 대한 자신감에서일까? 여하튼 그 전문가의 기대는 이내 곧 무너졌다. 전시를, 작품들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시장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하얀 벽에는 검은색의 글이 7단으로 천장 바로 아래서부터 바닥에 내려앉을 때까지 벽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도무지 친절하지 않은 레이아웃이다. 게다가 읽으려 해도 해독 불가능한 외계어 같은 글이 한가득이다. 그 옆, 기역 자로 꺾인 벽에는 돋을새김 된 점 모양들이 찍혀있는 흰 종이가 액자에 걸려있다. 점자이다. 비장애인 전문가는 점자를 읽을 줄 모른다. 오른쪽 옆으로는 작품에 대한 설명인지 작품인지 알 수 없는 글이 가로로 3m도 넘게 길게 늘어져 대여섯 줄 쓰여 있는데, 몸을 오른쪽으로 몇 걸음씩 움직여 읽으려 해도 그다음 줄을 읽으려면 다시 또 왼쪽으로 몇 걸음을 옮겨가야 하기 때문에 읽기가 매우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읽기 자체가 어렵다.

“가능한 한 읽을 수 없도록 설정한 조건 속에서 과연 말을 쉽게 오지 않는다.”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리고 그 두 벽면 앞으로는 구불구불 기하학적인 모양의 연둣빛 책상이 길게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여러 모양의 나무 조각들이 잔뜩 놓여 있다. 쌓기 놀이라도 하라는 것인가? 그 뒤로는 엄청나게 큰 종이가 벽에 매달려 있거나 걸쳐져 있기도 하고 바닥에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바닥에 이런 안내가 있다. “벽 모서리에 걸린 8페이지와 바닥에 놓인 20페이지는 자유롭게 만지고 넘겨보면서 읽어주세요.” 친절한 설명에도 그 커다란 종이에 쓰여 있는 내용을 읽으려면 몸 전체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머리를 숙여 들여다보고 해야 하는데, 그나마도 내용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복사하다가 잘못한 것처럼 검정 잉크가 가리고 있어서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다. 해독 불가!!!

전문가는 이러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 아니 처음이다. 제아무리 어렵고 난해한 전시라 해도 나름 즐기면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경우는 어렵고 쉽고의 문제가 아닌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그리고 접근방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전시장 입구에서 친절한 안내자가 건네준 전시 소개 자료와 QR코드 스캔에 대한 안내가 떠올랐다. 아뿔싸!

시각+청각, 하나가 아닌 둘 이상의 감각

며칠 지나 그 비장애인 시각예술 전문가는 예술 행정에 종사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동료와 함께 다시 전시를 관람하였다. 시각장애인 동료는 QR코드를 통해 접근한 전시설명으로 전시를 머릿속에 그려가며 작품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전시 관람 경험이 적은 그에게 점자를 읽을 줄 모르는 비장애인 전문가는 ‘청각에 의한 시각화 과정’과 ‘시각에 의한 비시각적 인식’에 대해 질문한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정보가 지각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일방향적 폭력에 대하여 질문하기 시작하였다. 시각장애인 동료는 전시설명을 통해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작품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즐겁게 관람했다고 한다.

“저는 이 작품이 정말 좋았어요. 잔디 같이 펼쳐진 책상 위에 블록 같은 나무 조각들이 마치 집처럼 놓여있는 마을과 같은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공간에 놓인 장애인단체 이름이 적혀 있는 나무 조각들을 이렇게 저렇게 옮겨볼 수 있다고 하니 그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 점자로 된 작품도 재미있었어요. 설명을 들으니 점자라고 해서 손을 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유리로 덮여 있더라고요. 결국, 이 작품은 시각장애인도 비시각장애인도 동일한 경험을 가지게 되는 거잖아요. 흐흐”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시각 디자이너인 기획자는 시각언어를 시각장애인에게 전달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F. R. 데이비드의 노래 중 ‘Words don’t come easy’라는 가사에 착안하여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라는 전시명을 만들었다. 영어를 이해하는 것도,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이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듯 대화와 소통에는 늘 여러 장애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장애 속에서 비장애-정상-일반-보편적 언어는 이러한 의미에서 폭력적이다. “내 말 알아들었어?”라는 의미 속에는 많은 의미와 더불어 권력 관계를 보여준다. 라틴어 로고스(logos)는 이러한 ‘말’이라는 의미와 함께 ‘이성’이라고도 번역된다. 즉 로고스, 말, 이성, 숫자세기는 다른 음 같은 말이다. 이러한 의미를 연관해서 생각해 본다면 이 전시가 더 풍부하게 이해될 것이다. 이 전시에서 제공되는 음성해설(audio description)은 일반적으로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오디오 가이드(audio guide)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것은 작품의 이해를 돕는 전시설명으로서의 청각 자료가 아니라 ‘시각’ 중심의 전시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 ‘청각적 이미지’를 더한 것이기 때문이다. QR코드를 통해 접근하게 되는 음성해설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장애인, 비장애인, 전문가와 일반 관람객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전시의 한 구성요소인 것이다.

전시는 비장애인에게도 장애인에게도, 시각예술 전문가에게도 비전문가에게도 신선한 경험을 제공한다. 보려 하고 이해하려 해도 해독 불가능한 시각 정보들 속에서 연극의 방백처럼 청각으로 전달되는 음성해설은 전시의 또 다른 작품으로 전시를 완결시킨다. 그 둘이 합쳐져 전시를 관람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의 그림처럼, 하나의 이야기처럼 전시는 관람객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의사소통 합리성’을 주장하며, 이 세상이 전문화되는 과정에서 언어가 분화되어 합일된 소통이 불가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재현 불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이성 능력의 한계를 지적한다. 이성으로는 이 세상을 다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감각적 세계에 대해 보다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체철학자의 대표주자인 자크 데리다는, 움직이는 기차에서 다가오는 듯하면서도 멀어지는 표지판은 결국 정확히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처럼, 의미는 끊임없이 미끄러져 만날 수 없다는 ‘차연’(差延, différance)이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이 더 어려울 수 있지만, 저명한 철학자들 역시 중심이 존재하는 일방향적 소통과 이에 따르는 폭력적인 권력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어렵게 말하지 않아도 전시는 우리에게 무장애라는 것, 장애라는 것, 소통이라는 것, 의미전달이라는 것에 대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이제 ‘장애’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나아가 장애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든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말은 쉽게 오지 않기 때문에, 그 장애를 인정해야 한다. 장애는 누구에게나 속해 있는 것이고,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품 음성해설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여러분과 공유한다. 전시가 청각적으로 연극적으로 다가올 수도 혹은 시각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시각장애인의 관람 경험에 관한 이해를 도와주신 조영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주임께도 감사 인사를 드린다.

  • 정사록, <네모들>

  •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작품 음성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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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전시 코멘터리
    영상 출처.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유튜브 바로가기(링크)

2021 무장애예술주간 디자인전시 《말은 쉽게 오지 않는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 2021.12.1.-12.12. ∣ 이음센터 갤러리

디자인과 접근성에 관한 고민을 담은 전시로, 예술 생산과 소비의 측면에서 디자이너로서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한다. 더 나아가 ‘그래픽 디자인이 다른 언어로 번역될 수 있는가? 혹은 번역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전시정보 바로가기(링크)

최창희

문화예술공동체를 위한 감성정책연구소 소장. 「랑시에르 사유에서 예술과 노동의 문제」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론과 현장의 가교 역할을 하는 실천적 이론가의 꿈을 가지고 있다. 예술을 통한 함께 살기에 대한 연구 및 실천적 활동 등을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mediaaura@hanmail.net

사진 제공.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촬영. 박수환)

2022년 1월 (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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