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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미디어 시대, 장애·문화·콘텐츠 ③

트렌드 답이 아닌 질문을 찾는 ‘재생’

  • 장혜영 영화감독 · 유튜버 생각많은 둘째언니
  • 등록일 2019-08-28
  • 조회수414

트렌드리포트

1인 미디어 시대, 장애·문화·콘텐츠 ③

답이 아닌 질문을 찾는 ‘재생’

장혜영 영화감독 · 유튜버 생각많은 둘째언니

유튜브를 비롯한 주요 소셜미디어의 최대의 특징 중 하나는 ‘버티컬(vertical, 수직의)’ 하다는 것이다. 플랫폼은 수평적이지만 채널은 수직적이다. 마치 ‘인간’이라는 말 안에는 인간 일반이 포함되지만 ‘장혜영’이라는 한 인간이 인류 전반의 모든 특성을 전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유튜브에는 모든 것이 있지만 모든 것이 담긴 채널은 없다. 채널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특성과 매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난다.

미국의 비평가 마거릿 풀러는 “비평가는 독자들이 이전까지는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을 현명하게 사랑하도록” 인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 유튜버를 다루는 칼럼을 여러 번 쓰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유튜버로 활동하는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서는 작업은 매력적이었지만, 그 채널과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 그에 대해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어딘가 ‘유튜브적이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다는 말을 굳이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 채널의 새로운 영상이 기다려지는 마음 없이 무언가 글감이 될 만한 것을 찾는 눈으로 깊고 넓은 유튜브의 세계를 정처 없이 헤매는 것은 별로 즐거운 여정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에 관한 연재의 마지막 글이 되는 이 글에서 ‘버티컬’해지기로 했다. ‘소개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보는 사람’의 한 명으로서 내 감각과 사고에 맞닿아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채널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 채널은 23세의 성인 발달장애인 김진우 씨의 일상을 아버지의 시선에서 담아내는 ‘김진우’라는 이름의 채널이다. 2019년 1월 26일에 올라온 첫 영상의 제목은 ‘발달장애 진우의 라면 끓이기 첫번째’이다. 영상이 시작되면 누군가의 다소 긴장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진우 혼자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라면 끓이기 연습을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그동안 몇 번 해 봤지만 앞으로 지속적으로 하면서 혼자 아빠의 도움 없이도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을 해 보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라면 끓이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진우 씨의 ‘아빠’다. 아빠는 목소리로 등장할 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빠의 조언을 받아 가며 22분 동안 라면을 끓이는 진우 씨의 모습이다.

진우 씨는 아빠와 함께 라면을 끓이고 설거지를 하고 그림을 그리며 기차를 보러 간다. ‘김진우’ 채널의 영상에는 우리가 방송에서 익숙하게 접해온 방송 다큐멘터리식의 구구절절한 나레이션이 없다. 감성을 자극하는 배경음악도 없다. 거의 아무런 편집 없이 일상의 시간 축을 따라 일분일초를 정직하게 흘러가는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진우 씨와 아빠는 끊임없이 대화한다. 끓인 라면을 숟가락으로 그릇에 옮기는 게 좋을지 집게로 옮기는 게 좋을지, 다 먹은 라면의 설거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눈다. 진우 씨는 아빠에게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라면에 대해, 기차에 대해, 영상작업과 유튜브 댓글에 대해서도 말이다. ‘진우에게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면도, 양치, 세수, 머리감기’라는 영상에서 (이 영상에서 아빠는 관자놀이에 카메라를 붙인 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진우 씨는 양치질을 끝낸 후 갑자기 아빠에게 이번 영상을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이유를 묻는 대화 끝에 둘은 다시 영상을 올리기로 합의를 본다.

우리가 보는 것은 진우 씨와 그 아버지의 일상이지만 그 모습에서 동시에 우리는 장애에 대한 돌봄을 사회 전체가 나누는 대신 가족에게, 그 가운데에도 주로 여성에게 오롯이 짊어지도록 해 왔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만난다. 남성인 아버지가 성인 발달장애인의 일상을 케어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새로움이다. 철저히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진우 씨이기도 하지만 그 아버지이기도 하다. 부자의 시시콜콜한 대화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장애인’과 ‘장애인 부모’가 아니라 이름과 인격을 가진 두 명의 사람을 만난다. 그 목소리와 말투, 이어지는 단어들은 장애 당사자와 그 가족이 어떻게 적응하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하는지, ‘부모의 관점’이란 무엇인지, 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데에는 섬세한 귀가 필요한지, 인간이 다른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채널은 우리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의 삶이 놓여있는 무수한 맥락과 매듭지어지지 않은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공개적인 태도이다. 명확히 제시된 하나의 태도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태도를 자문하게 만든다. 성인 발달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런 삶의 조각을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과 공유하는 크리에이터의 한 사람으로서 채널 ‘김진우’는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답이 아니라 멈추어 서서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이 채널은 참으로 소중하다.

새로운 플랫폼이 부상한다는 것이 꼭 언제나 사람들에게 새롭고 신선한 가치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가끔 우리는 마음 한켠에 익숙하게 지니고 있던 고민의 낯익은 얼굴을 새로운 플랫폼에서 새삼스레 재발견한다. 오래된 물음을 신선하게 환기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것만큼이나 소중하다. 유튜브에는 수많은 답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곧 우리 삶의 대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답이 아니라 질문을 되찾기 위해 재생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 발달장애 진우의 라면 끓이기 첫번째

  • 진우에게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면도, 양치, 세수, 머리감기

장혜영

‘도무지 이해 안 가는 세상을 그래도 이해해보고자 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중인 유튜버 ‘생각많은 둘째언니’이자 탈시설한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 관한 영화 <어른이 되면>의 감독이다. 동명의 책을 썼다. 종종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담아 노래를 만든다.
universalmodest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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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사진.노래하는 민이

2019년 8월 (7호)

상세내용

트렌드리포트

1인 미디어 시대, 장애·문화·콘텐츠 ③

답이 아닌 질문을 찾는 ‘재생’

장혜영 영화감독 · 유튜버 생각많은 둘째언니

유튜브를 비롯한 주요 소셜미디어의 최대의 특징 중 하나는 ‘버티컬(vertical, 수직의)’ 하다는 것이다. 플랫폼은 수평적이지만 채널은 수직적이다. 마치 ‘인간’이라는 말 안에는 인간 일반이 포함되지만 ‘장혜영’이라는 한 인간이 인류 전반의 모든 특성을 전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유튜브에는 모든 것이 있지만 모든 것이 담긴 채널은 없다. 채널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특성과 매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난다.

미국의 비평가 마거릿 풀러는 “비평가는 독자들이 이전까지는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을 현명하게 사랑하도록” 인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 유튜버를 다루는 칼럼을 여러 번 쓰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유튜버로 활동하는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서는 작업은 매력적이었지만, 그 채널과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 그에 대해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어딘가 ‘유튜브적이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다는 말을 굳이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 채널의 새로운 영상이 기다려지는 마음 없이 무언가 글감이 될 만한 것을 찾는 눈으로 깊고 넓은 유튜브의 세계를 정처 없이 헤매는 것은 별로 즐거운 여정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에 관한 연재의 마지막 글이 되는 이 글에서 ‘버티컬’해지기로 했다. ‘소개하는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보는 사람’의 한 명으로서 내 감각과 사고에 맞닿아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채널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 채널은 23세의 성인 발달장애인 김진우 씨의 일상을 아버지의 시선에서 담아내는 ‘김진우’라는 이름의 채널이다. 2019년 1월 26일에 올라온 첫 영상의 제목은 ‘발달장애 진우의 라면 끓이기 첫번째’이다. 영상이 시작되면 누군가의 다소 긴장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진우 혼자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라면 끓이기 연습을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그동안 몇 번 해 봤지만 앞으로 지속적으로 하면서 혼자 아빠의 도움 없이도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을 해 보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라면 끓이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진우 씨의 ‘아빠’다. 아빠는 목소리로 등장할 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빠의 조언을 받아 가며 22분 동안 라면을 끓이는 진우 씨의 모습이다.

진우 씨는 아빠와 함께 라면을 끓이고 설거지를 하고 그림을 그리며 기차를 보러 간다. ‘김진우’ 채널의 영상에는 우리가 방송에서 익숙하게 접해온 방송 다큐멘터리식의 구구절절한 나레이션이 없다. 감성을 자극하는 배경음악도 없다. 거의 아무런 편집 없이 일상의 시간 축을 따라 일분일초를 정직하게 흘러가는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진우 씨와 아빠는 끊임없이 대화한다. 끓인 라면을 숟가락으로 그릇에 옮기는 게 좋을지 집게로 옮기는 게 좋을지, 다 먹은 라면의 설거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눈다. 진우 씨는 아빠에게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라면에 대해, 기차에 대해, 영상작업과 유튜브 댓글에 대해서도 말이다. ‘진우에게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면도, 양치, 세수, 머리감기’라는 영상에서 (이 영상에서 아빠는 관자놀이에 카메라를 붙인 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진우 씨는 양치질을 끝낸 후 갑자기 아빠에게 이번 영상을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이유를 묻는 대화 끝에 둘은 다시 영상을 올리기로 합의를 본다.

우리가 보는 것은 진우 씨와 그 아버지의 일상이지만 그 모습에서 동시에 우리는 장애에 대한 돌봄을 사회 전체가 나누는 대신 가족에게, 그 가운데에도 주로 여성에게 오롯이 짊어지도록 해 왔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만난다. 남성인 아버지가 성인 발달장애인의 일상을 케어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새로움이다. 철저히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진우 씨이기도 하지만 그 아버지이기도 하다. 부자의 시시콜콜한 대화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장애인’과 ‘장애인 부모’가 아니라 이름과 인격을 가진 두 명의 사람을 만난다. 그 목소리와 말투, 이어지는 단어들은 장애 당사자와 그 가족이 어떻게 적응하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하는지, ‘부모의 관점’이란 무엇인지, 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데에는 섬세한 귀가 필요한지, 인간이 다른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채널은 우리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의 삶이 놓여있는 무수한 맥락과 매듭지어지지 않은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공개적인 태도이다. 명확히 제시된 하나의 태도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태도를 자문하게 만든다. 성인 발달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런 삶의 조각을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과 공유하는 크리에이터의 한 사람으로서 채널 ‘김진우’는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답이 아니라 멈추어 서서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이 채널은 참으로 소중하다.

새로운 플랫폼이 부상한다는 것이 꼭 언제나 사람들에게 새롭고 신선한 가치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가끔 우리는 마음 한켠에 익숙하게 지니고 있던 고민의 낯익은 얼굴을 새로운 플랫폼에서 새삼스레 재발견한다. 오래된 물음을 신선하게 환기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것만큼이나 소중하다. 유튜브에는 수많은 답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곧 우리 삶의 대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답이 아니라 질문을 되찾기 위해 재생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 발달장애 진우의 라면 끓이기 첫번째

  • 진우에게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면도, 양치, 세수, 머리감기

장혜영

‘도무지 이해 안 가는 세상을 그래도 이해해보고자 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중인 유튜버 ‘생각많은 둘째언니’이자 탈시설한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 관한 영화 <어른이 되면>의 감독이다. 동명의 책을 썼다. 종종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담아 노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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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사진.노래하는 민이

2019년 8월 (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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