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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캐릭터의 한계를 넘어

이슈 구원받지 않고도 완전한 그녀들을 만날 수는 없을까

  •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 등록일 2022-08-24
  • 조회수1540

이슈

나는 장애를 가진 여성이자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이다.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 얼마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지 매 순간 확인하게 된다. 특히 미디어에서 장애인, 여성, 사회적 소수자가 그려지는 방식은 자주 불편함을 자아낸다. 미디어는 동시대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며, 우리가 접하는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작품 속 캐릭터는 때론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 가공된 캐릭터만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생산되며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인권 교육을 받게 했으면 좋겠다.

장애여성인 나는 미디어 속 장애여성 캐릭터에 주목해 왔다. 많은 작품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몇몇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준 장애여성 캐릭터를 접하며 여러 의문이 들었다. 작품 속 장애여성이 비슷한 캐릭터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영화 몇 편만 분석해봐도 알 수 있다. 중도 시각장애여성이 주인공인 영화 <오직 그대만>은, 낮에는 생수 배달을 하고 밤에는 주차 부스에서 근무하는 철민(소지섭 분)이, 이전에 일했던 할아버지와 가깝게 지내며 종종 놀러 왔던 시각장애여성 정화(한효주 분)를 만나게 되면서 시작한다. 고된 텔레마케터 일을 하는 정화의 유일한 취미는 주차 부스에 들러 텔레비전으로 드라마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조금씩 도움을 주며 친해진 철민은 어느 날 회사 상사로부터 성폭행당할 뻔한 그녀를 구해 주게 되고, 이후 더욱 가까워진 둘의 연애가 시작된다. 한편, 일본 작품을 리메이크한 영화 <조제>에서는 자신을 조제라고 부르는 여성(한지민 분)이 할머니와 단둘이 휠체어를 타고 밖에 나갔다가 넘어지면서 영석(남주혁 분)을 처음 만난다. 영석은 그녀를 도우며 집까지 데려다주고는 그녀가 차려준 밥을 먹고 헤어진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영석은 그날 이후 호기심으로 조제에게 조금씩 다가가고 마침내 둘은 연애를 하게 된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곤경에 빠진 장애여성을 비장애남성이 구해주며 로맨스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흔히 로맨스 장르에서 볼 수 있는 설레고 달콤한 감정으로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외롭고 고독한 장애여성에게 연민이 생기면서 연애가 시작된다. 마치 구원 투수처럼 나타나는 비장애남성은 장애여성에게 유일한 희망으로 묘사되곤 한다. 장애여성의 장애는 ‘신체적 불편함’ 혹은 ‘사회적 불편함’을 넘어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장애여성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고립된 장애여성이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매개체는 비장애남성이다. 이와 같은 스토리의 뒤편에 자리한 의식은 장애여성이 고립된 세계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비장애남성 중심 사회의 허락으로, 오로지 비장애남성에 의해서만 세상과 만날 수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비장애남성 외에는 주변인들과의 관계도 드러나지 않고, 장애여성이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체계도 아예 삭제된 상태이며, 단면적인 이성애 관계가 전부인 양 과잉 설정되는 것이 문제다.

이러한 영화를 볼 때면 장애여성은 장애와 더불어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불완전하고 결핍된 상태라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받는 느낌이다. 사회 통념상 장애와 여성의 정체성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 스스로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수동적인 객체로 인식되어 왔다. 심지어 남성에게 폭력을 당하는 상황에서조차 장애여성은 피해자의 역할에 그치고 해결의 주체는 비장애남성이 된다. 영화 <오직 그대만>에서도 혼자 사는 장애여성 집에 남성 직장상사가 찾아와서 성폭행하려는 장면에서 슈퍼히어로처럼 비장애남성 주인공이 나타나 구해준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두 남성 모두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일 뿐일 텐데 말이다.

한편, 장애 유형에 따라 장애여성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 시각장애여성 캐릭터는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장애 유형이다. 영화 <블라인드>의 김하늘, <사랑따윈 필요없어>의 문근영,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송혜교처럼, 비장애여성 배우들이 기존 멜로드라마에서 인기를 얻은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하여 연기하기엔 가장 좋은 장애 유형이 아닐까 한다. 눈맞춤을 하지 않는 것과 흰지팡이로 장애가 완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고집하며 화장하고 옷 입는 것이 비장애여성과 다르지 않음을 입증하고자 한다.

그에 반해 지체장애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비장애남성의 건강한 신체가 그녀의 장애를 소거하는 듯한 장면이 자주 나온다. 비장애남성이 장애여성의 장애를 극복하는 역할로 쓰이는 것만 같다. 그리고 장애 유형과 상관없이 공통된 연출 장면이 있다면 비장애남성에게 장애여성이 업혀 있는 장면이다. 영화 포스터에도 이런 사진이 많이 사용된다. 이 연출은 불안정한 장애/여성의 정체성이 비장애남성으로 인해 완전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처럼 의미화된 것인가? 중증장애여성인 내가 처음 혈연 가족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단골 멘트처럼 들었던 말이 있다. “직장도 있고 집도 있으니, 이제 남자만 있으면 되겠네.” 남자와 연애가 빠진 나의 독립은 영화에서 그런 것처럼 완전한 삶이 아닌 것이다.

반면 장애남성이 나오는 영화는 다르다. <퍼펙트맨> <나의 특별한 형제> <그것만이 내 세상> 등은 우선 로맨스가 주된 내용이 아니다. 주인공인 장애남성은 구원받는 존재가 아닌, 남성 연대로 이어지는 지원을 받으며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하고, 특별한 능력이 발견되기도 하며,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장애남성의 경우 장애가 결핍의 조건이기는 하지만 다른 연대나 대안적 관계를 시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혹은 다른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재현된다는 점이 차이가 아닐까. 미디어 콘텐츠는 이처럼 젠더에 따라 장애를 다르게 작동시킨다.

최근 들어 미디어 콘텐츠에 등장하는 장애여성 캐릭터가 변화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선에서만 허용된다. 요즈음 인기몰이 중인 자폐장애를 가진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기존 콘텐츠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장애에 대한 고민을 전달해 주지만, 분명한 한계를 엿볼 수 있다. 장애여성을 내세운 콘텐츠에서 공식과 같은, 까칠하고 어둡다가도 비장애남성과의 관계가 시작되면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순수하고 밝은 성격으로 변하며 어떻게든 호감형 인물로 가공된다. 사회가 보고 싶어 하는, 보여주고 싶은 장애여성으로 규범적 기준 안에 가둬버린다. 나는 많은 미디어 콘텐츠 속에서 입체적이고 뚜렷한, 독립적인 장애여성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 남성이 시각장애인 여성을 등에 업고 가로등 불빛만 비추는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다.
  • 남성이 시각장애인 여성을 등에 업고 너른 들판의 길을 걷고 있다.

장애여성을 다루는 많은 영화에서 장애여성이 비장애남성에게 업혀 있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왼쪽) 영화 <오직 그대만>(2011)(링크), (오른쪽) 영화 <조제>(2020)(링크)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멋진 글은 못 쓰지만,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인권운동이다. 비장애 중심의 정상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의 언어로 말하기를 계속할 것이다.
ester9079s@gmail.com

2022년 9월 (34호)

김상희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멋진 글은 못 쓰지만,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인권운동이다. 비장애 중심의 정상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의 언어로 말하기를 계속할 것이다.
ester9079s@gmail.com

상세내용

이슈

나는 장애를 가진 여성이자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이다.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 얼마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지 매 순간 확인하게 된다. 특히 미디어에서 장애인, 여성, 사회적 소수자가 그려지는 방식은 자주 불편함을 자아낸다. 미디어는 동시대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며, 우리가 접하는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작품 속 캐릭터는 때론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 가공된 캐릭터만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생산되며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인권 교육을 받게 했으면 좋겠다.

장애여성인 나는 미디어 속 장애여성 캐릭터에 주목해 왔다. 많은 작품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몇몇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준 장애여성 캐릭터를 접하며 여러 의문이 들었다. 작품 속 장애여성이 비슷한 캐릭터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영화 몇 편만 분석해봐도 알 수 있다. 중도 시각장애여성이 주인공인 영화 <오직 그대만>은, 낮에는 생수 배달을 하고 밤에는 주차 부스에서 근무하는 철민(소지섭 분)이, 이전에 일했던 할아버지와 가깝게 지내며 종종 놀러 왔던 시각장애여성 정화(한효주 분)를 만나게 되면서 시작한다. 고된 텔레마케터 일을 하는 정화의 유일한 취미는 주차 부스에 들러 텔레비전으로 드라마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조금씩 도움을 주며 친해진 철민은 어느 날 회사 상사로부터 성폭행당할 뻔한 그녀를 구해 주게 되고, 이후 더욱 가까워진 둘의 연애가 시작된다. 한편, 일본 작품을 리메이크한 영화 <조제>에서는 자신을 조제라고 부르는 여성(한지민 분)이 할머니와 단둘이 휠체어를 타고 밖에 나갔다가 넘어지면서 영석(남주혁 분)을 처음 만난다. 영석은 그녀를 도우며 집까지 데려다주고는 그녀가 차려준 밥을 먹고 헤어진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영석은 그날 이후 호기심으로 조제에게 조금씩 다가가고 마침내 둘은 연애를 하게 된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곤경에 빠진 장애여성을 비장애남성이 구해주며 로맨스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흔히 로맨스 장르에서 볼 수 있는 설레고 달콤한 감정으로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외롭고 고독한 장애여성에게 연민이 생기면서 연애가 시작된다. 마치 구원 투수처럼 나타나는 비장애남성은 장애여성에게 유일한 희망으로 묘사되곤 한다. 장애여성의 장애는 ‘신체적 불편함’ 혹은 ‘사회적 불편함’을 넘어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장애여성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고립된 장애여성이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매개체는 비장애남성이다. 이와 같은 스토리의 뒤편에 자리한 의식은 장애여성이 고립된 세계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비장애남성 중심 사회의 허락으로, 오로지 비장애남성에 의해서만 세상과 만날 수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비장애남성 외에는 주변인들과의 관계도 드러나지 않고, 장애여성이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체계도 아예 삭제된 상태이며, 단면적인 이성애 관계가 전부인 양 과잉 설정되는 것이 문제다.

이러한 영화를 볼 때면 장애여성은 장애와 더불어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불완전하고 결핍된 상태라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받는 느낌이다. 사회 통념상 장애와 여성의 정체성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 스스로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수동적인 객체로 인식되어 왔다. 심지어 남성에게 폭력을 당하는 상황에서조차 장애여성은 피해자의 역할에 그치고 해결의 주체는 비장애남성이 된다. 영화 <오직 그대만>에서도 혼자 사는 장애여성 집에 남성 직장상사가 찾아와서 성폭행하려는 장면에서 슈퍼히어로처럼 비장애남성 주인공이 나타나 구해준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두 남성 모두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일 뿐일 텐데 말이다.

한편, 장애 유형에 따라 장애여성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 시각장애여성 캐릭터는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장애 유형이다. 영화 <블라인드>의 김하늘, <사랑따윈 필요없어>의 문근영,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송혜교처럼, 비장애여성 배우들이 기존 멜로드라마에서 인기를 얻은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하여 연기하기엔 가장 좋은 장애 유형이 아닐까 한다. 눈맞춤을 하지 않는 것과 흰지팡이로 장애가 완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고집하며 화장하고 옷 입는 것이 비장애여성과 다르지 않음을 입증하고자 한다.

그에 반해 지체장애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비장애남성의 건강한 신체가 그녀의 장애를 소거하는 듯한 장면이 자주 나온다. 비장애남성이 장애여성의 장애를 극복하는 역할로 쓰이는 것만 같다. 그리고 장애 유형과 상관없이 공통된 연출 장면이 있다면 비장애남성에게 장애여성이 업혀 있는 장면이다. 영화 포스터에도 이런 사진이 많이 사용된다. 이 연출은 불안정한 장애/여성의 정체성이 비장애남성으로 인해 완전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처럼 의미화된 것인가? 중증장애여성인 내가 처음 혈연 가족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단골 멘트처럼 들었던 말이 있다. “직장도 있고 집도 있으니, 이제 남자만 있으면 되겠네.” 남자와 연애가 빠진 나의 독립은 영화에서 그런 것처럼 완전한 삶이 아닌 것이다.

반면 장애남성이 나오는 영화는 다르다. <퍼펙트맨> <나의 특별한 형제> <그것만이 내 세상> 등은 우선 로맨스가 주된 내용이 아니다. 주인공인 장애남성은 구원받는 존재가 아닌, 남성 연대로 이어지는 지원을 받으며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하고, 특별한 능력이 발견되기도 하며,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장애남성의 경우 장애가 결핍의 조건이기는 하지만 다른 연대나 대안적 관계를 시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혹은 다른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재현된다는 점이 차이가 아닐까. 미디어 콘텐츠는 이처럼 젠더에 따라 장애를 다르게 작동시킨다.

최근 들어 미디어 콘텐츠에 등장하는 장애여성 캐릭터가 변화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선에서만 허용된다. 요즈음 인기몰이 중인 자폐장애를 가진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기존 콘텐츠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장애에 대한 고민을 전달해 주지만, 분명한 한계를 엿볼 수 있다. 장애여성을 내세운 콘텐츠에서 공식과 같은, 까칠하고 어둡다가도 비장애남성과의 관계가 시작되면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순수하고 밝은 성격으로 변하며 어떻게든 호감형 인물로 가공된다. 사회가 보고 싶어 하는, 보여주고 싶은 장애여성으로 규범적 기준 안에 가둬버린다. 나는 많은 미디어 콘텐츠 속에서 입체적이고 뚜렷한, 독립적인 장애여성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 남성이 시각장애인 여성을 등에 업고 가로등 불빛만 비추는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다.
  • 남성이 시각장애인 여성을 등에 업고 너른 들판의 길을 걷고 있다.

장애여성을 다루는 많은 영화에서 장애여성이 비장애남성에게 업혀 있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왼쪽) 영화 <오직 그대만>(2011)(링크), (오른쪽) 영화 <조제>(2020)(링크)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멋진 글은 못 쓰지만,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인권운동이다. 비장애 중심의 정상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의 언어로 말하기를 계속할 것이다.
ester9079s@gmail.com

2022년 9월 (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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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2 09: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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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깊이 공감이 갑니다. 최근에는 좀 나아졌다지만 비장애남성에 의해 구원(?)받는 듯한 의미를 내포하는 미디어가 굳어졌으니까요. 저도 장애가 생기면서 주변에서 누군가의 ‘재처’로 선을 보라는 등의 막말을 먼 친척에게서 들어왔는데.. 아마 이런 경향이 쉽게 바뀌진 않을 듯요.ㅠ

2022-08-26 07: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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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님~ 멋진 글입니다. <사회가 보고 싶어 하는, 보여주고 싶은 장애여성으로 규범적 기준 안에 가둬버린다.> 이렇게 미디어의 눈속임 장치도 뚜렸하게 알려주시고, 젠더의 차이가 얼마나 큰 관점을 만들어 내는지도 일깨워주신 점이 넘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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