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웹진 이음

문화예술 분야 권리중심 노동의 의미

이슈 장애인 예술 활동-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노동

  • 정창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 간사
  • 등록일 2022-09-28
  • 조회수918

이슈

“중증장애인은 노동할 수 있는가?”

‘장애인도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상당수조차 이 질문 앞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늘날 노동은 보통 자본의 이윤 증식을 가능케 하는 활동, 특히 임금노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체적·사회적 조건상 ‘자본이 요구하는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들, 고용 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정상(?) 규율을 체화하지 못한 이들이 ‘노동할 수 없는 자’로 분류되는 건 이 시대에 너무 당연한 일이다. ‘장애’란 단어도 기원적으로 ‘임금노동을 할 수 없음(dis-ability)’을 뜻하지 않는가.

그런데 사실 노동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개인이나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이다. 여기서 ‘개인이나 사회에 필요한 가치’란 자본의 이윤 증식 과정에서만 생산되는 게 아니다. 그 사실이 좀처럼 상기되지 않는 건 단지 자본(자본가들)이 이 시대 노동 세계를 본인들의 목적에 맞게 구성해 두었기 때문일 뿐이다. 실제로 임금노동에 포함되지 않는 돌봄 노동, 재생산 노동, 어딘가에 고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예술 활동 등은 GDP(국내총생산)에조차 포함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이 세계를 매 순간 새롭게 재창조한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쉽게 망각하게 되는 이 사실은 장애인 노동 문제를 고민하는 데 특히나 중요하다. 오늘날 사회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활동을 재고하는 과정에서는, 기존에 중증장애인이 수행해온 활동 혹은 향후 그들이 수행할 수 있는 활동 상당수의 의미가 재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기존 장애인 노동정책들이 이 점에 주목하기보다는 임금노동에 장애인의 몸을 편입시키는 데 집중해 왔다는 사실이다. 「장애인고용촉진법(현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시행 후 한국에서도 본격화된 직업재활 이념의 문제는 그것이 언제나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나아가 장애인 개인이 자신의 ‘비정상상태’를 극복할 수 없다면 결국 계속 무능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장애인은 이를 통해 임금노동 시장에 편입되어 기존보다 나은 삶을 꾸릴 수 있지만, 상당수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은 이 정책을 통해 다시 한번 더 무능한 존재로 낙인찍히게 된다.

직업재활 정책 30년의 한계가 이미 곳곳에서 지적되고 있는 지금, 이제 필요한 것은 장애인 각자의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면서 그들이 지금까지 참여해왔고 앞으로 참여할 활동을 중심으로 새로운 노동 세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쟁 노동시장 안으로의 편입이 아니라, 경쟁 노동 영역에 포함될 수 없는 노동을 사회적으로 재평가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에 단순히 ‘치료’나 ‘장애 극복’ 따위와 등치되어 온 장애인의 예술 활동이 이제는 새로운 생산에 참여하는 노동으로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 활동의 본래 목적은 결코 이윤을 창출하는 데 있지 않다. 물론 독보적으로 뛰어난 예술가들도 있고, 오늘날에는 예술 활동조차 상당 부분 임금노동 체계 안에 포함되어 있지만, 예술은 결코 어떠한 단일한 기준으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 예술 활동은 가치가 수치화된 실적에 따라 평가될 수 없으며, 활동 주체가 임금노동 시장에서 경험하는 방식과 동일한 경쟁을 요구받지도 않는다.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온 이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는 데 있어 예술은 이미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장애인의 예술 활동은 단일한 정상적 규율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이 세계를 더 다채롭게 재구성하고 있으며, 장애인 본인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생산 과정을 ‘즐기는 활동’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 세상이 ‘절대 노동할 수 없다’고 낙인찍은 최중증장애인에게 문화예술 일자리를 제공하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정식 명칭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가 장애계 안팎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주1) 이 일자리를 통해 그간 임금노동을 경험해 보지 못한 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이 노래, 춤, 그림 등으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세상에 표현하고 있다. 그 표현 하나하나는 뛰어난 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하거나, 어떠한 규정된 법칙도 강요받지 않아 더 자유롭다. 그리고 그 몸짓들이 지역사회 곳곳에 출현할 때, ‘이상한 존재’를 배제해 온 이 사회의 익숙한 풍경들이 하나하나 허물어지고 있다.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장애인 권리보장의 메시지와 함께, 이 세상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으로 점차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노동을 통해 장애인의 권리가, 아니 모두의 권리가 생산된다.

예술은 시장 논리에 단순 편입되는 순간 그 근본적인 취지를 상실한다. 즉 예술은 경쟁의 영역을 넘어 능력이 있건 없건 누구나 이 세계를 새롭게 창조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정말로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활동을 노동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일자리가 결국에는 더 나은 세계를 창조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문화예술 분야 노동자들의 행진 모습. 경찰과 사람들이 어지럽게 서 있는 거리 위, 세 명의 노동자가 이것도 노동이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걷고 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권익옹호 활동, 문화예술 활동도 노동임을 주장하며 행진하고 있다.

  •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문화예술 분야 노동자들이 장애인권리보장 캠페인을 준비하는 모습. 화실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두 명의 여성이 피켓을 만들고 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그림으로 장애인권리보장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주1: 2020년 서울에서 260명으로 시작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2022년 현재 서울·경기, 전남·북, 경남, 강원 춘천 등에서 총 650여 개의 최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으로 확대되었다. 권리중심 노동은 장애인 권익옹호, 장애인 인식개선, 문화예술 등 세 가지 직무로 구성되며, 이 일자리 노동자들은 UN장애인권리협약을 대중들에게 홍보하고, 협약의 내용을 사회에 실질화하는 노동을 수행한다.

정창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 노들장애학궁리소, 박종필추모사업회 등에서 활동한다. 장애인 노동과 장애인 운동사에 관한 고민을 통해, 장애 해방이 모두의 해방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는지를 궁리하고 있다. 틈틈이 철학 공부를 이어가고 있으며,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한다.
m_sophist@naver.com

사진 제공.필자

2022년 10월 (35호)

정창조

정창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 노들장애학궁리소, 박종필추모사업회 등에서 활동한다. 장애인 노동과 장애인 운동사에 관한 고민을 통해, 장애 해방이 모두의 해방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는지를 궁리하고 있다. 틈틈이 철학 공부를 이어가고 있으며,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한다.
m_sophist@naver.com

상세내용

이슈

“중증장애인은 노동할 수 있는가?”

‘장애인도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상당수조차 이 질문 앞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늘날 노동은 보통 자본의 이윤 증식을 가능케 하는 활동, 특히 임금노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체적·사회적 조건상 ‘자본이 요구하는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들, 고용 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정상(?) 규율을 체화하지 못한 이들이 ‘노동할 수 없는 자’로 분류되는 건 이 시대에 너무 당연한 일이다. ‘장애’란 단어도 기원적으로 ‘임금노동을 할 수 없음(dis-ability)’을 뜻하지 않는가.

그런데 사실 노동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개인이나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이다. 여기서 ‘개인이나 사회에 필요한 가치’란 자본의 이윤 증식 과정에서만 생산되는 게 아니다. 그 사실이 좀처럼 상기되지 않는 건 단지 자본(자본가들)이 이 시대 노동 세계를 본인들의 목적에 맞게 구성해 두었기 때문일 뿐이다. 실제로 임금노동에 포함되지 않는 돌봄 노동, 재생산 노동, 어딘가에 고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예술 활동 등은 GDP(국내총생산)에조차 포함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이 세계를 매 순간 새롭게 재창조한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쉽게 망각하게 되는 이 사실은 장애인 노동 문제를 고민하는 데 특히나 중요하다. 오늘날 사회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활동을 재고하는 과정에서는, 기존에 중증장애인이 수행해온 활동 혹은 향후 그들이 수행할 수 있는 활동 상당수의 의미가 재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기존 장애인 노동정책들이 이 점에 주목하기보다는 임금노동에 장애인의 몸을 편입시키는 데 집중해 왔다는 사실이다. 「장애인고용촉진법(현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시행 후 한국에서도 본격화된 직업재활 이념의 문제는 그것이 언제나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나아가 장애인 개인이 자신의 ‘비정상상태’를 극복할 수 없다면 결국 계속 무능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장애인은 이를 통해 임금노동 시장에 편입되어 기존보다 나은 삶을 꾸릴 수 있지만, 상당수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은 이 정책을 통해 다시 한번 더 무능한 존재로 낙인찍히게 된다.

직업재활 정책 30년의 한계가 이미 곳곳에서 지적되고 있는 지금, 이제 필요한 것은 장애인 각자의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면서 그들이 지금까지 참여해왔고 앞으로 참여할 활동을 중심으로 새로운 노동 세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쟁 노동시장 안으로의 편입이 아니라, 경쟁 노동 영역에 포함될 수 없는 노동을 사회적으로 재평가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에 단순히 ‘치료’나 ‘장애 극복’ 따위와 등치되어 온 장애인의 예술 활동이 이제는 새로운 생산에 참여하는 노동으로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 활동의 본래 목적은 결코 이윤을 창출하는 데 있지 않다. 물론 독보적으로 뛰어난 예술가들도 있고, 오늘날에는 예술 활동조차 상당 부분 임금노동 체계 안에 포함되어 있지만, 예술은 결코 어떠한 단일한 기준으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 예술 활동은 가치가 수치화된 실적에 따라 평가될 수 없으며, 활동 주체가 임금노동 시장에서 경험하는 방식과 동일한 경쟁을 요구받지도 않는다.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온 이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는 데 있어 예술은 이미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장애인의 예술 활동은 단일한 정상적 규율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이 세계를 더 다채롭게 재구성하고 있으며, 장애인 본인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생산 과정을 ‘즐기는 활동’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 세상이 ‘절대 노동할 수 없다’고 낙인찍은 최중증장애인에게 문화예술 일자리를 제공하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정식 명칭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가 장애계 안팎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주1) 이 일자리를 통해 그간 임금노동을 경험해 보지 못한 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이 노래, 춤, 그림 등으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세상에 표현하고 있다. 그 표현 하나하나는 뛰어난 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하거나, 어떠한 규정된 법칙도 강요받지 않아 더 자유롭다. 그리고 그 몸짓들이 지역사회 곳곳에 출현할 때, ‘이상한 존재’를 배제해 온 이 사회의 익숙한 풍경들이 하나하나 허물어지고 있다.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장애인 권리보장의 메시지와 함께, 이 세상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으로 점차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노동을 통해 장애인의 권리가, 아니 모두의 권리가 생산된다.

예술은 시장 논리에 단순 편입되는 순간 그 근본적인 취지를 상실한다. 즉 예술은 경쟁의 영역을 넘어 능력이 있건 없건 누구나 이 세계를 새롭게 창조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정말로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활동을 노동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일자리가 결국에는 더 나은 세계를 창조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문화예술 분야 노동자들의 행진 모습. 경찰과 사람들이 어지럽게 서 있는 거리 위, 세 명의 노동자가 이것도 노동이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걷고 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권익옹호 활동, 문화예술 활동도 노동임을 주장하며 행진하고 있다.

  •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문화예술 분야 노동자들이 장애인권리보장 캠페인을 준비하는 모습. 화실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두 명의 여성이 피켓을 만들고 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그림으로 장애인권리보장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주1: 2020년 서울에서 260명으로 시작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2022년 현재 서울·경기, 전남·북, 경남, 강원 춘천 등에서 총 650여 개의 최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으로 확대되었다. 권리중심 노동은 장애인 권익옹호, 장애인 인식개선, 문화예술 등 세 가지 직무로 구성되며, 이 일자리 노동자들은 UN장애인권리협약을 대중들에게 홍보하고, 협약의 내용을 사회에 실질화하는 노동을 수행한다.

정창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 노들장애학궁리소, 박종필추모사업회 등에서 활동한다. 장애인 노동과 장애인 운동사에 관한 고민을 통해, 장애 해방이 모두의 해방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는지를 궁리하고 있다. 틈틈이 철학 공부를 이어가고 있으며,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한다.
m_sophist@naver.com

사진 제공.필자

2022년 10월 (35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2022-09-30 08:12:20

비밀번호

작성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공감하는 내용이고 많은 분들이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