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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이음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의 다짐

이슈 삐끗하고 삐딱하게, 예민하고 미련하게

  • 고주영· 김효진· 이진희· 최선영 
  • 등록일 2023-05-31
  • 조회수1061

이슈

이음온라인과 웹진[이음]은 장애예술의 고유한 가치를 확산하고 이슈와 담론을 발굴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기획위원과 함께 방향을 모색하고 다양한 기획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김효진 작가,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최선영 유구리최실장과 함께 장애예술 지식정보 플랫폼으로서 가야 할 길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네 분의 기획위원으로부터 독자를 향한 짧은 인사이자 다짐을 들어보았습니다.

기울어짐과 공존 사이에서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예술에서, 특히 내가 몸담고 있는 공연예술에서는 장애인의 접근성 확보가 이제는 필수적인 고려 요소가 되고 있다. “장애가 있는 관객들도 우리가 만든 공연을 보러 왔으면 좋겠다” “모두가 동등하게 공연 창작에 참여하고 관람할 권리가 있다”는 올바른 의도를 갖고 있지만, 때때로 ‘삐끗’하는 부분이 있다. 공연 수어 통역과 관련해 정작 농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어이거나 청인과는 다른 정보를 제공받았다든지, 페미니즘·퀴어 등 다른 관점을 전달하고자 만든 공연에서 사용되는 수어가 막상 혐오 표현이었다는 등의 에피소드를 듣는다. 대부분의 대학로 소극장은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에 있고, 좋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좋은 공연장은 휠체어 이용자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제일 뒷줄로 고정되어 있어 선택의 자유가 없다.

짜자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를 객석에 앉아 관람하는 순간에서 조금씩 거슬러 올라가 보자. 예매한 티켓을 찾고 안내를 받는 티켓박스나 예매사이트에서 오가는 언어와 소통방식은 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는지, 잠재적인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인 홍보에서 ‘모두’가 고려되고 있는지, 아니 애초에 그 공연의 기획 자체에 다른 감각과 신경, 신체적 특성으로 인해 이 사회 안에서 ‘일반적’이라고 말해지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장애인의 삶과 경험이 반영되고 있는지, ‘다른 경험치’를 가진 장애인들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의 질문과 내용인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 수많은 ‘배리어’가 ‘프리’해진다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기나 한가. 휴우.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예술작업을 하고,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결국 발단과 전개가 다를 수밖에 없는 기울어짐을 아는 것, 그들의 발단과 전개를 아는 것, 즉 그들의 삶을 알고자 하고 그 삶에 필요한 것을 보고 듣고 이해하는 것부터가 아닐까. 다시 말해 장애인과 사회적 소수자의 ‘삶에서의 배리어’를 알고 그것을 낮추겠다는 의지, 그래서 삶과 삶이 동등하게 공존하도록 하겠다는 태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수없이 삐끗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삐끗할 테지만, ‘삐끗’ 정도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이자 행동이 아닐까.


장벽 앞에 선 누구라도 서슴없이
김효진 작가

예나 지금이나 내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주제는 ‘인권’이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 문화예술계에서 나는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다. 장애인 문화예술계의 선 밖에 있다는 의미이다. 나 역시 스스로를 작가로 정체화하기가 여전히 쑥스럽고 어색하다. 그런 나를 작가로 불러주고 내 글쓰기에 관심을 가져준 곳이 이음온라인 장애문학 팟캐스트 ‘A의 모든 것’이다. 2020년 ‘A의 모든 것’ 시즌1의 출연자였던 나는 2021년과 2022년 시즌2, 시즌3 진행을 맡았다. 내가 진행자로서 무려 18명의 작가와 만나 문학을 논하다니…. ‘A의 모든 것’은 과제와 책임, 의무에 짓눌려 있던 내게 숨 쉴 틈을 만들어주었다. 처음에 그냥 재미있겠다 싶어 시작한 일이 이리 커질 줄은 미처 몰랐다.

이음온라인 기획위원 제안을 받고는 덜컥 겁부터 났다. 더 이상 재미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싶어서다. 그래서인지 설렘보다는 부담이 더 크다. 하지만 그동안 갈고 닦아온 인권 감수성을 바탕으로,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장애인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음온라인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고민을 시작하려 한다. 감각 장애를 갖고 있든 발달장애를 갖고 있든 예술을 하고 문화를 즐기려는 장애인들이 수시로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기분 좋은 상상을 시작하려고 한다. 일상에서, 현장에서 무수한 장벽에 맞닥뜨리고 있는 우린, 그만큼 절실하니까.

앞으로도 나는 어정쩡한 작가에서 그리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주류가 아닌 주변, 선 바깥이라는 어정쩡한 위치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어쩌면 이제까지 정색하며 예술 하겠다고 나섰던 적이 없어서 아직도 그 언저리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기획위원이라는 조금은 무거운 타이틀 앞에서 나는 지금 서성이고 있다. 장애와 젠더가 상호 교차하며 부딪히고 깨지는 어지러운 정체성일지언정 다른 소수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나만의 세계를 확장하며 조금은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살짝 하면서. 어찌 됐든 장애예술인에게 잠시 잠깐이라도 숨 쉴 틈을 열어 주는 이음온라인을 만드는 데 어지간히 삐딱하고 건들거리는 나도 한몫 거들 수 있게 되다니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 될 듯하다.


모두를 위한 자리, 아직 초대하지 않은 자리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이음온라인은 장애예술 현장의 정보와 이슈, 고민과 담론을 전하는 역할을 해왔다. 2022년에는 기획 방향을 ‘까끌까끌’로 삼아 예술 현장의 실천과 고민을 폭넓게 담아내고자 했다. 협업, 재현 배리어프리, 지역과 장애예술, 문화예술 노동, 경계를 넘기 위해 필요한 상상력에 대한 주제들이 기획으로 이어졌다. 장애예술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와 질문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여러 필자가 참여한 것이 전년도 성과일 것이다. 그러나 장애예술계의 이슈와 특성을 의미화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일정 정도 한계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먼저, 장애예술‘계’라고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공간으로 범주를 제한할수록 통합적인 문제의식을 갖기 어렵다. 예컨대, 장애인이 겪는 교육 차별, 발달장애인의 자기 결정권, 장애인 거주시설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보지 못하면 장애(인) 예술교육 현장을 교차적으로 분석하기 어렵다. 예술교육의 대상이 되는 시설 거주 장애인의 현실, 의사 결정권을 박탈당하기 쉬운 발달장애인의 위치를 파악해야 예술교육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따라서 장애예술‘계’ 이슈와 토론을 특정할수록 예술의 개념과 의미는 축소된다. 장애와 예술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사회와 맺는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권력의 작동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장애와 예술의 개념을 정책이 한정하는 정의 안에서 고민한다면, ‘계’에는 속할 수 있겠으나 ‘장애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전복적 질문은 닫히게 된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이 머무는 장소, 맺고 있는 관계를 놓치고 극장 안 배리어프리를 실현하기는 어렵다. ‘장애와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어야,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권위적인 예술의 권력에 맞설 수 있지 않을까. 잘 뽑아낸 타이틀과 문제의식 속에 불평등하여 까끌까끌하고 울퉁불퉁한 현실을 우회해 간 것은 아닌가 반성한다. 불평등의 경로를 파악해야 장애예술 활동의 정치적·미학적·정책적 의미와 과제를 발견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두 번째, 장애예술계를 의미화하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자칫하면 장애인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분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대상화될 위험이 늘 존재하는 것이다. 몸으로 경험을 보여주는 사람은 누구고, 이를 해석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여전히 장애인이 해석의 대상인 것이 이 사회의 불평등한 권력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에도 분석의 권력을 장애인 당사자가 갖기는 쉽지 않다. ‘대체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라고 아우성치는 사회에서, 때론 언어화하기 곤란하거나 불투명한 순간을 함께 겪어야 할 때가 있다. 왜 주변인의 권력 범주 안에서 이들을 해석하려고 하는가? 작년 한 해 의미화에 주력하느라 당사자의 성글지만 치열한 목소리를 좀 더 깊이 있게 담아내지 못한 건 아닐까. 정연한 글쓰기가 보여주지 않는 몸과 삶의 언어를 담아내기 위한 집중과 도전을 게을리했다. 인권운동 현장에 있는 나로선 부끄러운 일이다.

장애예술 담론이라는 그릇에 이슈를 잘 담아내면 그 성찬은 모두를 위한 밥상이 될 것인가? 올해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을 한 번 더 하게 된 나로선 성찬을 차리려 애쓰기보다 차려진 밥상에 누가 빠져있는지, 씹기 어려운 음식은 없는지, 혹은 너무 씹어서 미리 소화하고 있진 않은지, 밥상의 기울어짐(불평등)은 없는지, 초대받지 않은 이는 누구인지 예민하게 날을 세우고 싶다. 모두를 위한 장애예술 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예술적이지 않게 예술을 이야기하거나, 예술적이라고 하는 것을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를 다시, 새삼 내보고 싶다.


예술의 언어로, 현장의 목소리로
최선영 유구리 최실장

‘장애예술’이라는 낯선 용어이자 개념이 정책을 통해 사회에 등장한 이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발행하는 웹진[이음]은 장애예술의 방향성을 다루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는 웹진[이음]이 공공적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 크게 작용하였으며 거시적이고 사회적인 관점, 비장애인 중심의 예술계가 던지는 자기 질문 또는 반성이 그 언어를 채우곤 했다. 그렇다면 웹진[이음]이 시작된 지 5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어떤 역할을 해나가야 할까.

거대해진 장애예술 관련 정책과 예산,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과 자립을 연결하려는 움직임, 이동권·교육권·문화권 등에서 여전히 동등한 기회를 갖지 못하는 장애인 등 구체적인 이슈들 속에서 웹진[이음]은 이제 장애예술의 지원 필요성이나 제도적 방향성을 넘어 예술과 관련된 ‘현안’을 발화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나 소외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 그것을 돌파하기 어려운 현실의 요소가 예술 영역에서 대부분의 주제가 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오히려 현실의 돌파구나 해결책으로 기능하기엔 사실상 어려운 ‘예술’의 특성이 더욱 현장의 언어와 적극 연결될 필요가 있다.

장애라는 주제의 특수성을 분석하거나 장애인의 삶이 갖는 불평등함 자체를 예술과 함께 이야기할 때, 오히려 ‘예술’을 쉽게 지나쳤음을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성과주의와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사회 안에서 ‘예술’ 자체의 애매함, 불합리함, 미련함, 무목적성, 비효율성, 불명확성, 즉흥성 등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예술하며 살아감’ 자체가 장애인의 ‘자립’과 만나 또 다른 성공 신화나 비현실적인 아우라만 뿜어내지 않도록, 확대된 제도적 지원 아래에서 다시 현장의 상황과 질문을 드러내 보여줄 필요가 있다. 오히려 잘되지 않는 것들, 잘하기 어려운 것들의 이유와 맥락, 그럼에도 계속해보고 있는 누군가의 시도나 노력, 혹은 미련함이 어떤 예술성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 웹진[이음]이 정확한 따뜻함으로 현장을 응원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 역시 조용히 그 과정을 함께 하고자 한다.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연극의 확장과 새로운 연극의 발생을 시도하는 ‘연극연습 프로젝트’(2018~현재)와 ‘정상성’에 대해 질문Question을 던지고 ‘별난Queer’ 존재들의 삶을 응시하는 ‘플랜Q프로젝트’(2019~현재)를 기획·제작하고 있다. 연극과 연극 아닌 것, 극장과 극장 아닌 것,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사이에 있고자 한다.
breeeeze@naver.com

김효진

작가. 장편 동화 『깡이의 꽃밭』 『달려라, 송이』 『착한 아이 안 할래』와, 에세이 『특별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이런 말, 나만 불편해?』를 썼다. 2021년부터 이음온라인 장애문학방송 팟캐스트 ‘A의 모든 것’을 진행했다.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를 역임했고,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 분야 전문위원, (재)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이사, (사)한국발달장애가족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skyhoho21@hanmail.net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에서 장애여성 동료들과 연극을 만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rpvl72@gmail.com

최선영

유구리최실장. 2007년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개별성 중심의 활동을 기획 및 연구하고 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장애예술인 창작 활성화 프로그램 개발’(2018),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장애인 비대면 문화예술교육 콘텐츠 개발 사업’(2021),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발달장애인 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연구개발’(2022) 등에 참여했다.
voslss@hanmail.net

2023년 5월 (41호)

상세내용

이슈

이음온라인과 웹진[이음]은 장애예술의 고유한 가치를 확산하고 이슈와 담론을 발굴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기획위원과 함께 방향을 모색하고 다양한 기획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김효진 작가,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최선영 유구리최실장과 함께 장애예술 지식정보 플랫폼으로서 가야 할 길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네 분의 기획위원으로부터 독자를 향한 짧은 인사이자 다짐을 들어보았습니다.

기울어짐과 공존 사이에서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예술에서, 특히 내가 몸담고 있는 공연예술에서는 장애인의 접근성 확보가 이제는 필수적인 고려 요소가 되고 있다. “장애가 있는 관객들도 우리가 만든 공연을 보러 왔으면 좋겠다” “모두가 동등하게 공연 창작에 참여하고 관람할 권리가 있다”는 올바른 의도를 갖고 있지만, 때때로 ‘삐끗’하는 부분이 있다. 공연 수어 통역과 관련해 정작 농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어이거나 청인과는 다른 정보를 제공받았다든지, 페미니즘·퀴어 등 다른 관점을 전달하고자 만든 공연에서 사용되는 수어가 막상 혐오 표현이었다는 등의 에피소드를 듣는다. 대부분의 대학로 소극장은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에 있고, 좋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좋은 공연장은 휠체어 이용자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제일 뒷줄로 고정되어 있어 선택의 자유가 없다.

짜자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를 객석에 앉아 관람하는 순간에서 조금씩 거슬러 올라가 보자. 예매한 티켓을 찾고 안내를 받는 티켓박스나 예매사이트에서 오가는 언어와 소통방식은 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는지, 잠재적인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인 홍보에서 ‘모두’가 고려되고 있는지, 아니 애초에 그 공연의 기획 자체에 다른 감각과 신경, 신체적 특성으로 인해 이 사회 안에서 ‘일반적’이라고 말해지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장애인의 삶과 경험이 반영되고 있는지, ‘다른 경험치’를 가진 장애인들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의 질문과 내용인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 수많은 ‘배리어’가 ‘프리’해진다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기나 한가. 휴우.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예술작업을 하고,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결국 발단과 전개가 다를 수밖에 없는 기울어짐을 아는 것, 그들의 발단과 전개를 아는 것, 즉 그들의 삶을 알고자 하고 그 삶에 필요한 것을 보고 듣고 이해하는 것부터가 아닐까. 다시 말해 장애인과 사회적 소수자의 ‘삶에서의 배리어’를 알고 그것을 낮추겠다는 의지, 그래서 삶과 삶이 동등하게 공존하도록 하겠다는 태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수없이 삐끗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삐끗할 테지만, ‘삐끗’ 정도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이자 행동이 아닐까.


장벽 앞에 선 누구라도 서슴없이
김효진 작가

예나 지금이나 내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주제는 ‘인권’이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 문화예술계에서 나는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다. 장애인 문화예술계의 선 밖에 있다는 의미이다. 나 역시 스스로를 작가로 정체화하기가 여전히 쑥스럽고 어색하다. 그런 나를 작가로 불러주고 내 글쓰기에 관심을 가져준 곳이 이음온라인 장애문학 팟캐스트 ‘A의 모든 것’이다. 2020년 ‘A의 모든 것’ 시즌1의 출연자였던 나는 2021년과 2022년 시즌2, 시즌3 진행을 맡았다. 내가 진행자로서 무려 18명의 작가와 만나 문학을 논하다니…. ‘A의 모든 것’은 과제와 책임, 의무에 짓눌려 있던 내게 숨 쉴 틈을 만들어주었다. 처음에 그냥 재미있겠다 싶어 시작한 일이 이리 커질 줄은 미처 몰랐다.

이음온라인 기획위원 제안을 받고는 덜컥 겁부터 났다. 더 이상 재미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싶어서다. 그래서인지 설렘보다는 부담이 더 크다. 하지만 그동안 갈고 닦아온 인권 감수성을 바탕으로,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장애인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음온라인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고민을 시작하려 한다. 감각 장애를 갖고 있든 발달장애를 갖고 있든 예술을 하고 문화를 즐기려는 장애인들이 수시로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기분 좋은 상상을 시작하려고 한다. 일상에서, 현장에서 무수한 장벽에 맞닥뜨리고 있는 우린, 그만큼 절실하니까.

앞으로도 나는 어정쩡한 작가에서 그리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주류가 아닌 주변, 선 바깥이라는 어정쩡한 위치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어쩌면 이제까지 정색하며 예술 하겠다고 나섰던 적이 없어서 아직도 그 언저리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기획위원이라는 조금은 무거운 타이틀 앞에서 나는 지금 서성이고 있다. 장애와 젠더가 상호 교차하며 부딪히고 깨지는 어지러운 정체성일지언정 다른 소수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나만의 세계를 확장하며 조금은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살짝 하면서. 어찌 됐든 장애예술인에게 잠시 잠깐이라도 숨 쉴 틈을 열어 주는 이음온라인을 만드는 데 어지간히 삐딱하고 건들거리는 나도 한몫 거들 수 있게 되다니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 될 듯하다.


모두를 위한 자리, 아직 초대하지 않은 자리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이음온라인은 장애예술 현장의 정보와 이슈, 고민과 담론을 전하는 역할을 해왔다. 2022년에는 기획 방향을 ‘까끌까끌’로 삼아 예술 현장의 실천과 고민을 폭넓게 담아내고자 했다. 협업, 재현 배리어프리, 지역과 장애예술, 문화예술 노동, 경계를 넘기 위해 필요한 상상력에 대한 주제들이 기획으로 이어졌다. 장애예술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와 질문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여러 필자가 참여한 것이 전년도 성과일 것이다. 그러나 장애예술계의 이슈와 특성을 의미화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일정 정도 한계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먼저, 장애예술‘계’라고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공간으로 범주를 제한할수록 통합적인 문제의식을 갖기 어렵다. 예컨대, 장애인이 겪는 교육 차별, 발달장애인의 자기 결정권, 장애인 거주시설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보지 못하면 장애(인) 예술교육 현장을 교차적으로 분석하기 어렵다. 예술교육의 대상이 되는 시설 거주 장애인의 현실, 의사 결정권을 박탈당하기 쉬운 발달장애인의 위치를 파악해야 예술교육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따라서 장애예술‘계’ 이슈와 토론을 특정할수록 예술의 개념과 의미는 축소된다. 장애와 예술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사회와 맺는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권력의 작동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장애와 예술의 개념을 정책이 한정하는 정의 안에서 고민한다면, ‘계’에는 속할 수 있겠으나 ‘장애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전복적 질문은 닫히게 된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이 머무는 장소, 맺고 있는 관계를 놓치고 극장 안 배리어프리를 실현하기는 어렵다. ‘장애와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어야,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권위적인 예술의 권력에 맞설 수 있지 않을까. 잘 뽑아낸 타이틀과 문제의식 속에 불평등하여 까끌까끌하고 울퉁불퉁한 현실을 우회해 간 것은 아닌가 반성한다. 불평등의 경로를 파악해야 장애예술 활동의 정치적·미학적·정책적 의미와 과제를 발견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두 번째, 장애예술계를 의미화하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자칫하면 장애인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분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대상화될 위험이 늘 존재하는 것이다. 몸으로 경험을 보여주는 사람은 누구고, 이를 해석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여전히 장애인이 해석의 대상인 것이 이 사회의 불평등한 권력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에도 분석의 권력을 장애인 당사자가 갖기는 쉽지 않다. ‘대체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라고 아우성치는 사회에서, 때론 언어화하기 곤란하거나 불투명한 순간을 함께 겪어야 할 때가 있다. 왜 주변인의 권력 범주 안에서 이들을 해석하려고 하는가? 작년 한 해 의미화에 주력하느라 당사자의 성글지만 치열한 목소리를 좀 더 깊이 있게 담아내지 못한 건 아닐까. 정연한 글쓰기가 보여주지 않는 몸과 삶의 언어를 담아내기 위한 집중과 도전을 게을리했다. 인권운동 현장에 있는 나로선 부끄러운 일이다.

장애예술 담론이라는 그릇에 이슈를 잘 담아내면 그 성찬은 모두를 위한 밥상이 될 것인가? 올해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을 한 번 더 하게 된 나로선 성찬을 차리려 애쓰기보다 차려진 밥상에 누가 빠져있는지, 씹기 어려운 음식은 없는지, 혹은 너무 씹어서 미리 소화하고 있진 않은지, 밥상의 기울어짐(불평등)은 없는지, 초대받지 않은 이는 누구인지 예민하게 날을 세우고 싶다. 모두를 위한 장애예술 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예술적이지 않게 예술을 이야기하거나, 예술적이라고 하는 것을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를 다시, 새삼 내보고 싶다.


예술의 언어로, 현장의 목소리로
최선영 유구리 최실장

‘장애예술’이라는 낯선 용어이자 개념이 정책을 통해 사회에 등장한 이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발행하는 웹진[이음]은 장애예술의 방향성을 다루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는 웹진[이음]이 공공적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 크게 작용하였으며 거시적이고 사회적인 관점, 비장애인 중심의 예술계가 던지는 자기 질문 또는 반성이 그 언어를 채우곤 했다. 그렇다면 웹진[이음]이 시작된 지 5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어떤 역할을 해나가야 할까.

거대해진 장애예술 관련 정책과 예산,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과 자립을 연결하려는 움직임, 이동권·교육권·문화권 등에서 여전히 동등한 기회를 갖지 못하는 장애인 등 구체적인 이슈들 속에서 웹진[이음]은 이제 장애예술의 지원 필요성이나 제도적 방향성을 넘어 예술과 관련된 ‘현안’을 발화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나 소외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 그것을 돌파하기 어려운 현실의 요소가 예술 영역에서 대부분의 주제가 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오히려 현실의 돌파구나 해결책으로 기능하기엔 사실상 어려운 ‘예술’의 특성이 더욱 현장의 언어와 적극 연결될 필요가 있다.

장애라는 주제의 특수성을 분석하거나 장애인의 삶이 갖는 불평등함 자체를 예술과 함께 이야기할 때, 오히려 ‘예술’을 쉽게 지나쳤음을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성과주의와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사회 안에서 ‘예술’ 자체의 애매함, 불합리함, 미련함, 무목적성, 비효율성, 불명확성, 즉흥성 등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예술하며 살아감’ 자체가 장애인의 ‘자립’과 만나 또 다른 성공 신화나 비현실적인 아우라만 뿜어내지 않도록, 확대된 제도적 지원 아래에서 다시 현장의 상황과 질문을 드러내 보여줄 필요가 있다. 오히려 잘되지 않는 것들, 잘하기 어려운 것들의 이유와 맥락, 그럼에도 계속해보고 있는 누군가의 시도나 노력, 혹은 미련함이 어떤 예술성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 웹진[이음]이 정확한 따뜻함으로 현장을 응원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 역시 조용히 그 과정을 함께 하고자 한다.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연극의 확장과 새로운 연극의 발생을 시도하는 ‘연극연습 프로젝트’(2018~현재)와 ‘정상성’에 대해 질문Question을 던지고 ‘별난Queer’ 존재들의 삶을 응시하는 ‘플랜Q프로젝트’(2019~현재)를 기획·제작하고 있다. 연극과 연극 아닌 것, 극장과 극장 아닌 것,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사이에 있고자 한다.
breeeeze@naver.com

김효진

작가. 장편 동화 『깡이의 꽃밭』 『달려라, 송이』 『착한 아이 안 할래』와, 에세이 『특별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이런 말, 나만 불편해?』를 썼다. 2021년부터 이음온라인 장애문학방송 팟캐스트 ‘A의 모든 것’을 진행했다.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를 역임했고,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 분야 전문위원, (재)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이사, (사)한국발달장애가족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skyhoho21@hanmail.net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에서 장애여성 동료들과 연극을 만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rpvl72@gmail.com

최선영

유구리최실장. 2007년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개별성 중심의 활동을 기획 및 연구하고 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장애예술인 창작 활성화 프로그램 개발’(2018),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장애인 비대면 문화예술교육 콘텐츠 개발 사업’(2021),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발달장애인 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연구개발’(2022) 등에 참여했다.
voslss@hanmail.net

2023년 5월 (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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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9 12: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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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영 피디님의 글이 너무나 공감됩니다. 제가 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데 말 주변이 없어서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인데 이렇게 깔끔하고 정롹하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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