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모두예술극장이 2023년 10월 개관했다. 개관 시점에 언론과 예술계가 보여준 관심은 예술정책의 생산적 이슈가 빈약한 시대에 이 극장이 시의적절한 화제성을 획득했다는 증거로 보인다. 공연장이라는 실체적 공간을 구축하는 것은 ‘장애예술의 확대’가 일시적인 관심을 넘어서 목적성이 분명한 정책이라는 기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연장이라는 물리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따져봐야 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먼저 입지(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 7)를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대학로나 홍대앞도 아니고, 우리의 머릿속에 ‘서울인 건 알겠는데 거기가 어디쯤이더라’ 할 정도로 인상이 희박한 지역이다. 거기에 ‘장애예술 표준공연장’이라는 부담스러운 타이틀과 주 이용객이 장애예술인이라고 하니 정책적 명분을 위해 문화적 고립을 자초한 것이 아닐까 하는 시선도 있을 것 같다. 언론에서는 시설적인 측면의 장애인 접근성에는 많은 관심을 보였으나 정작 장애예술에 관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막연해했다. 어쨌든 기대와 우려, 그리고 무관심이 상존하는 모두예술극장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제 이 극장을 계획하고 만든 이들은 녹록지 않은 현실의 무게와 과제를 본격적으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예술가 중심의 창제작과 교류의 공간
모두예술극장은 250석의 블랙박스형 공연장이 중심이다. 연극, 무용, 소형뮤지컬 등의 장르에 유용한 반면,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기에는 무대가 비좁다. 장애인 접근성과 객석의 쾌적성을 고려하여 설계되었기에 공연장 크기에 비해 객석 규모가 작다고 여겨질 수 있다. 장애인석은 일반적으로 1층 앞쪽 열과 2층을 활용할 수 있으며 수납식 객석을 줄이면 규모를 늘릴 수도 있다. 객석이 250석이라는 얘기는 관객 지향적 공연이나 상업적·대중적 공연보다는 창작과 제작 등 예술가 중심의 쓰임에 무게를 두겠다는 뜻이다.
공연장의 무대는 중규모의 사진틀 구조를 가지고 있어 전문적인 무대연출과 시각적 미장센을 욕심내 볼 수 있는 규모이다. 이는 대학로나 지역의 소극장에 익숙해진 장애예술단체의 작품제작 규모를 확대하는 데 동기부여가 될 것이고, 공연장에 소속된 전문기술 인력과의 협업을 통해 참여하는 예술가와 스태프의 전문성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무대를 원하는 역량 있는 기존 연출가와 안무가의 유입도 가능해져서 장기적으로 우수한 작품의 생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총 4개소의 연습실과 스튜디오는 대관을 통해 늘 예술가들이 극장에 체류하고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데, 이는 공연장의 폐쇄성을 해소할 수 있는 장치이다. 그 외에도 모두라운지는 평상시에는 관객 대기 및 휴식 공간이지만 전시, 네트워킹 행사 등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서, 복합문화공간 같은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접근성과 관련해서는 장애 유형별 모니터링을 통해 여전히 많은 지적이 나오고 보완이 필요하지만, 장애예술가들이 활동하기에 원활한 편의시설을 갖추었고, 대체로 쾌적하고 개방적인 분위기의 공간감을 제공하려고 했다.
공연장 외에 다양한 부대 공간을 조성한 이유는 장애예술인 실태조사에서 연습공간에 대한 요구가 높기도 했지만 장애예술가들의 다양한 활동을 매개함으로써 모두예술극장이 일종의 창작활동 거점이 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했다. 저렴한 대관료로 연습실과 스튜디오를 자주 활용하고, 자연스럽게 공연장 무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장애예술가들에게 긴요하면서도 원활하게 창작활동을 매개하려는 것이다.
동시대를 호흡하며 협업하고 실험하는
10여 개의 개관프로그램을 통해 향후 모두예술극장 기획·제작 공연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장애예술은 오랫동안 전문성 있는 예술 활동의 제약이 많은 영역이었고, 그 결과 수요와 공급 자체가 작은 시장이었다. 주류예술계와의 교류도 많지 않고 주로 복지와 지원체계에서 문화예술을 매개해 왔다는 특성 때문에 동시대 예술 현장과 다소 동떨어져 있었다.
해외의 우수한 작품을 발굴해서 소개하는 것은 장애예술의 우수성과 잠재력을 드러내고 향후 공동제작이나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서 꾸준히 시도해야 할 핵심사업이다. 주요 해외 페스티벌과 권위 있는 공연장을 통해 우수성이 검증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은 국내 예술가들에게도 자극과 의욕을 줄 것이다. 세계 연극계의 권위 있는 ‘입센상’을 수상한 호주 백투백시어터의 〈사냥꾼의 먹이가 된 그림자〉 공연은 관객에게 신선한 자극과 영감도 주었지만, 동시에 난해함과 혼란을 주는 등 양가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향후 소개되는 작품들도 기존의 공연 문법과 상식의 기반을 흔드는 장애인 고유의 표현 수단을 활용하는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공동제작은 주로 주류예술계에서 활동하는 비장애인 예술가와 장애인 예술가가 협업하는 방식으로 시도할 예정이다. 이러한 창·제작 과정을 통해 장애예술가 육성과 성장을 도모하고자 한다. 〈21° 11´〉 〈제자리〉 〈어둠 속에, 풍경〉 〈젤리피쉬〉 〈푸른 나비의 숲〉 등의 작업에 참여한 장애예술가들이 동시대의 뛰어난 예술가들과 함께 호흡하며 장애예술의 기반을 구축하는 핵심 인력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이유 있는 변명을 하나 하자면, 개관프로그램에는 완성작뿐만 아니라 ‘제작 중’인 작품도 과감하게 포함했다. 공연 일정이 불확실한데도 프로그램으로 제시한 이유는 장애인이 참여한 공연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예를 들면 다운증후군을 가진 젊은 여성이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는 과정을 가족의 희비극으로 멋지게 그려낸 연극 〈젤리피쉬〉를 제작하면서 당면한 문제는 해당 장애를 가진 배우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보통 번역극의 경우 빠르면 몇 달 안에 제작할 수 있지만, 당사자이면서 연기도 잘할 수 있는 배우를 찾아야 하는 길고 긴 과정을 즐거운 모험이면서 모두예술극장 제작의 핵심 과정이자 정체성이라고 여겼다. 앞으로 같이 활동할 장애예술가와 비장애 예술가들과 함께 많은 시행착오와 변신을 거듭하면서 모두가 넉넉하게 이해하고 즐기는 공연장으로의 항해를 이어가기를 기대한다.
오세형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공연장추진단TF 단장. 여러 문화예술기관에서 활동하면서 정책과 현장이 창조적으로 매개되는 생산적인 문화기획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의 경험과 감수성이 드러나는 예술창작,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협업에 대한 관심과 함께 문화적 다양성과 동시대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 호기심과 애정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장애예술 공연장 조성, 개관프로그램 기획을 총괄했다.
모두예술극장 홈페이지
사진 제공.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3년 11월 (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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