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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이음

신경다양성과 예술①

이음광장 보이지 않는 다양성

  • 마젠타 미술작가
  • 등록일 2023-12-13
  • 조회수996

이음광장

여전히 한국에서 난독증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렵다. “OO 씨 장애가 있어 보이지 않는데요” “평범해 보이는데요” “신경다양성이랑 무관해 보이는데요”와 같은 말에는 화도 아니고 감사도 아닌 무시로 반응하고 싶은 마음이다. 비슷한 결로, 한국 미술계에서 몇 년 전부터 신경다양성 담론을 열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과 전시에 돌아다녔다. 자기소개와 작업 소개를 할 때마다 “본인도 그런 사람이세요?”와 같은 질문을 자주 들어왔다. 증거를 찾는 질문, 분류하는 듯한 질문. 여전히 무섭다. 고등학교 때 학우에게 난독증이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내 이미지와 맞지 않았는지 놀라면서 주변 몇 명에게 내 뇌의 성격을 알려버린 적이 있다. 페미니스트 담론에서 의도와 무관하게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됨’이 이야기되듯, 신경다양성에도 장애 차별적 언행을 하는 사람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까? 신경다양성은 신체적 장애와 달리 증거가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특수한 부분이 있다.

숨겨져 있는 신경다양성

‘신경다양성’은 우리의 뇌가 다르게 타고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다른지 서로 알아감으로써 공존의 필요성과 방법에 대한 사유의 장을 여는 언어다. 넓은 의미에서 이 언어는 특정 사람들-집단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암 역학 및 유전학부’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5명 중 1명이 신경다양성에 직접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즉, 약 5명 중 1명이 난독증이 있거나,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있거나, 투레트 증후군이 있거나,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거나, 자폐 스펙트럼에 있을 수 있다. 혹은 다른 신경다양성이 있을 수 있고,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우리 옆에 있는 친구, 가족, 애인, 선생님, 혹은 동료에게 이러한 뇌의 특성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통계적 소수자라고 하기에는 사회에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꽤 다수이다. 그래서 이들 다수가 보이지 않는 현실이 오히려 익숙해지지 않는다.

난독증 같은 경우는 여러 연구와 이론이 있지만, 뇌에서 쓰인 글자를 언어로 인식하는 속도가 비교적 느리다. 미술사적으로는, 글자의 모양을 ‘언어’라는 심볼로 자동변환하지 않고 이미지로 보는 뇌의 인식 체계가 예술 담론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지 않을까 싶다. 이와 관련한 연구를 한 학자들도 있다. 아무튼, 나는 글을 읽는 게 남들보다 약 2배 느리다. 변환 속도가 느릴 뿐, 이해력이나 사고력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한국에서 중학교 때까지 계속 공립학교에 다녔다. 그 시절에 만나 여전히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에게 커서 처음으로 내게 난독증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들도 당시 속으로 놀랐다고 한다. 학교에서 나는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아이였고, 책을 많이 읽으며, 글쓰기 대회에서 상도 많이 탔으니 그럴 법도 하다. 지금은 영어권 나라에서 공부하고 있고, 3.5개의 언어를 하니 남들이 볼 때 나의 난독증은 더더욱 뒤로 숨겨진다.

하지만 여전히, 아기 때부터 일상에서 글자에 지나친 사랑을 느끼며, 지나친 분노, 그리고 잊히지 않는 동료애를 느낀다. 이런 타고난 뇌와 매 순간 친구 맺고 살아가는 게 괴로울 때가 찾아오고, 학교나 직장과 같은 내가 속한 사회에서 난독증과 관련된 인식과 지원제도가 없을 때는 나의 실존이 건드려진다. 예를 들면, 내 읽는 속도가 한국 사회에서 정의하는 효율에 맞춰갈 수 없을 때, 난독증이 있는 학생들에게 시험시간을 더 주는 제도가 내가 (그들 기준에) 똑똑해 보인다는 이유로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때(이 제도는 미국, 영국과 같은 몇몇 국가에 법으로 있음), 대학 캠퍼스마다 내 뇌 혹은 난독증을 다르게 해석해서 내가 나를 공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복잡하게 많아질 때, 교수가 차별적인 언행을 할 때, 친구가 구조적인 문제를 보지 않고 내 개인의 어려움으로 축소할 때, 나 혼자 관련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돈과 시간과 믿음을 투자하며 애쓸 때….

프로젝트 마젠타

7년 전쯤, 이런 구조적인 문제, 관련해서 인간관계에서 오는 아픔, 그 트라우마의 대물림을 우리 세대에서 끝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이는 점차 예술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나는 프로젝트에 ‘마젠타’라는 이름을 지었다. 마젠타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단 하나의 색깔이며, 컬러 스펙트럼 양 끝의 색을 뇌에서 섞어 만들어져 인식되는 색이다. 뇌 안에서 경험된다는 점에서 신경다양성과 닮았다.

신경다양성 관련 인식을 만들고 개선하는 데 예술 언어를 선택한 건, 신경다양성에 대한 정답과 진리란 없는 것 같고 그저 새로운 담론을 열고 싶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새로 열었던 담론 중 하나는 ‘겉으로 보이지 않음’에 대한 내러티브에서 ‘자발적으로 보지 않음’에 대한 내러티브로의 전환이다. 겉-신체를 통해 증거가 없어도 서로를 바라봐주면 상대의 그리고 타인의 유일무이한 인지 체계를 ‘볼 수’ 있다. 이를 개개인의 코어 가치관, 모토, 성취, 앞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부분을 이력서나 원서 이외의 형태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게임 캐릭터 카드를 디자인해 보았다. 시험 삼아 내 것을 만들어보고, 난독증이 있는 미국 배우 우피 골드버그의 것도 만들어보았다. 〈그리스 디오니소스 극장으로 가는 티켓〉이 그것이다. 이 시도는 한 5년 전쯤 했던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페인팅으로 놀았는데, 당시 〈공기가 물에 입맞춤했을 때〉 작품설명에 정치적인 사심을 담아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은 무한히 순수하다고 여겨지며 난독증이 있는 사람들은 세상을 비선형적으로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고, 이런 다른 인지 체계의 존재를 알아차리며 공기가 물에 입맞춤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라는 내용을 썼다. 그런데 사실 (이건 비밀이지만), 이 작품은 ‘나’를 이루는 것들과 함께해온 생을 인간의 언어 없이 화폭에 담아낸 거다. 개인의 이야기도 정치적이긴 하지만, 아무튼 당시엔 나와 고양이만 작품이 무얼 표현하는지 알고 있었다.

언어라는 신체, 신체라는 증거가 없어도, 자발적으로 바라보면 볼 수 있는 너와 나의 유일무이한 삶, 인지 체계, 시.

‘겉으로 보이지 않음’에 대한 내러티브에서 ‘자발적으로 보지 않음’에 대한 내러티브로의 전환과 관련된 담론을 위해 약간 프로파간다 같은 것도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인 5년 전쯤, 인류 역사에서 신경다양성이 있던 사람들, 현존하는 사람들을 리서치하고 기록해 전시했었다. 그 전시에서 도슨트를 할 때 관객한테 슬쩍 말하고 싶어서 전시 설치 며칠 전 급조해서 〈마젠타 인류학 42, 47〉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프로젝트 마젠타는 인류사를 다시 쓴다. 인류사에서 ‘체인지 메이커’였지만 있는 그대로 이해받지 못했던 앨런 튜링(컴퓨터과학), 피카소(회화) 등을 비롯하여 현대 사회에서 숨어있는 체인지 메이커들에게 더 밝은 가시성을 선물한다. 현대 사회에선, 영화 〈캐리비안 해적〉의 키이라 나이틀리와 올란도 블룸,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 브로드웨이에서 첫 1인 12극을 올린 우피 골드버그, 17세 기후변화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 최연소 그래미 수상자 빌리 아일리시 등이 그들의 삶을 통해 연대한다.”

- 〈마젠타 인류학 42, 47〉 작품설명 중

프로젝트 마젠타를 처음 열었을 땐, 신경다양성 인식을 만들고 개선하기 위해 8년을 일단 주야장천 시도해보고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나 보기로 마음먹었다. 시작 연도를 언제로 잡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5년쯤 된 것 같다. 앞으로 세상이 더 안전하고 다정한 방향으로 변화할 거로 희망을 품어도 될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신경다양성 관련 언어들이 공적 공간에 스며들고 있는 걸 보면 변화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법학 교수님은 대화 중, 현재 신경다양성 관련해서 세상의 변화는 비행기가 이제 막 이륙하는 단계에 있는 것 같고, 앞으로 10년 안에 과학·법·의학·철학 등에서 신경다양성과 관련된 부분들이 매우 많이 바뀌어 있을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다양성이 당연한 인간의 조건이라고 서서히 방점을 찍어도 될까.

마젠타

‘서사 형성 불능/무능’을 알아가기 위해 컴퓨터공학과 극예술을 공부하다가 현재 대학에서 법, 인지과학 등 다른 분야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마젠타’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마젠타는 신경다양성과 연관된 모든 사람을 투영하여 보여주기에 다수이자 익명이다. 몇몇 전시와 퍼포먼스에 참여했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몇몇 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가 가능해서 종종 지인들의 작품을 위해 번역 작업을 맡기도 한다.
magenta_atnegam@naver.com
▸블로그 magenta_atnegam
▸인스타그램 @010101______stringh_____101010

사진 제공.필자

마젠타

마젠타 

‘서사 형성 불능/무능’을 알아가기 위해 컴퓨터공학과 극예술을 공부하다가 현재 대학에서 법, 인지과학 등 다른 분야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마젠타’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마젠타는 신경다양성과 연관된 모든 사람을 투영하여 보여주기에 다수이자 익명이다. 몇몇 전시와 퍼포먼스에 참여했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몇몇 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가 가능해서 종종 지인들의 작품을 위해 번역 작업을 맡기도 한다.
magenta_atnegam@naver.com
필자 블로그 바로가기 : ttps://blog.naver.com/magenta_atne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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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광장

여전히 한국에서 난독증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렵다. “OO 씨 장애가 있어 보이지 않는데요” “평범해 보이는데요” “신경다양성이랑 무관해 보이는데요”와 같은 말에는 화도 아니고 감사도 아닌 무시로 반응하고 싶은 마음이다. 비슷한 결로, 한국 미술계에서 몇 년 전부터 신경다양성 담론을 열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과 전시에 돌아다녔다. 자기소개와 작업 소개를 할 때마다 “본인도 그런 사람이세요?”와 같은 질문을 자주 들어왔다. 증거를 찾는 질문, 분류하는 듯한 질문. 여전히 무섭다. 고등학교 때 학우에게 난독증이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내 이미지와 맞지 않았는지 놀라면서 주변 몇 명에게 내 뇌의 성격을 알려버린 적이 있다. 페미니스트 담론에서 의도와 무관하게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됨’이 이야기되듯, 신경다양성에도 장애 차별적 언행을 하는 사람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까? 신경다양성은 신체적 장애와 달리 증거가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특수한 부분이 있다.

숨겨져 있는 신경다양성

‘신경다양성’은 우리의 뇌가 다르게 타고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다른지 서로 알아감으로써 공존의 필요성과 방법에 대한 사유의 장을 여는 언어다. 넓은 의미에서 이 언어는 특정 사람들-집단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암 역학 및 유전학부’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5명 중 1명이 신경다양성에 직접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즉, 약 5명 중 1명이 난독증이 있거나,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있거나, 투레트 증후군이 있거나,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거나, 자폐 스펙트럼에 있을 수 있다. 혹은 다른 신경다양성이 있을 수 있고,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우리 옆에 있는 친구, 가족, 애인, 선생님, 혹은 동료에게 이러한 뇌의 특성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통계적 소수자라고 하기에는 사회에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꽤 다수이다. 그래서 이들 다수가 보이지 않는 현실이 오히려 익숙해지지 않는다.

난독증 같은 경우는 여러 연구와 이론이 있지만, 뇌에서 쓰인 글자를 언어로 인식하는 속도가 비교적 느리다. 미술사적으로는, 글자의 모양을 ‘언어’라는 심볼로 자동변환하지 않고 이미지로 보는 뇌의 인식 체계가 예술 담론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지 않을까 싶다. 이와 관련한 연구를 한 학자들도 있다. 아무튼, 나는 글을 읽는 게 남들보다 약 2배 느리다. 변환 속도가 느릴 뿐, 이해력이나 사고력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한국에서 중학교 때까지 계속 공립학교에 다녔다. 그 시절에 만나 여전히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에게 커서 처음으로 내게 난독증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들도 당시 속으로 놀랐다고 한다. 학교에서 나는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아이였고, 책을 많이 읽으며, 글쓰기 대회에서 상도 많이 탔으니 그럴 법도 하다. 지금은 영어권 나라에서 공부하고 있고, 3.5개의 언어를 하니 남들이 볼 때 나의 난독증은 더더욱 뒤로 숨겨진다.

하지만 여전히, 아기 때부터 일상에서 글자에 지나친 사랑을 느끼며, 지나친 분노, 그리고 잊히지 않는 동료애를 느낀다. 이런 타고난 뇌와 매 순간 친구 맺고 살아가는 게 괴로울 때가 찾아오고, 학교나 직장과 같은 내가 속한 사회에서 난독증과 관련된 인식과 지원제도가 없을 때는 나의 실존이 건드려진다. 예를 들면, 내 읽는 속도가 한국 사회에서 정의하는 효율에 맞춰갈 수 없을 때, 난독증이 있는 학생들에게 시험시간을 더 주는 제도가 내가 (그들 기준에) 똑똑해 보인다는 이유로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때(이 제도는 미국, 영국과 같은 몇몇 국가에 법으로 있음), 대학 캠퍼스마다 내 뇌 혹은 난독증을 다르게 해석해서 내가 나를 공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복잡하게 많아질 때, 교수가 차별적인 언행을 할 때, 친구가 구조적인 문제를 보지 않고 내 개인의 어려움으로 축소할 때, 나 혼자 관련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돈과 시간과 믿음을 투자하며 애쓸 때….

프로젝트 마젠타

7년 전쯤, 이런 구조적인 문제, 관련해서 인간관계에서 오는 아픔, 그 트라우마의 대물림을 우리 세대에서 끝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이는 점차 예술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나는 프로젝트에 ‘마젠타’라는 이름을 지었다. 마젠타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단 하나의 색깔이며, 컬러 스펙트럼 양 끝의 색을 뇌에서 섞어 만들어져 인식되는 색이다. 뇌 안에서 경험된다는 점에서 신경다양성과 닮았다.

신경다양성 관련 인식을 만들고 개선하는 데 예술 언어를 선택한 건, 신경다양성에 대한 정답과 진리란 없는 것 같고 그저 새로운 담론을 열고 싶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새로 열었던 담론 중 하나는 ‘겉으로 보이지 않음’에 대한 내러티브에서 ‘자발적으로 보지 않음’에 대한 내러티브로의 전환이다. 겉-신체를 통해 증거가 없어도 서로를 바라봐주면 상대의 그리고 타인의 유일무이한 인지 체계를 ‘볼 수’ 있다. 이를 개개인의 코어 가치관, 모토, 성취, 앞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부분을 이력서나 원서 이외의 형태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게임 캐릭터 카드를 디자인해 보았다. 시험 삼아 내 것을 만들어보고, 난독증이 있는 미국 배우 우피 골드버그의 것도 만들어보았다. 〈그리스 디오니소스 극장으로 가는 티켓〉이 그것이다. 이 시도는 한 5년 전쯤 했던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페인팅으로 놀았는데, 당시 〈공기가 물에 입맞춤했을 때〉 작품설명에 정치적인 사심을 담아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은 무한히 순수하다고 여겨지며 난독증이 있는 사람들은 세상을 비선형적으로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고, 이런 다른 인지 체계의 존재를 알아차리며 공기가 물에 입맞춤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라는 내용을 썼다. 그런데 사실 (이건 비밀이지만), 이 작품은 ‘나’를 이루는 것들과 함께해온 생을 인간의 언어 없이 화폭에 담아낸 거다. 개인의 이야기도 정치적이긴 하지만, 아무튼 당시엔 나와 고양이만 작품이 무얼 표현하는지 알고 있었다.

언어라는 신체, 신체라는 증거가 없어도, 자발적으로 바라보면 볼 수 있는 너와 나의 유일무이한 삶, 인지 체계, 시.

‘겉으로 보이지 않음’에 대한 내러티브에서 ‘자발적으로 보지 않음’에 대한 내러티브로의 전환과 관련된 담론을 위해 약간 프로파간다 같은 것도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인 5년 전쯤, 인류 역사에서 신경다양성이 있던 사람들, 현존하는 사람들을 리서치하고 기록해 전시했었다. 그 전시에서 도슨트를 할 때 관객한테 슬쩍 말하고 싶어서 전시 설치 며칠 전 급조해서 〈마젠타 인류학 42, 47〉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프로젝트 마젠타는 인류사를 다시 쓴다. 인류사에서 ‘체인지 메이커’였지만 있는 그대로 이해받지 못했던 앨런 튜링(컴퓨터과학), 피카소(회화) 등을 비롯하여 현대 사회에서 숨어있는 체인지 메이커들에게 더 밝은 가시성을 선물한다. 현대 사회에선, 영화 〈캐리비안 해적〉의 키이라 나이틀리와 올란도 블룸,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 브로드웨이에서 첫 1인 12극을 올린 우피 골드버그, 17세 기후변화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 최연소 그래미 수상자 빌리 아일리시 등이 그들의 삶을 통해 연대한다.”

- 〈마젠타 인류학 42, 47〉 작품설명 중

프로젝트 마젠타를 처음 열었을 땐, 신경다양성 인식을 만들고 개선하기 위해 8년을 일단 주야장천 시도해보고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나 보기로 마음먹었다. 시작 연도를 언제로 잡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5년쯤 된 것 같다. 앞으로 세상이 더 안전하고 다정한 방향으로 변화할 거로 희망을 품어도 될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신경다양성 관련 언어들이 공적 공간에 스며들고 있는 걸 보면 변화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법학 교수님은 대화 중, 현재 신경다양성 관련해서 세상의 변화는 비행기가 이제 막 이륙하는 단계에 있는 것 같고, 앞으로 10년 안에 과학·법·의학·철학 등에서 신경다양성과 관련된 부분들이 매우 많이 바뀌어 있을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다양성이 당연한 인간의 조건이라고 서서히 방점을 찍어도 될까.

마젠타

‘서사 형성 불능/무능’을 알아가기 위해 컴퓨터공학과 극예술을 공부하다가 현재 대학에서 법, 인지과학 등 다른 분야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마젠타’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마젠타는 신경다양성과 연관된 모든 사람을 투영하여 보여주기에 다수이자 익명이다. 몇몇 전시와 퍼포먼스에 참여했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몇몇 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가 가능해서 종종 지인들의 작품을 위해 번역 작업을 맡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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