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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set 프로젝트 〈일+일+일=삶〉

리뷰 혼자이되 함께, 의존하되 주도적으로

  • 김라현 장애인지원주택 코디네이터
  • 등록일 2024-01-31
  • 조회수391

리뷰

장애인활동지원사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어 주변에 물어봤다. ‘또 하나의 가족’ ‘장애인의 손발’ ‘생활 파트너’ ‘그림자’ ‘친구’ ‘5분 대기조’ ‘아바타’ ‘정말 소중한 사람’ ‘가족 같은 동반자’ ‘뜨거운 감자’ ‘계륵’ ‘장애인이 잘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는 사람’ ‘누군가의 도구가 된다’ ‘삶의 주도권’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이 중에는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도 있고 활동지원사 당사자, 장애부모 등 돌봄노동자의 의견도 있지만, 굳이 나누어 이야기하지 않겠다. 역할이나 개개인에 따라 공감하는 표현도 있을 것이고 불쾌한 표현이나 의문이 드는 표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하나 이해되지 않는 표현이 없다는 것만 밝힌다.

이 중에서 오늘 주목하고 싶은 표현은 ‘삶의 주도권’이다. ‘삶의 주도권’이라고 말한 지인은 어느 단체장을 맡고 있는 뇌병변장애를 가진 중년 남성이다. 늘 나에게 조언을 해 주고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라 그가 이 표현을 말했을 때 당연히 ‘삶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게 조력하는 사람’의 뜻일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의미한 바는 ‘장애인의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활동지원사는 장애인의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 주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경우가 많다”라는 말과 함께.

〈일+일+일=삶〉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관람했다. 실제 장애인 당사자와 그의 활동지원사 세 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독특하게 한 공간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3, 4층을 섹션별로 나누어 전시를 본 다음 2층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형식이었다.

한쪽에서는 2007년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시범사업 대상자로 첫 활동지원을 받게 된 홍성훈 님의 활동지원 이용 연혁과 자립생활 이야기가 활동지원서비스 투쟁의 역사와 함께 화면을 채웠다. 2006년 활동지원 제도화를 요구하며 한강대교를 가로막고 6시간 동안 오체투지한 장애인활동가들의 투쟁, 2010년 국민연금공단 점거 농성, 그사이 활동지원 시간이 모자라 죽음을 맞이한 그동안의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그저 먼일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홍성훈 님이 지원사가 가져온 화분에 물을 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지원사들에게도 물을 달라고 하며 새로운 생명을 가꾸게 되는 이야기나,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게 되면서 ‘내가 활동지원을 이용하여 자립생활을 하면서 겪는 경험이나 감정이 다른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는 홍성훈 님의 이야기 또한 인상적이었다.

다른 쪽에는 정종근, 남주현, 태우관 세 명의 활동지원사가 홍성훈 님을 조력하며 느끼는 점을 다양한 소품과 함께 전시했다. 또한 세 지원사와 홍성훈 님의 어머니, 활동지원 중개기관 담당자의 이야기까지 여러 영상으로 접할 수 있었다. “그저 일이라기보다는 홍성훈이라는 한 인간의 삶에 이입이 되어 같은 공간에 있을 때는 같은 삶을 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분들이 좀 더 편하게 쓸 수 있는 도구를 만들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고민한다” “성훈 님이 자신의 지도를 그릴 때 모든 건 본인이 주도적으로 지도를 그리고 나는 옆에서 서포트해 주는 역할이 맞다” “자신의 꿈을 무한대로 추진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지원사들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장애인 당사자의 ‘삶의 주도권’을 빼앗지 않고 더 찾아주려는 지원사들이 있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내 눈으로 보고 키워야 했던” 어머니에게도 자신의 삶을 챙길 수 있는 시간이 왔으리라.

연극 막바지에 홍성훈 님은 “우리에게 일정 공유를 잘해주면 좋겠다”는 활동지원사들의 이야기에 “일정 공유를 잘 못하는 건, 나에겐 이분들이 완전한 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 어딜 가더라도 자기 팔다리에 ‘나 어디 어디 간다’고 말하지 않지 않나. 앞으로 합을 맞춰가는 노력을 그만두지 않으면서 함께 또 혼자 잘 살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장애인 당사자와 활동지원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홍성훈 님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며 활동지원서비스도 주도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나타내주는 이야기여서 마음이 좋았다.

나는 장애인지원주택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탈시설한 분들이 자신의 명의로 된 집에서 자립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주거서비스 전반을 계획·실행하고 점검하는 일을 한다. 주거·의료·생활·안전·관계 등 삶을 이루는 온갖 것에 대해 당사자가 원하는 개인별 지원을 하려면 한 사람당 평균 서너 명을 맡는 코디네이터 몇 명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대일의 관계로 외부 기관에서 매칭되는 활동지원사와 지원주택 소속으로 일대다의 활동지원을 하는 주거 코치가 함께하고 있다. 코디네이터로서의 나에게 활동지원사는 아주 중요한 협력자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좋은 지원인력(돌봄노동자)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가 된 것 같아 고맙게 느껴졌다.

때로는 지원주택 입주민보다 활동지원사와의 관계가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원주택에는 최중증 중복장애를 가진 분도 있고 대부분 발달장애를 가진 분이기 때문에 지원인력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기 힘든 경우를 더 많이 본다. 이 일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속도나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입주민이 자신의 삶을 살도록 내면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활동지원사에게 “당사자들에게 질문도 많이 하고 대화를 많이 나눠 달라. 그분들의 속도를 기다려달라” “어쩔 수 없이 지원사님이 결정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최대한 그분들 입장에서 생각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이분들과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당사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세심한 지원을 할 수 있기에 잘 소통하려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혹자는 자립은 스스로 모든 걸 할 수 있거나 언어적 소통이 가능한 장애인이 하는 것이라 말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확답할 수 있다. 뭐든 혼자 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아끼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 상호작용하고 어떤 모습으로든 그 삶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다면 ‘누구든’ 자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활동지원사를 포함한 여러 지원인력이 그의 옆과 뒤에서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찾아야 한다. 홍성훈 님의 활동지원사 태우관 님이 “성훈 님이 더 잘 살 수 있게 발판을 만들어 드려야겠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러다 보면 사회 인프라도 점차 더 갖춰지지 않을까.

  • 2층 넓은 공간의 벽면과 천장에는 활동지원에 대한 여러 척도질문이 적혀있다. 사방에 놓인 네 개의 모니터에서는 인터뷰 영상이 나오고 있다.

  • 홍성훈이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지원해온 활동지원사의 인터뷰 내용이 적힌 편지가 벽면에 붙어 있다.

  • 유리벽에는 자립생활에 대한 긴 글이 레터링 되어 있고, 그 너머 안쪽 공간 벽면에 빔으로 영상이 나오고 있다. 왼쪽은 활동지원 관련 투쟁 연혁, 오른쪽은 홍성훈의 활동지원 이용 연혁. 기나긴 투쟁의 역사가 활동지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인생에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 홍성훈, 활동지원사 두 명이 관객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물함 벽면에는 활동지원에 대한 여러 척도질문이 적혀있다. ‘활동지원은 선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라는 질문에 홍성훈의 세 지원사는 각각 ‘대체로 그렇다’, ‘그렇다’, ‘대체로 아니다’라고 답했다. 홍성훈은 ‘대체로 그렇다’에 동그라미를 쳤다.

일+일+일=삶

0set 프로젝트|2023.12.16.~12.19.|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홍성훈의 ‘혼자 사는 삶’은 남주현, 정종근, 태우관(장애인활동지원사 3인)의 일을 더해야 답을 구할 수 있게 된다. 길게는 15년 짧게는 2년 이상 홍성훈의 활동지원을 해온 3인은 홍성훈의 일상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일의 시간이면서 누군가에게는 삶의 시간이기도 한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지원사의 시간은 각각 어떻게 흘러가고 또 만나고 있을까. 서로의 언어와 삶의 방식은 어떻게 맞춰지고 또 어긋나고 있을까. 누구보다 내밀한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이지만 이용자와 제공 인력으로 만나는 사이,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을 의존하고 있는지를 거듭 확인하는 사이, 일과 삶의 경계를 고민하는 사이인 네 사람의 일과 삶 이야기를 직장인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풀어놓는다. 그 이야기들이 저마다의 ‘혼자 사는 삶’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공연정보 보기[문화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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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라현

어릴 때부터 꿈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편마비 장애가 있다 보니 몸으로 하는 취미보다 목소리를 내는 합창을 즐겼다. 예술가가 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정신 차리고 보니 집회에 진심인 장애계 기자가 되어 있었고 지금은 프리웰지원주택센터에서 탈시설한 분들을 조력하고 있다. 문화예술을 안 즐길 순 있어도 못 즐기는 사람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husisarang@nate.com

사진 제공.0set 프로젝트(촬영. 정택용)

2024년 2월 (50호)

상세내용

리뷰

장애인활동지원사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어 주변에 물어봤다. ‘또 하나의 가족’ ‘장애인의 손발’ ‘생활 파트너’ ‘그림자’ ‘친구’ ‘5분 대기조’ ‘아바타’ ‘정말 소중한 사람’ ‘가족 같은 동반자’ ‘뜨거운 감자’ ‘계륵’ ‘장애인이 잘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는 사람’ ‘누군가의 도구가 된다’ ‘삶의 주도권’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이 중에는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도 있고 활동지원사 당사자, 장애부모 등 돌봄노동자의 의견도 있지만, 굳이 나누어 이야기하지 않겠다. 역할이나 개개인에 따라 공감하는 표현도 있을 것이고 불쾌한 표현이나 의문이 드는 표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하나 이해되지 않는 표현이 없다는 것만 밝힌다.

이 중에서 오늘 주목하고 싶은 표현은 ‘삶의 주도권’이다. ‘삶의 주도권’이라고 말한 지인은 어느 단체장을 맡고 있는 뇌병변장애를 가진 중년 남성이다. 늘 나에게 조언을 해 주고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라 그가 이 표현을 말했을 때 당연히 ‘삶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게 조력하는 사람’의 뜻일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의미한 바는 ‘장애인의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활동지원사는 장애인의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 주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경우가 많다”라는 말과 함께.

〈일+일+일=삶〉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관람했다. 실제 장애인 당사자와 그의 활동지원사 세 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독특하게 한 공간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3, 4층을 섹션별로 나누어 전시를 본 다음 2층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형식이었다.

한쪽에서는 2007년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시범사업 대상자로 첫 활동지원을 받게 된 홍성훈 님의 활동지원 이용 연혁과 자립생활 이야기가 활동지원서비스 투쟁의 역사와 함께 화면을 채웠다. 2006년 활동지원 제도화를 요구하며 한강대교를 가로막고 6시간 동안 오체투지한 장애인활동가들의 투쟁, 2010년 국민연금공단 점거 농성, 그사이 활동지원 시간이 모자라 죽음을 맞이한 그동안의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그저 먼일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홍성훈 님이 지원사가 가져온 화분에 물을 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지원사들에게도 물을 달라고 하며 새로운 생명을 가꾸게 되는 이야기나,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게 되면서 ‘내가 활동지원을 이용하여 자립생활을 하면서 겪는 경험이나 감정이 다른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는 홍성훈 님의 이야기 또한 인상적이었다.

다른 쪽에는 정종근, 남주현, 태우관 세 명의 활동지원사가 홍성훈 님을 조력하며 느끼는 점을 다양한 소품과 함께 전시했다. 또한 세 지원사와 홍성훈 님의 어머니, 활동지원 중개기관 담당자의 이야기까지 여러 영상으로 접할 수 있었다. “그저 일이라기보다는 홍성훈이라는 한 인간의 삶에 이입이 되어 같은 공간에 있을 때는 같은 삶을 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분들이 좀 더 편하게 쓸 수 있는 도구를 만들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고민한다” “성훈 님이 자신의 지도를 그릴 때 모든 건 본인이 주도적으로 지도를 그리고 나는 옆에서 서포트해 주는 역할이 맞다” “자신의 꿈을 무한대로 추진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지원사들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장애인 당사자의 ‘삶의 주도권’을 빼앗지 않고 더 찾아주려는 지원사들이 있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내 눈으로 보고 키워야 했던” 어머니에게도 자신의 삶을 챙길 수 있는 시간이 왔으리라.

연극 막바지에 홍성훈 님은 “우리에게 일정 공유를 잘해주면 좋겠다”는 활동지원사들의 이야기에 “일정 공유를 잘 못하는 건, 나에겐 이분들이 완전한 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 어딜 가더라도 자기 팔다리에 ‘나 어디 어디 간다’고 말하지 않지 않나. 앞으로 합을 맞춰가는 노력을 그만두지 않으면서 함께 또 혼자 잘 살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장애인 당사자와 활동지원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홍성훈 님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며 활동지원서비스도 주도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나타내주는 이야기여서 마음이 좋았다.

나는 장애인지원주택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탈시설한 분들이 자신의 명의로 된 집에서 자립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주거서비스 전반을 계획·실행하고 점검하는 일을 한다. 주거·의료·생활·안전·관계 등 삶을 이루는 온갖 것에 대해 당사자가 원하는 개인별 지원을 하려면 한 사람당 평균 서너 명을 맡는 코디네이터 몇 명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대일의 관계로 외부 기관에서 매칭되는 활동지원사와 지원주택 소속으로 일대다의 활동지원을 하는 주거 코치가 함께하고 있다. 코디네이터로서의 나에게 활동지원사는 아주 중요한 협력자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좋은 지원인력(돌봄노동자)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가 된 것 같아 고맙게 느껴졌다.

때로는 지원주택 입주민보다 활동지원사와의 관계가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원주택에는 최중증 중복장애를 가진 분도 있고 대부분 발달장애를 가진 분이기 때문에 지원인력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기 힘든 경우를 더 많이 본다. 이 일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속도나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입주민이 자신의 삶을 살도록 내면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활동지원사에게 “당사자들에게 질문도 많이 하고 대화를 많이 나눠 달라. 그분들의 속도를 기다려달라” “어쩔 수 없이 지원사님이 결정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최대한 그분들 입장에서 생각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이분들과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당사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세심한 지원을 할 수 있기에 잘 소통하려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혹자는 자립은 스스로 모든 걸 할 수 있거나 언어적 소통이 가능한 장애인이 하는 것이라 말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확답할 수 있다. 뭐든 혼자 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아끼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 상호작용하고 어떤 모습으로든 그 삶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다면 ‘누구든’ 자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활동지원사를 포함한 여러 지원인력이 그의 옆과 뒤에서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찾아야 한다. 홍성훈 님의 활동지원사 태우관 님이 “성훈 님이 더 잘 살 수 있게 발판을 만들어 드려야겠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러다 보면 사회 인프라도 점차 더 갖춰지지 않을까.

  • 2층 넓은 공간의 벽면과 천장에는 활동지원에 대한 여러 척도질문이 적혀있다. 사방에 놓인 네 개의 모니터에서는 인터뷰 영상이 나오고 있다.

  • 홍성훈이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지원해온 활동지원사의 인터뷰 내용이 적힌 편지가 벽면에 붙어 있다.

  • 유리벽에는 자립생활에 대한 긴 글이 레터링 되어 있고, 그 너머 안쪽 공간 벽면에 빔으로 영상이 나오고 있다. 왼쪽은 활동지원 관련 투쟁 연혁, 오른쪽은 홍성훈의 활동지원 이용 연혁. 기나긴 투쟁의 역사가 활동지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인생에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 홍성훈, 활동지원사 두 명이 관객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물함 벽면에는 활동지원에 대한 여러 척도질문이 적혀있다. ‘활동지원은 선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라는 질문에 홍성훈의 세 지원사는 각각 ‘대체로 그렇다’, ‘그렇다’, ‘대체로 아니다’라고 답했다. 홍성훈은 ‘대체로 그렇다’에 동그라미를 쳤다.

일+일+일=삶

0set 프로젝트|2023.12.16.~12.19.|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홍성훈의 ‘혼자 사는 삶’은 남주현, 정종근, 태우관(장애인활동지원사 3인)의 일을 더해야 답을 구할 수 있게 된다. 길게는 15년 짧게는 2년 이상 홍성훈의 활동지원을 해온 3인은 홍성훈의 일상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일의 시간이면서 누군가에게는 삶의 시간이기도 한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지원사의 시간은 각각 어떻게 흘러가고 또 만나고 있을까. 서로의 언어와 삶의 방식은 어떻게 맞춰지고 또 어긋나고 있을까. 누구보다 내밀한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이지만 이용자와 제공 인력으로 만나는 사이,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을 의존하고 있는지를 거듭 확인하는 사이, 일과 삶의 경계를 고민하는 사이인 네 사람의 일과 삶 이야기를 직장인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풀어놓는다. 그 이야기들이 저마다의 ‘혼자 사는 삶’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공연정보 보기[문화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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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라현

어릴 때부터 꿈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편마비 장애가 있다 보니 몸으로 하는 취미보다 목소리를 내는 합창을 즐겼다. 예술가가 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정신 차리고 보니 집회에 진심인 장애계 기자가 되어 있었고 지금은 프리웰지원주택센터에서 탈시설한 분들을 조력하고 있다. 문화예술을 안 즐길 순 있어도 못 즐기는 사람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husisarang@nate.com

사진 제공.0set 프로젝트(촬영. 정택용)

2024년 2월 (50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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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8 00: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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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지원주택 코디네이터 분의 인터뷰 글 잘 보았습니다. 누군가 사용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불편 없이 사용하고 소외감이 들지 않도록 공간을 조성한다는 말씀에 많은 부분 동감하는 바가 컸던것 같습니다. 다양한 계층과 세대가 행복하게 함께 사는 그런 공동체문화를 조성하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 잘 느끼고 특히나 예술을 통해서 그런 실천 하시는 모습들 앞으로 웹진 이음을 통해서 만나볼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24-02-26 10: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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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활동지원 활동하시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수 있었어요. 삶의 주도권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방향점이 저도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혼자이되 함께, 의존하되 주도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활동대상자분을 향한 진정성이 느껴져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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