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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이음

김정훈 무용가

인터뷰 제약 없이 자유롭게, 나와 함께 춤을

  •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책공장 이안재 대표 
  • 등록일 2024-05-29
  • 조회수286

인터뷰

정치적 공정성이 중시되면서 ‘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장애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칠 즘, 그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 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예비 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이 겪는 불편에 대해 한 번만 더 생각해 달라고. 교통사고를 겪으며 휠체어 무용수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김정훈. 그는 최근 무대에 오르는 무용 공연 중 휠체어 무용수가 등장하는 작품에는 빠지지 않고 캐스팅되는 국가대표급 휠체어 무용수다. 과장이 아니다. 그는 2019년 스페인에서 열린 전 세계적 무용 경연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으니까.

먼저 자기소개와 함께 최근 근황을 말씀해달라.

빛소리친구들 무용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8월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KIADA) 참가작을 준비하고 있다. 노정식 안무가(로댄스프로젝트 대표)의 작품으로, 지금은 안무를 구상하는 단계인데 축제가 8월이라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

무용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 한다.

사고 전에는 무용은 나와는 동떨어진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전에는 무용을 접한 적도 없으니, 접근 경로 같은 것도 알지 못했다. 만약 어렸을 때 어떻게 진입하는지 알았으면 무용과로 진학했을 것 같기도 하다. 운동을 좋아해서 중학교 때는 태권도 선수도 했다.

운동은 왜 그만두었나?

선배에게 심하게 맞는 일이 잦아서,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운동을 하지 않았다. 구타가 없었다면 운동을 계속하지 않았을까 싶다.

운동이 격하다면, 무용은 그 반대잖나. 성향상 무용이 맞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움직이는 것도 좋아하고, 내 몸을 시험해 보거나 힘들게 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군대도 해병대에 자원해서 갔다. 몸을 좀 더 힘들게 만들어보고 싶어서. 몸 쓰는 점에서는 운동이나 무용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무용과는 무관한 삶을 살다가 사고 이후에 무용을 시작하셨는데, 여러 선택지가 있었을 텐데 무용을 선택한 계기가 궁금하다.

스물아홉 살 때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 이후 10년 정도 병원 신세를 졌다. 처음에 사고당하고 2년 정도 입원 생활을 했을 때, 영양사분이 휠체어 댄스스포츠를 소개해 주셨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보다가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가 되었다.

휠체어 댄스가 아니라 휠체어 댄스스포츠를?

그렇다. 휠체어 댄스스포츠를 한 5년 정도 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무용을 해볼 생각은 없냐고 물어보더라. 그게 계기가 돼서 지금까지 휠체어 댄스를 하고 있다.

휠체어 댄스스포츠는 패럴림픽 종목이라 패럴림픽 출전도 가능하잖나. 어떻게 보면 무용보다 더 매력적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휠체어 댄스랑 휠체어 댄스스포츠를 병행했다. 휠체어 댄스가 휠체어 댄스스포츠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 배워보고자 한 거다. 그리고 나는 무용을 전공하지 않아서 이론적인 부분이 부족하기도 했다. 그래서 빛소리친구들에서 2008년부터 이론 교육과 함께 실습 수업을 들었다. 휠체어 댄스스포츠는 2009년에 그만뒀다.

휠체어 댄스의 매력은 무엇이었나?

휠체어 댄스스포츠는 정해진 대로 해야 한다면, 휠체어 댄스는 자유로운 게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 정해진 게 없고, 내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었다. 그리고 휠체어 댄스스포츠는 다이내믹한데, 무용은 다이내믹하면서도 정적이 부분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최영묵 빛소리친구들 대표님이 함께 하자고 제안 주셔서 휠체어 댄스를 전문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러면 지금은 전업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나?

지금은 빛소리친구들 무용단에 소속되어 무용만 하고 있다. 그렇다고 빛소리친구들 무용단 공연만 하는 건 아니고, 다른 단체에서 요청이 오면 출연하기도 한다.

그래도 휠체어 댄스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처음에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을 때 들었던 한마디의 영향인 것 같다. 휠체어 타신 분이었는데, 그분이 다가와 “당신 공연을 보면서 희망이 생겼다, 장애인들한테 꿈을 심어주었다”라고 했다. 그 한마디에 ‘무용은 다른 것도 하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모범을 보여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전업 무용수로 살게 됐다. 아마 지인이 그런 이야기를 했으면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 텐데, 처음 본 분이 그런 얘기를 해서 책임감을 더 느낀 것 같다.

이후로 다양한 안무가분들과 작업하셨는데, 궁합이랄까, 합이 잘 맞는 분이 있나?

다 그렇다. 안무가 대부분 장애인과 작업한 경험이 많지 않아서, 내가 그분들이 원하는 바를 알아채서 보여주고 표현하는 편이다. 지금까지 작업한 안무가들은 나의 말을 잘 수용해 주셨다. 그래서 한 사람을 고르기가….

우문인데, 휠체어 댄스는 움직임이 제한적이잖나. 그래서 표현에도 한계가 있을 것 같다. 비장애인들의 무용은 상대적으로 상·하체를 자유롭게 쓰니까.

휠체어 무용수와 스탠딩 무용수(휠체어 무용수와 파트너 개념으로 비장애 무용수를 일컬음)를 비교하면 스탠딩 무용이 움직임에 제약이 없어서 더 화려한 면이 있다. 반면에 휠체어 무용수는 스탠딩 무용수보다 움직임이 더 다이내믹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더 역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물론 반대로 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장점이 있겠다. 그러면 휠체어 댄스를 하는 분들의 휠체어에는 특별한 게 있나? 일상에서 보는 휠체어와는 무엇이 다른가. 무용에 적합하게, 좀 더 다양한 동작이 가능하게 개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반인이 타는 휠체어로도 무용을 하는 게 가능하긴 하다. 그래도 휠체어 무용을 하는 분들이 타는 경기용 휠체어가 약간 더 가볍고, 중심점이 약간 앞쪽에 있어서 회전율과 추진력이 빠르다. 이게 다른 점이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휠체어를 두세 대 더 가지고 있으면 좋겠지만, 휠체어 가격이 워낙 비싸다. 오늘 타고 온 이 휠체어가 최근 장만한 건데, 7~8백만 원 정도 한다. 십수 년 만에 바꿨는데 다행히 그동안 큰 고장이 없어서 오래 탔다.

이제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좀 나눠야 할 것 같다. 대표작으로 많이들 꼽는 게 2019년 에세나 모빌 신 안무 경연대회 수상작 〈낡은 집〉이랑 2023년 세비야 국제무용제 초청작 〈움직이는 산〉이다.

그 두 작품 외에도 여러 작품을 했는데, 딱 두 작품만 대표작으로 꼽는 게 개인적으로는 좀 힘들다.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다른 작품 중에도 수준 높은 작품이 많다. 그래서 하나만 꼽아서 “이게 최고의 작품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대표작이란 표현은 취소하겠다. 그러면 언급한 두 작품에 대한 특징만이라도 말해줄 수 있나?

비장애 무용수가 휠체어에 올라타는 작품이 거의 없는데 〈낡은 집〉(류진욱 안무) 같은 경우 비장애 무용수가 휠체어에 올라가 움직이는 장면이 있어서 흥미롭게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움직이는 산〉(유선식 안무)에서는 내가 휠체어에서 내려와 춤을 췄던 게 관객들에게는 인상적이었나 보더라. 휠체어에서 내려오는 게 장애 당사자에게는 좀 꺼려지는 부분이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휠체어를 타야만 움직일 수 있다는, 휠체어에서 내려서도 걸을 수 있다면 장애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 역시 오래 걷지 못할 뿐, 조금은 걸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걸어 다니는 걸 상상 못 한다. 나는 그게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움직이는 산〉의 안무가도 같은 생각으로 편견을 깨는 의미의 작품을 안무한 거다. 나도 그 작품을 하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깨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몰랐는데 덕분에 배웠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편견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흥미롭기도 하다. 그 외에도 많은 작품에 출연하셨다. 아무래도 일회성으로 끝나는 공연이 많을 것 같은데,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은 작품도 있을 것 같다.

대개 그렇다. 그나마 〈낡은 집〉이랑 〈원〉(지경민 안무) 정도가 레퍼토리로 공연되고 있다. 〈낡은 집〉은 초연 이후 6~7년이 지났는데, 1년에 한 번씩은 초청받아 공연하는 것 같다. 〈원〉이라는 작품도 3~4년 공연한 것 같다. 〈움직이는 산〉은 최근작이라 아직 자주 공연하지는 못했다. 김성용 안무가가 안무한 〈좁은 골목〉(2017)이라는 작품은 비장애 무용수와의 호흡이 좋았던 작품이라 잊히지 않는 작품이다. 휠체어 무용수 4명과 비장애인 무용수 4명이 출연했던 〈화랑, 검의 노래〉(이애현 안무, 2012)와 〈하늘빛 오렌지〉(김봉순 안무, 2011)라는 작품도 관객과 다시 만나면 좋겠다. 한두 번만 공연하기엔 아쉬운 작품들이다. 당시에 관객들의 호응도 좋았다.

〈화랑, 검의 노래〉에 휠체어 무용수 4명이 출연했는데, 개인적으로 휠체어 무용수 10명만 있으면 아무 움직임이 없어도 압도적일 것 같다.

그러면 별 동작도 필요 없이 서 있는 자체로 장관일 거다. 다만 그러기엔 휠체어 무용을 하는 분들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 교류가 활발하지 않아 정확히 몇 분이 있는지 모르지만, 빛소리친구들 무용단에도 휠체어 무용수는 나 혼자다.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아 활동하는 분들도 없다.

빛소리친구들에서 운영하는 장애무용전문교육기관 메이드(MADE)에서 휠체어 탄 이들을 무용수로 양성하면 어떨까?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의 수요는 많이 있나?

지금 메이드 교육에서 나의 역할은 보조강사라서 내가 강의 커리큘럼을 짜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도 발전하려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배워야 할 텐데, 그럴 기회가 없으니 조금 도태되는 느낌도 든다. 현재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중에 무용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리고 무용단에 들어온다 해서 생계가 유지되는 게 아니잖나. 그러다 보니 접근성이 낮은 것 같다.

교육에 대한 열망도 있지만, 안무에 대한 열망도 있을 것 같다. 혹시 안무한 작품이 있나?

작품을 만들 때 나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긴 하지만 내 이름으로 발표한 건 아직 없다. 그래도 안무에 대한 생각이 없지는 않아서, 노트에 두세 작품 기록해 놨다. 그중 하나가 〈혼숨〉이라는 작품인데, 휠체어 무용수뿐 아니라 다양한 장애예술가가 출연하는 구성이다. 빛소리친구들 장애인들은 장애 정도도 다르고 호흡이나 움직임도 다 다르다. 그래서 그런 서로 다른 호흡과 움직임으로 작품을 구상해 봤다. 내가 직접 안무한 작품으로 무대에 오르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안무보다는 공연을 계속 같이할 수 있는 고정적인 파트너가 있으면 좋겠다. 무용으로 돈을 벌기 쉽지 않으니 많이 꺼리는 것 같다.

무용 외에 또 어떤 걸 해보고 싶은가?

요즘에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은 여행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이동 접근성이 없는 데가 많다. 그래서 유튜브를 통해 장애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나 여행지를 알려주고 싶다. 유튜브 영상에서 소개되는 곳 중에 장애인 접근성 좋은 곳을 알려주는 영상은 많지 않아서 그런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은데, 이게 혼자 할 수는 없는 일이라. 촬영자, 편집자가 필요하니.

그런 콘텐츠가 많아지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이나 나아가 장애 인식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나눠달라.

나도 사고 전 비장애인이었을 때는 장애인이 얼마나 불편할지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장애를 가지게 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장애인이 자신도 ‘예비 장애인’이라는 생각으로 ‘나라면 어땠을까’ 한 번 더 헤아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류진욱 무용가와 휠체어를 탄 김정훈 무용가가 마주 서서 한 곳을 올려다보고 있다.

    〈낡은 집〉(2019)

  • 유선식 무용가가 가로로 놓인 긴 줄 한가운데를 잡아 높이 들고 서 있고, 김정훈 무용가가 바닥에 몸을 누인 채 한팔을 유선식 무용가 발쪽으로 뻗고 있다.

    〈움직이는 산〉(2023)

김정훈

빛소리친구들 무용단 수석무용수. 2003년, 스물아홉 살에 교통사고를 당한 후 장애인이 되었다. 2년 6개월간의 병원 생활을 마칠 무렵 김용우 휠체어 무용가를 만나 휠체어 무용을 접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무용수로 활동하기 전,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로 활동하며 2007부터 2011년 사이 전국장애인체전 휠체어 댄스스포츠 2관왕을 차지하였다. 이후 (사)빛소리친구들에 적을 두고 무용수로 활동하며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주요 출연작로 〈낡은 집〉, 〈움직이는 산〉, 〈좁은 골목〉, 〈화랑, 검의 노래〉, 〈원〉 등이 있다.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 개회식 문화공연 〈공존〉에 출연하기도 했다.
silverstarpc@naver.com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이자 공연 관련 서적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책공장 이안재 대표소사이다. 공연문화월간지 [씬플레이빌]과 서울무용센터 웹진 [춤:in],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 플랫폼 [더아프로] 편집장을 지냈다.
ilsong75@gmail.com
페이스북

사진.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사진.(사)빛소리친구들

2024년 6월 (53호)

상세내용

인터뷰

정치적 공정성이 중시되면서 ‘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장애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칠 즘, 그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 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예비 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이 겪는 불편에 대해 한 번만 더 생각해 달라고. 교통사고를 겪으며 휠체어 무용수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김정훈. 그는 최근 무대에 오르는 무용 공연 중 휠체어 무용수가 등장하는 작품에는 빠지지 않고 캐스팅되는 국가대표급 휠체어 무용수다. 과장이 아니다. 그는 2019년 스페인에서 열린 전 세계적 무용 경연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으니까.

먼저 자기소개와 함께 최근 근황을 말씀해달라.

빛소리친구들 무용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8월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KIADA) 참가작을 준비하고 있다. 노정식 안무가(로댄스프로젝트 대표)의 작품으로, 지금은 안무를 구상하는 단계인데 축제가 8월이라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

무용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 한다.

사고 전에는 무용은 나와는 동떨어진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전에는 무용을 접한 적도 없으니, 접근 경로 같은 것도 알지 못했다. 만약 어렸을 때 어떻게 진입하는지 알았으면 무용과로 진학했을 것 같기도 하다. 운동을 좋아해서 중학교 때는 태권도 선수도 했다.

운동은 왜 그만두었나?

선배에게 심하게 맞는 일이 잦아서,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운동을 하지 않았다. 구타가 없었다면 운동을 계속하지 않았을까 싶다.

운동이 격하다면, 무용은 그 반대잖나. 성향상 무용이 맞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움직이는 것도 좋아하고, 내 몸을 시험해 보거나 힘들게 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군대도 해병대에 자원해서 갔다. 몸을 좀 더 힘들게 만들어보고 싶어서. 몸 쓰는 점에서는 운동이나 무용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무용과는 무관한 삶을 살다가 사고 이후에 무용을 시작하셨는데, 여러 선택지가 있었을 텐데 무용을 선택한 계기가 궁금하다.

스물아홉 살 때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 이후 10년 정도 병원 신세를 졌다. 처음에 사고당하고 2년 정도 입원 생활을 했을 때, 영양사분이 휠체어 댄스스포츠를 소개해 주셨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보다가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가 되었다.

휠체어 댄스가 아니라 휠체어 댄스스포츠를?

그렇다. 휠체어 댄스스포츠를 한 5년 정도 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무용을 해볼 생각은 없냐고 물어보더라. 그게 계기가 돼서 지금까지 휠체어 댄스를 하고 있다.

휠체어 댄스스포츠는 패럴림픽 종목이라 패럴림픽 출전도 가능하잖나. 어떻게 보면 무용보다 더 매력적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휠체어 댄스랑 휠체어 댄스스포츠를 병행했다. 휠체어 댄스가 휠체어 댄스스포츠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 배워보고자 한 거다. 그리고 나는 무용을 전공하지 않아서 이론적인 부분이 부족하기도 했다. 그래서 빛소리친구들에서 2008년부터 이론 교육과 함께 실습 수업을 들었다. 휠체어 댄스스포츠는 2009년에 그만뒀다.

휠체어 댄스의 매력은 무엇이었나?

휠체어 댄스스포츠는 정해진 대로 해야 한다면, 휠체어 댄스는 자유로운 게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 정해진 게 없고, 내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었다. 그리고 휠체어 댄스스포츠는 다이내믹한데, 무용은 다이내믹하면서도 정적이 부분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최영묵 빛소리친구들 대표님이 함께 하자고 제안 주셔서 휠체어 댄스를 전문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러면 지금은 전업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나?

지금은 빛소리친구들 무용단에 소속되어 무용만 하고 있다. 그렇다고 빛소리친구들 무용단 공연만 하는 건 아니고, 다른 단체에서 요청이 오면 출연하기도 한다.

그래도 휠체어 댄스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처음에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을 때 들었던 한마디의 영향인 것 같다. 휠체어 타신 분이었는데, 그분이 다가와 “당신 공연을 보면서 희망이 생겼다, 장애인들한테 꿈을 심어주었다”라고 했다. 그 한마디에 ‘무용은 다른 것도 하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모범을 보여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전업 무용수로 살게 됐다. 아마 지인이 그런 이야기를 했으면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 텐데, 처음 본 분이 그런 얘기를 해서 책임감을 더 느낀 것 같다.

이후로 다양한 안무가분들과 작업하셨는데, 궁합이랄까, 합이 잘 맞는 분이 있나?

다 그렇다. 안무가 대부분 장애인과 작업한 경험이 많지 않아서, 내가 그분들이 원하는 바를 알아채서 보여주고 표현하는 편이다. 지금까지 작업한 안무가들은 나의 말을 잘 수용해 주셨다. 그래서 한 사람을 고르기가….

우문인데, 휠체어 댄스는 움직임이 제한적이잖나. 그래서 표현에도 한계가 있을 것 같다. 비장애인들의 무용은 상대적으로 상·하체를 자유롭게 쓰니까.

휠체어 무용수와 스탠딩 무용수(휠체어 무용수와 파트너 개념으로 비장애 무용수를 일컬음)를 비교하면 스탠딩 무용이 움직임에 제약이 없어서 더 화려한 면이 있다. 반면에 휠체어 무용수는 스탠딩 무용수보다 움직임이 더 다이내믹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더 역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물론 반대로 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장점이 있겠다. 그러면 휠체어 댄스를 하는 분들의 휠체어에는 특별한 게 있나? 일상에서 보는 휠체어와는 무엇이 다른가. 무용에 적합하게, 좀 더 다양한 동작이 가능하게 개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반인이 타는 휠체어로도 무용을 하는 게 가능하긴 하다. 그래도 휠체어 무용을 하는 분들이 타는 경기용 휠체어가 약간 더 가볍고, 중심점이 약간 앞쪽에 있어서 회전율과 추진력이 빠르다. 이게 다른 점이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휠체어를 두세 대 더 가지고 있으면 좋겠지만, 휠체어 가격이 워낙 비싸다. 오늘 타고 온 이 휠체어가 최근 장만한 건데, 7~8백만 원 정도 한다. 십수 년 만에 바꿨는데 다행히 그동안 큰 고장이 없어서 오래 탔다.

이제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좀 나눠야 할 것 같다. 대표작으로 많이들 꼽는 게 2019년 에세나 모빌 신 안무 경연대회 수상작 〈낡은 집〉이랑 2023년 세비야 국제무용제 초청작 〈움직이는 산〉이다.

그 두 작품 외에도 여러 작품을 했는데, 딱 두 작품만 대표작으로 꼽는 게 개인적으로는 좀 힘들다.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다른 작품 중에도 수준 높은 작품이 많다. 그래서 하나만 꼽아서 “이게 최고의 작품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대표작이란 표현은 취소하겠다. 그러면 언급한 두 작품에 대한 특징만이라도 말해줄 수 있나?

비장애 무용수가 휠체어에 올라타는 작품이 거의 없는데 〈낡은 집〉(류진욱 안무) 같은 경우 비장애 무용수가 휠체어에 올라가 움직이는 장면이 있어서 흥미롭게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움직이는 산〉(유선식 안무)에서는 내가 휠체어에서 내려와 춤을 췄던 게 관객들에게는 인상적이었나 보더라. 휠체어에서 내려오는 게 장애 당사자에게는 좀 꺼려지는 부분이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휠체어를 타야만 움직일 수 있다는, 휠체어에서 내려서도 걸을 수 있다면 장애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 역시 오래 걷지 못할 뿐, 조금은 걸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걸어 다니는 걸 상상 못 한다. 나는 그게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움직이는 산〉의 안무가도 같은 생각으로 편견을 깨는 의미의 작품을 안무한 거다. 나도 그 작품을 하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깨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몰랐는데 덕분에 배웠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편견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흥미롭기도 하다. 그 외에도 많은 작품에 출연하셨다. 아무래도 일회성으로 끝나는 공연이 많을 것 같은데,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은 작품도 있을 것 같다.

대개 그렇다. 그나마 〈낡은 집〉이랑 〈원〉(지경민 안무) 정도가 레퍼토리로 공연되고 있다. 〈낡은 집〉은 초연 이후 6~7년이 지났는데, 1년에 한 번씩은 초청받아 공연하는 것 같다. 〈원〉이라는 작품도 3~4년 공연한 것 같다. 〈움직이는 산〉은 최근작이라 아직 자주 공연하지는 못했다. 김성용 안무가가 안무한 〈좁은 골목〉(2017)이라는 작품은 비장애 무용수와의 호흡이 좋았던 작품이라 잊히지 않는 작품이다. 휠체어 무용수 4명과 비장애인 무용수 4명이 출연했던 〈화랑, 검의 노래〉(이애현 안무, 2012)와 〈하늘빛 오렌지〉(김봉순 안무, 2011)라는 작품도 관객과 다시 만나면 좋겠다. 한두 번만 공연하기엔 아쉬운 작품들이다. 당시에 관객들의 호응도 좋았다.

〈화랑, 검의 노래〉에 휠체어 무용수 4명이 출연했는데, 개인적으로 휠체어 무용수 10명만 있으면 아무 움직임이 없어도 압도적일 것 같다.

그러면 별 동작도 필요 없이 서 있는 자체로 장관일 거다. 다만 그러기엔 휠체어 무용을 하는 분들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 교류가 활발하지 않아 정확히 몇 분이 있는지 모르지만, 빛소리친구들 무용단에도 휠체어 무용수는 나 혼자다.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아 활동하는 분들도 없다.

빛소리친구들에서 운영하는 장애무용전문교육기관 메이드(MADE)에서 휠체어 탄 이들을 무용수로 양성하면 어떨까?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의 수요는 많이 있나?

지금 메이드 교육에서 나의 역할은 보조강사라서 내가 강의 커리큘럼을 짜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도 발전하려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배워야 할 텐데, 그럴 기회가 없으니 조금 도태되는 느낌도 든다. 현재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중에 무용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리고 무용단에 들어온다 해서 생계가 유지되는 게 아니잖나. 그러다 보니 접근성이 낮은 것 같다.

교육에 대한 열망도 있지만, 안무에 대한 열망도 있을 것 같다. 혹시 안무한 작품이 있나?

작품을 만들 때 나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긴 하지만 내 이름으로 발표한 건 아직 없다. 그래도 안무에 대한 생각이 없지는 않아서, 노트에 두세 작품 기록해 놨다. 그중 하나가 〈혼숨〉이라는 작품인데, 휠체어 무용수뿐 아니라 다양한 장애예술가가 출연하는 구성이다. 빛소리친구들 장애인들은 장애 정도도 다르고 호흡이나 움직임도 다 다르다. 그래서 그런 서로 다른 호흡과 움직임으로 작품을 구상해 봤다. 내가 직접 안무한 작품으로 무대에 오르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안무보다는 공연을 계속 같이할 수 있는 고정적인 파트너가 있으면 좋겠다. 무용으로 돈을 벌기 쉽지 않으니 많이 꺼리는 것 같다.

무용 외에 또 어떤 걸 해보고 싶은가?

요즘에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은 여행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이동 접근성이 없는 데가 많다. 그래서 유튜브를 통해 장애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나 여행지를 알려주고 싶다. 유튜브 영상에서 소개되는 곳 중에 장애인 접근성 좋은 곳을 알려주는 영상은 많지 않아서 그런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은데, 이게 혼자 할 수는 없는 일이라. 촬영자, 편집자가 필요하니.

그런 콘텐츠가 많아지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이나 나아가 장애 인식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나눠달라.

나도 사고 전 비장애인이었을 때는 장애인이 얼마나 불편할지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장애를 가지게 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장애인이 자신도 ‘예비 장애인’이라는 생각으로 ‘나라면 어땠을까’ 한 번 더 헤아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류진욱 무용가와 휠체어를 탄 김정훈 무용가가 마주 서서 한 곳을 올려다보고 있다.

    〈낡은 집〉(2019)

  • 유선식 무용가가 가로로 놓인 긴 줄 한가운데를 잡아 높이 들고 서 있고, 김정훈 무용가가 바닥에 몸을 누인 채 한팔을 유선식 무용가 발쪽으로 뻗고 있다.

    〈움직이는 산〉(2023)

김정훈

빛소리친구들 무용단 수석무용수. 2003년, 스물아홉 살에 교통사고를 당한 후 장애인이 되었다. 2년 6개월간의 병원 생활을 마칠 무렵 김용우 휠체어 무용가를 만나 휠체어 무용을 접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무용수로 활동하기 전,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로 활동하며 2007부터 2011년 사이 전국장애인체전 휠체어 댄스스포츠 2관왕을 차지하였다. 이후 (사)빛소리친구들에 적을 두고 무용수로 활동하며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주요 출연작로 〈낡은 집〉, 〈움직이는 산〉, 〈좁은 골목〉, 〈화랑, 검의 노래〉, 〈원〉 등이 있다.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 개회식 문화공연 〈공존〉에 출연하기도 했다.
silverstarpc@naver.com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이자 공연 관련 서적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책공장 이안재 대표소사이다. 공연문화월간지 [씬플레이빌]과 서울무용센터 웹진 [춤:in],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 플랫폼 [더아프로] 편집장을 지냈다.
ilsong7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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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사진.(사)빛소리친구들

2024년 6월 (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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