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반적인 언어로는 표현, 이해, 수용 불가능한 감각들이 있다. 그것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 분명 있음에도 우리는 종종 이를 살피지 않고 무심히 지나친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김은설 작가에게는 작업의 시발점이 되는 주요한 찰나로 작동한다. 작가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매체를 이용해 작업하며, 사회적 틀을 넘는 소통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다양한 신체가 존재하는 만큼 교류의 방식 또한 여러 갈래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김은설 작가는 자신의 작업 세계를 확장해 가는 중이다.
김은설 시각예술 작가
안녕하세요. 요즘 많이 바쁘시죠.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예전에 저는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김은설’이라고 소개했는데, 요즘은 ‘몸과 감각을 통해 세계를 감지하고 기록하는 김은설’이라고 소개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감각에 맞는 매체들을 사용하고요, 요즘은 영상, 설치 중심으로 작업합니다.
시각예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언어가 아닌 방식으로 표현하는 쪽이 더 편했어요. 상황을 관찰해서 그림으로 그리고 그것으로 소통했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했어요. 만화는 대상의 동작이나 상황을 통해서도 설명이 충분히 가능하잖아요. 그렇게 그림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에 만화가를 꿈꾸기도 했어요. 그러다 부산비엔날레를 혼자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미술 작품들의 표현 방식에 관심이 생겼어요. 질문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다양해 보였거든요. 주변에서는 늘 ‘잘 들어야 한다’라고 말했지만, 저는 왜 그것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 늘 의문이 있었어요. 그 질문을 깊이 들여다보기 위한 매개로 미술을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아까 소개하실 때 ‘매체를 가리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간 풀을 포함한 여러 재료로 드로잉,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셨죠.
사람들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도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연결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늘 있었어요. 예를 들어 학교에서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보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복잡하게 느껴졌고, 거기서 수많은 감정을 경험했거든요. 그것을 상기하며 선택한 재료가 ‘물풀’이에요. 손가락에 바르면 끈적이고 잘 끊어지거나 벗겨진다는 점에서 관계의 복잡함을 상징하기에, 초기에는 이 재료를 자주 사용했어요. 또 제가 풀실을 통해 흔적과 덩어리를 만들고, 연결을 시도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부산현대미술관의 기획전 《열 개의 눈》(2025.5.3.~9.7.)에 전시 중인 작품 〈잔상 덩어리〉(2025)에서도 풀을 사용한 작업을 보실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작업은 관계 자체보다는 소리에 대한 잔상을 시각화한 것이에요.
잔상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말하는 사람을 계속 보고 있으면 애니메이션처럼 프레임으로 인식되곤 해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마치 잔상처럼, 몸에 어떤 감각으로 남게 되더라고요. 대화가 끝난 후 대화의 내용, 뉘앙스, 나의 이해 방식에 대해 늘 생각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확신이 들지 않으니 그 경험이 잔상처럼 기억되더라고요.
사실 저도 그런 경험이 많아요. 소통의 불완전함이 계속 내 몸에 남아 있는 그 감각, 뭔가 해결되지 않는 감정이요.
해결되지 않는, 맞아요. 동시에 그게 중요한 감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잔상을 통해서 소통을 위해 노력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동시에 공허하기도 하고요. 제게 소리가 그런 존재이기도 해서, 눈으로 보는 소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눈으로 보는 소리란 무슨 의미일까요?
예를 들면 눈빛,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와 공감을 알리는 행동,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는 움직임 등으로 상상할 수 있는 감각들이에요. 저한테는 그것들이 곧 언어에요.
그렇군요.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작업에서 ‘진동’이 중요한 키워드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소리와 진동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하시는 것처럼 보이는데, 작업 안에서 진동이 가지는 의미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에게 진동이 익숙한 이유는, 소리 없는 세계에는 진동만 남아 있거든요. 언어를 배울 때도 부모님 몸에서 울리는 진동을 느끼며 그것이 곧 소리임을 깨달았어요. 부모님의 입 모양, 거기서 나오는 바람을 통해 말이 달라질 수 있음을 학습하면서 제 모국어가 한국어가 아니라 진동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지금도 제 몸이 만들어 내뱉는 진동의 감각을 통해 소리를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영상 작업 〈진동하는 몸의 대화〉(2023), ‘므브프 프로젝트’(2020~현재)에서는 ‘소리=진동'이라는 것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그것을 통해 소통하려는 시도가 느껴졌는데요. 반면 국립현대미술관의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2025.5.16.~7.20.)에 출품한 〈흐려지는 소리, 남겨지는 소리〉(2025)에서는 소통의 불가능성과 어려움을 강조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진동하는 몸의 대화〉의 경우 “저는 진동을 언어라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졌다면, 〈흐려지는 소리, 남겨지는 소리〉는 제 개인적인 감각을 좀 더 예민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대화할 때 AI 음성 인식 앱의 도움을 받지만, 그게 정확히 대화를 기록하지는 못해요. 대화가 이어지더라도 어긋난 감각으로 기록되는 거죠. 그럼 소리가, 대화가 점점 흐려지고 겉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흐려지는 소리, 남겨지는 소리〉에서는 시각적 정보를 뿌옇게 차단하고, 진동과 같이 불명확하게 잔상으로 머무는 소리만 전달해 그걸 감각하게 하고 싶었어요. 청인은 귀로 듣는 게 익숙해서인지 목소리의 진동은 쉽게 인식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감각들을 지워 남겨진 소리인 진동을 오롯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김은설 작가
접근성 혹은 장애예술가와 관련된 전시에 다수 참여하고 계세요. 작가로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동시에 여러 고민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에요. 다만 단편적인 부분만 보여주는 걸 넘어서서 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리적인 접근성이야 여러 공공기관에서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완벽하진 않지만 개선되고 있어요. 저는 접근성 자체가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제 영상에는 소리를 설명하는 자막을 삽입하는데, 보이는 소리가 무엇인지를 그제야 이해하는 관객들을 보게 되었거든요. 제가 종종 공공기관에서 접근성 자문을 할 때, 접근성을 교과서적 정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다양한 감각을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고려하는 방법도 중요하다고 봐요. 그리고 장애인 당사자가 전시나 프로젝트 시작에 반드시 개입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단계가 있어야 해요.
크게 공감합니다. 그럼 ‘다음 단계’라는 건 좀 더 다양한 장애예술가들을 소개하는 것도 포함되나요?
맞아요. 여러 방식으로 감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10년 전만 해도 장애예술에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확실히 많이 달라졌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장애예술가 네트워크나 정보를 담은 풀을 만드는 일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좀 더 덧붙인다면 ‘다음 단계’는 주체적인 몸이 모여 실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장애예술가, 동료들과 함께 다층적 감각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렇게 해야 다양성과 주체성을 확보한 장애예술이 자리 잡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해온 작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꼽을 수 있을까요?
사실 특정 작업을 꼽기는 어려워요. 저는 스스로 늘 작업에 다양한 입장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굳이 언급한다면 소리 이외의 다른 감각의 가능성을 보여준 〈진동하는 몸의 대화〉, 청각장애인에게 보이는 소리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소리 없는 소리〉(2022)인 것 같아요.
작가로서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많은 설명이 없어도 감각적으로 연결 가능한 작업을 하고 싶은 게 제 큰 목표예요. 여전히 사람들은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여겨요. 하지만 저는 그냥 다른 몸, 다양한 신체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고, 작품을 통해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은 꼭 언어만을 소통 도구로 쓰는 건 아니니까요. 그게 제가 미술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은설 〈잔상 덩어리〉, 접착제, PVC, 진동스피커, 앰프, 2025
김은설 〈흐려지는 소리, 남겨진 소리〉, 폴리카보네이트, 모니터, 진동스피커, 앰프, 2025(사진 홍철기)
김은설 〈청각장애 인공지능(인터랙티브)〉, 인터랙티브, 4채널 영상, 사운드(진동스피커, 앰프, 나무박스)(사진 이규환)
김은설 〈진동하는 몸의 대화〉, 싱글채널 비디오, 17분 10초, 사운드(진동), 2023(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은설
몸과 감각으로 새긴 들리지 않는 소리의 기록자이다. 듣는다는 게 무엇인지 자기 존재의 의미와 본질에 질문을 가지고 드로잉, 설치, 영상매체를 아우르며 연결해보길 시도하고 있다. 개인전 《중간언어》(탈영역우정국, 2023)을 개최하였고, 전시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국립현대미술관, 2025), 《열 개의 눈》(부산현대미술관, 2025), 《말하는 머리들》(서울시립미술관, 2025), 《여기 닿은 노래》 (아르코미술관, 2023)에 참여했다. 2025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21기 및 2024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8기 입주작가이며, 국립현대미술관, KT&G상상마당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odd_dreamer@naver.com

김미정
기획자의 역할과 미술에 대한 질문을 늘 품고 전시와 프로그램을 만든다. 현재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eebakim@gmail.com
사진. 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자료사진 제공. 김은설
2025년 6월 (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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