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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는 방식

이음광장 쓰는 사람, 연극 무대에 서다

  • 홍성훈 작가
  • 등록일 2020-09-03
  • 조회수642

연극 <관람모드: 보는 방식>(2019)
사진 출처: 이영건 @0set프로젝트

내 등에 닿았던 무대 조명은 생각보다 훨씬 뜨거웠다. 한여름에도 긴 셔츠를 입고 바깥을 돌아다닐 만큼 웬만한 더위에는 끄떡없었지만 처음 느껴본 무대 조명의 뜨거움은 생경하기만 했다. 관객이 입장한다는 스태프의 목소리와 함께 무대에는 디제잉 음악이 흘러나왔다. 혼자 무대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었던 나는 숨을 한번 깊게 내쉬었다. 관객 한 명이 스태프의 안내를 받으며 천천히 극장 계단을 내려왔고, 무대로 다가와 나와 정면으로 마주 보는 위치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음악이 멈추고 잠시 뒤 내가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정확하게는 말을 건넸다기보다는 말을 보여줬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나는 목소리가 아닌 키보드를 치는 두 손가락으로 텍스트(말)를 만들어내고 그 텍스트로 소통하는 ‘쓰는 인간’으로서 무대에 섰다. 키보드로 만들어낸 나의 말은 무대의 한쪽 벽에 설치된 커다란 프로젝터 화면에 또렷이 쓰여졌다. 무대에는 ‘타닥타닥’ 키보드 치는 소리와 정적만이 휘감고 있었다. 관객은 처음엔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프로젝터 화면을 온전히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이때부터 배우인 나와 관객은 텍스트 속에서 서로 소통한다. 이 소통에는 음성언어를 쓰는 (주로 비장애인인) 관객의 방식과 문자언어를 쓰는 나의 방식이 함께 공존한다.

이것은 작년에 참여한 공연 <관람모드: 보는 방식>에서 내가 했던 퍼포먼스 장면의 도입부다. 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나는 이런 방식으로 무대에 섰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 처음 만나는 관객에게 말을 걸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연극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여태까지 내가 생각하고보아온 연극이란,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배우가 무대에 나와 촌철살인의 대사를 날리며 무대를 장악하는 것이었다. 관객은 배우의 대사와 몸짓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몰입하며 이야기에 집중한다. 나는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를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고, 종종 내가 연극 무대에 오르는 은밀한 상상을 했다. 그 상상 속에서 나는 언어장애가 없었고 많은 관객 앞에서 대사를 했다. 그런 상상 속 장면에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부끄러움이 들었다. 나의 장애 정체성에 대해 글을 써왔지만 언어장애를 정체성의 일부로 인정하기엔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나와 연극을 같이 한 사람들은 나에게 언어장애가 있다는 사실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내가 문자로, 혹은 글쓰기로 소통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고 나만의 방식으로 관객을 초대해보자고 입을 모았다. 그렇게 나는 키보드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연극 <관람모드: 보는 방식>(2019)
사진 출처 : 이영건 @0set프로젝트

연극 <관람모드: 보는 방식>은 배우와 관객의 일대일 만남에서 만들어지는 상호작용 자체를 연극의 소재로 삼았다. 이 상호작용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한 회차당 배우 네 명과 관객 네 명이 만났고, 한 명의 관객이 극장 시설을 돌아다니며 배우 네 명을 모두 만나는 형식을 취했다. 워낙 관객수가 적었던 만큼 공연을 하면서 만났던 관객 한 명 한 명을 또렷이 기억하지만, 그중에서도 나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경험하게 해준 관객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농인 정체성을 가진 관객으로 수어를 사용하여 소통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농인 관객이 온다는 사전 정보를 들었을 때 걱정이 들었다. 나의 장면에서는 관객이 귀찮게 느낄 정도로 말을 시키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농인 관객에게 그런 요구를 하기엔 너무 무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걱정은 사소하기 짝이 없었다. 농인 관객에게는 수어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 여태껏 문자를 사용하는 나의 소통방식으로 관객을 초대한다고 했지만, 관객의 소통방식에 내가 초대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재빨리 안일한 생각을 벗어던지고 농인 관객이 안내하는 수어의 세계로 진입했다. 배우와 관객 모두 음성언어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무대는 긴 적막감이 돌았다. 하지만 적막감으로 무대가 비어 있다고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꽉 채워지는 듯했다. 농인 관객이 수어를 사용하여 토해낸 언어들은 저마다 여운을 남겼다. 나는 농인 관객의 손을 한참이나 쳐다보며 수어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히 눈에 담았다. 농인 관객 또한 나의 소통방식에 집중하며 천천히 타이핑되는 문자언어들에 눈길을 주었다.

내가 말했다.
“우리 둘 다 손을 사용하여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네요.”
그러자 농인 관객이 수어로 대답했다.
“그러네요.”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소통방식으로 서로를 초대하고 환대했다. 나는 관객을 한 명씩 만나면서 나 자신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다른 배우들 또한 저마다의 정체성으로 관객들을 만났고, <관람모드: 보는 방식>은 꽤 성공적으로 끝났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자신감이 붙었다. 일상생활에서도 나는 조금씩 ‘언어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쓰는 사람’으로 바꾸어 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들은 바로 나의 가족이었다.

홍성훈

홍성훈 

글을 쓰는 사람이다. ‘장애’를 화두로 예술작업을 하는 것에 관심이 많고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는 일을 도모하기를 좋아한다. 현재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에 비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고, 연극 <관람모드: 만나는 방식> <내가 말하기 시작할 때>를 준비 중이다.
sunghun8786@naver.com

홍성훈

홍성훈 

글을 쓰는 사람이다. ‘장애’를 화두로 예술작업을 하는 것에 관심이 많고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는 일을 도모하기를 좋아한다. 현재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에 비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고, 연극 <관람모드: 만나는 방식> <내가 말하기 시작할 때>를 준비 중이다.
sunghun8786@naver.com

상세내용

연극 <관람모드: 보는 방식>(2019)
사진 출처: 이영건 @0set프로젝트

내 등에 닿았던 무대 조명은 생각보다 훨씬 뜨거웠다. 한여름에도 긴 셔츠를 입고 바깥을 돌아다닐 만큼 웬만한 더위에는 끄떡없었지만 처음 느껴본 무대 조명의 뜨거움은 생경하기만 했다. 관객이 입장한다는 스태프의 목소리와 함께 무대에는 디제잉 음악이 흘러나왔다. 혼자 무대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었던 나는 숨을 한번 깊게 내쉬었다. 관객 한 명이 스태프의 안내를 받으며 천천히 극장 계단을 내려왔고, 무대로 다가와 나와 정면으로 마주 보는 위치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음악이 멈추고 잠시 뒤 내가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정확하게는 말을 건넸다기보다는 말을 보여줬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나는 목소리가 아닌 키보드를 치는 두 손가락으로 텍스트(말)를 만들어내고 그 텍스트로 소통하는 ‘쓰는 인간’으로서 무대에 섰다. 키보드로 만들어낸 나의 말은 무대의 한쪽 벽에 설치된 커다란 프로젝터 화면에 또렷이 쓰여졌다. 무대에는 ‘타닥타닥’ 키보드 치는 소리와 정적만이 휘감고 있었다. 관객은 처음엔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프로젝터 화면을 온전히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이때부터 배우인 나와 관객은 텍스트 속에서 서로 소통한다. 이 소통에는 음성언어를 쓰는 (주로 비장애인인) 관객의 방식과 문자언어를 쓰는 나의 방식이 함께 공존한다.

이것은 작년에 참여한 공연 <관람모드: 보는 방식>에서 내가 했던 퍼포먼스 장면의 도입부다. 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나는 이런 방식으로 무대에 섰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 처음 만나는 관객에게 말을 걸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연극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여태까지 내가 생각하고보아온 연극이란,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배우가 무대에 나와 촌철살인의 대사를 날리며 무대를 장악하는 것이었다. 관객은 배우의 대사와 몸짓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몰입하며 이야기에 집중한다. 나는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를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고, 종종 내가 연극 무대에 오르는 은밀한 상상을 했다. 그 상상 속에서 나는 언어장애가 없었고 많은 관객 앞에서 대사를 했다. 그런 상상 속 장면에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부끄러움이 들었다. 나의 장애 정체성에 대해 글을 써왔지만 언어장애를 정체성의 일부로 인정하기엔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나와 연극을 같이 한 사람들은 나에게 언어장애가 있다는 사실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내가 문자로, 혹은 글쓰기로 소통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고 나만의 방식으로 관객을 초대해보자고 입을 모았다. 그렇게 나는 키보드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연극 <관람모드: 보는 방식>(2019)
사진 출처 : 이영건 @0set프로젝트

연극 <관람모드: 보는 방식>은 배우와 관객의 일대일 만남에서 만들어지는 상호작용 자체를 연극의 소재로 삼았다. 이 상호작용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한 회차당 배우 네 명과 관객 네 명이 만났고, 한 명의 관객이 극장 시설을 돌아다니며 배우 네 명을 모두 만나는 형식을 취했다. 워낙 관객수가 적었던 만큼 공연을 하면서 만났던 관객 한 명 한 명을 또렷이 기억하지만, 그중에서도 나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경험하게 해준 관객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농인 정체성을 가진 관객으로 수어를 사용하여 소통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농인 관객이 온다는 사전 정보를 들었을 때 걱정이 들었다. 나의 장면에서는 관객이 귀찮게 느낄 정도로 말을 시키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농인 관객에게 그런 요구를 하기엔 너무 무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걱정은 사소하기 짝이 없었다. 농인 관객에게는 수어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 여태껏 문자를 사용하는 나의 소통방식으로 관객을 초대한다고 했지만, 관객의 소통방식에 내가 초대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재빨리 안일한 생각을 벗어던지고 농인 관객이 안내하는 수어의 세계로 진입했다. 배우와 관객 모두 음성언어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무대는 긴 적막감이 돌았다. 하지만 적막감으로 무대가 비어 있다고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꽉 채워지는 듯했다. 농인 관객이 수어를 사용하여 토해낸 언어들은 저마다 여운을 남겼다. 나는 농인 관객의 손을 한참이나 쳐다보며 수어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히 눈에 담았다. 농인 관객 또한 나의 소통방식에 집중하며 천천히 타이핑되는 문자언어들에 눈길을 주었다.

내가 말했다.
“우리 둘 다 손을 사용하여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네요.”
그러자 농인 관객이 수어로 대답했다.
“그러네요.”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소통방식으로 서로를 초대하고 환대했다. 나는 관객을 한 명씩 만나면서 나 자신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다른 배우들 또한 저마다의 정체성으로 관객들을 만났고, <관람모드: 보는 방식>은 꽤 성공적으로 끝났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자신감이 붙었다. 일상생활에서도 나는 조금씩 ‘언어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쓰는 사람’으로 바꾸어 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들은 바로 나의 가족이었다.

홍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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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이다. ‘장애’를 화두로 예술작업을 하는 것에 관심이 많고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는 일을 도모하기를 좋아한다. 현재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에 비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고, 연극 <관람모드: 만나는 방식> <내가 말하기 시작할 때>를 준비 중이다.
sunghun87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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