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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이음

자립, 그 언저리

이음광장 예고 없는 기차여행, 가로 막힌 세계, 멘붕

  • 김인규 작가
  • 등록일 2020-09-08
  • 조회수640

기차여행을 좋아하는 진우의 캘리그래피

나의 아들 진우는 기차를 너무 좋아한다. 이제 스물넷의 청년이지만, 4~5세 시절 기차를 보고 환호하던 그 마음 그대로 여전히 기차를 보면 환호한다. 말할 것도 없이 기차여행도 좋아하는데, 스스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혼자만의 기차여행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수개월에 걸쳐 익히는 과정을 가졌다. 처음에는 내가 동승을 하면서 과정을 익혔고, 그렇게 익숙해진 다음에는 진우 혼자 기차 타기를 시작하였다. 진우는 휴대폰을 통해 나와 실시간으로 통화하면서 어려움을 해결해나갔다. 무엇보다도 진우가 소지한 GPS 단말기를 통해 위치를 계속 확인할 수 있기에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진우는 점차 기차여행에 익숙해졌고, 곧잘 혼자 기차여행을 하기에 이르렀다. 더 멀리 가기 시작했고, 진우의 자긍심 또한 말할 수 없이 높아졌다. 그런데 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딪혀야만 했다. 그즈음 진우에게 친구가 생겼는데, 친구를 데리고 불쑥 기차여행을 떠나버린 것이다. 아마도 진우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정말 친구와 함께 기차여행을 즐기고 싶었을지 모른다.

기차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사실 많은 준비를 해야만 한다. 핸드폰 충전상태를 확인해야 하고, GPS 단말기를 소지하게 하며, 돌아오는 시간을 계산해서 출발시간을 정해야 하고, 기차삯을 확인하여 그만큼 충분히 돈을 소지하게 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도움 없이는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진우는 무엇보다도 시간과 돈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4시 기차를 타기 위해서 집에서 언제 출발해야 할지, 가는 데 얼마가 든다면 오는 데 얼마가 드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말하자면 진우에게는 그런 숫자의 세계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진우에게 너무나 추상적인 일이기만 하다.

그런데 불쑥 친구를 데리고 기차를 타고 떠나버린 것이다. 나는 진우가 기차를 탔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친구와 논다며 핸드폰도 GPS 단말기도 집에 두고 나갔는데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집 근처에서 놀 때는 종종 그래왔기 때문이다. 갈 만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진우는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하였고, 불현듯 기차를 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황급히 역에 달려가 확인해보니 진우가 친구와 함께 익산역에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고 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미 저녁 7시를 넘기고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철도경찰에 도움을 청했다. 정말 다행히도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서 전주역 구내에서 배회하는 그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익산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전주역까지 진출한 것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지,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등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기에 그런 행동을 감행할 수 있는 셈이다. 진우는 아빠에게 연락을 하려 했으나 공중전화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게다가 얼마 후 그런 일이 또 일어나자 정말 멘붕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진우가 자립할 가능성에 대해 단념한 지 오래였지만, 최근 자립지원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던 터였다. 기차여행은 진우의 자립생활을 위한 커다란 발디딤이었다. 그런데 진우가 정말 자의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뒷감당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진우가 자립을 한다는 것은 할 수 없었던 것을 하게 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던 거였다. 그것을 할 수 있는가를 넘어서, 그것이 실행되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 혹은 그런 사회적 관계라는 세계가 진우 앞을, 아니 정확히는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진우는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뿐이니 말이다. 아마도 그날 진우는 정말 행복했을 것이고 그래서 또 감행했을 것이다.

결국 나는 다시 발달장애인이 자립한다는 것은 뭘까 하는 반문에 봉착하고 말았다. 진우가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아주 많다. 간단한 세면에서부터 옷 입기, 밥 먹기 등 일상생활에서도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진우의 자립이란 단지 그것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을 넘어서 있다. 그것은 진우의 욕구가 실현되는 어떤 구조이며,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어떤 범주인 것이다. 진우의 인식 밖의 세계이니, 어떻게 진우가 알게 할 수 있는 것도, 연습을 시켜서도 될 일이 아니다. 만일 해결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진우의 외부에 구성되어야 할 어떤 것일 거다. 요즘 나는 진우에게 코로나 때문에 기차여행을 하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되뇌고 있다. 언제 또 그렇게 불쑥 기차를 타버릴까봐 노심초사한다.

김인규

김인규 

발달장애가 있는 김진우의 아빠다. 그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부모회 활동을 하였고, 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하여 왔으며,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와 소통을 도모해왔다. 최근에는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하여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
kig8142@naver.com

김인규

김인규 

발달장애가 있는 김진우의 아빠다. 그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부모회 활동을 하였고, 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하여 왔으며,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와 소통을 도모해왔다. 최근에는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하여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
kig8142@naver.com

상세내용

기차여행을 좋아하는 진우의 캘리그래피

나의 아들 진우는 기차를 너무 좋아한다. 이제 스물넷의 청년이지만, 4~5세 시절 기차를 보고 환호하던 그 마음 그대로 여전히 기차를 보면 환호한다. 말할 것도 없이 기차여행도 좋아하는데, 스스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혼자만의 기차여행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수개월에 걸쳐 익히는 과정을 가졌다. 처음에는 내가 동승을 하면서 과정을 익혔고, 그렇게 익숙해진 다음에는 진우 혼자 기차 타기를 시작하였다. 진우는 휴대폰을 통해 나와 실시간으로 통화하면서 어려움을 해결해나갔다. 무엇보다도 진우가 소지한 GPS 단말기를 통해 위치를 계속 확인할 수 있기에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진우는 점차 기차여행에 익숙해졌고, 곧잘 혼자 기차여행을 하기에 이르렀다. 더 멀리 가기 시작했고, 진우의 자긍심 또한 말할 수 없이 높아졌다. 그런데 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딪혀야만 했다. 그즈음 진우에게 친구가 생겼는데, 친구를 데리고 불쑥 기차여행을 떠나버린 것이다. 아마도 진우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정말 친구와 함께 기차여행을 즐기고 싶었을지 모른다.

기차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사실 많은 준비를 해야만 한다. 핸드폰 충전상태를 확인해야 하고, GPS 단말기를 소지하게 하며, 돌아오는 시간을 계산해서 출발시간을 정해야 하고, 기차삯을 확인하여 그만큼 충분히 돈을 소지하게 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도움 없이는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진우는 무엇보다도 시간과 돈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4시 기차를 타기 위해서 집에서 언제 출발해야 할지, 가는 데 얼마가 든다면 오는 데 얼마가 드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말하자면 진우에게는 그런 숫자의 세계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진우에게 너무나 추상적인 일이기만 하다.

그런데 불쑥 친구를 데리고 기차를 타고 떠나버린 것이다. 나는 진우가 기차를 탔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친구와 논다며 핸드폰도 GPS 단말기도 집에 두고 나갔는데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집 근처에서 놀 때는 종종 그래왔기 때문이다. 갈 만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진우는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하였고, 불현듯 기차를 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황급히 역에 달려가 확인해보니 진우가 친구와 함께 익산역에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고 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미 저녁 7시를 넘기고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철도경찰에 도움을 청했다. 정말 다행히도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서 전주역 구내에서 배회하는 그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익산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전주역까지 진출한 것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지,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등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기에 그런 행동을 감행할 수 있는 셈이다. 진우는 아빠에게 연락을 하려 했으나 공중전화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게다가 얼마 후 그런 일이 또 일어나자 정말 멘붕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진우가 자립할 가능성에 대해 단념한 지 오래였지만, 최근 자립지원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던 터였다. 기차여행은 진우의 자립생활을 위한 커다란 발디딤이었다. 그런데 진우가 정말 자의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뒷감당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진우가 자립을 한다는 것은 할 수 없었던 것을 하게 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던 거였다. 그것을 할 수 있는가를 넘어서, 그것이 실행되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 혹은 그런 사회적 관계라는 세계가 진우 앞을, 아니 정확히는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진우는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뿐이니 말이다. 아마도 그날 진우는 정말 행복했을 것이고 그래서 또 감행했을 것이다.

결국 나는 다시 발달장애인이 자립한다는 것은 뭘까 하는 반문에 봉착하고 말았다. 진우가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아주 많다. 간단한 세면에서부터 옷 입기, 밥 먹기 등 일상생활에서도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진우의 자립이란 단지 그것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을 넘어서 있다. 그것은 진우의 욕구가 실현되는 어떤 구조이며,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어떤 범주인 것이다. 진우의 인식 밖의 세계이니, 어떻게 진우가 알게 할 수 있는 것도, 연습을 시켜서도 될 일이 아니다. 만일 해결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진우의 외부에 구성되어야 할 어떤 것일 거다. 요즘 나는 진우에게 코로나 때문에 기차여행을 하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되뇌고 있다. 언제 또 그렇게 불쑥 기차를 타버릴까봐 노심초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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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가 있는 김진우의 아빠다. 그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부모회 활동을 하였고, 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하여 왔으며,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와 소통을 도모해왔다. 최근에는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하여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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