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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이음광장 나의 시작

  • 김인규 작가
  • 등록일 2020-01-09
  • 조회수553

마을 뒷산을 산책하는 아들, 2001

나에게는 발달장애인 아들이 있다. 그와 함께 살아온 시간들은 나의 인생을 크게 바꿔 놓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 지 이미 오래다. 처음에는 좀 더 이해하거나 설명해보려 노력했고, 나름대로 가야 할 길을 파악하고자 애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삶이란 숙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지가 오래다. 내가 맘먹은 쪽으로 흘러가지 않으며, 무엇이든 불쑥 끼어들고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 그것과 함께 삶은 쓰인다. 그렇지만 나는 운명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려 샅바 싸움을 하고 그것은 또 다른 길로 이끌려 간다. 그게 아마도 삶일 것이다.

아들은 나와 눈을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는데 - 어릴수록 더욱 그랬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무엇을 바라든, 어떤 기분이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 욕구가 흐르는 방향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며, 왜 그리하는지도 설명하지 않고, 설득하지도 않고, 어디론가 내달린다. 예고도 하지 않고 내달린다. 아마 그 자신도 모르는 것이다. 그를 따라잡는 것은 그 방향으로 나도 함께 달려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왜 그래야 하는지, 언제까지 그렇게 할 것인지, 그 종착점이 어디인지 답은 나오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세계 어느 곳에 내가 와 있다. 그게 지난 20여 년의 세월이다. 종종 나의 의지대로 붙잡아 두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결코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앞서 그의 모든 것을 있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출발이 된다는 것을 세월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요즘은 그 속도가 조금 느려진 느낌이다. 성숙한 청년이 되어 이제 좀 의연해진 것인지, 내가 아들과 보폭을 맞추는 데 더 여유가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분명한 것은 나도 아들과 함께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가 하자는 대로 하다 보면 묘하지만 흥미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참 뜬금없고 말이 안 되는 일들의 연속처럼 보이는데··· 예를 들면, 단지 기차를 보기 위해 기차역에 가고, 기차역을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전화를 하기 위해 전화를 하고 대화 상대가 없는데도 천연덕스럽게 그토록 열심히 전화를 한다. 하긴 비장애인인 사람들도 단지 제주도를 가기 위해 제주도를 가고, 유럽을 가기 위해 유럽을 가고, 단지 우주를 가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 다녀오기도 하니 그게 그리 뜬금없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 기차를 타고 단지 한 정거장을 갔다가 되돌아오는 아들의 사소함에 어떤 여백 같은 즐거움을 느낀다. 물론 그것이 아들에게도 사소함인지는 알 수 없다. 그에게는 우주를 다녀오는 것만큼이나 엄청난 일일 수 있다. 내가 느끼는 것과 아들이 느끼는 것 사이에는 심연이 있을 것이다. 아들이 그것을 즐기는 것과 거기서 내가 뜬금없어 하는 것은 그 위상적 차이에서 오는 어떤 것일 게다. 그럼에도 그런 정처 없음을 나 또한 즐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아들에게 이끌려온 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 또한 능동적으로 대처해온 길이기도 하다. 아들은 그런 일을 스스로 할 수 없기에 누군가 함께 해야 하며 나는 그 자리를 선택한 것이다. 아들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함께 미술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런 아들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위한 적극적인 방법이었다. 이제 나는 그런 일들이 자연스럽다. 그들을 만나기 전과는 확연히 다른 삶의 장소이다. 생활이 그리 많이 다를 것은 없지만 느끼는 결의 차이가 있다. 그것은 장애라는 더 커다란 영토이고 나는 지금 그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다.

아들이 그린 티셔츠를 입고, 2005

김인규

김인규 

발달장애가 있는 김진우의 아빠다. 그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부모회 활동을 하였고, 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하여 왔으며,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와 소통을 도모해왔다. 최근에는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하여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
kig8142@naver.com

김인규

김인규 

발달장애가 있는 김진우의 아빠다. 그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부모회 활동을 하였고, 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하여 왔으며,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와 소통을 도모해왔다. 최근에는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하여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
kig8142@naver.com

상세내용

마을 뒷산을 산책하는 아들, 2001

나에게는 발달장애인 아들이 있다. 그와 함께 살아온 시간들은 나의 인생을 크게 바꿔 놓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 지 이미 오래다. 처음에는 좀 더 이해하거나 설명해보려 노력했고, 나름대로 가야 할 길을 파악하고자 애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삶이란 숙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지가 오래다. 내가 맘먹은 쪽으로 흘러가지 않으며, 무엇이든 불쑥 끼어들고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 그것과 함께 삶은 쓰인다. 그렇지만 나는 운명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려 샅바 싸움을 하고 그것은 또 다른 길로 이끌려 간다. 그게 아마도 삶일 것이다.

아들은 나와 눈을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는데 - 어릴수록 더욱 그랬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무엇을 바라든, 어떤 기분이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 욕구가 흐르는 방향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며, 왜 그리하는지도 설명하지 않고, 설득하지도 않고, 어디론가 내달린다. 예고도 하지 않고 내달린다. 아마 그 자신도 모르는 것이다. 그를 따라잡는 것은 그 방향으로 나도 함께 달려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왜 그래야 하는지, 언제까지 그렇게 할 것인지, 그 종착점이 어디인지 답은 나오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세계 어느 곳에 내가 와 있다. 그게 지난 20여 년의 세월이다. 종종 나의 의지대로 붙잡아 두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결코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앞서 그의 모든 것을 있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출발이 된다는 것을 세월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요즘은 그 속도가 조금 느려진 느낌이다. 성숙한 청년이 되어 이제 좀 의연해진 것인지, 내가 아들과 보폭을 맞추는 데 더 여유가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분명한 것은 나도 아들과 함께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가 하자는 대로 하다 보면 묘하지만 흥미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참 뜬금없고 말이 안 되는 일들의 연속처럼 보이는데··· 예를 들면, 단지 기차를 보기 위해 기차역에 가고, 기차역을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전화를 하기 위해 전화를 하고 대화 상대가 없는데도 천연덕스럽게 그토록 열심히 전화를 한다. 하긴 비장애인인 사람들도 단지 제주도를 가기 위해 제주도를 가고, 유럽을 가기 위해 유럽을 가고, 단지 우주를 가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 다녀오기도 하니 그게 그리 뜬금없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 기차를 타고 단지 한 정거장을 갔다가 되돌아오는 아들의 사소함에 어떤 여백 같은 즐거움을 느낀다. 물론 그것이 아들에게도 사소함인지는 알 수 없다. 그에게는 우주를 다녀오는 것만큼이나 엄청난 일일 수 있다. 내가 느끼는 것과 아들이 느끼는 것 사이에는 심연이 있을 것이다. 아들이 그것을 즐기는 것과 거기서 내가 뜬금없어 하는 것은 그 위상적 차이에서 오는 어떤 것일 게다. 그럼에도 그런 정처 없음을 나 또한 즐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아들에게 이끌려온 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 또한 능동적으로 대처해온 길이기도 하다. 아들은 그런 일을 스스로 할 수 없기에 누군가 함께 해야 하며 나는 그 자리를 선택한 것이다. 아들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함께 미술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런 아들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위한 적극적인 방법이었다. 이제 나는 그런 일들이 자연스럽다. 그들을 만나기 전과는 확연히 다른 삶의 장소이다. 생활이 그리 많이 다를 것은 없지만 느끼는 결의 차이가 있다. 그것은 장애라는 더 커다란 영토이고 나는 지금 그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다.

아들이 그린 티셔츠를 입고, 2005

김인규

김인규 

발달장애가 있는 김진우의 아빠다. 그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부모회 활동을 하였고, 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하여 왔으며,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와 소통을 도모해왔다. 최근에는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하여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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