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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 그 언저리

이음광장 발달 장애인 A군과 B군의 상황에서 보는 장애예술인지원법

  • 김인규 작가
  • 등록일 2020-10-07
  • 조회수637

얼마 전 「장애예술인지원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장애예술인의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장애예술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촉진하고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반가운 일이다. 사회적으로 불리한 장애 예술인을 지원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발달장애인의 상황에서 보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발달 ‘장애예술인’인 셈인데,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예술인이 되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A군의 상황에서 보자. 그는 오랫동안 나의 미술 프로그램에 참여해 왔는데 그리기를 매우 좋아한다. 아주 감각적이면서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곧잘 표현한다. 그렇지만 그게 다일 뿐, 그것을 통해서 어떤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저 그리기 활동이 재미있을 뿐이며 그런 기회를 즐길 뿐이다. 그렇다고 그에게 다른 일자리나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 부모마저 발달 장애인이다 보니 더욱더 그렇다. 그렇다면 그는 예술인일까, 아닐까?

예술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그것을 잘하거나 즐기는 것을 넘어서는 일이다. 사회적 과정 속에서 하나의 정체성을 갖는 일이기에 단지 자신의 작업을 하는 것을 넘어서 제도적 요구에 부응하는 일이다. ‘아! 나는 이것을 잘해. 그러니까 난 이것을 중심으로 나의 삶을 살아야겠어!’ ‘나의 작업을 발표하고 싶어! 어떻게 나의 작업을 보여주지? 어디서 할 수 있지?’ ‘어떻게 수입을 낼 수 있을까?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등등의 사고과정과 그에 부합하는 행동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세계를 알지 못한다. 아니 그에게는 그러한 세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것을 알려준다고 해서 알게 되고 할 수 있게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는 예술인이 아니게 된다.

그렇다면 발달장애인 중에 이러한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반문이 따른다. 아마 거의 대다수가 가능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대부분 부모 혹은 특정인, 특정 기관의 후견 속에서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장애예술인지원법의 지원을 받기도 전에 발달장애인은 예술인이 되기 위해서 먼저 누군가의 지원을 받아야 하니 말이다. 그를 예술인으로 칭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어야 하며 지속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한다.

  • 한 지역작가의 그림을 A군이 리폼해 완성한 인물화
    캔버스에 아크릴, 90.9X72.7cm(2019)

  • A군의 그림으로 제작한 쿠션
    천에 염색물감(2015)

B군의 상황을 보자. 이 청년 또한 그리기 활동에 아주 즐겁게 참여한다. 그러나 그의 그리기는 그냥 그리기라고 말하는 것 이상의 행동이다. 붓에 물감을 묻힌 후 용지 위에서 마구 돌리는데, 그러다 보면 둥근 붓 자국들을 만들어낸다. 한번 시작하면 끝나지 않기 때문에 옆에서 누군가가 용지를 바꿔주어야 하며, 붓을 씻어주거나 물감을 다시 공급해줘야 한다. 용지 사이즈에 따라 그 크기와 방식도 달라진다. 한번 시작된 활동은 좀처럼 멈추지 않기 때문에 가끔 옆에서 활동을 제지하기도 해야 한다. 흥이 오르면 제지하는 것에 화를 내기도 한다. 그는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함께 하는 사람은 그의 표정과 눈빛으로 감정을 읽고 거기에 대응해야 한다. 이 청년 또한 별다른 할 일 없이 하루의 대부분을 활동보조인의 손에 이끌려 시간을 보낸다. 그렇다면 이 청년은 예술가가 될 수 있는가?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그 조건은 무엇인가?

내가 발달장애 아동·청소년과 미술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들이 가진 그러한 특성 때문이었다. 일상에서 보면 무의미하고 어처구니없을 법한 일들이 미술 활동에서는 용인될 뿐 아니라, 그것을 마음껏 즐기고 발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른 어떠한 활동보다 예술적인 활동이 그들의 활동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최근 그들과 음악적인 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 미술보다 흥이 더 많이 넘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즉각적으로 빠져들고 몰입하였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가능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전문적 조력 혹은 협력이 있어야만 한다. 물론 여기저기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그러나 그것의 대부분은 말 그대로 교육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나는 A군의 활동도 B군의 활동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일이 전업 예술 활동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딱히 달리 할 일도 없는데 말이다. 거기에는 바로 그와 함께 그것을 사회적 활동으로 이끌어갈 누군가의 조력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 ‘누구’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발달장애인이 예술인이 되는 그 순간에 있어야 하는 그 ‘누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남는다. 발달장애인에게 있어 「장애예술인지원법」이 가지는 한계도 거기에 있다. 현재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발달장애인 옆에는 그 ‘누구’가 있다. 발달장애인 예술을 말할 때, 그 ‘누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유이다. 그 ‘누구’가 없이는 발달장애 ‘예술인’도 없기 때문이다.

  • B군의 그림
    종이에 수채물감, 39.4X27.2cm(2020)

  • B군의 이미지를 사용한 쇼핑백 디자인
    (서천고등학교 큐브투게더, 2015)

김인규

김인규 

발달장애가 있는 김진우의 아빠다. 그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부모회 활동을 하였고, 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하여 왔으며,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와 소통을 도모해왔다. 최근에는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하여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
kig8142@naver.com

김인규

김인규 

발달장애가 있는 김진우의 아빠다. 그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부모회 활동을 하였고, 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하여 왔으며,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와 소통을 도모해왔다. 최근에는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하여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
kig8142@naver.com

상세내용

얼마 전 「장애예술인지원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장애예술인의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장애예술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촉진하고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반가운 일이다. 사회적으로 불리한 장애 예술인을 지원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발달장애인의 상황에서 보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발달 ‘장애예술인’인 셈인데,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예술인이 되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A군의 상황에서 보자. 그는 오랫동안 나의 미술 프로그램에 참여해 왔는데 그리기를 매우 좋아한다. 아주 감각적이면서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곧잘 표현한다. 그렇지만 그게 다일 뿐, 그것을 통해서 어떤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저 그리기 활동이 재미있을 뿐이며 그런 기회를 즐길 뿐이다. 그렇다고 그에게 다른 일자리나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 부모마저 발달 장애인이다 보니 더욱더 그렇다. 그렇다면 그는 예술인일까, 아닐까?

예술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그것을 잘하거나 즐기는 것을 넘어서는 일이다. 사회적 과정 속에서 하나의 정체성을 갖는 일이기에 단지 자신의 작업을 하는 것을 넘어서 제도적 요구에 부응하는 일이다. ‘아! 나는 이것을 잘해. 그러니까 난 이것을 중심으로 나의 삶을 살아야겠어!’ ‘나의 작업을 발표하고 싶어! 어떻게 나의 작업을 보여주지? 어디서 할 수 있지?’ ‘어떻게 수입을 낼 수 있을까?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등등의 사고과정과 그에 부합하는 행동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세계를 알지 못한다. 아니 그에게는 그러한 세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것을 알려준다고 해서 알게 되고 할 수 있게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는 예술인이 아니게 된다.

그렇다면 발달장애인 중에 이러한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반문이 따른다. 아마 거의 대다수가 가능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대부분 부모 혹은 특정인, 특정 기관의 후견 속에서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장애예술인지원법의 지원을 받기도 전에 발달장애인은 예술인이 되기 위해서 먼저 누군가의 지원을 받아야 하니 말이다. 그를 예술인으로 칭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어야 하며 지속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한다.

  • 한 지역작가의 그림을 A군이 리폼해 완성한 인물화
    캔버스에 아크릴, 90.9X72.7cm(2019)

  • A군의 그림으로 제작한 쿠션
    천에 염색물감(2015)

B군의 상황을 보자. 이 청년 또한 그리기 활동에 아주 즐겁게 참여한다. 그러나 그의 그리기는 그냥 그리기라고 말하는 것 이상의 행동이다. 붓에 물감을 묻힌 후 용지 위에서 마구 돌리는데, 그러다 보면 둥근 붓 자국들을 만들어낸다. 한번 시작하면 끝나지 않기 때문에 옆에서 누군가가 용지를 바꿔주어야 하며, 붓을 씻어주거나 물감을 다시 공급해줘야 한다. 용지 사이즈에 따라 그 크기와 방식도 달라진다. 한번 시작된 활동은 좀처럼 멈추지 않기 때문에 가끔 옆에서 활동을 제지하기도 해야 한다. 흥이 오르면 제지하는 것에 화를 내기도 한다. 그는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함께 하는 사람은 그의 표정과 눈빛으로 감정을 읽고 거기에 대응해야 한다. 이 청년 또한 별다른 할 일 없이 하루의 대부분을 활동보조인의 손에 이끌려 시간을 보낸다. 그렇다면 이 청년은 예술가가 될 수 있는가?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그 조건은 무엇인가?

내가 발달장애 아동·청소년과 미술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들이 가진 그러한 특성 때문이었다. 일상에서 보면 무의미하고 어처구니없을 법한 일들이 미술 활동에서는 용인될 뿐 아니라, 그것을 마음껏 즐기고 발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른 어떠한 활동보다 예술적인 활동이 그들의 활동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최근 그들과 음악적인 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 미술보다 흥이 더 많이 넘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즉각적으로 빠져들고 몰입하였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가능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전문적 조력 혹은 협력이 있어야만 한다. 물론 여기저기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그러나 그것의 대부분은 말 그대로 교육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나는 A군의 활동도 B군의 활동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일이 전업 예술 활동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딱히 달리 할 일도 없는데 말이다. 거기에는 바로 그와 함께 그것을 사회적 활동으로 이끌어갈 누군가의 조력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 ‘누구’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발달장애인이 예술인이 되는 그 순간에 있어야 하는 그 ‘누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남는다. 발달장애인에게 있어 「장애예술인지원법」이 가지는 한계도 거기에 있다. 현재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발달장애인 옆에는 그 ‘누구’가 있다. 발달장애인 예술을 말할 때, 그 ‘누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유이다. 그 ‘누구’가 없이는 발달장애 ‘예술인’도 없기 때문이다.

  • B군의 그림
    종이에 수채물감, 39.4X27.2cm(2020)

  • B군의 이미지를 사용한 쇼핑백 디자인
    (서천고등학교 큐브투게더, 2015)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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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가 있는 김진우의 아빠다. 그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부모회 활동을 하였고, 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하여 왔으며,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와 소통을 도모해왔다. 최근에는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하여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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