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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 그 언저리

이음광장 장애인인가 물었다

  • 김인규 작가
  • 등록일 2020-11-04
  • 조회수555

나는 나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발달장애 청소년들과 2018년,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장애인의날’ 맞이 토론회를 했다. 장애인의날이 되면 각종 행사에 참여하거나 동원되기도 하는데 과연 본인들은 장애인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다. 1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의 청소년이 토론에 참여하였다.

장애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핵심적인 질문은 “스스로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가”였다. 첫해 토론에서는 참여자 모두 스스로 장애인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였다. 장애인은 걷지 못한다든가 휠체어를 타거나 하는데 자기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물론 그 자리에는 말을 잘하지 못하거나 걷는 것이 불편한 친구들이 있음에도 그들도 자신이 장애인이 아니라고 의사표시를 했다.

그런데 자신이 장애인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장애인은 어떤 사람인가 물었을 때, 한 친구는 괴롭히고 놀리고 때리는 사람이라고 답했고, 다른 참여자 대부분이 그의 말에 공감하였다. 말하자면 성장기에 학교 등지에서 놀림 받고 괴롭힘 받았던 것을 기억했을 것이다. 장애인은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일반적인 의식이 그들 마음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은 부족한 사람이 아니며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고, 장애인이라고 놀림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듬해 똑같은 방식으로 토론을 하였고, 지난해처럼 동일한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한 친구가 “장애인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대답을 하면서 토론장이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다른 친구들은 자신이 장애인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을 하고 있는데, 불쑥 “장애인이야! 우리는 장애인이야!” 하고 말해버린 것이다. 이 말을 듣자 다들 말문이 막히기 시작했다. 그것을 인정할 수도 부인할 수도 없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발 더 나아가 왜 스스로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날 때부터 어떻기에 장애인이라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더는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장애인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눈이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그런 것이라고 답했다.

나는 그가 자라면서 어른들이 자기에 대해 말했던 것을 따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스스로 장애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알지 못했고 다만 그렇게 여겨진다는 것을 알 뿐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장애인으로 여겨지지만 왜 그런지는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대화는 계속되지 못했고, 참여자들은 선생님이 알려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토론은 거기서 멈췄다.

발달장애인은 무언가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장애가 있다. 가령 나의 아들 진우는 옷에 단추를 끼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데, 약간의 뇌병변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단추를 끼우는 조작을 못 할 만큼의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구멍에 단추가 끼워지는 조건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방법을 알려준다고 알게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닌 장애를 장애라고 인식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다만 사람들이 자기를 장애인이라고 일컬을 뿐인 것이다. 자기를 장애인이라는 틀에 포함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그것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못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왜 못 하는지 알지 못하기에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무엇일 따름이다. 그렇게 보면 발달장애인 스스로는 자신이 장애인이 아닌 셈이다.

발달장애인의 장애는 당사자가 아니라, 그와 함께 하는 ‘그 누구’, 비장애인의 장애가 되는 셈이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하는 ‘그 누구’는 그가 가진 장애와 연결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어떤 형태로든 보완하면서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게 된다. 놀랍게도 발달장애인 당사자는 그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기에 관계를 형성하는 몫이 그와 함께 하는 비장애인 ‘그 누구’의 몫이 된다. 그의 장애를 판단하고 이름 짓고 보완하는 일이 ‘그 누구’에게 귀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은 장애인이라고 말을 했던 그 친구처럼 대부분 발달장애인은 비장애인과의 그러한 관계를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 나와 참여자들의 공동작업 <초상>, 2019

김인규

김인규 

발달장애가 있는 김진우의 아빠다. 그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부모회 활동을 하였고, 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하여 왔으며,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와 소통을 도모해왔다. 최근에는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하여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
kig8142@naver.com

김인규

김인규 

발달장애가 있는 김진우의 아빠다. 그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부모회 활동을 하였고, 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하여 왔으며,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와 소통을 도모해왔다. 최근에는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하여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
kig8142@naver.com

상세내용

나는 나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발달장애 청소년들과 2018년,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장애인의날’ 맞이 토론회를 했다. 장애인의날이 되면 각종 행사에 참여하거나 동원되기도 하는데 과연 본인들은 장애인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다. 1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의 청소년이 토론에 참여하였다.

장애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핵심적인 질문은 “스스로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가”였다. 첫해 토론에서는 참여자 모두 스스로 장애인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였다. 장애인은 걷지 못한다든가 휠체어를 타거나 하는데 자기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물론 그 자리에는 말을 잘하지 못하거나 걷는 것이 불편한 친구들이 있음에도 그들도 자신이 장애인이 아니라고 의사표시를 했다.

그런데 자신이 장애인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장애인은 어떤 사람인가 물었을 때, 한 친구는 괴롭히고 놀리고 때리는 사람이라고 답했고, 다른 참여자 대부분이 그의 말에 공감하였다. 말하자면 성장기에 학교 등지에서 놀림 받고 괴롭힘 받았던 것을 기억했을 것이다. 장애인은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일반적인 의식이 그들 마음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은 부족한 사람이 아니며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고, 장애인이라고 놀림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듬해 똑같은 방식으로 토론을 하였고, 지난해처럼 동일한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한 친구가 “장애인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대답을 하면서 토론장이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다른 친구들은 자신이 장애인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을 하고 있는데, 불쑥 “장애인이야! 우리는 장애인이야!” 하고 말해버린 것이다. 이 말을 듣자 다들 말문이 막히기 시작했다. 그것을 인정할 수도 부인할 수도 없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발 더 나아가 왜 스스로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날 때부터 어떻기에 장애인이라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더는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장애인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눈이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그런 것이라고 답했다.

나는 그가 자라면서 어른들이 자기에 대해 말했던 것을 따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스스로 장애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알지 못했고 다만 그렇게 여겨진다는 것을 알 뿐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장애인으로 여겨지지만 왜 그런지는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대화는 계속되지 못했고, 참여자들은 선생님이 알려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토론은 거기서 멈췄다.

발달장애인은 무언가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장애가 있다. 가령 나의 아들 진우는 옷에 단추를 끼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데, 약간의 뇌병변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단추를 끼우는 조작을 못 할 만큼의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구멍에 단추가 끼워지는 조건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방법을 알려준다고 알게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닌 장애를 장애라고 인식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다만 사람들이 자기를 장애인이라고 일컬을 뿐인 것이다. 자기를 장애인이라는 틀에 포함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그것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못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왜 못 하는지 알지 못하기에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무엇일 따름이다. 그렇게 보면 발달장애인 스스로는 자신이 장애인이 아닌 셈이다.

발달장애인의 장애는 당사자가 아니라, 그와 함께 하는 ‘그 누구’, 비장애인의 장애가 되는 셈이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하는 ‘그 누구’는 그가 가진 장애와 연결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어떤 형태로든 보완하면서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게 된다. 놀랍게도 발달장애인 당사자는 그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기에 관계를 형성하는 몫이 그와 함께 하는 비장애인 ‘그 누구’의 몫이 된다. 그의 장애를 판단하고 이름 짓고 보완하는 일이 ‘그 누구’에게 귀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은 장애인이라고 말을 했던 그 친구처럼 대부분 발달장애인은 비장애인과의 그러한 관계를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 나와 참여자들의 공동작업 <초상>, 2019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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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가 있는 김진우의 아빠다. 그와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해왔다. 부모회 활동을 하였고, 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하여 왔으며,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와 소통을 도모해왔다. 최근에는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하여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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