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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 브리크 플랫폼] 언씽킹 씨어터 #1

리뷰 생명 정치 현장에서 다시 생각하는 장애

  • 허명진 무용평론가
  • 등록일 2021-07-28
  • 조회수1703

리뷰

브릭 브리크 플랫폼 언씽킹 씨어터 #1–장애문화 공연의 안, 밖, 표면

생명 정치의 현장에서 다시 생각하는 장애

글. 허명진 무용평론가

  • <어사일럼(Asylum) 프로젝트> 워크숍 (뉴욕, 2017)

“우리는 삶의 기념비를 위한 새로운 조각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안무가이자 휠체어 댄서, 장애문화활동가인 페트라 쿠퍼스(Petra Kuppers)의 퍼포먼스 영상 서두에 나오는 이 말은 우선적으로 베를린에 소재한 유대인 학살 추모공원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장애인 비접근성에 대한 것이지만, 퀴어나 인지적 차이 등으로 인해 배제된 모든 무언가를 포함한다. 그녀의 작업은 우리에게 이미 기입되고 이식된 사고의 작용으로 미처 의식에 떠오르지 못하는 무엇을, 포괄적이지만 매우 구체적으로 또한 부드럽게 건드린다. 검열의 게이트를 통과하여 퍼포먼스 참여자들이 서로의 배에 머리를 대고 눕는 식으로 찰나적인 신체적 조각을 만드는 과정에서 “터치해도 될까요?”라며 양해를 구하는 제스처는 어떤 경계의 넘기, 각자의 신체 영역에 침투하는 행위를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만든다. 비록 강연 속 영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으나 그 반향은 한동안 계속 남아있었다.

이는 어쩌면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관처럼 늘어선 육중한 돌들, 바닥의 굴곡으로 때로는 위협적이기도 한 높이까지 오는 돌들, 그 풍경과의 대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기념물이지만 장애인은 입장하지 못하게 되어있다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이에 항의하여 독일의 장애인 단체가 제기한 소송이 패소했다는 사실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후 페트라의 퍼포먼스 <저니 투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인 베를린(Journey to Holocaust Memorial in Berlin)>(2011)은 이 추모 공간으로 가서 시위하는 대신, 몸들이 서로 엮인 것처럼 드러나는 살아 있는 공동의 신체적 조각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 퍼포먼스는 생명을 통제하는 근대의 권력을 의식하면서도 그 모든 것에 우선하는 생명 그 자체의 살아 있음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는 물론 사회 전반에 놓인 구분과 배제를 확장적으로 환기시킨다. 퍼포먼스에 관한 페트라의 화상 강연 이후 이어진 패널 토크에서 문승현 작가는 홀로코스트 당시 많은 장애를 가진 독일인 또한 독극물로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장애를 질병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지적한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기입된 사유의 식민성을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갖고서 시작한 것이 ‘언씽킹 씨어터(Unthinking Theatre)’다. 이는 아르코예술극장 개관 40주년을 기념해 시도되는 창작공간 레지던시 ‘브릭 브리크 플랫폼(Brick-Break Platform)’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아고라 연계 프로그램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탈식민화된 생각이 발생하는 극장’으로서, 지난 6월 26일 진행된 페트라 쿠퍼스의 강연과 토크 ‘장애문화 공연의 안, 밖, 표면’을 첫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특히 레지던시에 참여한 작가 중 신재 연극연출가는 장애를 비롯하여 그동안 극장과 연극에서 배제된 주제와 주체를 작업에서 다뤄왔으며, 이 강연을 통해 그간 관심을 가져왔던 장애인 접근성에 관한 문제와 함께 무언가를 기억하게 만드는 공식적인 방식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이와 함께 장애에 관한 이야기나 체험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 부정성이란 전강희 평론가의 말처럼, 언어를 통한 사유, 논리성이 내포하는 기본적인 결인 것일까. 어쨌든 페트라의 공연은 직관적이면서도 완곡하고, 계속 허가를 구하는 방식, 달리 말해, 누군가가 리드하는 방식이 아닌, 서로 의존하게 하고 취약하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점에서의 차이를 보이며 다르게 생각하게 만든다.

국은미 안무가는 몸의 관점에서 움직임 작업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이 어느 순간에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궁극적으로 장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노경애 안무가는 더 나아가, 장애의 몸이 드러내는 비장애인과 다른 시간성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발 빠르게 맞춰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모두에게 익숙해져 있는 그러한 시간성에서 조금은 거리를 둘 수 있는, 언뜻 느리고 지루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다르게 경험하고 생각하게 하는 시간성을 장애에서 발견한다는 것이다. 퍼포먼스의 초반부에서 장애에 관심이 있는 부토 아티스트에게 초청된 장애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귀 기울이게 만드는 것처럼, 또한 서로 연결되고 연대하는 체험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처럼, 페트라의 작업은 극장뿐 아니라 그 너머로 훨씬 이탈되고 확장된 차원에서 관습성과 편견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페트라의 ‘에코소마(Ecosoma)’라는 방법론은 이처럼 몸에 기반하면서도 몸 너머를 함께 다루고 있으며, 기존의 몸 중심적인 소매틱(somatics)을 넘어서고 있다. 그녀의 다른 퍼포먼스 작업에 관한 글에서 유추하자면, 이것은 도시 내부를 서로 다른 심리적 지대로서 탐색하며 틀에 박힌 풍경과 대비되는 낯선 체험을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표류’의 상황주의 전략과 맞닿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신재 연출가가 주목하듯이, 퍼포먼스 바깥으로 나왔을 때 여전히 휠체어가 다니기 어려운 현실의 장벽을 마주치게 된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 장애인이 출입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 <언씽킹 씨어터 #1> 페트라 쿠퍼스 화상 강연

  • <언씽킹 씨어터 #1> 라운드 테이블

[브릭 브리크 플랫폼] 아고라 연계프로그램 <언씽킹 씨어터 #1>

2021.6.26. 10:00 비대면(ZOOM) 회의

아르코예술극장 개관 40주년 기념 창작공간 레지던시 [브릭 브리크 플랫폼]의 아고라 연계프로그램인 <언씽킹 씨어터 #1>은 지금까지의 극장에 관한 전형적으로 규범화된 생각들에 반하는 전략을 통해 예술과 일상을 둘러싼 상태를 다시 사고하는 예술적 실천을 나누고자 강연과 라운드테이블이 진행되었다. ‘장애문화 공연의 안, 밖, 표면’을 주제로 장애 문화 활동가, 안무가, 휠체어 댄서이자 커뮤니티 공연예술가인 페트라 쿠퍼스의 강연과 함께 국은미(안무가), 노경애(안무가), 문승현(작가), 신재(연출가), 전강희(드라마터그) 등이 패널로 참여하여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했다.

허명진

무용전문지 [몸] 기자를 거쳐 2003년 무용예술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공연예술지 [판] 편집위원, 국립현대무용단 교육&리서치 연구원을 거치면서 무용의 접점을 다변화하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choreia@hanmail.net

사진 제공.아르코예술극장

2021년 8월 (22호)

상세내용

리뷰

브릭 브리크 플랫폼 언씽킹 씨어터 #1–장애문화 공연의 안, 밖, 표면

생명 정치의 현장에서 다시 생각하는 장애

글. 허명진 무용평론가

  • <어사일럼(Asylum) 프로젝트> 워크숍 (뉴욕, 2017)

“우리는 삶의 기념비를 위한 새로운 조각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안무가이자 휠체어 댄서, 장애문화활동가인 페트라 쿠퍼스(Petra Kuppers)의 퍼포먼스 영상 서두에 나오는 이 말은 우선적으로 베를린에 소재한 유대인 학살 추모공원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장애인 비접근성에 대한 것이지만, 퀴어나 인지적 차이 등으로 인해 배제된 모든 무언가를 포함한다. 그녀의 작업은 우리에게 이미 기입되고 이식된 사고의 작용으로 미처 의식에 떠오르지 못하는 무엇을, 포괄적이지만 매우 구체적으로 또한 부드럽게 건드린다. 검열의 게이트를 통과하여 퍼포먼스 참여자들이 서로의 배에 머리를 대고 눕는 식으로 찰나적인 신체적 조각을 만드는 과정에서 “터치해도 될까요?”라며 양해를 구하는 제스처는 어떤 경계의 넘기, 각자의 신체 영역에 침투하는 행위를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만든다. 비록 강연 속 영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으나 그 반향은 한동안 계속 남아있었다.

이는 어쩌면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관처럼 늘어선 육중한 돌들, 바닥의 굴곡으로 때로는 위협적이기도 한 높이까지 오는 돌들, 그 풍경과의 대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기념물이지만 장애인은 입장하지 못하게 되어있다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이에 항의하여 독일의 장애인 단체가 제기한 소송이 패소했다는 사실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후 페트라의 퍼포먼스 <저니 투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인 베를린(Journey to Holocaust Memorial in Berlin)>(2011)은 이 추모 공간으로 가서 시위하는 대신, 몸들이 서로 엮인 것처럼 드러나는 살아 있는 공동의 신체적 조각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 퍼포먼스는 생명을 통제하는 근대의 권력을 의식하면서도 그 모든 것에 우선하는 생명 그 자체의 살아 있음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는 물론 사회 전반에 놓인 구분과 배제를 확장적으로 환기시킨다. 퍼포먼스에 관한 페트라의 화상 강연 이후 이어진 패널 토크에서 문승현 작가는 홀로코스트 당시 많은 장애를 가진 독일인 또한 독극물로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장애를 질병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지적한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기입된 사유의 식민성을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갖고서 시작한 것이 ‘언씽킹 씨어터(Unthinking Theatre)’다. 이는 아르코예술극장 개관 40주년을 기념해 시도되는 창작공간 레지던시 ‘브릭 브리크 플랫폼(Brick-Break Platform)’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아고라 연계 프로그램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탈식민화된 생각이 발생하는 극장’으로서, 지난 6월 26일 진행된 페트라 쿠퍼스의 강연과 토크 ‘장애문화 공연의 안, 밖, 표면’을 첫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특히 레지던시에 참여한 작가 중 신재 연극연출가는 장애를 비롯하여 그동안 극장과 연극에서 배제된 주제와 주체를 작업에서 다뤄왔으며, 이 강연을 통해 그간 관심을 가져왔던 장애인 접근성에 관한 문제와 함께 무언가를 기억하게 만드는 공식적인 방식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이와 함께 장애에 관한 이야기나 체험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 부정성이란 전강희 평론가의 말처럼, 언어를 통한 사유, 논리성이 내포하는 기본적인 결인 것일까. 어쨌든 페트라의 공연은 직관적이면서도 완곡하고, 계속 허가를 구하는 방식, 달리 말해, 누군가가 리드하는 방식이 아닌, 서로 의존하게 하고 취약하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점에서의 차이를 보이며 다르게 생각하게 만든다.

국은미 안무가는 몸의 관점에서 움직임 작업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이 어느 순간에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궁극적으로 장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노경애 안무가는 더 나아가, 장애의 몸이 드러내는 비장애인과 다른 시간성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발 빠르게 맞춰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모두에게 익숙해져 있는 그러한 시간성에서 조금은 거리를 둘 수 있는, 언뜻 느리고 지루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다르게 경험하고 생각하게 하는 시간성을 장애에서 발견한다는 것이다. 퍼포먼스의 초반부에서 장애에 관심이 있는 부토 아티스트에게 초청된 장애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귀 기울이게 만드는 것처럼, 또한 서로 연결되고 연대하는 체험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처럼, 페트라의 작업은 극장뿐 아니라 그 너머로 훨씬 이탈되고 확장된 차원에서 관습성과 편견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페트라의 ‘에코소마(Ecosoma)’라는 방법론은 이처럼 몸에 기반하면서도 몸 너머를 함께 다루고 있으며, 기존의 몸 중심적인 소매틱(somatics)을 넘어서고 있다. 그녀의 다른 퍼포먼스 작업에 관한 글에서 유추하자면, 이것은 도시 내부를 서로 다른 심리적 지대로서 탐색하며 틀에 박힌 풍경과 대비되는 낯선 체험을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표류’의 상황주의 전략과 맞닿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신재 연출가가 주목하듯이, 퍼포먼스 바깥으로 나왔을 때 여전히 휠체어가 다니기 어려운 현실의 장벽을 마주치게 된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 장애인이 출입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 <언씽킹 씨어터 #1> 페트라 쿠퍼스 화상 강연

  • <언씽킹 씨어터 #1> 라운드 테이블

[브릭 브리크 플랫폼] 아고라 연계프로그램 <언씽킹 씨어터 #1>

2021.6.26. 10:00 비대면(ZOOM) 회의

아르코예술극장 개관 40주년 기념 창작공간 레지던시 [브릭 브리크 플랫폼]의 아고라 연계프로그램인 <언씽킹 씨어터 #1>은 지금까지의 극장에 관한 전형적으로 규범화된 생각들에 반하는 전략을 통해 예술과 일상을 둘러싼 상태를 다시 사고하는 예술적 실천을 나누고자 강연과 라운드테이블이 진행되었다. ‘장애문화 공연의 안, 밖, 표면’을 주제로 장애 문화 활동가, 안무가, 휠체어 댄서이자 커뮤니티 공연예술가인 페트라 쿠퍼스의 강연과 함께 국은미(안무가), 노경애(안무가), 문승현(작가), 신재(연출가), 전강희(드라마터그) 등이 패널로 참여하여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했다.

허명진

무용전문지 [몸] 기자를 거쳐 2003년 무용예술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공연예술지 [판] 편집위원, 국립현대무용단 교육&리서치 연구원을 거치면서 무용의 접점을 다변화하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choreia@hanmail.net

사진 제공.아르코예술극장

2021년 8월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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