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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의 시선⑧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

트렌드 곳곳에 잠복한 장애물을 밀어내는 첫걸음

  • 한상정 인천대학교 교수
  • 등록일 2020-11-25
  • 조회수635

트렌드리포트

장애의 시선⑧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

곳곳에 잠복한 장애물을 밀어내는 첫걸음

한상정 인천대학교 교수

교양수업 강의 첫 시간, 긴 강의실의 맨 뒷자리에 휠체어를 탄 학생이 앉아있었다. 출석부에는 그냥 장애인이라는 표기만 있을 뿐, 어떤 장애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하필이면 산만한 뒷자리에 앉았나 싶어 신경이 쓰였지만 모른 척해야만 할 것 같았다. 휠체어를 바라보는 건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자세히 보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면서, 수업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학점 채우기용 수강인가 했다. 한번은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강의실 바깥에서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가볍게 묵례하고 지나쳤다. 시험이라 오신 건가 했다가 도우미 학생이 시험이라 휠체어 이동을 도와주지 못한 것이구나 싶었다. 돌이켜보면, 혼자서 휠체어를 끌고 다닐 수 없었다는 것인데.

만약 라일라 작가의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2015-2017)를 읽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강의실이 너무 길어서, 뒷자리는 주로 수업 듣기 싫어하는 학생들이 차지한다. 제일 뒷자리에 앉고 싶어서 앉는 건지 확인했을 것이다. 수업을 들을 때 불편한 점이 없는지 점검했을 것이다. 핸드폰을 잡으면 지적했을 것이다. 부모님을 만났을 때, 시험 보는 걸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을 것이다. 무지란 이런 것이다. ‘모른 척’이 가장 좋은 태도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장애를 장애물로 인식하지 않는 사회에서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교수자가 학생의 수강에 불편함이 없는지를 점검하고 어려움을 최소화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였을 텐데 말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장애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만약 ‘한국사회에서 청각 장애인의 생활양상’같은 제목의 책으로 청각 장애에 대해 지식을 쌓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귀머거리다>처럼 독자들을 강하게 흡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라일라’라는 한 개인의, 한 인간이라는 구체적인 실존 속에서 이야기를 듣는다. 그 속엔 고통도 괴로움도 우울도, 기쁨도 즐거움도 감동도 모두 들어있다. 저자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과도한 몰입이나 넘치는 애정 없이, 담담하게, 유머를 섞어 들려준다. 그러면서도 단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제도나 관습, 사람들이 갖춰야 할 태도,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중요한 것들을 제시한다. 장애학회나 미국에 방문했던 일화는 우리가 장애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장애를 ‘고쳐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으로 보는 것.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는 단지 장애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타자, 특히 소수자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그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을 제거하는 것, 우리 사회 곳곳에 잠복해있는 배리어(barrier, 장애물)를 제거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 당장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장애에 관한 지식의 양적 질적 풍족함이 이 작품의 전부는 아니다. 어떤 에피소드들은 깊은 감동을 준다. 예컨대 대학에 들어가서 생긴 우울증 이야기에서 음악으로 넘어가는 회차들이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공연 영상을 보게 된다. 149화에서 라일라는 왜 사람들이 인터뷰에서 ‘내 인생의 그림’이 아니라 ‘내 인생의 노래’를 자주 물을까에 대한 답변을 내놓는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무너지고 무너져 내려서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에, 음악만이 그 사람의 내면으로 파고들 수 있어서 그런 걸까. 그래서 음악이 이토록 아름다운 걸까.”

이렇게 멋진, 음악에 대한 예찬을 들어본 적이 없다. 프레디 머큐리가 무덤에서라도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너무나 행복했을 것이다. 비장애인이 절망에 빠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음악만이 그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다면, 청각 장애인은 그 수렁 속에서도 음악을 눈으로 읽어야만 하는 것인가. 청각 장애인이 눈으로 보면서 읽어낸 음악은 어떤 느낌이고 감각일까.

우리는 이 작품의 내용적인 부분만을 다뤘다. 라일라 작가가 이 작품을 창작한 가장 중요한 계기는 청각 장애에 대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지, 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아니었다. 명확한 목적에 따라 가장 접근성이 높은 웹툰 플랫폼에 주 2회 연재의 일상툰이라는 방식을 선택했고, 아주 유효한 결과물을 낳았다. 누구도 지금까지 자신의 장애에 대해 직접적으로, 오랫동안, 불특정 다수의 독자에게 말을 건네본 적이 없었다. 첫 번째로 발을 내딛는 것, 이것만 하더라도 얼마나 대단한가. 장애 관련 정책이나 사업들이 점점 더 진보한다면, 이런 작품들을 통해 비장애인들이 점점 더 배리어를 밀어낼 필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다음부터는 장애가 주제면서도 칸의 연쇄와 연출이 매력적인, 만화 형식으로서도 뛰어난 작품들을 기대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 역시 <나는 귀머거리다>가 해낸 소중한 성과이다.

한상정

만화와 지역문화 연구자.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 인천광역시 문화예술위원회 위원. 만화이론을 전공하고, 원주를 거쳐 인천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지역문화에 대한 고민과 연구 중이다. 인천대학교 불어불문학과/문화대학원 지역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hsj870@empas.com
www.facebook.com/sangjung.han.3

메인이미지 출처.네이버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라일라)

2020년 11월 (15호)

상세내용

트렌드리포트

장애의 시선⑧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

곳곳에 잠복한 장애물을 밀어내는 첫걸음

한상정 인천대학교 교수

교양수업 강의 첫 시간, 긴 강의실의 맨 뒷자리에 휠체어를 탄 학생이 앉아있었다. 출석부에는 그냥 장애인이라는 표기만 있을 뿐, 어떤 장애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하필이면 산만한 뒷자리에 앉았나 싶어 신경이 쓰였지만 모른 척해야만 할 것 같았다. 휠체어를 바라보는 건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자세히 보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면서, 수업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학점 채우기용 수강인가 했다. 한번은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강의실 바깥에서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가볍게 묵례하고 지나쳤다. 시험이라 오신 건가 했다가 도우미 학생이 시험이라 휠체어 이동을 도와주지 못한 것이구나 싶었다. 돌이켜보면, 혼자서 휠체어를 끌고 다닐 수 없었다는 것인데.

만약 라일라 작가의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2015-2017)를 읽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강의실이 너무 길어서, 뒷자리는 주로 수업 듣기 싫어하는 학생들이 차지한다. 제일 뒷자리에 앉고 싶어서 앉는 건지 확인했을 것이다. 수업을 들을 때 불편한 점이 없는지 점검했을 것이다. 핸드폰을 잡으면 지적했을 것이다. 부모님을 만났을 때, 시험 보는 걸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을 것이다. 무지란 이런 것이다. ‘모른 척’이 가장 좋은 태도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장애를 장애물로 인식하지 않는 사회에서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교수자가 학생의 수강에 불편함이 없는지를 점검하고 어려움을 최소화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였을 텐데 말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장애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만약 ‘한국사회에서 청각 장애인의 생활양상’같은 제목의 책으로 청각 장애에 대해 지식을 쌓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귀머거리다>처럼 독자들을 강하게 흡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라일라’라는 한 개인의, 한 인간이라는 구체적인 실존 속에서 이야기를 듣는다. 그 속엔 고통도 괴로움도 우울도, 기쁨도 즐거움도 감동도 모두 들어있다. 저자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과도한 몰입이나 넘치는 애정 없이, 담담하게, 유머를 섞어 들려준다. 그러면서도 단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제도나 관습, 사람들이 갖춰야 할 태도,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중요한 것들을 제시한다. 장애학회나 미국에 방문했던 일화는 우리가 장애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장애를 ‘고쳐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으로 보는 것.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는 단지 장애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타자, 특히 소수자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그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을 제거하는 것, 우리 사회 곳곳에 잠복해있는 배리어(barrier, 장애물)를 제거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 당장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장애에 관한 지식의 양적 질적 풍족함이 이 작품의 전부는 아니다. 어떤 에피소드들은 깊은 감동을 준다. 예컨대 대학에 들어가서 생긴 우울증 이야기에서 음악으로 넘어가는 회차들이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공연 영상을 보게 된다. 149화에서 라일라는 왜 사람들이 인터뷰에서 ‘내 인생의 그림’이 아니라 ‘내 인생의 노래’를 자주 물을까에 대한 답변을 내놓는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무너지고 무너져 내려서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에, 음악만이 그 사람의 내면으로 파고들 수 있어서 그런 걸까. 그래서 음악이 이토록 아름다운 걸까.”

이렇게 멋진, 음악에 대한 예찬을 들어본 적이 없다. 프레디 머큐리가 무덤에서라도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너무나 행복했을 것이다. 비장애인이 절망에 빠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음악만이 그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다면, 청각 장애인은 그 수렁 속에서도 음악을 눈으로 읽어야만 하는 것인가. 청각 장애인이 눈으로 보면서 읽어낸 음악은 어떤 느낌이고 감각일까.

우리는 이 작품의 내용적인 부분만을 다뤘다. 라일라 작가가 이 작품을 창작한 가장 중요한 계기는 청각 장애에 대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지, 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아니었다. 명확한 목적에 따라 가장 접근성이 높은 웹툰 플랫폼에 주 2회 연재의 일상툰이라는 방식을 선택했고, 아주 유효한 결과물을 낳았다. 누구도 지금까지 자신의 장애에 대해 직접적으로, 오랫동안, 불특정 다수의 독자에게 말을 건네본 적이 없었다. 첫 번째로 발을 내딛는 것, 이것만 하더라도 얼마나 대단한가. 장애 관련 정책이나 사업들이 점점 더 진보한다면, 이런 작품들을 통해 비장애인들이 점점 더 배리어를 밀어낼 필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다음부터는 장애가 주제면서도 칸의 연쇄와 연출이 매력적인, 만화 형식으로서도 뛰어난 작품들을 기대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 역시 <나는 귀머거리다>가 해낸 소중한 성과이다.

한상정

만화와 지역문화 연구자.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 인천광역시 문화예술위원회 위원. 만화이론을 전공하고, 원주를 거쳐 인천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지역문화에 대한 고민과 연구 중이다. 인천대학교 불어불문학과/문화대학원 지역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hsj870@empas.com
www.facebook.com/sangjung.han.3

메인이미지 출처.네이버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라일라)

2020년 11월 (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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