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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이음

최유리×김인경 1:1 아트링크

이음광장 시간 속에서 우리는

  • 밝은방 창작그룹
  • 등록일 2020-09-22
  • 조회수1032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하계역에 내려 미술관이 있는 공원을 가로질러 가로수 길을 따라 빽빽하고 높은 아파트 단지로 걸어가는 그 길에 대해. 매번 같은 길이지만 공기와 계절, 마음은 항상 달랐던 것 같다. 가벼운 날, 비 오는 날, 설레는 날, 힘든 날, 상상에 빠진 날, 추운 날, 햇빛이 밝은 날, 날아갈 듯이 기쁜 날… 늘 달라지는 마음으로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최유리 <아파트>, 종이에 오일파스텔, 240x320(2018)

2015년부터 지금까지 벌써 6년째다. 한 달에 한 번 그녀[최유리 창작자]와 나[김인경]는 만난다. 나는 그녀가 그림 그리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재료 사용을 돕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간다. 그녀가 그리고 싶어 하는 그림의 소재와 알맞은 재료에 대해 눈과 손, 몇몇 단어, 또는 어떤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나는 그녀가 그림에 집중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또 기록한다.

그녀는 꽃과 나무, 집과 산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먹, 목탄, 오일파스텔, 유화물감을 사용하여 인물과 정물, 풍경을 그린다. 몸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와 연극,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마음 한편에 늘 품고 산다.

최유리 <얼굴>, 종이에 연필(2019)

처음에는 낯선 공간이었던 그녀의 집이 이제는 쌓인 시간만큼이나 익숙하고 편안하다. 타인이기에 어렵게 느껴졌던 서로의 생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던 것 같다. 나는 그녀가 그림을 그릴 때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제약이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녀도 나의 엉뚱한 제안과 다소 조급한 진행 속도를 받아들이기까지 적잖게 당황했으리라 짐작한다. 몇 번의 큰 수술로 인해 그녀가 섬세하게 손을 사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의지와 다르게 뻗치는 손은 점차 그녀만의 특징이라고 생각됐다.

최유리 <컵>, 종이에 오일파스텔, 240x320(2017)

함께 다양한 시도와 실수를 거치면서 손에 더 잘 맞는 도구, 이를테면 먹과 목탄, 오일파스텔 등과 같은 거칠지만 따뜻한 질감의 재료들을 찾아냈다. 최근 그녀는 목탄을 사용해 손의 표정에 집중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손을 그리는 손. 손의 떨림을 그리는 손의 떨림. 성실하지만 담대하고, 거칠지만 따뜻한 손이 그녀의 손이고 그녀의 그림이다. 의도된 힘과 의도되지 않은 힘 사이에서 손의 형태가 점차 잡혀갔다. 

최유리 <손>, 종이에 목탄(2020)

그림 그리기를 마치고 한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해가 기울어가는 시간이다. 그녀가 예전에 그린 <맞잡은 손>이 생각났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가끔 나는 그녀의 그림 안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녀 또한 나를 통해 그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을까? 미약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녀와 내가 6년째 맞잡고 있는 손의 시간이다.  

최유리 <맞잡은 손>, 한지에 먹(2017)

글. 김인경(밝은방 공동대표)
어두컴컴한 빛과 깨진 언어를 느리게 실험하는 시각예술 작업자이자,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창작그룹 밝은방의 운영자이다.

밝은방

밝은방 

밝은방은 미술을 좋아하거나 독자적인 미술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아티스트 그룹의 이름입니다. 지난 10년간 아르브뤼(Art Brut)와 에이블아트(Able-art) 분야에서 각종 예술워크숍, 전시, 출판물을 기획하고 진행해온 김효나와 김인경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brightworkroom@gmail.com
필자 블로그 바로가기 : https://brightworkroom.modoo.at

밝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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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방은 미술을 좋아하거나 독자적인 미술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아티스트 그룹의 이름입니다. 지난 10년간 아르브뤼(Art Brut)와 에이블아트(Able-art) 분야에서 각종 예술워크숍, 전시, 출판물을 기획하고 진행해온 김효나와 김인경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https://brightworkroom.modoo.at
brightworkroom@gmail.com
필자 블로그 바로가기 : https://brightworkroom.modoo.at

상세내용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하계역에 내려 미술관이 있는 공원을 가로질러 가로수 길을 따라 빽빽하고 높은 아파트 단지로 걸어가는 그 길에 대해. 매번 같은 길이지만 공기와 계절, 마음은 항상 달랐던 것 같다. 가벼운 날, 비 오는 날, 설레는 날, 힘든 날, 상상에 빠진 날, 추운 날, 햇빛이 밝은 날, 날아갈 듯이 기쁜 날… 늘 달라지는 마음으로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최유리 <아파트>, 종이에 오일파스텔, 240x320(2018)

2015년부터 지금까지 벌써 6년째다. 한 달에 한 번 그녀[최유리 창작자]와 나[김인경]는 만난다. 나는 그녀가 그림 그리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재료 사용을 돕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간다. 그녀가 그리고 싶어 하는 그림의 소재와 알맞은 재료에 대해 눈과 손, 몇몇 단어, 또는 어떤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나는 그녀가 그림에 집중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또 기록한다.

그녀는 꽃과 나무, 집과 산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먹, 목탄, 오일파스텔, 유화물감을 사용하여 인물과 정물, 풍경을 그린다. 몸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와 연극,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마음 한편에 늘 품고 산다.

최유리 <얼굴>, 종이에 연필(2019)

처음에는 낯선 공간이었던 그녀의 집이 이제는 쌓인 시간만큼이나 익숙하고 편안하다. 타인이기에 어렵게 느껴졌던 서로의 생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던 것 같다. 나는 그녀가 그림을 그릴 때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제약이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녀도 나의 엉뚱한 제안과 다소 조급한 진행 속도를 받아들이기까지 적잖게 당황했으리라 짐작한다. 몇 번의 큰 수술로 인해 그녀가 섬세하게 손을 사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의지와 다르게 뻗치는 손은 점차 그녀만의 특징이라고 생각됐다.

최유리 <컵>, 종이에 오일파스텔, 240x320(2017)

함께 다양한 시도와 실수를 거치면서 손에 더 잘 맞는 도구, 이를테면 먹과 목탄, 오일파스텔 등과 같은 거칠지만 따뜻한 질감의 재료들을 찾아냈다. 최근 그녀는 목탄을 사용해 손의 표정에 집중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손을 그리는 손. 손의 떨림을 그리는 손의 떨림. 성실하지만 담대하고, 거칠지만 따뜻한 손이 그녀의 손이고 그녀의 그림이다. 의도된 힘과 의도되지 않은 힘 사이에서 손의 형태가 점차 잡혀갔다. 

최유리 <손>, 종이에 목탄(2020)

그림 그리기를 마치고 한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해가 기울어가는 시간이다. 그녀가 예전에 그린 <맞잡은 손>이 생각났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가끔 나는 그녀의 그림 안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녀 또한 나를 통해 그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을까? 미약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녀와 내가 6년째 맞잡고 있는 손의 시간이다.  

최유리 <맞잡은 손>, 한지에 먹(2017)

글. 김인경(밝은방 공동대표)
어두컴컴한 빛과 깨진 언어를 느리게 실험하는 시각예술 작업자이자,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창작그룹 밝은방의 운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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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방은 미술을 좋아하거나 독자적인 미술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다양한 예술작업을 시도하며 창작과 소통의 방향을 찾는 아티스트 그룹의 이름입니다. 지난 10년간 아르브뤼(Art Brut)와 에이블아트(Able-art) 분야에서 각종 예술워크숍, 전시, 출판물을 기획하고 진행해온 김효나와 김인경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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