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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종민 연극배우

인터뷰 뜨거움보다는 해맑은, 성실한 자신감

  • 김소연 연극평론가
  • 등록일 2021-11-24
  • 조회수1621

인터뷰

올가을 무대의 화제를 꼽으라면, 단연 백우람, 하지성, 호종민 배우의 무대다. 백우람 배우는 국립극단 <로드킬 인 더 씨어터>(구자혜 작 연출), 하지성 배우는 서울시극단 <천만 개의 도시>(전성현 작, 박해성 연출), 호종민 배우는 극단 해인 <집집 : 하우스 소나타>(한현주 작, 이양구 연출)의 무대에 섰다. 이들은 극단 애인, 극단 휠 등 장애인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인데, 그동안 함께 활동해온 극단이 아닌 비장애인 창작자들이 대부분인 새로운 프로덕션에 참여해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국공립극장 프로그램으로는 극단 다빈나오의 소리극 <옥이>(이보람 작, 김지원 연출)도 있었다. 소리극 <옥이>는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2021~2022 프로그램으로 하늘극장에서 공연되었다. 그동안 공연계의 관심이 장애인 관객의 접근성에 대한 것이었다면, 올가을 무대는 장애인 창작자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갑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지 않은 것은 아쉽다.)

물론 최근 공연예술계의 관심이 단지 관객의 접근성에만 한정되었던 것은 아니고 장애인극단, 장애인 창작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왔다. 작품의 성과도 적지 않아서 극단 애인, 0set프로젝트, 극단 다빈나오 등의 작업이나 엘리펀트룸 등에서 장애·비장애 예술가가 함께하는 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꾸준한 관심의 확대가 국립극단, 국립극장, 서울시극단 등 공공극장의 작품 제작이나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 배우의 무대도 단지 기회의 확대나 다양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을 통해 작품이 시도하는 콘셉트나 재현을 풍부하고 두텁게 한다. 이들은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지우지 않지만, 그렇다고 장애인 정체성으로만 서지도 않는다. 그만큼 장애인 창작자에 대한 이해도 깊고, 또 창작자의 역량도 축적되어 온 것이다. 작품이 그리는 세계가 깊이 있고, 배우들은 무대 위의 창작자로서 그 깊이를 그려낸다.

이번에 만나는 호종민 배우는 이미 극단 휠의 주요 작품에서 주목받아왔던 배우이자, 시와 희곡 등으로 창작활동을 넓혀가고 있는 작가다. 특히 지난 9월에 공연한 <집집: 하우스 소나타>에서 호종민 배우는 단 한 장면에 출연했을 뿐인데도 씬 스틸러라 할 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임대아파트를 무대로 20년의 시간을 오가며 위태로운 삶을 그려가는 이 연극에서 그는 주인공들의 분주한 발걸음 사이 한 장면에서 아파트 벤치에 앉아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 장면은 채울 수 없는 텅 빈 허무이거나 바닥이 없는 절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호종민 배우는 그 한 장면에서 이름 붙일 수 없는 단단한 무엇을 내뱉는다. 채울 수도 비워지지도 않는, 물러설 수도 떠날 수도 잡을 수도 없는, 그가 뱉어낸 단단한 그것을 삶이라고 불러야 할까.

호종민 배우를 만나기 전, 그의 연기의 강렬함 때문이기도 하고 그의 폭넓은 활동 때문이기도 한데, 달뜬 창작열이랄까 창작자에게 가지는 어떤 통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델 듯한 뜨거움보다는 (연배보다 어려 보이는 그의 외모도 한몫하겠지만) 해맑음이 먼저 다가왔다. 그의 해맑음은 자신의 맡은 역할, 배우로서의 역할만이 아니라 극단 활동 등등 삶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성실함은 그저 묵묵히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것만이 아니라, 겸손함 속에서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쌓아가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무대 위의 그에게서 봤던 어떤 단단함은 무게에 눌리지 않는 그만의 삶의 질감이었던 것이다. 이제 중년의 문턱에 서 있지만 여전히 청년 같은 해맑음을 간직한 호종민 배우의 이야기를 전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연극을 전공했다고 하던데, 바로 연극에 입문하지는 않았다.

1학년 때부터 취업 걱정이 많았다.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했는데 취업에 도움이 될까 해서 연극영화를 복수전공으로 선택했다. 교수님과 상담을 하는데 연극을 공부할지 영화를 공부할지 물어보셨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때는 연극이 너무 생소해서 학교에서는 연극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정했다. 4개의 워크숍에 참여해야 복수전공이 되는데, 결국 이것 때문에 한 학기를 더 다녔다. 워크숍에서는 계속 스태프만 했다. 배우는 무서웠고 내가 할 일이 아닌 줄 알았다. 졸업한 후에도 컴퓨터그래픽 전공이 생소하고 장애도 있다 보니 갈 곳이 없었다. 게다가 IMF 직후라 일하던 사람들도 명예퇴직이니 해서 일자리를 잃을 때였다. 일산에 있는 장애인직업학교에 1년 다녔다. 과정이 끝났지만 그 분야로 취업할 곳은 없었다. 복지관 보조교사도 하고, 동사무소에서 행정 서포터즈로도 일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동생이 장애인 배우를 뽑는다는 광고를 봤다고 가보지 않겠냐고 했다. 그때 찾아간 곳이 장애인극단 휠이다. 2006년이다.

20년 전 이야기인데, 지금도 여전한 청년 구직활동의 어려움을 보는 것 같다. 굉장히 절박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숫기도 없고 무대에 서는 것조차 무서워했다. 근데 발등에 불이 딱 떨어지니까 다 하게 되더라. 그냥 뭐든지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면서 배우가 된 것 같다. 윤정환 연출과 <시선>이라는 작품을 하면서 처음 배역을 맡았다. 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하는 장애가 있는 노부부의 이야기이고 죽음을 앞둔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문구점을 오가는 다양한 인물이 있는데, 나는 그중 하나인 경찰 역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윤정환 연출이 나를 할아버지 역에 캐스팅했다. 너무 큰 역이라 주저하는데 자신을 믿고 하라고 했다. 막상 공연을 하고 나니 의외로 그 역할이 주목을 받았다. 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느리고 지금보다 언어장애도 심했다. 내가 학교생활 말고는 사회생활이란 걸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모습들이 순수하게 보였던 것 같다.

배우는 배우다. 자신의 조건을 캐릭터의 사랑스러움으로 만들어낸 것 아닌가. 프로필을 보니 <빈방 있습니까>의 덕구 역도 잘했을 것 같다. 크리스마스 성극을 연습하는데, 동방박사들이 방을 구하면 “빈방 없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빈방 있습니다”라고 답해서 연극을 망치는 그런 역할이다. 연극이 끝나고 혼자 기도하는 덕구의 모습이 아름다운 연극이다.

정신없이 해서 내가 뭘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극단에 선배가 많았는데 후배인 내가 주연을 맡았다. 대사 하나하나 엄청 신경 쓰면서 했다. 잘못하면 선배들이 그게 아니라고 지적하고. 근데 이 작품으로 박수를 많이 받았다. 작가님이 오셔서 잘한다고 말해주셨다.

자신이 맡았던 역할 중에 제일 잘한 혹은 제일 사랑스러운 역할을 꼽는다면?

그런 역할이 있다면 나는 지금 훌륭한 배우일 것이다. 나는 내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언어장애의 경우에는 정말 혹독하게 훈련했다. 비장애인 배우들도 발음훈련을 계속한다고 하더라. 연극 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고, 언어장애도 많이 교정되었다. 자기가 잘했다고 할 정도는 되어야 잘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주변 동료 중에 잘하는 배우는 누가 있나.

우리 극단에 있는 이승규 배우도 잘하고, 지금은 극단 다빈나오에 있는 신강수 배우, 황철호 배우도 잘한다. 극단 애인의 백우람, 하지성, 강희철 배우도 좋다. 극단 산, 극단 애인, 극단 휠이 협업했던 <제물포별곡>이라는 작품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번안한 건데, 거기서 백우람 배우가 일본 상인 역을 맡았다. 백우람 배우는 언어는 좀 약하지만 캐릭터를 잘 만든다. 정말 강렬하다. 나는 백우람 배우보다 언어는 정확한데, 캐릭터를 만드는 건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집집: 하우스 소나타>를 보면, 비록 짧은 장면이지만, 호종민 배우도 강렬한 캐릭터를 만든다.

장애인 연기를 해야 하나, 호종민이 하니까 그냥 장애인으로 보이는 건가 고민을 많이 했다. 연출에게 물어봤는데, 장애인을 그리라는 것이 아니라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소외계층의 모습이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장애인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장애를 입혀서 캐릭터를 만들었다.

공연을 보면서 장애인 역할이라고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임대아파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연극의 주인공처럼 악착같이 살아서 상승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고 실의에 빠진 사람도 있고 그런 다양한 모습의 하나로 다가왔다. (호종민: 그게 작가와 연출의 의도다.) 그런데 의도와 그것이 무대 위에서 구현되는 것은 다르다. 무대 위에서 창조해내야 하는 배우로서 더 찾고 노력했던 점은 무엇인가.

제 파트너였던 이선주 배우가 많이 도와주셨다. 어떻게 할지 고민을 많이 하니까 그냥 하라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하셨다.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상대 배역과 함께 하는 거다. 이선주 배우는 경험이 많고, 그래서 내가 믿고 할 수 있었다.

극단 애인과의 <삼인삼색>이나 앞서 이야기한 <제물포별곡> 등 극단 밖의 작업도 있었지만 <집집: 하우스 소나타>는 외부 작업일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배우 스태프로 꾸려진 프로덕션에 유일한 장애인 창작자였다.

처음엔 울고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비장애인이랑 같이 다녔는데 대학교는 장애인 특례가 있는 학교여서 장애인 동료가 많았다. 졸업 후에는 극단 활동을 하다 보니 비장애인과 많이 안 어울렸던 거다. 처음엔 비장애인 학교 다닐 때가 떠올랐는데, 하루 이틀 계속 만나다 보니 낯선 게 없어졌다. 같이 작업하는 게 좋았다. 처음에는 어렵고 실수하면 어쩌나 그랬는데, 그냥 봐주시고 장난도 같이 하고 그래서 편안했다. 연습할 때 막 웃기고 재미있었다.

만드는 과정은 어땠나. 극단 휠과 많이 다른가.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같다. 근데 처음 시작할 때 좀 다른 점이 있다. 극단 휠은 장애인 배우가 대부분이다. 장애인이라고 묶어서 부르지만, 장애마다 특징이 있다. 시각장애, 뇌병변장애, 지체장애 등이 다 다르다. 자기와 다른 장애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다른 배우가 가진 장애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이 있다. 그리고 장애인극단에서 작업을 하면 비장애인 배우들도 참여하는데, 이번처럼 비장애인 극단에 장애인 배우가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 그래서 어려운 점도 있었다. 장애인극단에 참여하는 비장애인 배우들은 장애에 대해서 익숙하달까. 아마 이번 작업에서는 장애인 배우와 처음 작업하는 분이 많았을 것이다. 내가 낯설어했던 것처럼 그분들도 낯선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극단 활동만이 아니라 개인 창작작업도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 계기가 있었나.

글을 쓴 건 신강수 배우를 만나면서부터다. 처음 극단 활동을 시작했을 때 연출님에게 많이 혼났다. 장애도 심한데 연습도 열심히 안 한다고 하고. 당시에는 배우가 내 일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극단 활동을 하면서 다른 분야로 옮겨가려고 취업 공부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가 신강수 배우를 만났다. 우리 극단에 조연출로 들어왔다가 배우도 했다. 나이로는 신강수 배우가 동생인데, 잘 못하는데도 잘한다고 맨날 칭찬해주고, 이런저런 것들을 가르쳐줬다. 대본 보는 것도 가르쳐주고, 동화 소설 시 수필 쓰는 것도 가르쳐주었다. 신강수 배우가 2012년에 극단 다빈나오로 가고 나니, 극단에서 단장님 빼고는 내가 경력이 가장 오래되었다. 그때 부랴부랴 잡은 게 펜이었던 같다. 연기는 못하니까 연기로 극단을 이끌 수는 없고, 그래서 장애인들의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희곡도 쓰고 동화도 쓰고 수필도 쓰고 시도 쓰고 다 썼다. 2015년에 희곡과 시가 당선되었다. 지금은 신춘문예에 도전 중이다. 장애인의 시선에 갇히지 않으려고 한다. 장애인이 이만큼 썼네 하는 편견을 깨고 싶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모두에게 좋은 작품을 쓰고 싶고,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계속할 수 있나.

전공이기도 하고, 활동하면서 상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가족들도 지지해준다. 또 나만의 목표가 있으니까 공부도 계속하고 공모전에도 많이 참여한다. 아직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만두라는 소리는 듣지 않으니까 그런 스트레스는 적다.

나만의 목표라고 했는데, 그 목표가 무엇인가

지금은 신춘문예 당선이 목표다.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도 타고 싶다. 연출을 배우고 싶어서 대학원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고. 시간이 막 휙휙 지나간다. 시간이 아깝다.

마지막 질문이다. 한 좌담에서 사람을 걱정하고 사람을 생각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조금 더 설명해달라.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생각하고 이루어가는 존재인지 그런 걸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목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지금 배우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 꿈이 남아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게 연기를 잘하진 못하지만 남을 배려해주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건 자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장애인 배우 비장애인 배우 이런 말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냥 배우다. 배우인데 장애가 있는. 앞으로 더 노력할 거다.

호종민

호종민

중부대학교 컴퓨터 그래픽과 연극영화를 복수 전공하였다.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소속 배우이며, 지필문학 48기 시인이자 한국문학예술 희곡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제물포별곡>(2015) <3인 3색 이야기>(2016) <집집 : 하우스 소나타>(2021)에 출연했다.

김소연

김소연

연극평론가. <문화정책리뷰> 편집장. 공연보고 글을 쓴다. 글 쓰는 것 외에 관객과 창작자가 만나는 다양한 방식을 궁리하고 실행한다. <삼인삼색 연출노트> <극작가리서치워크숍> 등을 기획했다.
kdoonga@naver.com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hanmail.net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영상 제공. 극단 애인, 극단 해인,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2021년 12월 (26호)

상세내용

인터뷰

올가을 무대의 화제를 꼽으라면, 단연 백우람, 하지성, 호종민 배우의 무대다. 백우람 배우는 국립극단 <로드킬 인 더 씨어터>(구자혜 작 연출), 하지성 배우는 서울시극단 <천만 개의 도시>(전성현 작, 박해성 연출), 호종민 배우는 극단 해인 <집집 : 하우스 소나타>(한현주 작, 이양구 연출)의 무대에 섰다. 이들은 극단 애인, 극단 휠 등 장애인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인데, 그동안 함께 활동해온 극단이 아닌 비장애인 창작자들이 대부분인 새로운 프로덕션에 참여해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국공립극장 프로그램으로는 극단 다빈나오의 소리극 <옥이>(이보람 작, 김지원 연출)도 있었다. 소리극 <옥이>는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2021~2022 프로그램으로 하늘극장에서 공연되었다. 그동안 공연계의 관심이 장애인 관객의 접근성에 대한 것이었다면, 올가을 무대는 장애인 창작자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갑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지 않은 것은 아쉽다.)

물론 최근 공연예술계의 관심이 단지 관객의 접근성에만 한정되었던 것은 아니고 장애인극단, 장애인 창작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왔다. 작품의 성과도 적지 않아서 극단 애인, 0set프로젝트, 극단 다빈나오 등의 작업이나 엘리펀트룸 등에서 장애·비장애 예술가가 함께하는 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꾸준한 관심의 확대가 국립극단, 국립극장, 서울시극단 등 공공극장의 작품 제작이나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 배우의 무대도 단지 기회의 확대나 다양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을 통해 작품이 시도하는 콘셉트나 재현을 풍부하고 두텁게 한다. 이들은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지우지 않지만, 그렇다고 장애인 정체성으로만 서지도 않는다. 그만큼 장애인 창작자에 대한 이해도 깊고, 또 창작자의 역량도 축적되어 온 것이다. 작품이 그리는 세계가 깊이 있고, 배우들은 무대 위의 창작자로서 그 깊이를 그려낸다.

이번에 만나는 호종민 배우는 이미 극단 휠의 주요 작품에서 주목받아왔던 배우이자, 시와 희곡 등으로 창작활동을 넓혀가고 있는 작가다. 특히 지난 9월에 공연한 <집집: 하우스 소나타>에서 호종민 배우는 단 한 장면에 출연했을 뿐인데도 씬 스틸러라 할 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임대아파트를 무대로 20년의 시간을 오가며 위태로운 삶을 그려가는 이 연극에서 그는 주인공들의 분주한 발걸음 사이 한 장면에서 아파트 벤치에 앉아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 장면은 채울 수 없는 텅 빈 허무이거나 바닥이 없는 절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호종민 배우는 그 한 장면에서 이름 붙일 수 없는 단단한 무엇을 내뱉는다. 채울 수도 비워지지도 않는, 물러설 수도 떠날 수도 잡을 수도 없는, 그가 뱉어낸 단단한 그것을 삶이라고 불러야 할까.

호종민 배우를 만나기 전, 그의 연기의 강렬함 때문이기도 하고 그의 폭넓은 활동 때문이기도 한데, 달뜬 창작열이랄까 창작자에게 가지는 어떤 통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델 듯한 뜨거움보다는 (연배보다 어려 보이는 그의 외모도 한몫하겠지만) 해맑음이 먼저 다가왔다. 그의 해맑음은 자신의 맡은 역할, 배우로서의 역할만이 아니라 극단 활동 등등 삶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성실함은 그저 묵묵히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것만이 아니라, 겸손함 속에서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쌓아가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무대 위의 그에게서 봤던 어떤 단단함은 무게에 눌리지 않는 그만의 삶의 질감이었던 것이다. 이제 중년의 문턱에 서 있지만 여전히 청년 같은 해맑음을 간직한 호종민 배우의 이야기를 전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연극을 전공했다고 하던데, 바로 연극에 입문하지는 않았다.

1학년 때부터 취업 걱정이 많았다.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했는데 취업에 도움이 될까 해서 연극영화를 복수전공으로 선택했다. 교수님과 상담을 하는데 연극을 공부할지 영화를 공부할지 물어보셨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때는 연극이 너무 생소해서 학교에서는 연극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정했다. 4개의 워크숍에 참여해야 복수전공이 되는데, 결국 이것 때문에 한 학기를 더 다녔다. 워크숍에서는 계속 스태프만 했다. 배우는 무서웠고 내가 할 일이 아닌 줄 알았다. 졸업한 후에도 컴퓨터그래픽 전공이 생소하고 장애도 있다 보니 갈 곳이 없었다. 게다가 IMF 직후라 일하던 사람들도 명예퇴직이니 해서 일자리를 잃을 때였다. 일산에 있는 장애인직업학교에 1년 다녔다. 과정이 끝났지만 그 분야로 취업할 곳은 없었다. 복지관 보조교사도 하고, 동사무소에서 행정 서포터즈로도 일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동생이 장애인 배우를 뽑는다는 광고를 봤다고 가보지 않겠냐고 했다. 그때 찾아간 곳이 장애인극단 휠이다. 2006년이다.

20년 전 이야기인데, 지금도 여전한 청년 구직활동의 어려움을 보는 것 같다. 굉장히 절박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숫기도 없고 무대에 서는 것조차 무서워했다. 근데 발등에 불이 딱 떨어지니까 다 하게 되더라. 그냥 뭐든지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면서 배우가 된 것 같다. 윤정환 연출과 <시선>이라는 작품을 하면서 처음 배역을 맡았다. 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하는 장애가 있는 노부부의 이야기이고 죽음을 앞둔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문구점을 오가는 다양한 인물이 있는데, 나는 그중 하나인 경찰 역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윤정환 연출이 나를 할아버지 역에 캐스팅했다. 너무 큰 역이라 주저하는데 자신을 믿고 하라고 했다. 막상 공연을 하고 나니 의외로 그 역할이 주목을 받았다. 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느리고 지금보다 언어장애도 심했다. 내가 학교생활 말고는 사회생활이란 걸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모습들이 순수하게 보였던 것 같다.

배우는 배우다. 자신의 조건을 캐릭터의 사랑스러움으로 만들어낸 것 아닌가. 프로필을 보니 <빈방 있습니까>의 덕구 역도 잘했을 것 같다. 크리스마스 성극을 연습하는데, 동방박사들이 방을 구하면 “빈방 없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빈방 있습니다”라고 답해서 연극을 망치는 그런 역할이다. 연극이 끝나고 혼자 기도하는 덕구의 모습이 아름다운 연극이다.

정신없이 해서 내가 뭘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극단에 선배가 많았는데 후배인 내가 주연을 맡았다. 대사 하나하나 엄청 신경 쓰면서 했다. 잘못하면 선배들이 그게 아니라고 지적하고. 근데 이 작품으로 박수를 많이 받았다. 작가님이 오셔서 잘한다고 말해주셨다.

자신이 맡았던 역할 중에 제일 잘한 혹은 제일 사랑스러운 역할을 꼽는다면?

그런 역할이 있다면 나는 지금 훌륭한 배우일 것이다. 나는 내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언어장애의 경우에는 정말 혹독하게 훈련했다. 비장애인 배우들도 발음훈련을 계속한다고 하더라. 연극 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고, 언어장애도 많이 교정되었다. 자기가 잘했다고 할 정도는 되어야 잘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주변 동료 중에 잘하는 배우는 누가 있나.

우리 극단에 있는 이승규 배우도 잘하고, 지금은 극단 다빈나오에 있는 신강수 배우, 황철호 배우도 잘한다. 극단 애인의 백우람, 하지성, 강희철 배우도 좋다. 극단 산, 극단 애인, 극단 휠이 협업했던 <제물포별곡>이라는 작품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번안한 건데, 거기서 백우람 배우가 일본 상인 역을 맡았다. 백우람 배우는 언어는 좀 약하지만 캐릭터를 잘 만든다. 정말 강렬하다. 나는 백우람 배우보다 언어는 정확한데, 캐릭터를 만드는 건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집집: 하우스 소나타>를 보면, 비록 짧은 장면이지만, 호종민 배우도 강렬한 캐릭터를 만든다.

장애인 연기를 해야 하나, 호종민이 하니까 그냥 장애인으로 보이는 건가 고민을 많이 했다. 연출에게 물어봤는데, 장애인을 그리라는 것이 아니라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소외계층의 모습이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장애인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장애를 입혀서 캐릭터를 만들었다.

공연을 보면서 장애인 역할이라고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임대아파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연극의 주인공처럼 악착같이 살아서 상승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고 실의에 빠진 사람도 있고 그런 다양한 모습의 하나로 다가왔다. (호종민: 그게 작가와 연출의 의도다.) 그런데 의도와 그것이 무대 위에서 구현되는 것은 다르다. 무대 위에서 창조해내야 하는 배우로서 더 찾고 노력했던 점은 무엇인가.

제 파트너였던 이선주 배우가 많이 도와주셨다. 어떻게 할지 고민을 많이 하니까 그냥 하라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하셨다.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상대 배역과 함께 하는 거다. 이선주 배우는 경험이 많고, 그래서 내가 믿고 할 수 있었다.

극단 애인과의 <삼인삼색>이나 앞서 이야기한 <제물포별곡> 등 극단 밖의 작업도 있었지만 <집집: 하우스 소나타>는 외부 작업일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배우 스태프로 꾸려진 프로덕션에 유일한 장애인 창작자였다.

처음엔 울고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비장애인이랑 같이 다녔는데 대학교는 장애인 특례가 있는 학교여서 장애인 동료가 많았다. 졸업 후에는 극단 활동을 하다 보니 비장애인과 많이 안 어울렸던 거다. 처음엔 비장애인 학교 다닐 때가 떠올랐는데, 하루 이틀 계속 만나다 보니 낯선 게 없어졌다. 같이 작업하는 게 좋았다. 처음에는 어렵고 실수하면 어쩌나 그랬는데, 그냥 봐주시고 장난도 같이 하고 그래서 편안했다. 연습할 때 막 웃기고 재미있었다.

만드는 과정은 어땠나. 극단 휠과 많이 다른가.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같다. 근데 처음 시작할 때 좀 다른 점이 있다. 극단 휠은 장애인 배우가 대부분이다. 장애인이라고 묶어서 부르지만, 장애마다 특징이 있다. 시각장애, 뇌병변장애, 지체장애 등이 다 다르다. 자기와 다른 장애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다른 배우가 가진 장애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이 있다. 그리고 장애인극단에서 작업을 하면 비장애인 배우들도 참여하는데, 이번처럼 비장애인 극단에 장애인 배우가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 그래서 어려운 점도 있었다. 장애인극단에 참여하는 비장애인 배우들은 장애에 대해서 익숙하달까. 아마 이번 작업에서는 장애인 배우와 처음 작업하는 분이 많았을 것이다. 내가 낯설어했던 것처럼 그분들도 낯선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극단 활동만이 아니라 개인 창작작업도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 계기가 있었나.

글을 쓴 건 신강수 배우를 만나면서부터다. 처음 극단 활동을 시작했을 때 연출님에게 많이 혼났다. 장애도 심한데 연습도 열심히 안 한다고 하고. 당시에는 배우가 내 일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극단 활동을 하면서 다른 분야로 옮겨가려고 취업 공부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가 신강수 배우를 만났다. 우리 극단에 조연출로 들어왔다가 배우도 했다. 나이로는 신강수 배우가 동생인데, 잘 못하는데도 잘한다고 맨날 칭찬해주고, 이런저런 것들을 가르쳐줬다. 대본 보는 것도 가르쳐주고, 동화 소설 시 수필 쓰는 것도 가르쳐주었다. 신강수 배우가 2012년에 극단 다빈나오로 가고 나니, 극단에서 단장님 빼고는 내가 경력이 가장 오래되었다. 그때 부랴부랴 잡은 게 펜이었던 같다. 연기는 못하니까 연기로 극단을 이끌 수는 없고, 그래서 장애인들의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희곡도 쓰고 동화도 쓰고 수필도 쓰고 시도 쓰고 다 썼다. 2015년에 희곡과 시가 당선되었다. 지금은 신춘문예에 도전 중이다. 장애인의 시선에 갇히지 않으려고 한다. 장애인이 이만큼 썼네 하는 편견을 깨고 싶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모두에게 좋은 작품을 쓰고 싶고,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계속할 수 있나.

전공이기도 하고, 활동하면서 상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가족들도 지지해준다. 또 나만의 목표가 있으니까 공부도 계속하고 공모전에도 많이 참여한다. 아직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만두라는 소리는 듣지 않으니까 그런 스트레스는 적다.

나만의 목표라고 했는데, 그 목표가 무엇인가

지금은 신춘문예 당선이 목표다.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도 타고 싶다. 연출을 배우고 싶어서 대학원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고. 시간이 막 휙휙 지나간다. 시간이 아깝다.

마지막 질문이다. 한 좌담에서 사람을 걱정하고 사람을 생각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조금 더 설명해달라.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생각하고 이루어가는 존재인지 그런 걸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목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지금 배우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 꿈이 남아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게 연기를 잘하진 못하지만 남을 배려해주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건 자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장애인 배우 비장애인 배우 이런 말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냥 배우다. 배우인데 장애가 있는. 앞으로 더 노력할 거다.

호종민

호종민

중부대학교 컴퓨터 그래픽과 연극영화를 복수 전공하였다.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소속 배우이며, 지필문학 48기 시인이자 한국문학예술 희곡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제물포별곡>(2015) <3인 3색 이야기>(2016) <집집 : 하우스 소나타>(2021)에 출연했다.

김소연

김소연

연극평론가. <문화정책리뷰> 편집장. 공연보고 글을 쓴다. 글 쓰는 것 외에 관객과 창작자가 만나는 다양한 방식을 궁리하고 실행한다. <삼인삼색 연출노트> <극작가리서치워크숍> 등을 기획했다.
kdoonga@naver.com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hanmail.net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영상 제공. 극단 애인, 극단 해인,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2021년 12월 (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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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2 10: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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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종민 배우님이 출연한 <집집: 하우스 소나타> 월간 [한국연극] 선정한 '2021 공연 베스트 7' 선정 ~~~ 축하드립니다. 2022년에도 무대에서의 활약 기대합니다. ~~

2021-11-25 18: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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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성일 선생님을 "전설의배우" 모든 배우지망생,남자의 우상이라 합니다....우리 시대에는...약간 느끼한 남성,잘난남성,여성,관객의우상...내게 호종민배우는 그분과 같습니다...다양한 인물,주인공 이였던 호종민 배우도 이제는 주연을 받치는 명품조연역활을 하더라구요...아직을 그길을 가고 있는 그는 마당극패"우금치"의 어머니를 업은 아들,뮤지컬,영화 "지붕위의 바위올린"의 가족에 헌신하는 마차꾼 아버지 와 같은 연기를 담았습니다...얼마전"약고기"의 오서방....지마의로망 배우 호종민만세,,,나,술 안마셨다구요...장애인인식개선으뜸멘트-공연대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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