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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의 세계관

이음광장 장애인의 삶과 장애가 있는 삶

  • 김혜일 접근성 전문가
  • 등록일 2021-12-30
  • 조회수1102
  • 확대 기기를 사용하여 독서를 하고 있는 모습

내가 경험하고 있는 삶은 장애가 있는 삶인가?
일반적으로 장애는 신체나 정신의 기능에 제약이 있는 것을 말한다. 장애를 가진 경우 기능 상실로 인해 개인의 일상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장애의 핵심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서 장애가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장애가 있는 삶으로 만드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의 수가 적다는 데 있다. 대부분은 신체나 정신의 장애 없이 살아가고 있고, 바로 여기에서 장애가 있는 삶이 시작된다.

이는 단순히 장애를 가진 사람 수가 적은 데서 발생하는 사회 현상은 아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 문화, 사회규범, 제도 등은 모두 장애가 없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설계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상황이 고려되지 않아 삶의 경험에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장애가 있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여건인 것이다. 영화를 통해 장애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자.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공포, 재난 장르로 분류되지만, 장애를 중심으로 바라보면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이 영화에서는 소리로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소리에 민감한 외계생명체가 작은 소리라도 나면 그 사람을 공격해서 목숨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영화 전체에 흐르는 가장 중요한 생존 법칙은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 것이다. 소리를 사용할 수 없다 보니, 소리를 활용한 소통에 어려움을 겪지 않던 사람들, 즉 장애가 없던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면서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게 되었다. 이것은 청각장애인의 장애가 있는 삶이었으며, 뉴노멀의 세상을 살게 된 것이다. 목소리를 낼 수 없어 수화나 간단한 제스처를 사용하고, 비상상황을 알리기 위해 비상벨 대신 붉은 조명을 사용하기도 한다. 신체적인 장애가 아니라 외계생명체의 공격이라는 상황으로 인해 나타난 변화지만 이제 이 세상의 기본은 소리가 없는 세상이다.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영화 속 모든 사람의 생활방식이 되었다. 청각장애가 있는 주인공은 이제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더 유리한 모습을 보이며 활약한다.

이 영화 속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 그리고 장애가 있는 삶은 무엇일까? 사회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성, 그리고 그와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 절대다수와는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 바로 장애가 있는 삶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장애란, 대다수의 사람은 고려했지만 신체 또는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아서 나타나는 사회 현상인 것이다.

장애인 사용자가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 같은 IT(정보기술) 서비스를 이용할 때 어려움을 겪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장애가 있는 사용자도 IT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하지 않은 데서 오는 어려움이다. 장애가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IT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접근성 관련 기술을 적용한다면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IT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IT 서비스와 접근성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또 다른 영화를 살펴보자.

마블 시리즈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등장인물 중 ‘워 머신’이 있다. 추락으로 인해 다리를 다쳤지만, 하반신 마비를 보완할 수 있는 보행 보조기술과 슈트를 활용해 강력한 화력을 가진 히어로가 되어 화끈한 액션을 선보인다. 극 중 추락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는 더는 마블 히어로로 활약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기에 충분했지만, 하반신 마비를 보완할 수 있는 보조기술(Assistive Technology)과 슈트를 활용함으로써 이전과 같이 큰 활약을 보여줬다. 워 머신이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다시 히어로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IT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장애는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도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IT 서비스를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안됐다고 불쌍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역경이 있지만 스스로 노력해서 결국 장애가 없는 삶을 이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처럼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야만 IT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면 그 현실은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접근성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 IT 서비스에서 만큼은 장애가 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치트키다. 영화 속 캐릭터들을 불쌍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처럼, 주변에서 만나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장애가 없는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세상을 다 함께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영화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현실 세계가 더 영화같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포스터 이미지

  •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포스터 이미지

김혜일

김혜일 

접근성 전문가. 시각장애인으로서 다수의 웹 접근성 관련 사용자 평가를 해왔다. 국내에서 점유율이 가장 높은 화면 낭독기 개발기업의 기술자문을 하였으며, 현재 다양한 웹사이트, 모바일 앱 등의 접근성 평가와 자문을 하고 있다. 『웹 접근성과 품질인증』(2013)을 공동집필 했다.
haeppa@gmail.com

썸네일 사진출처. 필자 유튜브 바로가기(링크)

김혜일

김혜일 

접근성 전문가. 시각장애인으로서 다수의 웹 접근성 관련 사용자 평가를 해왔다. 국내에서 점유율이 가장 높은 화면 낭독기 개발기업의 기술자문을 하였으며, 현재 다양한 웹사이트, 모바일 앱 등의 접근성 평가와 자문을 하고 있다. 『웹 접근성과 품질인증』(2013)을 공동집필 했다.
haeppa@gmail.com

상세내용

  • 확대 기기를 사용하여 독서를 하고 있는 모습

내가 경험하고 있는 삶은 장애가 있는 삶인가?
일반적으로 장애는 신체나 정신의 기능에 제약이 있는 것을 말한다. 장애를 가진 경우 기능 상실로 인해 개인의 일상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장애의 핵심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서 장애가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장애가 있는 삶으로 만드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의 수가 적다는 데 있다. 대부분은 신체나 정신의 장애 없이 살아가고 있고, 바로 여기에서 장애가 있는 삶이 시작된다.

이는 단순히 장애를 가진 사람 수가 적은 데서 발생하는 사회 현상은 아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 문화, 사회규범, 제도 등은 모두 장애가 없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설계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상황이 고려되지 않아 삶의 경험에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장애가 있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여건인 것이다. 영화를 통해 장애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자.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공포, 재난 장르로 분류되지만, 장애를 중심으로 바라보면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이 영화에서는 소리로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소리에 민감한 외계생명체가 작은 소리라도 나면 그 사람을 공격해서 목숨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영화 전체에 흐르는 가장 중요한 생존 법칙은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 것이다. 소리를 사용할 수 없다 보니, 소리를 활용한 소통에 어려움을 겪지 않던 사람들, 즉 장애가 없던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면서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게 되었다. 이것은 청각장애인의 장애가 있는 삶이었으며, 뉴노멀의 세상을 살게 된 것이다. 목소리를 낼 수 없어 수화나 간단한 제스처를 사용하고, 비상상황을 알리기 위해 비상벨 대신 붉은 조명을 사용하기도 한다. 신체적인 장애가 아니라 외계생명체의 공격이라는 상황으로 인해 나타난 변화지만 이제 이 세상의 기본은 소리가 없는 세상이다.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영화 속 모든 사람의 생활방식이 되었다. 청각장애가 있는 주인공은 이제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더 유리한 모습을 보이며 활약한다.

이 영화 속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 그리고 장애가 있는 삶은 무엇일까? 사회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성, 그리고 그와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 절대다수와는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 바로 장애가 있는 삶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장애란, 대다수의 사람은 고려했지만 신체 또는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아서 나타나는 사회 현상인 것이다.

장애인 사용자가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 같은 IT(정보기술) 서비스를 이용할 때 어려움을 겪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장애가 있는 사용자도 IT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하지 않은 데서 오는 어려움이다. 장애가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IT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접근성 관련 기술을 적용한다면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IT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IT 서비스와 접근성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또 다른 영화를 살펴보자.

마블 시리즈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등장인물 중 ‘워 머신’이 있다. 추락으로 인해 다리를 다쳤지만, 하반신 마비를 보완할 수 있는 보행 보조기술과 슈트를 활용해 강력한 화력을 가진 히어로가 되어 화끈한 액션을 선보인다. 극 중 추락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는 더는 마블 히어로로 활약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기에 충분했지만, 하반신 마비를 보완할 수 있는 보조기술(Assistive Technology)과 슈트를 활용함으로써 이전과 같이 큰 활약을 보여줬다. 워 머신이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다시 히어로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IT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장애는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도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IT 서비스를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안됐다고 불쌍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역경이 있지만 스스로 노력해서 결국 장애가 없는 삶을 이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처럼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야만 IT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면 그 현실은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접근성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 IT 서비스에서 만큼은 장애가 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치트키다. 영화 속 캐릭터들을 불쌍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처럼, 주변에서 만나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장애가 없는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세상을 다 함께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영화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현실 세계가 더 영화같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포스터 이미지

  •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포스터 이미지

김혜일

김혜일 

접근성 전문가. 시각장애인으로서 다수의 웹 접근성 관련 사용자 평가를 해왔다. 국내에서 점유율이 가장 높은 화면 낭독기 개발기업의 기술자문을 하였으며, 현재 다양한 웹사이트, 모바일 앱 등의 접근성 평가와 자문을 하고 있다. 『웹 접근성과 품질인증』(2013)을 공동집필 했다.
haeppa@gmail.com

썸네일 사진출처. 필자 유튜브 바로가기(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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