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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예술과 리더십

이슈 결핍, 부재, 결여의 의미를 해명하는 힘

  • 김원영 변호사
  • 등록일 2018-12-26
  • 조회수309

1. 대걸레질부터 시작한 리더

올해 초 <씽크 코리아(Sync Korea) : 장애 예술인 역량강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영국의 예술가 사라 픽솔(Sarah Pickthall)은 리더십의 의미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직을 주도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동기를 부여하며 팀을 이끄는 역량이 아니라, 개개인 안에 숨어있는 고유한 경험, 이야기, 가치관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메타포로 표현하는 능력임을 강조했다. 장애 예술가들의 ‘리더십’을 향상하는 프로그램이 조직 관리나 커뮤니케이션 훈련보다 먼저 자신에 대한 고유한 서사(narrative)를 찾아내고 이를 표현하는데 초점을 두었다는 점은 인상 깊었다(반면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기르는 파트도 전체 프로그램에 제법 들어있었지만, 우리나라의 흔한 자기계발서가 소개하는 내용과 다를 바 없어서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다).

사실 장애 예술 현장에서 아직 주요한 리더는 비장애인 예술가나 예술경영자다. 제도권 예술교육을 받고, 여러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장애인의 수가 극히 적은 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중 소수의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상징적으로 활용해 예산을 받아내고 자기 명성을 높이는 데 쓰지만,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비장애인 예술가들은 장애인 팀원들이 “장애를 핑계 대지 않고” 열심히 훈련하고, 세상에서 소외되어 오랜 기간 갇혔던 마음을 열고 창작자로서 가능성을 용기 있게 펼치기를 희망한다. 발로 뛰어 예산을 따내고, 장애인 팀원의 휠체어를 밀고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며 그들은 분투한다.

이토록 분투하는 비장애인 리더들은 필연적으로 다음의 질문에 직면하는 것 같다. “지금 내 팀원인 저 장애 예술가가 역량을 더 키우지 못하는 것은, 그의 장애로 인한 본질적인 한계인가 아니면 게으르거나 재능이 없는 것인가.” 미대 입시를 위해 하루 12시간씩 그림만 그리고, 배우가 되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연기와 춤을 배우고 무대에서 대걸레질부터 시작한 장애인 예술가는 거의 없다. 대걸레질을 하며 연기를 배운 비장애인 예술가들은 자기 몸을 부끄럽다고 쭈뼛거리고, 툭하면 아프다고 말하고, 쉽게 지각하는, 지나치게 방어적인 성격을 보이는 장애인 팀원들을 보며 의심한다. “네 장애를 핑계 삼고 있는 거 아니니? 그걸 깨지 못하면서 어떻게 배우가 될래?”

2. 못하는 것을 말하기 대회

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엄격히 구별하는 접근에 대체로 반대한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는 부작용을 무릅쓰고 약간은 분리주의적 입장에 서고자 한다. 장애 예술가들은 비장애인 감독, 연출자, 단장, 단체장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장애, 몸상태, 예술,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충동을 표현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자기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가 무슨 작업을 해내거나 해내지 못할 때 이는 순식간에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 즉 장애를 지나치게 낭만화하거나, 숭고하거나 혹은 무능력한 것으로 단순화하는 인식의 오류로 돌진하기 쉽다.

장애인과 장애 예술을 다루는 해석론과 언어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그 탓에 우리를 설명하는 말은 단순하고 빈곤하기 짝이 없다. 좋은 창작물을 발표하는 데 성공했을 때 “장애를 극복했다” 따위의 말로 모든 작업이 해석된다는 점은 이제 모두 가진 문제의식이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 오히려 나는 좋은 창작 작업을 ‘못할 때’ 우리를 설명할 언어가 없음을 더 강조하고 싶다. 이를테면, 당신이 무대 위에서 휠체어 밑으로 내려와 절단되었거나 짧고 굽어진 다리를 그대로 내보이는 장면을 해내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비장애인) 연출은 당신에게 “장애 때문에 너무 방어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라거나, “장애를 부끄러워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몸을 부끄러워하면서 어떻게 배우가 되겠느냐고. 갈등이 생기면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경험이 부족해서 조직생활을 못한다” 그런데 당신은 스스로 휠체어 바닥에서 다리를 노출하지 못하는 이유를, 저와 다르게 설명할 방법이 있기는 한가?

장애인 예술가들이 자기 작업의 혹은 자기 팀의 리더가 된다는 말은 자기 경험의 고유한 언어를 캐내고 이를 표현하는 역량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스스로 예술과 장애를 분리시키기 원하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구별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하는 리더가 되고 싶더라도, 우선은 장애를 분석하는 언어를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언제나 ‘장애인’이라는 렌즈로 우리의 삶과 예술적 시도는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주도적으로 먼저 장애에 대해 말하는 편이 좋다. 특히 나는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하기를 연습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못하는 것, 결핍, 부재, 결여된 것의 의미를 찾고 이를 해명하는 역량이야 말로 장애 예술가에게 필요한 리더십이 아닐까.

<왜 못하는지 말하기 대회>를 개최한다면 어떨까? 왜 나는 다리를 보이지 못했나. 왜 당신은 더 정확한 발음을 내려 애쓰지 못하는가(애쓰지 않는가). 왜 당신은 스스로가 장애인임을 밝히는 일을 주저하는가. 왜 당신은 그렇게 자주 지각해서 연습시간을 맞추지 못하는가. 어떤 경우는 납득할 수 없는 변명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우리가 이 ‘못하는 것’을 기존의 언어가 아닌 우리만의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것에서부터 장애가 있는 예술가들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새로운 예술 생태계, 예술 장르, 문화적 유산이 시작될 것이다.

씽크 코리아 : 장애 예술인 역량강화 프로그램(2018.3.17.~3.21.)

김원영

김원영

김원영은 지체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탄다. 대학에서 법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장애 예술 조사연구 사업 등에 참여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했고 지금은 한 법무법인에 소속되어 일하면서, 대학원에서 학위논문을 준비한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펴냈다. 한겨레신문과 비마이너(Beminor.com)에 글을 쓴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페이스북 바로가기 링크
(프로필 사진 ⓒ 이지양)

2018년 12월 (2호)

상세내용

1. 대걸레질부터 시작한 리더

올해 초 <씽크 코리아(Sync Korea) : 장애 예술인 역량강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영국의 예술가 사라 픽솔(Sarah Pickthall)은 리더십의 의미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직을 주도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동기를 부여하며 팀을 이끄는 역량이 아니라, 개개인 안에 숨어있는 고유한 경험, 이야기, 가치관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메타포로 표현하는 능력임을 강조했다. 장애 예술가들의 ‘리더십’을 향상하는 프로그램이 조직 관리나 커뮤니케이션 훈련보다 먼저 자신에 대한 고유한 서사(narrative)를 찾아내고 이를 표현하는데 초점을 두었다는 점은 인상 깊었다(반면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기르는 파트도 전체 프로그램에 제법 들어있었지만, 우리나라의 흔한 자기계발서가 소개하는 내용과 다를 바 없어서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다).

사실 장애 예술 현장에서 아직 주요한 리더는 비장애인 예술가나 예술경영자다. 제도권 예술교육을 받고, 여러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장애인의 수가 극히 적은 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중 소수의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상징적으로 활용해 예산을 받아내고 자기 명성을 높이는 데 쓰지만,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비장애인 예술가들은 장애인 팀원들이 “장애를 핑계 대지 않고” 열심히 훈련하고, 세상에서 소외되어 오랜 기간 갇혔던 마음을 열고 창작자로서 가능성을 용기 있게 펼치기를 희망한다. 발로 뛰어 예산을 따내고, 장애인 팀원의 휠체어를 밀고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며 그들은 분투한다.

이토록 분투하는 비장애인 리더들은 필연적으로 다음의 질문에 직면하는 것 같다. “지금 내 팀원인 저 장애 예술가가 역량을 더 키우지 못하는 것은, 그의 장애로 인한 본질적인 한계인가 아니면 게으르거나 재능이 없는 것인가.” 미대 입시를 위해 하루 12시간씩 그림만 그리고, 배우가 되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연기와 춤을 배우고 무대에서 대걸레질부터 시작한 장애인 예술가는 거의 없다. 대걸레질을 하며 연기를 배운 비장애인 예술가들은 자기 몸을 부끄럽다고 쭈뼛거리고, 툭하면 아프다고 말하고, 쉽게 지각하는, 지나치게 방어적인 성격을 보이는 장애인 팀원들을 보며 의심한다. “네 장애를 핑계 삼고 있는 거 아니니? 그걸 깨지 못하면서 어떻게 배우가 될래?”

2. 못하는 것을 말하기 대회

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엄격히 구별하는 접근에 대체로 반대한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는 부작용을 무릅쓰고 약간은 분리주의적 입장에 서고자 한다. 장애 예술가들은 비장애인 감독, 연출자, 단장, 단체장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장애, 몸상태, 예술,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충동을 표현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자기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가 무슨 작업을 해내거나 해내지 못할 때 이는 순식간에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 즉 장애를 지나치게 낭만화하거나, 숭고하거나 혹은 무능력한 것으로 단순화하는 인식의 오류로 돌진하기 쉽다.

장애인과 장애 예술을 다루는 해석론과 언어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그 탓에 우리를 설명하는 말은 단순하고 빈곤하기 짝이 없다. 좋은 창작물을 발표하는 데 성공했을 때 “장애를 극복했다” 따위의 말로 모든 작업이 해석된다는 점은 이제 모두 가진 문제의식이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 오히려 나는 좋은 창작 작업을 ‘못할 때’ 우리를 설명할 언어가 없음을 더 강조하고 싶다. 이를테면, 당신이 무대 위에서 휠체어 밑으로 내려와 절단되었거나 짧고 굽어진 다리를 그대로 내보이는 장면을 해내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비장애인) 연출은 당신에게 “장애 때문에 너무 방어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라거나, “장애를 부끄러워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몸을 부끄러워하면서 어떻게 배우가 되겠느냐고. 갈등이 생기면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경험이 부족해서 조직생활을 못한다” 그런데 당신은 스스로 휠체어 바닥에서 다리를 노출하지 못하는 이유를, 저와 다르게 설명할 방법이 있기는 한가?

장애인 예술가들이 자기 작업의 혹은 자기 팀의 리더가 된다는 말은 자기 경험의 고유한 언어를 캐내고 이를 표현하는 역량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스스로 예술과 장애를 분리시키기 원하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구별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하는 리더가 되고 싶더라도, 우선은 장애를 분석하는 언어를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언제나 ‘장애인’이라는 렌즈로 우리의 삶과 예술적 시도는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주도적으로 먼저 장애에 대해 말하는 편이 좋다. 특히 나는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하기를 연습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못하는 것, 결핍, 부재, 결여된 것의 의미를 찾고 이를 해명하는 역량이야 말로 장애 예술가에게 필요한 리더십이 아닐까.

<왜 못하는지 말하기 대회>를 개최한다면 어떨까? 왜 나는 다리를 보이지 못했나. 왜 당신은 더 정확한 발음을 내려 애쓰지 못하는가(애쓰지 않는가). 왜 당신은 스스로가 장애인임을 밝히는 일을 주저하는가. 왜 당신은 그렇게 자주 지각해서 연습시간을 맞추지 못하는가. 어떤 경우는 납득할 수 없는 변명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우리가 이 ‘못하는 것’을 기존의 언어가 아닌 우리만의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것에서부터 장애가 있는 예술가들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새로운 예술 생태계, 예술 장르, 문화적 유산이 시작될 것이다.

씽크 코리아 : 장애 예술인 역량강화 프로그램(2018.3.17.~3.21.)

김원영

김원영

김원영은 지체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탄다. 대학에서 법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장애 예술 조사연구 사업 등에 참여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했고 지금은 한 법무법인에 소속되어 일하면서, 대학원에서 학위논문을 준비한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펴냈다. 한겨레신문과 비마이너(Beminor.com)에 글을 쓴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페이스북 바로가기 링크
(프로필 사진 ⓒ 이지양)

2018년 12월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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