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웹진 이음

창작공감:연출 <커뮤니티 대소동>

리뷰 “나의 세계에 너를 초대할게, 그곳에서 함께 춤추자”

  • 이진아 연극평론가
  • 등록일 2022-05-11
  • 조회수703

리뷰

“기쁨과 혼란 속에서 새로운 우주를 알아가 보고 싶은 끌림을 느낄 수 있기를.” 연출가 이진엽은 우리를 극장으로 초대하며 이런 희망의 말을 보탰다. 그는 배우와 관객이 다 함께 춤추는 순간을 통해 이것이 이루어지기를 꿈꿨던 것 같다. 우리는 춤췄다. 누구와 함께하는지, 우리의 동작이 어떤 대형을 이루는지, 내가 다른 이들과 같은 동선으로 움직이는지를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며 춤췄다. 대신 옆 사람의 희미한 체온과 가르릉거리며 배어 나오는 웃음소리와 때때로 내 몸에 닿는 둔탁하고 낯선 몸뚱이를 느끼며 춤췄다.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목소리는 우리에게 동작과 방향을 지시했지만, 잠시 집중하고 내내 의심하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제 맘대로 몸뚱이를 움직여 춤을 추었다. ‘보는’ 공연이 아니고 ‘하는’ 공연이라는 연극의 주장이 이 순간만큼은 사실이었다.

‘우주’라고 불린 공간

<커뮤니티 대소동>은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연출]의 결과물이다. 2021년 11월 ‘과정 공유’의 개념으로 관객과 잠시 만났고, 올봄 본 공연이 올랐다. 시각장애 예술가들과 비장애 예술가들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 1년여의 짧지 않은 작업시간을 창작자들은 공연 연습에만 할애하지 않았다. 연구와 토론을 통해 생각을 벼렸고, 작업을 위한 특강과 워크숍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던졌을 질문과 고민이 이 작품에 담겼을 터인데, 다른 세계, 다른 감각, 다른 언어를 가진 이들과의 ‘만남’이란 아이디어가 그렇게 그 중심에 놓이게 된 듯하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이들이 ‘최대한 간극을 좁혀’ 만나기 위해 ‘우주’라는 공간을 상상했을 터이다.

이 공연을 통해 만난 ‘빛이 없는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낯설듯, 이 공연을 통해 만난 ‘극장’이란 공간도 누군가에겐 낯설었을 것이다. 손으로 몸을 더듬으며 타인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사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처음 맞이한 상황이었듯, 공간에서 마음껏 팔다리를 흔들며 춤을 추는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조금씩 낯선 조건에서 다른 이들을 만났다. ‘만남’이 중요한 만큼 공연은 극장에 모인 서로를 소개한다. 연극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관객은 헤드폰을 통해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인터뷰를 듣게 되는데, 자신의 삶과 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준다. 극이 시작되면 배우뿐 아니라 이곳에 모인 관객들도 소개된다. 그들은 입장 시 자신이 불리고 싶은 이름과 우주에서 들렸으면 하는 소리를 녹음했다. 저마다의 독특한 이름과 마구 지어낸 엉뚱한 인사말들을 듣자니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설핏한 관심이 인다.

공연 중 관객은 두 번 정도 ‘소리 상자’에 자신의 말을 녹음한다. 해당 순간의 마음, 생각, 감정이 담기게 된다. 공연 끝에 우리는 그 마음의 소리를 다 함께 듣는다. 이런저런 단어들 사이에서 ‘우주’ ‘유영’ ‘편안함’ ‘해방’ ‘자유’와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들린다. ‘이해’니 ‘체험’이니 하는 단어도 들린다. ‘연결되었다’ ‘함께 한다’와 같은 표현도 들린다. 듣고 있자니 홀로 생각이 복잡해진다.

극장에서의 경험은 환상일까 연습일까

공연을 보기 위해 입장을 시작하면, 우리는 통과의례처럼 몇 개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닉네임을 만들고 우주에서 울렸으면 하는 이상한 언어로 인사말을 녹음하고 안대를 하여 시각을 차단한다. 이후 성별도 다르고 목소리의 높낮이도 다르며 팔의 굵기와 단단함도 다른 세 명의 안내자를 만난다. 처음 만난 이의 팔에 매달리듯 의지하여 경사로를 올라 건물 안 벤치에 가 앉는다. 다른 이가 다가와 가방과 신발을 가져가고 바닥과 발꿈치가 뚫린 양말을 신게 한 후 나를 극장 안의 또 다른 이에게 인도한다. 또 다른 이가 나를 무대로 데려가 무대 중심과 사방으로 난 길의 특징을 알려준다. 폭신하거나, 까칠하거나, 딱딱하거나, 복슬복슬한 길들을 이용하여 나의 좌석 찾는 법도 알려준다. 공연 중에는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와 손을 잡고 인사하기도 하고, 그의 발목에서부터 허벅지를 타고 목선을 지나 정수리를 만지며 몸을 탐험하기도 한다. 나의 몸도 내어준다. 체온과 습도와 근육과 냄새로 누군가를 만난다.

그런데 다른 감각으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춤추는 일을 경험하게 한 연극 <커뮤니티 대소동>은 나에게 오래된 기억 하나를 끄집어내게 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삼십 대 중후반의 남성 시각장애인이 소리 내어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서 있는 곳에서 멀지 않았다.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고, 딴에는 배려한답시고 “십 미터 정도, 그러니까 보통 걸음으로 스무 걸음 정도 걸어가셔서 좌측으로 꺾어지시면…”과 같은 상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내 말을 자르고 나의 한쪽 팔을 내어달라고 요구했다. 여름이었고 나의 옷은 너무 가벼웠으며, 그는 낯설고 크고 건장한 사내였다. 감추지 못한 나의 당황함이 그에게 전달될까 싶어 더 당황해버렸다. 항상 이런저런 조건이 달려있던 나의 환대와 위선으로 포장된 친절함이 한 번에 민얼굴을 드러냈다. 타인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사회적 매너가 아니라는 관습은 시각장애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란 걸 그때 약간의 공포와 함께 배웠다.

<커뮤니티 대소동>은 밝고 따뜻한 공연이었다. 내가 몸의 손상을 갖게 된다고 하여도 그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땐 또 몰랐던 것을 더 알게 될 것이고, 내 몸의 한계와 고통을 다시금 배우게 될 것이라는 걸 알려주는 공연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극장 안에 구현된 우주는 그 세계와의 만남을 신비롭고 따뜻한 것으로만 그렸다. 관객이 소리 상자에 녹음해 준 ‘자유’니 ‘해방’이니 ‘이해’니 ‘체험’이니 하는 단어가 무겁게 가슴에 박힌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혼란의 우주 속에서 극장 밖의 경험과 극장 안의 경험이 화해하지 못한 채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커뮤니티 대소동

[창작공감:연출] 이진엽 | 2022.3.30.~4.10. | 소극장 판

‘장애와 예술’을 주제로 한 2021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연출]의 세 작품 중 연출가 이진엽이 배우와 공동창작한 작품이다. 일상 공간에서 커뮤니티 기반의 공연을 주로 선보인 이진엽은 극장 안으로 시선을 옮겨 빛이 없는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허구의 인물이 아닌 현실의 인물(배우)이 또 다른 현실의 인물(관객)을 만나는 무대로 극장에 모인 모두가 그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로, 또는 여러 타래의 꼬임으로 연결된다.

관련영상. 연출가 이진엽 “미로에 막힌 골목들을 방문하는 시간” | 창작공감: 연출 바로가기(링크)

이진아

연극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tikicat@empas.com

사진 제공. 국립극단

2022년 5월 (30호)

상세내용

리뷰

“기쁨과 혼란 속에서 새로운 우주를 알아가 보고 싶은 끌림을 느낄 수 있기를.” 연출가 이진엽은 우리를 극장으로 초대하며 이런 희망의 말을 보탰다. 그는 배우와 관객이 다 함께 춤추는 순간을 통해 이것이 이루어지기를 꿈꿨던 것 같다. 우리는 춤췄다. 누구와 함께하는지, 우리의 동작이 어떤 대형을 이루는지, 내가 다른 이들과 같은 동선으로 움직이는지를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며 춤췄다. 대신 옆 사람의 희미한 체온과 가르릉거리며 배어 나오는 웃음소리와 때때로 내 몸에 닿는 둔탁하고 낯선 몸뚱이를 느끼며 춤췄다.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목소리는 우리에게 동작과 방향을 지시했지만, 잠시 집중하고 내내 의심하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제 맘대로 몸뚱이를 움직여 춤을 추었다. ‘보는’ 공연이 아니고 ‘하는’ 공연이라는 연극의 주장이 이 순간만큼은 사실이었다.

‘우주’라고 불린 공간

<커뮤니티 대소동>은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연출]의 결과물이다. 2021년 11월 ‘과정 공유’의 개념으로 관객과 잠시 만났고, 올봄 본 공연이 올랐다. 시각장애 예술가들과 비장애 예술가들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 1년여의 짧지 않은 작업시간을 창작자들은 공연 연습에만 할애하지 않았다. 연구와 토론을 통해 생각을 벼렸고, 작업을 위한 특강과 워크숍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던졌을 질문과 고민이 이 작품에 담겼을 터인데, 다른 세계, 다른 감각, 다른 언어를 가진 이들과의 ‘만남’이란 아이디어가 그렇게 그 중심에 놓이게 된 듯하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이들이 ‘최대한 간극을 좁혀’ 만나기 위해 ‘우주’라는 공간을 상상했을 터이다.

이 공연을 통해 만난 ‘빛이 없는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낯설듯, 이 공연을 통해 만난 ‘극장’이란 공간도 누군가에겐 낯설었을 것이다. 손으로 몸을 더듬으며 타인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사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처음 맞이한 상황이었듯, 공간에서 마음껏 팔다리를 흔들며 춤을 추는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조금씩 낯선 조건에서 다른 이들을 만났다. ‘만남’이 중요한 만큼 공연은 극장에 모인 서로를 소개한다. 연극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관객은 헤드폰을 통해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인터뷰를 듣게 되는데, 자신의 삶과 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준다. 극이 시작되면 배우뿐 아니라 이곳에 모인 관객들도 소개된다. 그들은 입장 시 자신이 불리고 싶은 이름과 우주에서 들렸으면 하는 소리를 녹음했다. 저마다의 독특한 이름과 마구 지어낸 엉뚱한 인사말들을 듣자니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설핏한 관심이 인다.

공연 중 관객은 두 번 정도 ‘소리 상자’에 자신의 말을 녹음한다. 해당 순간의 마음, 생각, 감정이 담기게 된다. 공연 끝에 우리는 그 마음의 소리를 다 함께 듣는다. 이런저런 단어들 사이에서 ‘우주’ ‘유영’ ‘편안함’ ‘해방’ ‘자유’와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들린다. ‘이해’니 ‘체험’이니 하는 단어도 들린다. ‘연결되었다’ ‘함께 한다’와 같은 표현도 들린다. 듣고 있자니 홀로 생각이 복잡해진다.

극장에서의 경험은 환상일까 연습일까

공연을 보기 위해 입장을 시작하면, 우리는 통과의례처럼 몇 개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닉네임을 만들고 우주에서 울렸으면 하는 이상한 언어로 인사말을 녹음하고 안대를 하여 시각을 차단한다. 이후 성별도 다르고 목소리의 높낮이도 다르며 팔의 굵기와 단단함도 다른 세 명의 안내자를 만난다. 처음 만난 이의 팔에 매달리듯 의지하여 경사로를 올라 건물 안 벤치에 가 앉는다. 다른 이가 다가와 가방과 신발을 가져가고 바닥과 발꿈치가 뚫린 양말을 신게 한 후 나를 극장 안의 또 다른 이에게 인도한다. 또 다른 이가 나를 무대로 데려가 무대 중심과 사방으로 난 길의 특징을 알려준다. 폭신하거나, 까칠하거나, 딱딱하거나, 복슬복슬한 길들을 이용하여 나의 좌석 찾는 법도 알려준다. 공연 중에는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와 손을 잡고 인사하기도 하고, 그의 발목에서부터 허벅지를 타고 목선을 지나 정수리를 만지며 몸을 탐험하기도 한다. 나의 몸도 내어준다. 체온과 습도와 근육과 냄새로 누군가를 만난다.

그런데 다른 감각으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춤추는 일을 경험하게 한 연극 <커뮤니티 대소동>은 나에게 오래된 기억 하나를 끄집어내게 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삼십 대 중후반의 남성 시각장애인이 소리 내어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서 있는 곳에서 멀지 않았다.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고, 딴에는 배려한답시고 “십 미터 정도, 그러니까 보통 걸음으로 스무 걸음 정도 걸어가셔서 좌측으로 꺾어지시면…”과 같은 상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내 말을 자르고 나의 한쪽 팔을 내어달라고 요구했다. 여름이었고 나의 옷은 너무 가벼웠으며, 그는 낯설고 크고 건장한 사내였다. 감추지 못한 나의 당황함이 그에게 전달될까 싶어 더 당황해버렸다. 항상 이런저런 조건이 달려있던 나의 환대와 위선으로 포장된 친절함이 한 번에 민얼굴을 드러냈다. 타인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사회적 매너가 아니라는 관습은 시각장애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란 걸 그때 약간의 공포와 함께 배웠다.

<커뮤니티 대소동>은 밝고 따뜻한 공연이었다. 내가 몸의 손상을 갖게 된다고 하여도 그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땐 또 몰랐던 것을 더 알게 될 것이고, 내 몸의 한계와 고통을 다시금 배우게 될 것이라는 걸 알려주는 공연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극장 안에 구현된 우주는 그 세계와의 만남을 신비롭고 따뜻한 것으로만 그렸다. 관객이 소리 상자에 녹음해 준 ‘자유’니 ‘해방’이니 ‘이해’니 ‘체험’이니 하는 단어가 무겁게 가슴에 박힌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혼란의 우주 속에서 극장 밖의 경험과 극장 안의 경험이 화해하지 못한 채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커뮤니티 대소동

[창작공감:연출] 이진엽 | 2022.3.30.~4.10. | 소극장 판

‘장애와 예술’을 주제로 한 2021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연출]의 세 작품 중 연출가 이진엽이 배우와 공동창작한 작품이다. 일상 공간에서 커뮤니티 기반의 공연을 주로 선보인 이진엽은 극장 안으로 시선을 옮겨 빛이 없는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허구의 인물이 아닌 현실의 인물(배우)이 또 다른 현실의 인물(관객)을 만나는 무대로 극장에 모인 모두가 그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로, 또는 여러 타래의 꼬임으로 연결된다.

관련영상. 연출가 이진엽 “미로에 막힌 골목들을 방문하는 시간” | 창작공감: 연출 바로가기(링크)

이진아

연극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tikicat@empas.com

사진 제공. 국립극단

2022년 5월 (30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