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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스피크 <사라지는 사람들>

리뷰 이 활달한 퍼포먼스가 도착한 결말은

  • 김소연 연극평론가
  • 등록일 2022-05-11
  • 조회수905

리뷰

<사라지는 사람들>은 <주인 없음> <달빛 도망> 두 편의 단막극이 이어지는 연작 공연이다. <주인 없음>은 ‘풀은 머리 나라’와 ‘묶은 머리 나라’라는 두 집단의 대립과 갈등에 관한 이야기다. 끝없는 대립으로 두 집단의 경계는 ‘주인 없는’ 땅이 된다. 일종의 완충지대인 셈이다. 그렇게 텅 빈 주인 없는 땅에서 두 나라 왕자와 공주의 사랑이 불현듯 시작되지만, 이 사랑의 결말은 지독히 비극적이다. 둘의 사랑은 ‘주인 없는’ 땅 밖으로 물러나 있던 갈등을 다시 불러들이고, 다시 시작된 대립으로 모두는 죽음을 맞는다. <달빛 도망>은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싸움을 피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급작스러운 ‘침략’에 마을 사람들은 피난길에 나선다. 경황없이 떠난 길은 춥고 고될뿐더러 걷기 어려운 다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무리를 엄호하며 길을 안내하고, 누군가는 온기와 먹을 것을 나누고, 또 누군가는 다친 이를 부축하면서 ‘함께’ 길을 간다. 물론 혼자만의 안전을 도모하는 이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달빛 도망>의 결말도 마찬가지로 비극적이다. 침략자들은 이들을 쫓고, 점점 가까워지는 위기 속에서 돌보고 나누던 사람들은 결국 흔들리고 무리 안의 반목으로 죽이고 죽임을 당한다.

두 편의 단막극 모두 지독히 비극적이고 비관적인 결말에 이르지만, 연극은 시종 활달하다. <주인 없음>에서 두 집단의 대결은 군무와 타악 퍼포먼스로 전개되는데, 마치 거리 청년들의 댄스 배틀을 보는 것처럼 흥겹다. <달빛 도망>은 ‘피난’이라는 위기상황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물 군상을 보여주는데, 때로는 적나라하게 때로는 아닌 척 가장하는 인물들의 불안, 의심, 욕망, 갈구를 세심하게 포착하고 명료하게 드러내면서 희극성을 만들어낸다. 또한, 두 작품 모두 다수의 인물이 동시에 무대에 등장하여 전개되는 장면이 적지 않은데, 흔히 몹씬(군중씬)이라 일컫는 ‘다수’ ‘무리’의 양감으로만 연출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대화와 격론을 벌이기도 한다.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가 춤과 노래로 양식성을 만들어내고, 전개되고 있는 사건과 상황에 대한 해석자의 역할이라면, 이 작품에서 다수 인물이 펼치는 대화와 격론은 드라마의 주요한 갈등 국면을 만들어낸다. 무대 위의 인물들은 무리를 이루고 있지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말’들은, 그 산재한 위치성과 엉켜드는 방향성이 갈등의 크기와 부피를 만들어낸다.

아마도 다수 인물의 격론이라는 장면 만들기는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가 함께 무대에 서는 이 작품의 창작과정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핸드스피크는 농인 아티스트 농인 퍼포머로만 전개되는 공연도 있지만, 이번 작품처럼 함께 무대에 서는 협업 무대도 만들고 있다. <사라지는 사람들>에서는 수어통역사, 음성통역사를 따로 두지 않고 무대에 선 배우들이 연기와 통역을 함께 맡는데, 통역과 연기가 장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전개되도록 섬세하게 연출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장면이 다수의 인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달빛 도망>에서는 점점 다가오는 추격자들로 인해 ‘함께’하기에 균열이 일어나는 내밀한 심리적 갈등에서는 역할을 완전히 벗고 수어통역과 음성통역으로 무대에 서기도 한다. 이처럼 <사라지는 사람들>에서는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의 협업 과정에서 독특한 장면 연출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연극의 활달함을 완성하는 배우들이 있다. 춤과 노래처럼 양식적인 표현으로 전개되는 장면이 아니더라도 농인 배우들의 수어 연기는 단지 음성언어 대신 손언어를 쓴다는 것에 머물지 않고 손의 움직임과 조응하면서 만들어내는 몸의 리듬감을 보여준다. 물론 청인 배우들의 연기에서도 단지 목소리만으로 연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뮤지컬, 수어 랩 등 음악공연을 활발하게 해온 핸드스피크 배우들의 리듬감은 돋보였다. 이들은 연기는 리듬이라든가, 음악은 청각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그 진동을 감각하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환기하게 한다.

<사라지는 사람들>에서는 모든 장면이 수어와 음성언어로 동시에 진행되지는 않는다. <달빛 도망>에서는 음성통역 없이 수어로만 전개되는 장면이 있었다. 핸드스피크 공연인 만큼 농인 관객과 수어를 이해하는 관객도 적지 않았는데, 수어에 문맹인 청인 관객과 수어를 이해하는 관객에게 이 장면은 다르게 다가왔을 것이다. 수어에 문맹인 관객으로서, 갑작스럽게 음소거된 화면을 지켜보는 것 같은 순간이었지만, 그것이 수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당황스러움이나 기존의 공연언어가 특정한 감각에 한정된 것이라는 환기로만 다가오는 것은 아니었다. 이 장면은 수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어떤 울림을 준다. 이 소리 없는 대화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시시때때로 소통의 불가능성에 부딪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피난길에 나선 이들이 겪고 있는 갈등도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사라지는 사람들>의 두 편의 단막극은 모두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두 편 모두 죽음으로 끝난다. <주인 없음>은 사랑마저도 죽음으로 뒤덮어버리는 증오 속에서 서로를 죽이고, <달빛 도망>은 누가 왜 침략했는지도 알 수 없는 이들을 피해 피난길에 나서고 침략자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함께 피난길에 나선 사람들이 서로를 죽인다. 이 활달한 연극이 도착한 이러한 비극적 결말은, 충격적이었다. 어떠한 낙관도 어떠한 희망도 남겨두지 않는 결말이다. 이 결말에 도착하고 나니 두 단막극 사이 막간극처럼 진행된 김지연의 짧은 렉처 퍼포먼스가 떠오른다. 김지연은 수어로 이 공연이 수어퍼포먼스라는 것, 그리고 이어지는 <달빛 도망>이 누군지 왜인지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침략으로 가족을 잃고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수어로 소개했다. 두 편의 단막을 이어가는 이 작품의 제목은 ‘사라지는 사람들’이다. 죽음이라는 극단적 사건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증오’와 ‘갈등’에서 과연 자유로울까.

  • <주인 없음>

  • <달빛 도망>

사라지는 사람들

핸드스피크 | 2022.3.22.~3.29. | 세종M씨어터

농인 배우 7명과 청인 배우 6명이 펼치는 공연으로, 극한 상황 속에서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두 개의 옴니버스 공연 <주인 없음> <달빛 도망>으로 담았다. 핸드스피크는 농인 청년들이 가진 끼와 재능을 ‘수어’로 세상과 소통을 이어가는 농인 문화예술 기획사로, 청각장애·농인이 주체가 되어 다양한 예술적 실험과 아티스트 발굴, 레퍼토리 개발, 협업작업을 하고 있다.

관련영상. ⓔ메이킹-창작과정 | 핸드스피크 영상 바로가기(링크)
핸드스피크 홈페이지 바로가기(링크)

김소연

연극평론가. [문화정책리뷰] 편집장. 공연보고 글을 쓴다. 글 쓰는 것 외에 관객과 창작자가 만나는 다양한 방식을 궁리하고 실행한다. <삼인삼색 연출노트> <극작가리서치워크숍> 등을 기획했다.
kdoonga@naver.com
인스타그램 바로가기(링크)

사진 제공. 세종문화회관

2022년 5월 (30호)

상세내용

리뷰

<사라지는 사람들>은 <주인 없음> <달빛 도망> 두 편의 단막극이 이어지는 연작 공연이다. <주인 없음>은 ‘풀은 머리 나라’와 ‘묶은 머리 나라’라는 두 집단의 대립과 갈등에 관한 이야기다. 끝없는 대립으로 두 집단의 경계는 ‘주인 없는’ 땅이 된다. 일종의 완충지대인 셈이다. 그렇게 텅 빈 주인 없는 땅에서 두 나라 왕자와 공주의 사랑이 불현듯 시작되지만, 이 사랑의 결말은 지독히 비극적이다. 둘의 사랑은 ‘주인 없는’ 땅 밖으로 물러나 있던 갈등을 다시 불러들이고, 다시 시작된 대립으로 모두는 죽음을 맞는다. <달빛 도망>은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싸움을 피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급작스러운 ‘침략’에 마을 사람들은 피난길에 나선다. 경황없이 떠난 길은 춥고 고될뿐더러 걷기 어려운 다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무리를 엄호하며 길을 안내하고, 누군가는 온기와 먹을 것을 나누고, 또 누군가는 다친 이를 부축하면서 ‘함께’ 길을 간다. 물론 혼자만의 안전을 도모하는 이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달빛 도망>의 결말도 마찬가지로 비극적이다. 침략자들은 이들을 쫓고, 점점 가까워지는 위기 속에서 돌보고 나누던 사람들은 결국 흔들리고 무리 안의 반목으로 죽이고 죽임을 당한다.

두 편의 단막극 모두 지독히 비극적이고 비관적인 결말에 이르지만, 연극은 시종 활달하다. <주인 없음>에서 두 집단의 대결은 군무와 타악 퍼포먼스로 전개되는데, 마치 거리 청년들의 댄스 배틀을 보는 것처럼 흥겹다. <달빛 도망>은 ‘피난’이라는 위기상황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물 군상을 보여주는데, 때로는 적나라하게 때로는 아닌 척 가장하는 인물들의 불안, 의심, 욕망, 갈구를 세심하게 포착하고 명료하게 드러내면서 희극성을 만들어낸다. 또한, 두 작품 모두 다수의 인물이 동시에 무대에 등장하여 전개되는 장면이 적지 않은데, 흔히 몹씬(군중씬)이라 일컫는 ‘다수’ ‘무리’의 양감으로만 연출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대화와 격론을 벌이기도 한다.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가 춤과 노래로 양식성을 만들어내고, 전개되고 있는 사건과 상황에 대한 해석자의 역할이라면, 이 작품에서 다수 인물이 펼치는 대화와 격론은 드라마의 주요한 갈등 국면을 만들어낸다. 무대 위의 인물들은 무리를 이루고 있지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말’들은, 그 산재한 위치성과 엉켜드는 방향성이 갈등의 크기와 부피를 만들어낸다.

아마도 다수 인물의 격론이라는 장면 만들기는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가 함께 무대에 서는 이 작품의 창작과정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핸드스피크는 농인 아티스트 농인 퍼포머로만 전개되는 공연도 있지만, 이번 작품처럼 함께 무대에 서는 협업 무대도 만들고 있다. <사라지는 사람들>에서는 수어통역사, 음성통역사를 따로 두지 않고 무대에 선 배우들이 연기와 통역을 함께 맡는데, 통역과 연기가 장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전개되도록 섬세하게 연출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장면이 다수의 인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달빛 도망>에서는 점점 다가오는 추격자들로 인해 ‘함께’하기에 균열이 일어나는 내밀한 심리적 갈등에서는 역할을 완전히 벗고 수어통역과 음성통역으로 무대에 서기도 한다. 이처럼 <사라지는 사람들>에서는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의 협업 과정에서 독특한 장면 연출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연극의 활달함을 완성하는 배우들이 있다. 춤과 노래처럼 양식적인 표현으로 전개되는 장면이 아니더라도 농인 배우들의 수어 연기는 단지 음성언어 대신 손언어를 쓴다는 것에 머물지 않고 손의 움직임과 조응하면서 만들어내는 몸의 리듬감을 보여준다. 물론 청인 배우들의 연기에서도 단지 목소리만으로 연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뮤지컬, 수어 랩 등 음악공연을 활발하게 해온 핸드스피크 배우들의 리듬감은 돋보였다. 이들은 연기는 리듬이라든가, 음악은 청각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그 진동을 감각하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환기하게 한다.

<사라지는 사람들>에서는 모든 장면이 수어와 음성언어로 동시에 진행되지는 않는다. <달빛 도망>에서는 음성통역 없이 수어로만 전개되는 장면이 있었다. 핸드스피크 공연인 만큼 농인 관객과 수어를 이해하는 관객도 적지 않았는데, 수어에 문맹인 청인 관객과 수어를 이해하는 관객에게 이 장면은 다르게 다가왔을 것이다. 수어에 문맹인 관객으로서, 갑작스럽게 음소거된 화면을 지켜보는 것 같은 순간이었지만, 그것이 수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당황스러움이나 기존의 공연언어가 특정한 감각에 한정된 것이라는 환기로만 다가오는 것은 아니었다. 이 장면은 수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어떤 울림을 준다. 이 소리 없는 대화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시시때때로 소통의 불가능성에 부딪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피난길에 나선 이들이 겪고 있는 갈등도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사라지는 사람들>의 두 편의 단막극은 모두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두 편 모두 죽음으로 끝난다. <주인 없음>은 사랑마저도 죽음으로 뒤덮어버리는 증오 속에서 서로를 죽이고, <달빛 도망>은 누가 왜 침략했는지도 알 수 없는 이들을 피해 피난길에 나서고 침략자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함께 피난길에 나선 사람들이 서로를 죽인다. 이 활달한 연극이 도착한 이러한 비극적 결말은, 충격적이었다. 어떠한 낙관도 어떠한 희망도 남겨두지 않는 결말이다. 이 결말에 도착하고 나니 두 단막극 사이 막간극처럼 진행된 김지연의 짧은 렉처 퍼포먼스가 떠오른다. 김지연은 수어로 이 공연이 수어퍼포먼스라는 것, 그리고 이어지는 <달빛 도망>이 누군지 왜인지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침략으로 가족을 잃고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수어로 소개했다. 두 편의 단막을 이어가는 이 작품의 제목은 ‘사라지는 사람들’이다. 죽음이라는 극단적 사건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증오’와 ‘갈등’에서 과연 자유로울까.

  • <주인 없음>

  • <달빛 도망>

사라지는 사람들

핸드스피크 | 2022.3.22.~3.29. | 세종M씨어터

농인 배우 7명과 청인 배우 6명이 펼치는 공연으로, 극한 상황 속에서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두 개의 옴니버스 공연 <주인 없음> <달빛 도망>으로 담았다. 핸드스피크는 농인 청년들이 가진 끼와 재능을 ‘수어’로 세상과 소통을 이어가는 농인 문화예술 기획사로, 청각장애·농인이 주체가 되어 다양한 예술적 실험과 아티스트 발굴, 레퍼토리 개발, 협업작업을 하고 있다.

관련영상. ⓔ메이킹-창작과정 | 핸드스피크 영상 바로가기(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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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연극평론가. [문화정책리뷰] 편집장. 공연보고 글을 쓴다. 글 쓰는 것 외에 관객과 창작자가 만나는 다양한 방식을 궁리하고 실행한다. <삼인삼색 연출노트> <극작가리서치워크숍> 등을 기획했다.
kdoon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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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세종문화회관

2022년 5월 (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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