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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성재 퍼커셔니스트 소리를 넘어선 진동의 언어, 울림으로 소통하다

  • 김준수(몬구) 음악가·문화예술교육가
  • 등록일 2026-02-25
  • 조회수 30

인터뷰

이성재 퍼커셔니스트에게 퍼커션은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용기이자, 타인과 연결되는 가장 솔직한 울림의 언어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궤도를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이성재에게 그 순간은 중학교 강당, 2층까지 전해지던 드럼의 묵직한 진동이었다. 소리가 아닌 몸으로 먼저 다가온 그 울림은 청각장애라는 제약을 넘어 그를 음악의 세계로 이끌었다. 사춘기 시절, 보청기를 숨기기 위해 머리카락을 기르던 소년은 이제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당당하게 보청기를 드러내고, 퍼커션을 두드리며 세상과 소통한다. 2025년에 공연 《감각 : 울림의 순간》을 통해 관객들에게 진동의 황홀함을 선사했던 그는, 이제 ‘장애가 있음에도 잘하는’ 연주자가 아닌, 말 그대로 ‘실력이 탁월한’ 퍼커셔니스트로 불리고 싶다고 말한다. 보물창고 같은 그의 작업실에서 매일 자신만의 리듬을 벼려내는 그를 만났다.

  • 다양한 브라질 악기로 채워진 작업실에서, 이성재 퍼커셔니스트가 한쪽 팔을 봉고에 올린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앞쪽으로 윈드벨이 놓여 있고, 뒤편 벽에는 작은 손북 등 다양한 브라질 타악기가 걸려 있다.
이성재 퍼커셔니스트

    이성재 퍼커셔니스트

공간과 현재

음악가로서 작업실은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마주하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성재 님에게 이 공간은 어떤 곳인가요?

이 공간은 저에게 보물 창고이자 연습 공간입니다. 하나둘씩 모으다 보니 악기가 쌓이게 되었는데, 사고 싶은 옷이나 맛있는 음식을 조금씩 포기하며 모은 소중한 친구들이에요. 퍼커션은 두드려서 소리를 낼 수 있는 모든 것이 악기가 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죠. 이 공간에서 그 악기들을 어떻게 음악적으로 활용할지 고민하고, 더 좋은 연주를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며 저 자신을 다듬어가는 곳입니다.

퍼커셔니스트 이성재의 하루 리듬은 보통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합니다.

일과는 다소 불규칙한 편입니다. 작년에는 잠시 회사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음악 작업과 시간 조절이 쉽지 않아 지금은 다시 프리랜서 음악가로 돌아왔어요. 공연을 준비할 때는 그에 맞춰 집중하고, 지금처럼 공연이 없는 시기에는 연습실에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나와 악기를 두드리고 연습하며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퍼커션과 진동

퍼커션은 악기의 재질에 따라 진동의 결이 다릅니다. 성재 님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진동의 재질은 무엇인가요?

가장 편안한 조합은 가죽과 나무입니다. 콩가나 봉고처럼 가죽을 타격할 때 나무 보디를 통해 전해지는 소리가 부드럽고 편안해요. 반면에 에너지를 뿜어내고 싶을 때는 쇠 보디와 나일론 헤드의 조합을 좋아합니다. 바투카다(Batucada – 브라질 타악 퍼포먼스) 공연을 할 때 느껴지는 그 강렬한 음압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악기를 타격할 때 몸으로 전해지는 ‘떨림’이 성재 님에게는 일종의 언어일 것 같습니다. 그 언어가 가장 유창하게 터져 나오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즉흥 솔로를 하는 순간입니다. 정해진 틀 안에서 마음대로 연주하며 저 자신을 가장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때 주인공이 된 듯한 짜릿함을 느낍니다. 그때의 자신감이 연주를 통해 가장 잘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연주 중에 보청기를 사용할 때와 사용하지 않을 때, 몸이 느끼는 음악의 밀도는 어떻게 달라지나요?

저는 한쪽은 인공와우, 한쪽은 보청기를 사용합니다. 둘 중 하나만 빼도 듣는 소리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집니다. 연주 중에는 소리뿐만 아니라 공간의 울림, 다른 연주자의 손 모양 등을 다감각적으로 활용하여 박자를 맞추기 때문에 보청기와 인공와우는 저에게 필수적인 장치입니다.

감각, 울림의 순간

2024년 《다감각》 공연 이후 “내가 집중하고 싶은 감각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답으로 2025년에는 ‘울림’을 선택하셨어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다감각》 공연을 통해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을 모두 다뤄보았지만, 한 가지 감각을 확실하게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울림이었어요. 청각장애를 가지고 살면서 소리를 듣는 것보다 몸으로 느껴지는 진동과 울림을 더 크게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함께 연주할 때 생기는 울림의 가치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무대에서 ‘여러 요소를 덜어내고 울림 그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 기획 단계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가 느끼고 좋아하는 울림의 방식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전달될 수 있을지를 가장 많이 고민했습니다. 표현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앞으로 공간의 설계나 재질에 따른 울림의 차이를 더 연구해보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 다양한 브라질 악기로 채워진 작업실에서, 이성재 퍼커셔니스트가 팔짱을 낀 채 한 손에 드럼 스틱을 들고 살짝 고개를 위로 향해 있다. 앞쪽으로 윈드차임과 봉고가 나란히 놓여 있고, 뒤편 벽에는 작은 손북 등 다양한 소형 타악기가 걸려 있다.

    이성재 퍼커셔니스트

중학교 시절, 강당에서 밴드부 공연의 진동을 느낀 순간이 인생의 변곡점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몸으로 전해졌던 그 심장박동 같은 울림을 지금도 기억하시나요?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2층 강당이었는데 우퍼의 영향인지 드럼의 베이스 울림이 몸으로 쿵쿵쿵 전해졌습니다. 그때까지는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도 재미없게 느꼈거든요. 그런데 그날의 진동이 너무 강렬해서 처음으로 드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어요. 그 경험이 이번 공연의 큰 뿌리가 되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관객 모두가 ‘비슷한 감정의 깊이’를 공유하게 만드는 성재 님만의 장치가 있었나요?

공연 마지막에 드럼 서클을 진행했습니다. 관객들에게 악기를 하나씩 나눠 주고 제가 큐를 주면서 함께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죠. 청각장애인은 합주가 어려울 거라는 편견을 깨고, 모두가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리듬 안에서 같은 울림을 공유하게 했습니다.

함께 만드는 리듬, 히치모싸

브라질 타악팀 ‘히치모싸’는 바투카다 스타일의 매우 에너제틱하고 음압이 강한 팀입니다. 그 거대한 음압 속에 있을 때 성재 님의 기분이 궁금합니다.

바투카다의 강력한 울림 안에 있을 때 정말 즐겁습니다. 온몸으로 그 진동을 받는 느낌이 들거든요. 주로 까이샤(Caixa)를 연주하며 팀의 에너지를 함께 만들어갈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낍니다.

동료 연주자의 미세한 움직임을 읽어내며 합을 맞추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시야를 넓게 여는 것이 노하우입니다. 바투카다는 리더의 신호에 따라 즉각적으로 리듬이 변하기 때문에, 내 악기를 연주하면서도 주변 연주자의 손 모양과 움직임을 계속 관찰해야 합니다. 몰입하는 동시에 주변을 살피는 훈련이 되어 있어 동료들과의 합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결핍이 아닌 다른 감각의 열림

사춘기 시절 보청기를 숨기고 싶어 했던 마음이, 이제는 당당히 ‘울림’을 전하는 예술가로 변모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힘이 된 사건은 무엇인가요?

하자작업장학교를 통해 노들야학이라는 단체를 만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장애인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분들을 보며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깨달았습니다.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이를 배제하는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머리카락으로 귀를 가리던 습관을 버리고 당당해질 수 있었습니다.

청각장애를 ‘결핍’이 아닌 ‘다른 감각의 열림’으로 정의하셨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나요?

과거 장애 때문에 기죽어 지냈던 시간이 있었기에, 이제는 더 당당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가짐에서 에너지가 나옵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가장 멋진 음악을 만드는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의 울림

성재 님의 음악 활동이 하나의 ‘사회적 투쟁’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투쟁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나요?

청각장애를 가진 제가 꾸준히 전문 연주자로 활동하는 모습 그 자체가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고 음악이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계속해서 저의 존재를 증명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전문 연주자로서 ‘이성재’라는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기를 바라나요?

단순히 장애가 있는데도 잘한다는 소리보다는, 정말 실력 있는 퍼커셔니스트로 불리고 싶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청각장애가 있었다는 말을 들을 만큼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2026년 한 해 동안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올해는 울림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어 연구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공연장마다 다른 재질과 구조가 울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테스트하고 아카이빙하고 싶습니다. 또한, 내년 초에는 브라질에 직접 가서 삼바와 바투카다를 더 깊이 공부할 계획도 있습니다.

  • 어두운 무대에서 파란색과 주황색 조명이 비치는 가운데, 이성재 퍼커셔니스트가 세 개의 콩가를 두 손으로 두드리며 연주하고 있다.
  • 보라색 조명 아래에 콩가와 심벌, 윈드 차임 등의 악기가 놓여 있고 이성재 퍼커셔니스트가  손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악기 주변에 여러 개의 마이크 스탠드가 설치되어 있다.
이성재

이성재

퍼커셔니스트.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브라질 타악 음악을 처음 접한 뒤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며 전문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브라질 타악 앙상블 바투카다 팀 ‘히치모싸’의 멤버로 활동 중이며, 《다감각》(2024), 《감각: 울림의 순간》(2025) 등 퍼커셔니스트로서의 무대를 이어가고 있다.
drsport1234@naver.com
∙ 인스타그램 @perc_sj

김준수(몬구)

김준수(몬구)

뮤지션이자 문화예술교육가. 2003년부터 음악과 생각이 있는 곳에서 함께 흐르고 있다.
wordsareevil@naver.com

사진.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자료사진 제공.이성재

2026년 2월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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