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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장애예술 비평의 현주소와 과제① 더 날카롭게, 더 뾰족하게, 간극을 읽는

  • 프로젝트 궁리 
  • 등록일 2026-02-25
  • 조회수 55

이슈

연극, 무용, 미술 등 각 장르에서 활동하는 8명의 평론가에게 장애예술 비평의 현재와 과제에 대해 물었다. 장애예술 분야가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이를 둘러싼 담론이 꾸준히 확산되는 가운데, 비평은 지금 어떤 자리에서 어떤 고민을 안고 있을까. 또한 작품과 현장을 마주할 때 비평가들은 어떤 언어와 태도를 선택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시선은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을까. 장애예술을 둘러싼 비평의 풍경을 다층적인 시선으로 조망해 보자.
※ 참여하신 분들: (연극) 양근애, 유연주, 이진아 평론가 | (무용) 심정민, 허명진 평론가 | (미술) 남웅, 안현정, 정현 평론가

① 장애예술 비평의 현주소

   |   

② 장애예술 비평의 과제

장애예술 비평은 활성화되고 있나

현재 장애예술 비평이 얼마나 활성화되었다고 느끼는지 물었다. 장애예술 분야에서 비평이 매우 부족하다고 보는 응답자는 없었지만, 아직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양적인 확대가 이뤄지고는 있으나 비평적 논의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보고 있거나, 일부 장르·플랫폼에서만 의미 있게 작동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편, 비평으로 기능하는 사례가 점차 축적되고 있는 가운데, 그 의미가 예술 현장 전반으로 펼쳐지는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 Q. 현재 장애예술 비평의 활성화 수준
논의는 있으나 비평이라 부르기 어렵다
일부 장르·플랫폼에서만 의미 있게 작동한다
비평으로 기능하는 사례가 점차 축적되고 있다
기타
매우 부족하다
일부 장르·플랫폼에서만 의미 있게 작동한다
기타
논의는 있으나 비평이라 부르기 어렵다
비평으로 기능하는 사례가 점차 축적되고 있다

▶ 논의는 있으나 비평이라 부르기 어렵다

“장애예술에 관한 전문성을 갖춘 진지한 비평적 논의가 여전히 부족하다. 아마추어적인 글쓰기나 반대로 지나치게 현학적인 글쓰기에 빠져 있지 않은지 고려해야 한다. 관련 글을 쓰는 사람이나 그 글을 읽는 사람에게 확장성 있는 매체 확보가 필요하다. 소수에 의해서 그리고 소수를 위해서 제작 및 유통되고 있지는 않은지 재고해 봐야 한다.”
- 심정민 무용평론가

“현재 장애예술에 대한 논의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이 미학적 판단과 비평적 거리감을 확보한 ‘비평’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유보적이다. 장애작가의 작품을 두고 평가와 품평을 나누기 어려운 환경이 지속되고 있고, 제도 역시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더불어 국내 미술계 전반에서 비평의 위상이 약화되는 흐름 속에서, ‘장애’라는 또 하나의 조건은 비평을 더욱 조심스러운 영역으로 만든다. 이로 인해 담론은 축적되지만, 작품을 동시대 미술의 좌표 위에 위치시키는 분석적 언어는 충분히 발화되지 못한다. 지금의 상황은 비평의 부재라기보다, 비평이 스스로 검열하며 움츠러든 상태에 가깝다.”
- 안현정 미술평론가

▶ 일부 장르·플랫폼에서만 의미 있게 작동한다

“장애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장애 유형에 따라 관객 호응도나 창의성의 차이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장애예술 비평은 절대적인 기준을 정하기보다, 장애예술 현장의 환경과 비평가의 장애인식 수준에 관한 경험과 윤리가 매우 중요한 열쇠일 것이다. 경험과 태도에 따른 관계 형성이 작업 자체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애 유형에 따른 온도차도 영향을 준다. 아무래도 몰입도가 높은 공연은 관람객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전시는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내기 쉽지 않다. 비평의 역할은 더 나은 결과가 아니다. 장애작가의 속도와 호흡을 맞춰가며 이인삼각을 하듯 일종의 라포르(rapport) 형성이 이후 작업에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비평은 평가가 아닌 정기적인 만남과 전시 감상과 같은 액티비티를 통한 장기적인 관계 형성이 더 우선된다.”
- 정현 미술평론가

“현재 장애예술에 관심을 두고 비평을 쓰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이고, 그들에게 주어진 지면도 [웹진이음]과 모두예술극장 블로그가 거의 전부다. 이들 지면은 ‘비평’보다 ‘리뷰’가 중심이다. 깊이 있는 논문이 제출되기도 하지만, 논문은 아무래도 독자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밀도 있는 글을 쓸 수 있으면서 독자와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지면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가능하다면 좀 더 논쟁적인 글로 독자, 창작자와 토론을 해보고 싶다. 비평은 소통이라고 생각하기에 독자의 존재가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러나 장애예술 비평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특히 대상 작품의 창작자에게조차 글이 잘 가 닿지 않는 게 아쉽다. 필자의 경우, 비평을 쓴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에게 비평을 읽어봤는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글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그 극단과 배우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더 나아질 공연을 기대하며 글을 썼기에 아쉬움이 컸다. 한편 [웹진이음]의 댓글을 참 좋아하는데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있다. 댓글을 다는 사람은 비록 소수지만 내 글이 어떻게 읽혔는지 확인하는 계기도 되고 누군가와 소통하는 느낌이 든다.”
- 유연주 연극평론가

▶ 비평으로 기능하는 사례가 점차 축적되고 있다

“최근 장애예술이 확대되면서, 작품과 현장을 단순히 소개하거나 옹호하는 차원을 넘어, 미학적 선택과 윤리적 태도, 제작 조건을 질문하려는 글이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아직 안정된 비평의 장이나 공통의 언어로 수렴되었다기보다는, 개별 비평가의 문제의식과 실천이 산발적으로 축적되는 국면에 가깝다. 그럼에도 장애예술 활성화가 비평의 필요성을 호출하고 있고, 그 요청에 응답하려는 시도가 분명히 늘어나고 있다고 느낀다.”
- 양근애 연극평론가

“장애예술 전문 웹진과 플랫폼뿐 아니라 그 외의 예술 저널에도 장애예술에 관한 기사가 수록되고 있으며 점차 확장해 가고 있다고 느낀다. 또 관련한 학술 연구도 진행되고 있으며, 연구자나 비평 인력 등 저변도 꾸준히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특정 지면이나 플랫폼’으로 국한된 경향이 있으며, 일반적인 인문 저널이나 예술 저널에서는 ‘특집’ 형식으로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 이진아 연극평론가

▶ 그 밖의 의견

“장애예술 관련 매체나 플랫폼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 존재 여부가 비평 활동을 가시화하는 계기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이것이 현장에서 의미 있게 작동하는지는 확신하기 어려우나, 비평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사례들의 축적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허명진 무용평론가

“[웹진이음]과 같이 장애예술을 주요 키워드로 다루는 플랫폼에서 ‘장애’ 예술 비평이 시도되는 한편, 기성의 예술 신에서 손상된 몸, 장애를 가진 몸 등을 바탕으로 작업을 읽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양적으로 장애예술에 대한 비평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두 영역은 간극을 보이는 듯하다.”
- 남웅 미술평론가

비평의 지형 만들기

장애예술 비평이 일회성에 그친다는 평가도 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 지형을 만들기 위해 가장 시급히 축적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정체성, 원형, 본질과 같은 비평의 개념이나 철학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새로운 비평의 용어나 문법을 만들고, 다양한 비평의 방법을 쌓고, 함께 실천할 방안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는 의견이 도드라졌다.

  • 
					Q. 장애예술 비평이 가장 시급히 축적해야 할 것
기타
방법(동료비평, 과정 비평, 당사자 비평의 재구성 등)
비평 언어(새로운 용어, 문법)

개념/철학(예: 정체성, 원형, 본질)
비평 언어(새로운 용어, 문법)
방법(동료비평, 과정 비평, 당사자 비평의 재구성 등)
기타

▶ 새로운 용어, 문법 등 비평 언어

“장애예술 비평이 일회적인 비평에 머무르지 않고 지형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비평 언어가 점검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념이나 방법 또한 중요하지만, 그것이 실제 비평의 장에서 공유되고 축적되기 위해서는 먼저 장애예술의 감각과 조건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장애예술을 다루는 많은 글은 작품을 존중하려는 태도와 조심스러움 속에서 기존 예술 비평의 언어를 그대로 차용하거나, 반대로 설명적·윤리적 언어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는 비평을 지속적인 논의로 이어가기보다 개별 사례에 한정된 발화로 남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장애예술 비평의 언어는 장애를 예외적으로 다루거나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신체, 감각, 시간, 관계의 다른 구성 방식을 정밀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언어가 축적될 때, 개념은 더 구체화 되고 방법 역시 반복과 확장이 가능한 실천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 양근애 연극평론가

▶ 동료비평, 과정 비평, 당사자 비평 등 방법론

“개념을 배우고 언어를 만드는 일의 중요성을 미룰 수 없지만, 이러한 시도와 더불어 장애와 예술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시도를 지속하고 영역 간 교섭을 시도할 수 있는 플랫폼의 역할, 더불어 플랫폼 간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장애·비장애 예술의 범주화가 행정과 담론의 맥락에서 별개로 이뤄지다시피 하는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양자 간의 협력과 공동기획을 시도하면서 문턱과 접근의 차이를 확인하고 기획과 협업, 대화의 모델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 무지와 불화를 수용하고 수정하며 실험적인 형식과 비평적 논의의 장을 확장할 인프라 구축이 중요해 보인다. 장애예술기관이라는 특정성을 가지면서도 전문성을 가지며 미술계 전반에 담론을 확장하고 협업할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 장애예술 비평의 궤적을 잇는 메타비평적 창작 시도나 연구가 이뤄져도 좋겠다.”
- 남웅 미술평론가

“개념이나 비평 언어가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국내외 많은 학자와 비평가의 작업이 이미 번역되고 출간되었다. 만약 장애예술의 개념이나 장애예술 비평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예술인이나 비평가가 있다면, 그 이유는 관심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장애예술 전문지나 플랫폼을 넘어 더 많은 글이, 더 다양한 논자에 의해 발표되고 토론된다면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장애예술에 대한 담론이 축적되기 위해서는 동료비평이 더 풍부해져야 한다. 상호 비평하거나, 다른 관점으로 논쟁하거나, 장애 비평을 메타비평적으로 다루거나,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이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 이진아 연극평론가

“개인적으로는 비평 활동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는 없다. 모든 예술가는 자신의 고민, 갈등, 상처에서 창작의 뿌리를 내리고 그 생존력을 확장하거나 심화하기 마련이다. 다만 한국의 장애미술은 장애의 극복 서사나 특이점에 방점을 두는 것 같다. 어떤 비평이든 작가와의 교감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작가의 가족이나 협력자와의 대화도 작가의 생각과 작업의 밀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관계의 축적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면 작가, 비평가, 조력자, 가족, 친구, 기관 매니저, 사회복지사 등이 함께 모여 집담회를 진행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내가 활동한 단체에서 만난 장애 당사자 어머니는 자녀를 위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자아를 성장시켜 현재는 장애 활동가이자 예술가 정체성을 구축했다. 따라서 장애예술 비평은 다양한 관계자들과 함께 긴 호흡으로 모두를 성장시키는 ‘미학적 돌봄’의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 정현 미술평론가

▶ 그 밖의 의견

“꾸준하게 장애예술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평론가가 평문을 게재할 수 있는 통로가 거의 없는 듯하다. 특정 선호 인물에게 글쓰기를 맡기기보다는 공신력을 갖춘 평론가에게 글을 의뢰하여 관련 분야에서 제대로 된 평문 활성화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질 수 있는 매체 확립이 시급하다. [웹진이음]의 미학적인 논고도 필요하겠지만, 창의적인 기획이나 보편적인 접근 등을 통해 장애예술인과 그 주변뿐 아니라 대중도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 확립이 필요해 보인다.”
- 심정민 무용평론가

“비평가 풀이 마련되어야 한다. 장애예술을 같이 보고 논의하고, 함께 공부도 할 수 있는 동료를 만나고 싶다. 장애예술가들도 비평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비평가 풀이 마련된다면 개념/철학, 비평 언어는 같이 공부해 나가면 되고, 동료비평, 과정 비평, 당사자 비평도 가능해질 것이다.”
- 유연주 연극평론가

“장애예술의 빛나는 순간이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포착해 내는 비평 언어에 대한 고민이 요구되는 한편, 현장의 활성화 혹은 지속성 또한 담보되기 어려운 측면도 있는 듯하다. 비평이 현장과 함께 형성되고 자라난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면 단지 장애인의 예술이 아닌, 당사자의 시선과 감각이 살아 있는 예술에 대해 고민하는 현장의 지층이나 생태계가 두터워질 수 있을지도 짚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 허명진 무용평론가

“비평은 단독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언제나 창작과 제도, 관객과 담론의 토양 위에서 천천히 형성된다. 그래서 비평의 부재는 종종 비평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개념, 비평 언어, 방법론 모두 중요하지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장애예술이 예술계 내부에서 ‘일회적 프로젝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영역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일이다. 안정된 발표 구조와 축적 가능한 전시 환경이 마련될 때, 비평 역시 그 안에서 역할을 획득할 수 있다. 비평은 장애예술이 대중적 정서와 어떻게 만나는지, 또 다른 예술 장르와 어떤 지점에서 구별되는지를 설명해야 하며, 동시에 장애예술이 지닌 특수성과 전문성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특히 해외 장애예술 비평 사례를 단순히 소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제도·문화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고 소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새로운 언어의 발명 이전에 요구되는 비평의 번역 작업이며, 지형을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 안현정 미술평론가

아직 충분히 말하지 못한 것들

장애예술 비평이 과도하게 강조하여 의미를 부여하거나, 반대로 회피되고 있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예를 들어 접근성에 집착(?)하게 되거나 미학적 성취나 형식의 실험 등을 간과하게 되지는 않았는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이 설문에 함께한 비평가들은 접근성과 사회적 의미를 반복하거나 비장애 중심 언어의 재생산을 지적하기도 하고, 작품 중심의 이해와 분석이 부족한 부분을 짚었다. 장애예술을 동시대 예술 맥락에 위치하게 하고 범주를 넓히기 위하여, 비평이 해야 할 일을 짚었다.

심정민단순히 평론의 전문성을 넘어 장애예술 각 분야의 특수성과 차별성을 반영하는 한편, 지속적인 관찰 및 관람을 통해 해당 분야에 대한 인식이 두터운 평론가 섭외도 필요하다. 비평을 위한 비평이 아닌, 장애예술 각 분야에 관한 현장적 접근이 우선되어야 한다. 작품을 비평할 때 중요하게 부각해야 할 점으로 자신의 관심 논점을 부각하기보다 일차적으로 작품에 관한 이해와 그에 관해 제대로 조명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허명진장애의 영역을 접하면 접할수록, 일상이나 제도권에서의 언어가 얼마나 장애에 대한 차별을 만들어내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장애의 감각이 오히려 상상력을 풍부하게 열어주며 배움을 얻게 해줄 때가 적지 않지만, 정작 장애를 기술하는 언어는 결여나 부족함의 표현으로 나타나고 위계를 전제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접하는 시혜적, 포용적 수사에 전제된 것이 비장애인 중심의 관점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지점을 거의 의식하지 못할 만큼 우리의 삶이 충분히 장애의 영역을 접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 더군다나 비평이 언어를 통해 이러한 언어 자체의 한계와 모순을 어떻게 다루거나 비평할 수 있는지까지 나아가기 쉽지 않은 점 등이 공백처럼 남아 있는 듯하다.

남웅장르화된 장애예술은 비평의 범주를 한정한다. 그런가 하면 근간에 확장된 신체성을 다루는 비평언어는 장애를 개념적으로 사유하면서도 동시에 현실의 장애 의제를 희석하기 쉽다. 이는 장애의 사회적 개념과 당사자성의 문제를 교섭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생략한다.

안현정현재 장애예술 비평에서는 접근성, 대표성, 사회적 의미 부여가 주요 기준으로 반복되어왔다. 이러한 논의는 장애예술이 제도와 공공 영역 안으로 진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작품 자체를 분석하는 비평의 언어는 상대적으로 충분히 축적하지 못했다. 형식적 완성도, 미학적 선택, 실패와 반복, 작업을 둘러싼 권력 관계 등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다루어지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 결과 장애예술은 동시대 미술의 맥락 속에서 비교·분석되기보다, 보호되거나 의미화된 사례로 소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장애를 회피하거나 과도하게 상징화하지 않으면서 작품을 동시대 미술의 장면 속에 위치 짓는 일은 비평이 수행해야 할 핵심 과제다. 장애 유형과 작업 조건에 따라 드러나는 형식적 특징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읽혀야 하며, 이를 단일한 윤리적 기준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지금 장애예술 비평에 요구되는 것은 판단을 유예하는 태도가 아니라,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분석을 멈추지 않는 ‘비평의 진정성’이다.

양근애현재 장애예술 비평은 장애가 다루어진다는 사실 자체를 강조하는 데 비교적 익숙해졌지만, 그 예술이 실제로 무엇을 해냈는지는 충분히 말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접근성의 확보나 사회적 의미 부여는 여전히 중요한 쟁점이지만, 그것이 비평의 주요 초점으로 반복되면서 작품의 형식적 선택이나 미학적 성취, 혹은 실패와 시행착오의 과정은 상대적으로 후경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내 장애예술 현장에는 연극을 포함해 이미 20년 이상 작업을 이어온 단체들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시간의 축적이 비평적으로 충분히 추적되거나 평가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해외에서 유입된 장애예술 사례나 담론이 새로운 기준처럼 소비되면서, 한국 장애예술이 형성해 온 고유한 맥락과 실천은 단편적으로 소개되는 데 그치는 경우가 잦다. 또한 많은 비평이 관객의 감각이나 경험을 중심으로 서술되다 보니, 창작 과정에서 작동하는 권력관계나 제작 조건, 예술적 판단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는 데에는 조심스러움을 보인다. 그 결과 장애예술 비평은 작품을 평가하기보다 의미를 부여하는 언어에 머무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비평이 축적되기보다는 매번 새롭게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진아비평이 장애예술 작품에서 소수자 의제의 중요성과 정치적 역동성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종종 그 과정에서 작품을 납작하게 해석하거나 정치적·윤리적 당위를 재확인하는 것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한다. 또, 장애예술 작품만의 미학이 존재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해당 작품이 우리에게 감각적으로, 또 인식론적으로 어떤 놀라움을 주었는가를 비평이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작품이 아닌) 비평의 실패라고 생각한다. 비평의 역할이 작품을 해설하거나 의미화하는 것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평을 받는 일은 창작자에게 기쁜 일이겠지만, 비평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일을 글에서 반복하거나 작품의 의도를 따라가며 해설하고 의미를 강조해 주는 일이 늘 기쁘고 유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평가만의 시선과 관점이 좀 더 날카롭고 뾰족하게 보이는 글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을 통해 관객뿐 아니라 창작자까지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는 비평 말이다. 그런 시선들이 모여야 작품을 더 풍성하게 읽을 수 있으며, 장애예술을 더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현재는 장애예술을 보는 ‘정해진 시선’ 같은 것이 있는 느낌이다.

유연주연극비평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연기에 대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장애연극에서도 연기에 대한 분석이 쉽지 않다. 특히 장애예술가의 연기에 대한 적확한 언어를 고르는 것도 쉽지 않지만, 개개인마다 신체와 그 경험이 달라서 접근하기가 더 어렵다. 연기비평에 목마른 배우들이 직접 글을 써서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김신록, 『배우와 배우가』). 이처럼 연기를 전공하거나 배우로 활동하는 필자가 글을 써줄 때 도움이 된다.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자리가 자주 마련된다면 좋겠다. 또한 장애예술가, 관객의 불편함이 더 논의되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공연장의 문턱은 높고 장애예술가들만의 힘으로 공연을 올리기에는 극장의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장애예술에 수어 통역, 자막 사용 정도로 ‘배리어프리’ ‘포용적’ ‘무장애’ 같은 말을 붙여주는데, 이는 과도한 의미 부여라고 생각한다. 장애예술 비평에서 접근성은 이제 형식이 아니라 공연 자체의 미학이 되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접근성에 대한 논의는 아직 부족하다.

남웅

남웅

미술평론과 인권운동을 한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이다.
0123tem@hanmail.net

심정민

심정민

무용평론가이자 비평사학자. 한국춤평론가회 회장과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여러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현재 월간 무용전문지 [춤]과 [댄스포럼]에 고정 지면을 가지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국립극장, 예술의전당 등에서 심의·평가·자문 등을 맡아왔다. 저서로 『무용비평과 감상』(2020)과 『춤을 빛낸 아름다운 남성 무용가들』(2019) 외 다수가 있다.
21critic@naver.com

안현정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 박사. 전통미술과 동시대 미술, 공예와 장애예술을 아우르는 비평과 전시 기획을 수행해왔으며, 문화정책과 제도 현장을 기반으로 한 공공 미술 담론 형성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이자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artstory77@hanmail.net

양근애

양근애

연극평론가.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화의 미학적, 정치적 수행성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쓴다. 「다른 몸들, 복수의 언어, 감각의 분별」, 「드러냄과 머묾의 미학적 실천」, 「장애연극의 시간성과 극장 바깥의 연극」, 「장애연극의 접근성과 재현의 딜레마」 등을 썼다.
rootsfly@hanmail.net

유연주

유연주

연극평론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연극을 꿈꾼다.
likegoethe@nate.com

이진아

이진아

연극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비평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에 비평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tikicat@empas.com

정현

정현

미술평론가, 독립큐레이터, 인하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 장애인예술 비영리단체 잇자잇자 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이다. 예술가와 정체성의 상관성 연구로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조형예술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 시각예술 현장을 바탕으로 비평 생산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상뒤샹》(2013), 《시간의 밑줄》(2015)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공저로 『Art Cities of the Future_st Century Avant-Gardes』(2014), 『큐레토리얼 실천 담론』(2014), 『NFT, 처음 만난 세계』(2022) 등이 있다.
hyunjung68@inha.ac.kr

허명진

허명진

무용전문지 [몸] 기자를 거쳐 2003년 무용예술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공연예술지 [판] 편집위원, 국립현대무용단 교육&리서치 연구원을 거치면서 무용의 접점을 다변화하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choreia@hanmail.net

정리.남은정 프로젝트 궁리 기획자 archive0721@gmail.com

2026년 2월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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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