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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다시 쓸 권리

이슈 절박함과 두려움 사이, 지하철과 플랫폼의 거리

  • 홍성훈 작가
  • 등록일 2022-05-11
  • 조회수938

이슈

우주 어딘가쯤 지나고 있을 N에게.

N, 지금 넌 어디에 있을까. 한눈에도 튼튼해 보였던 너의 우주선을 생각할 때 지구의 대기권쯤은 가뿐히 통과했을 것 같고, 앞으로의 여정도 순조롭길 바라. 사실 나는 지구 밖 세계에 대해선 철저히 문외한이라서 지금도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을 너와 나의 거리가 잘 실감 나지 않아. 너를 만나서 팽창되었던 세계는 시간이 지나고 네가 없는 일상이 반복되면 지금 여기에서부터 다시 시작되겠지. 그럼에도 함께한 시간 동안 네가 들려준 그곳의 이야기를 오래 곱씹으며 나의 세계를 넓혀볼게.

사실 널 떠나보내고 오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어. 너와의 이별이 아쉽지만, 내가 한 선택이 맞을까 하는 생각에 쉬이 자리를 뜨지 못하겠더라. 지구를 떠나기 며칠 전 너는 내게 이런 부탁을 했어. 네가 돌아갈 별에 있는 동료들에게 지금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이지. 그 부탁을 듣고선 많이 당황스러웠어. 너의 부탁은 오롯이 나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인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며칠 밤낮을 토론해야 했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는데 그래도 잠깐 동안이나마 내 머릿속에선 이런 장면들이 떠올랐어. 한 달 내내 꺼지지 않는 산불, 갈라진 빙하에서 몇 날 며칠을 꼼짝하지 못하는 북극곰, 전쟁에서 아무런 까닭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 지금도 공장에서 살과 뼈가 찢겨나가고 있을 소와 닭, 돼지, 그 외 셀 수도 없는 동물들…. 이토록 중요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지만 쉬이 용기가 나지 않았어. 다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각각의 슬픔을 제대로 배우는 거라고 생각해. 만약 네가 다시 지구에 온다면 그 슬픔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 이야기를 들려줄게. 그리고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도록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볼게.

아무튼, 결국 너에게 들려주었던 것은 그나마 내가 아는 이야기였지. 나는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N, 너의 별에서 20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속도로 흐르고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여기에서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일 거야. 한 사람이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시간이기도 해. 그 시간 동안 줄곧 싸워온 사람들이 있다면, 네 동료들은 이 이야기를 믿을 수 있을까? 이건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데, 어떤 사람들은 그 시간 동안 싸움을 이어나갔어. 싸움의 목적은 ‘안전하게 이동하고,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는 것’이었지.

인간 사회에선 이들을 ‘장애인’이라고 불러. 나도 그중 한 명이고. 나라에 따라서 상황은 다른데, 내가 있는 한국의 경우 오랫동안 장애인들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가 없었어.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이 세계 대부분이 장애인의 몸에 부적합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이야. 누군가는 단지 어딘가로 가려고 했을 뿐인데, 다치거나 죽기도 했어.

그거 알아? 이 세계는 생물이 아닌 것들에도 표정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교통수단이나 건물에는 제각각 표정이 깃들어 있어. 휠체어리프트를 탈 때마다 추락하지 않을 ‘운’에 기대어야 하고, 휠체어 바퀴가 지하철 승강장 사이로 빠지지 않도록 온 전력을 다해야 하는 몸으로 살다 보니 그 표정을 자주 보는데, 여전히 내가 마주치는 표정들은 썩 좋진 않아. 어떨 때는 그것들의 표정이 사람들에게까지 옮겨 가는 듯한 착각도 들어. 이를테면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탈 때 이대로 기다렸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휠체어를 들이밀어야 할 때. 그건 자연스럽고 꼭 필요한 일인데도 따가운 시선이 꽂혀서 뒤통수가 팽팽히 당겨지는 느낌이 들어. 그 느낌을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까?

또 여전히 엘리베이터마저 없는 곳이 많아서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곤 하는데, 리프트를 탄다는 건 항상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일이야. 조금 쉽게 설명하면, 우주선 뚜껑을 열고 벨트를 푼 채 우주를 건너간다고 생각하면 돼. 넌 그 우주선에 몸을 맡길 수 있겠니?

이러한 불균등한 공간을 따라 시간도 불평등하게 흐르고 있어. 시간만큼은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말은 어떤 점에서는 기만적인 표현에 가까워.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시간은 거의 멈춰 있거나 삭제되는 경우가 많아. 반면에 이동하는 데 불편이 없는 사람들의 시간은 빠른 속도로, 또는 매끄럽게 흐르지. 바로 이 시간의 편차, 혹은 속도의 편차가 구조적 불평등을 만든다고 생각해. 그건 장애인을 사회에서 지워내는 효과를 만들어내거든.

그런데 20년 전, 이 불평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어. 더 이상 사회에서 지워지기를 거부하는, ‘싸우는’ 장애인 활동가들이었지. 이들은 계단만 있는 버스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에서 장애인이 겪는 차별과 불평등을 말했어. 이런 사회 환경이 변하지 않는 한 비장애인인 당신들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고, 차별과 불평등으로 점철된 이 사회를 바꿔야 하지 않겠냐고. 아마 비장애인의 입장에선 여태껏 듣지 못한 생소하고 날것 그대로의 언어들이었을 거야. 그 언어들이 굴러가던 버스를 세우고, 지하철을 막았어. 그건 마치 앞으로 치닫기만 했던 사회를 멈추는 것과 같은 순간이었어.

나는 이 20년 전의 순간을 기록한 영화 <버스를 타자: 장애인 이동권 투쟁 보고서>(박종필 감독, 2002)를 보았는데 잠시 말을 잇지 못했어. 특히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건 영화 중간중간에 보였던 장애인 활동가들의 표정이었어. 물론 활동가들이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버스에 쇠사슬로 자기 몸을 묶을 때는 더없이 비장한 표정이었지만 그 사이사이 해맑은 표정들이 언뜻 비치기도 했었어. 그 표정의 의미를 하나하나 해석할 수 없지만 어떤 표정은 조금씩 변화되는 세계를 신기해하는 것처럼 보였어. 마치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 듯한 표정들 같았달까? 실제로 2002년 이동권 투쟁을 기록한 글들을 보면, 장애인 당사자들이 투쟁에 참여하면 할수록 눈에 띄게 밝아지고 유쾌해졌다고 해. 이동권 투쟁은 한편으로 집안에서만 지내던 당사자들이 밖으로 나와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고 동료들 간의 지지를 만들어냈어. 그건 자신들에게 부여된 기존의 낡은 세계의 문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권리의 언어를 재발명하는 과정이었어. 가장 반짝거리는 건 ‘이동권’이라는 아주 섹시한 단어였지.

하지만 ‘완성되는’ 권리는 없듯, 장애인들의 이동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야. 20년 전과 비교해도 별반 나아지는 건 없었어. 여전히 많은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불편을 겪고 몇몇은 죽기도 해. 또 많은 시설에서 쥐죽은 듯 사는 삶을 강요받고 있지. 이러한 비극에 맞서 우리는 작년 12월부터 다시 지하철을 멈춰 세우고 있어. 우리의 요구는 20년 전과 거의 동일한데, 우리를 향한 혐오와 차별적인 언어는 더 정교해졌고, 아프게 쏟아지더라. 하지만 달라진 것도 있어. 바로 우리가 우리를 정의하는 언어가 달라졌다는 것, 비장애 중심적인 세계를 해체하는 발칙한 사유를 곳곳에서 과감히 시도하고 있다는 거야. 어떤 이들은 여전히 비장애인의 문법에 맞춰 장애인의 몸에서 모멸감과 수치심을 읽어내지만, 우리는 ‘권리를 만들어내는 몸의 서사’를 새롭게 쓰는 중이야.

N, 지금까지 장황하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나도 굉장히 두려워. 나는 소심하고 소심해서 지하철 투쟁을 나갈 때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가. 절박함과 두려움 간의 거리는 지하철과 플랫폼 사이의 간격과 비슷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곤 해. 그런데도 한번 꿈꿔보고 싶어. 장애인도 안전하게 이동하고 지워지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회를. 그리고 보다 권리를 다시 쓸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을.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세상이 발칙한 권리로 넘쳐나기를 바라.
그럼 안녕.

- 너의 무사귀환을 빌며 씀.

홍성훈

홍성훈

글을 쓰는 사람이다. ‘장애’를 화두로 예술작업을 하는 것에 관심이 많고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는 일을 도모하기를 좋아한다. 현재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근무하며 장애인 운동을 하고 있다. 연극 <관람모드: 만나는 방식> <내가 말하기 시작할 때> 등에 참여했다.
sunghun8786@naver.com

사진 제공. 정택용 @0set프로젝트

2022년 5월 (30호)

상세내용

이슈

우주 어딘가쯤 지나고 있을 N에게.

N, 지금 넌 어디에 있을까. 한눈에도 튼튼해 보였던 너의 우주선을 생각할 때 지구의 대기권쯤은 가뿐히 통과했을 것 같고, 앞으로의 여정도 순조롭길 바라. 사실 나는 지구 밖 세계에 대해선 철저히 문외한이라서 지금도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을 너와 나의 거리가 잘 실감 나지 않아. 너를 만나서 팽창되었던 세계는 시간이 지나고 네가 없는 일상이 반복되면 지금 여기에서부터 다시 시작되겠지. 그럼에도 함께한 시간 동안 네가 들려준 그곳의 이야기를 오래 곱씹으며 나의 세계를 넓혀볼게.

사실 널 떠나보내고 오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어. 너와의 이별이 아쉽지만, 내가 한 선택이 맞을까 하는 생각에 쉬이 자리를 뜨지 못하겠더라. 지구를 떠나기 며칠 전 너는 내게 이런 부탁을 했어. 네가 돌아갈 별에 있는 동료들에게 지금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이지. 그 부탁을 듣고선 많이 당황스러웠어. 너의 부탁은 오롯이 나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인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며칠 밤낮을 토론해야 했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는데 그래도 잠깐 동안이나마 내 머릿속에선 이런 장면들이 떠올랐어. 한 달 내내 꺼지지 않는 산불, 갈라진 빙하에서 몇 날 며칠을 꼼짝하지 못하는 북극곰, 전쟁에서 아무런 까닭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 지금도 공장에서 살과 뼈가 찢겨나가고 있을 소와 닭, 돼지, 그 외 셀 수도 없는 동물들…. 이토록 중요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지만 쉬이 용기가 나지 않았어. 다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각각의 슬픔을 제대로 배우는 거라고 생각해. 만약 네가 다시 지구에 온다면 그 슬픔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 이야기를 들려줄게. 그리고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도록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볼게.

아무튼, 결국 너에게 들려주었던 것은 그나마 내가 아는 이야기였지. 나는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N, 너의 별에서 20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속도로 흐르고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여기에서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일 거야. 한 사람이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시간이기도 해. 그 시간 동안 줄곧 싸워온 사람들이 있다면, 네 동료들은 이 이야기를 믿을 수 있을까? 이건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데, 어떤 사람들은 그 시간 동안 싸움을 이어나갔어. 싸움의 목적은 ‘안전하게 이동하고,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는 것’이었지.

인간 사회에선 이들을 ‘장애인’이라고 불러. 나도 그중 한 명이고. 나라에 따라서 상황은 다른데, 내가 있는 한국의 경우 오랫동안 장애인들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가 없었어.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이 세계 대부분이 장애인의 몸에 부적합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이야. 누군가는 단지 어딘가로 가려고 했을 뿐인데, 다치거나 죽기도 했어.

그거 알아? 이 세계는 생물이 아닌 것들에도 표정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교통수단이나 건물에는 제각각 표정이 깃들어 있어. 휠체어리프트를 탈 때마다 추락하지 않을 ‘운’에 기대어야 하고, 휠체어 바퀴가 지하철 승강장 사이로 빠지지 않도록 온 전력을 다해야 하는 몸으로 살다 보니 그 표정을 자주 보는데, 여전히 내가 마주치는 표정들은 썩 좋진 않아. 어떨 때는 그것들의 표정이 사람들에게까지 옮겨 가는 듯한 착각도 들어. 이를테면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탈 때 이대로 기다렸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휠체어를 들이밀어야 할 때. 그건 자연스럽고 꼭 필요한 일인데도 따가운 시선이 꽂혀서 뒤통수가 팽팽히 당겨지는 느낌이 들어. 그 느낌을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까?

또 여전히 엘리베이터마저 없는 곳이 많아서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곤 하는데, 리프트를 탄다는 건 항상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일이야. 조금 쉽게 설명하면, 우주선 뚜껑을 열고 벨트를 푼 채 우주를 건너간다고 생각하면 돼. 넌 그 우주선에 몸을 맡길 수 있겠니?

이러한 불균등한 공간을 따라 시간도 불평등하게 흐르고 있어. 시간만큼은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말은 어떤 점에서는 기만적인 표현에 가까워.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시간은 거의 멈춰 있거나 삭제되는 경우가 많아. 반면에 이동하는 데 불편이 없는 사람들의 시간은 빠른 속도로, 또는 매끄럽게 흐르지. 바로 이 시간의 편차, 혹은 속도의 편차가 구조적 불평등을 만든다고 생각해. 그건 장애인을 사회에서 지워내는 효과를 만들어내거든.

그런데 20년 전, 이 불평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어. 더 이상 사회에서 지워지기를 거부하는, ‘싸우는’ 장애인 활동가들이었지. 이들은 계단만 있는 버스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에서 장애인이 겪는 차별과 불평등을 말했어. 이런 사회 환경이 변하지 않는 한 비장애인인 당신들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고, 차별과 불평등으로 점철된 이 사회를 바꿔야 하지 않겠냐고. 아마 비장애인의 입장에선 여태껏 듣지 못한 생소하고 날것 그대로의 언어들이었을 거야. 그 언어들이 굴러가던 버스를 세우고, 지하철을 막았어. 그건 마치 앞으로 치닫기만 했던 사회를 멈추는 것과 같은 순간이었어.

나는 이 20년 전의 순간을 기록한 영화 <버스를 타자: 장애인 이동권 투쟁 보고서>(박종필 감독, 2002)를 보았는데 잠시 말을 잇지 못했어. 특히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건 영화 중간중간에 보였던 장애인 활동가들의 표정이었어. 물론 활동가들이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버스에 쇠사슬로 자기 몸을 묶을 때는 더없이 비장한 표정이었지만 그 사이사이 해맑은 표정들이 언뜻 비치기도 했었어. 그 표정의 의미를 하나하나 해석할 수 없지만 어떤 표정은 조금씩 변화되는 세계를 신기해하는 것처럼 보였어. 마치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 듯한 표정들 같았달까? 실제로 2002년 이동권 투쟁을 기록한 글들을 보면, 장애인 당사자들이 투쟁에 참여하면 할수록 눈에 띄게 밝아지고 유쾌해졌다고 해. 이동권 투쟁은 한편으로 집안에서만 지내던 당사자들이 밖으로 나와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고 동료들 간의 지지를 만들어냈어. 그건 자신들에게 부여된 기존의 낡은 세계의 문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권리의 언어를 재발명하는 과정이었어. 가장 반짝거리는 건 ‘이동권’이라는 아주 섹시한 단어였지.

하지만 ‘완성되는’ 권리는 없듯, 장애인들의 이동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야. 20년 전과 비교해도 별반 나아지는 건 없었어. 여전히 많은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불편을 겪고 몇몇은 죽기도 해. 또 많은 시설에서 쥐죽은 듯 사는 삶을 강요받고 있지. 이러한 비극에 맞서 우리는 작년 12월부터 다시 지하철을 멈춰 세우고 있어. 우리의 요구는 20년 전과 거의 동일한데, 우리를 향한 혐오와 차별적인 언어는 더 정교해졌고, 아프게 쏟아지더라. 하지만 달라진 것도 있어. 바로 우리가 우리를 정의하는 언어가 달라졌다는 것, 비장애 중심적인 세계를 해체하는 발칙한 사유를 곳곳에서 과감히 시도하고 있다는 거야. 어떤 이들은 여전히 비장애인의 문법에 맞춰 장애인의 몸에서 모멸감과 수치심을 읽어내지만, 우리는 ‘권리를 만들어내는 몸의 서사’를 새롭게 쓰는 중이야.

N, 지금까지 장황하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나도 굉장히 두려워. 나는 소심하고 소심해서 지하철 투쟁을 나갈 때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가. 절박함과 두려움 간의 거리는 지하철과 플랫폼 사이의 간격과 비슷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곤 해. 그런데도 한번 꿈꿔보고 싶어. 장애인도 안전하게 이동하고 지워지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회를. 그리고 보다 권리를 다시 쓸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을.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세상이 발칙한 권리로 넘쳐나기를 바라.
그럼 안녕.

- 너의 무사귀환을 빌며 씀.

홍성훈

홍성훈

글을 쓰는 사람이다. ‘장애’를 화두로 예술작업을 하는 것에 관심이 많고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는 일을 도모하기를 좋아한다. 현재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근무하며 장애인 운동을 하고 있다. 연극 <관람모드: 만나는 방식> <내가 말하기 시작할 때> 등에 참여했다.
sunghun8786@naver.com

사진 제공. 정택용 @0set프로젝트

2022년 5월 (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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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23: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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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행성에서 일어나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걸 다시금 느껴요. 더 많은 섹시한 일이, 섹시한 단어가 이 세계 생물들의 숨을 더 반짝이게 하기를 기원합니다.

2022-05-12 11: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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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훈이의 고민이 이모의 고민과 다르지 않는 건 동시대에 사는 동지이기 때문일까? 절절하고 소중한 마음을 잘 보고 간다, 성훈아~~ 오 성훈작가님~~♡♡ 늘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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