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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식 미술작가

인터뷰 꾸준한 꿈

  • 박수지 독립 큐레이터
  • 등록일 2022-10-26
  • 조회수1145

인터뷰

촬영을 위해 붓을 문 임경식 작가는 이전에 칠해놓은 녹색의 덤불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색을 바꾸느라 한동안 붓을 내려놓지 못했다. 임경식 작가의 입이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연보랏빛 오묘한 색의 물감이 캔버스 위를 덮어나갔다. 19세 때 교통사고 후 장애가 생긴 지 13년 만에 시작한 그림인데, 이제 그는 올해로 13년 차 전업 작가다. 어느덧 5회의 개인전과 40여 회의 단체전이 그의 이력을 가득 채운다. 임경식 작가는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그리고, 왜 그릴까? 인천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임경식 작가를 만나 작업 세계를 들어보았다.

그림을 시작하고, 계속하고

작가로서의 일과가 궁금하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두고 작업을 하는 편인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붓을 드는 편인가?

전자에 속한다. 그림을 업으로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해왔던 습관이라 지금까지 쭉 이어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세계구족화가협회 가입을 목표로 삼았다. 그때는 그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그림을 그리든 안 그리든 무조건 앉아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몸이 불편하니 작업 준비를 직접 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도와주는 분과 시간도 맞춰야 했다. 매일 오전에 서너 시간, 오후에 서너 시간 정도 나눠서 작업을 한다. 일주일에 두 번 화실에 가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집에서 작업하는 게 루틴이 되었다.

화실에서 하는 작업과 집에서 하는 작업에 차이가 있나?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화실에서는 큰 그림을 그리기가 조금 어렵다. 집에는 전동 이젤이 있어 상하좌우로 움직여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집에서 작업한 그림을 화실에 가져가면 지도 선생님들의 코멘트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작업에 관해 대화를 나누러 화실을 찾곤 한다.

동료 비평을 활발히 나누는 것 같다.

그런 시간이 상당히 중요하다. 집에서 혼자 작업을 하면 생각이 갇히기 마련이다. 화실에 가면 다른 사람들이 그림 그리는 것도 볼 수 있고, 지도해 주시는 분들이 현재 활동하는 작가, 교수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사고 후 13년 만에 그림을 시작한 뒤로 매년 활발한 작업 활동과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유튜브를 선생님 삼아 처음 그림을 시작했을 때와 그림에 관한 연륜이 쌓인 지금, 작가로서 그림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예전하고 지금하고 크게 차이가 없다.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그림은 어렵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업하며 폐쇄적이었던 생각이나 마음이 그림을 통해서 어느 정도 치유되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내가 느꼈던 것처럼 보는 분들에게도 내 그림이 어렵지 않게 다가가길 희망하는 마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았다.

<꿈을 꾸다> 연작의 시작

풍경 위주의 그림을 그리다가 금붕어를 그리면서 <꿈을 꾸다> 연작이 시작되었다. 어항 위로 떠올라 있는 금붕어 그림은 아주 단순하지만, 금붕어의 위치나 어항과의 관계가 새롭다.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는 다른 사람의 풍경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림에서 나를 조금 더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던 차에 화실에서 지도하는 선생님도 비슷한 조언을 해주었다. 생각이 많아졌던 때다. 어떤 소재로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다 어항 속에 있는 금붕어가 생각났다. 어항 속에서만 갇혀 사는 금붕어와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사는 내 모습이 어쩌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붕어를 자유롭게 내보이면 어떨까 생각했다. <꿈을 꾸다> 연작은 자유, 자유에 관한 꿈, 세상과 소통하는 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끔 금붕어 말고도 거북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거북이는 느릿느릿하다. 내가 하는 작업 역시 비장애인에 비해 속도가 매우 느리다. 입으로 붓을 들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작업 시간은 상대적으로 느리더라도 꾸준히 묵묵하게 이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에 등장한 동물이다.

그림을 그릴 때 연필 스케치를 먼저 하는가?

비장애인은 스케치할 때 손목을 돌려가면서 연필을 눕히거나 세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오롯이 나무에 연결된 연필을 입으로 물고 그려야 해서 연필심 부분이 마치 송곳처럼 느껴진다. 그에 비해 유화는 스케치할 필요 없이 바로 캔버스에 그릴 수 있다. 붓은 연필보다 그 끝이 부드러워 붓으로 하는 스케치는 훨씬 유연하다. 물감이 마르는 대로 다시 층을 얹어가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유화의 장점 또한 선호한다. 연필과 수채를 사용하던 작업에서 유화로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선호하는 재료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지금 그리는 그림은 모두 유화다. 색으로 말하면 푸른색을 가장 좋아한다. 작가는 고정관념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푸른 계열의 색을 좋아해서 많이 사용한다.

파란색은 작가가 가장 선호하는 색상이고, 그만큼 많이 다뤄온 색상이며, 이해가 더 깊어진 색상일 수 있다. 그림을 통해서 혹은 그림에서 더 성취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

<꿈을 꾸다> 연작을 계속해나가는 과정에서 색의 변주도 과제 중 하나다. 전체적으로는 ‘이 시리즈를 어떻게 끌고 나가느냐’ 또 ‘어떻게 변화를 주면서 작업을 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꿈을 꾸다> 연작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꿈을 계속 꿔야 할 것 같고, 꿈을 꾸다 보면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아, 당분간 <꿈을 꾸다> 연작을 이어 나가려고 한다.

그림을 보면 현실적인 요소가 들어있지만, 그것이 그림 안에서 배치된 방식은 굉장히 환상적인 것 같다.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에서도 집, 사람, 금붕어, 고래가 있지만 그것들이 원래 응당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장소에 있지 않고, 떠 있거나 그 크기가 사실과 같지 않다.

그게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집이라던가, 어항이라던가 소재의 큰 틀을 설계한 뒤 작업하며 순간순간 생각날 때 재밌을 것 같은 요소를 추가한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동심 어린 느낌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런 방향의 아이디어로, 몽환적인 느낌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 느낌에 맞는 아이디어를 찾아 그린다. 그래서 이 <꿈을 꾸다> 연작이 나에게 더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물론 생각에는 고통이 따른다.

  • 휠체어를 탄 구족화가 임경식
  • 휠체어를 탄 구족화가 임경식

창작을 함께할 장소

지금 안양에 있는 장애예술인 창작공간 소울음아트센터에서 이사로 계신다고 들었다. 어떤 단체인가?

소울음아트센터를 만드신 고 최진섭 원장님도 나처럼 중증장애인이셨다. 1992년에 선천적, 후천적 장애를 입은 사람들의 “장애인 그림공간 소울음”으로 시작했으니 꼬박 30년이 된 단체다. 장애 작가들은 대부분 소울음아트센터를 알 정도로 원장님께서 상당히 공을 들여 운영했다. 처음에는 원장님 혼자 사비와 민간 지원으로 꾸려가다 얼마 전부터 사단법인으로 바뀌면서 안양시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원장님의 취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그림 그리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고, 그 취지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매주 현직 작가 세 분이 센터에 온다. 그림을 배우고 싶은 장애인이나 재능 있는 장애인이 전문 미술 교육을 받으면서 정서적으로 재활치료를 한다든가, 전업 작가로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살고 계신 인천과 안양은 거리가 꽤 멀다. 그런데도 소울음아트센터를 찾는 이유가 있는가?

그림을 시작하면서 한 1년간은 홀로 집에서만 그렸다. 점차 그림에 욕심이 생기다 보니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인천 이곳저곳을 알아봤는데, 그 당시에는 마땅한 곳이 없었다. 장애인을 교육하거나 장애인이 모여서 그림을 그리는 곳이 없어서 서울까지 찾아가 배울 정도였다. 홍익대학교 미술교육원에 갔었는데 수업하는 학생 스무 명 남짓 중에 장애인은 나 혼자였다. 그런데 소울음아트센터에 가보니 원장님도 중증장애인이신데다 지도도 열심이셨고, 다른 장애인들도 많았다. 작업하는 환경이 무척 편안하게 다가왔다. 그러다 보니 매주 가게 된 것이 벌써 10년이 되었다. 처음 작업을 해나갈 때 지금 회원들이 많이 도와주었고,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었다. 미술 재료를 보내주기도 하고 시도해보라는 응원을 많이 해줬다. 그렇게 도움을 받으며 ‘업으로 삼고 자립할 수 있는 게 그림이다’라는 목표가 생기면서 그동안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었던 그림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인천에 거주하는 예술가로서, 인천 지역 문화예술기관이 장애예술 지원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라는 부분이 있나?

우선 인천에 예술을 하는 장애인분들이 많이 드러나면 좋겠다. 작업하는 분들이 많아져야 우리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시를 하고 있는데 전시장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이다. 그래서 정작 참여작가인 나는 올라가 보지 못하고 영상과 사진으로 전시장을 봤다. 인천만 열악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당장은 어떤 식의 정책적 개선보다는 오히려 장애예술인들의 활동 자체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활동량이 기반이 된 뒤에 여기에 더해 시 차원에서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장애예술 활동을 지원한다거나 매개하는 등의 지원 사업이 있겠지만, 그 밑바탕에 어떤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관심일 것 같다. 행정적으로 지원해주는 것보다는 개인의 관심이 있어야 지원을 해도 사업 운영하는 방식이 다를 게 아닌가. 거시적인 차원의 관심보다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한 명의 개인으로서 그리고 또 작가로서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개인적인 꿈은 간단하다. 나는 중증장애인이라 건강상 매우 취약하다. 합병증이나 욕창이 늘 도사리고 있다. 만약에 욕창이라도 생기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만 누워있어야 한다. 작업을 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기 위해 계속 꾸준히 그림을 그리는 게 나의 꿈이다. 중증장애인으로서는 꾸준함에 대한 절실함이 더욱 크다.

그동안 전시를 꽤 많이 했는데, 전시하면서 받은 피드백 중 인상 깊었던 코멘트가 있었나?

전시 관객은 아닌데 유튜브에 올라간 내 자료에 달린 댓글을 살피다가 어떤 분이 내 그림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써놓은 글을 봤다. 나도 상황이 많이 힘든 가운데서 했던 작업이었다. 그 그림을 보며 자신이 엄청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림이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고 ‘내가 가졌던 감정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감정하고 비슷할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원래 댓글을 안 남기는데, 내 그림을 통해서 아픈 마음이 좀 가라앉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직접 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림이 원래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가는 시간이 쌓일수록 우리는 계속해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언제 누구를 알게 될지 모르면서 그 만남의 시간을 기다리다 보면 삶이 채워지고야 마는 것이다. ‘꿈을 그리는 화가’ 임경식이 지난 시간 동안 만나온 관객만큼이나 그가 알게 될 관객은 아직도 많은 것 같다. 임경식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작업을 통해 얻는 기쁨은 선명하다. 이 동력과 기쁨을 나누고 넓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자연스럽고 꾸준한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 우리는 어떤 꿈을 어떻게 꾸어야 할까?

  • 임경식 작가가 붓 끝에 길게 연결한 나무 부분을 입에 물고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 긴 나무 막대를 연결한 여러 개의 붓

임경식

세계구족화가협회, 한국장애인미술협회 회원, 소울음아트센터 이사. 지체장애로 집에서만 지내다가 그림을 접하고 수소문 끝에 소울음작가회를 알게 되었고, 2008년부터 미술을 시작했다. 2012년 홍익대학교 미술디자인 교육원 수료하고 같은 해에 대한민국 환경미술대전에서 입상했다. 2013년 장애인 기능경기대회, 2014년 장애인 미술대전 등을 수상했고, 2021년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일어서는 사람들의 기록전, 한중일 장애인 미술교류전, LG U+ 구족회화 특별전 등 다수의 그룹전 및 단체전에 참여했다.
soopulim3@hanmail.net

박수지

독립 큐레이터. 큐레토리얼 에이전시 뤄뤼(AGENCY RARY)를 운영하고, 기획자 공동 플랫폼 웨스(WESS)를 공동 운영한다.
suzysomapark@gmail.com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gmail.com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 제공. 임경식

2022년 11월 (36호)

박수지

박수지 

독립 큐레이터. 큐레토리얼 에이전시 뤄뤼(AGENCY RARY)를 운영하고, 기획자 공동 플랫폼 웨스(WESS)를 공동 운영한다.
suzysomapark@gmail.com

상세내용

인터뷰

촬영을 위해 붓을 문 임경식 작가는 이전에 칠해놓은 녹색의 덤불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색을 바꾸느라 한동안 붓을 내려놓지 못했다. 임경식 작가의 입이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연보랏빛 오묘한 색의 물감이 캔버스 위를 덮어나갔다. 19세 때 교통사고 후 장애가 생긴 지 13년 만에 시작한 그림인데, 이제 그는 올해로 13년 차 전업 작가다. 어느덧 5회의 개인전과 40여 회의 단체전이 그의 이력을 가득 채운다. 임경식 작가는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그리고, 왜 그릴까? 인천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임경식 작가를 만나 작업 세계를 들어보았다.

그림을 시작하고, 계속하고

작가로서의 일과가 궁금하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두고 작업을 하는 편인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붓을 드는 편인가?

전자에 속한다. 그림을 업으로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해왔던 습관이라 지금까지 쭉 이어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세계구족화가협회 가입을 목표로 삼았다. 그때는 그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그림을 그리든 안 그리든 무조건 앉아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몸이 불편하니 작업 준비를 직접 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도와주는 분과 시간도 맞춰야 했다. 매일 오전에 서너 시간, 오후에 서너 시간 정도 나눠서 작업을 한다. 일주일에 두 번 화실에 가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집에서 작업하는 게 루틴이 되었다.

화실에서 하는 작업과 집에서 하는 작업에 차이가 있나?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화실에서는 큰 그림을 그리기가 조금 어렵다. 집에는 전동 이젤이 있어 상하좌우로 움직여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집에서 작업한 그림을 화실에 가져가면 지도 선생님들의 코멘트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작업에 관해 대화를 나누러 화실을 찾곤 한다.

동료 비평을 활발히 나누는 것 같다.

그런 시간이 상당히 중요하다. 집에서 혼자 작업을 하면 생각이 갇히기 마련이다. 화실에 가면 다른 사람들이 그림 그리는 것도 볼 수 있고, 지도해 주시는 분들이 현재 활동하는 작가, 교수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사고 후 13년 만에 그림을 시작한 뒤로 매년 활발한 작업 활동과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유튜브를 선생님 삼아 처음 그림을 시작했을 때와 그림에 관한 연륜이 쌓인 지금, 작가로서 그림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예전하고 지금하고 크게 차이가 없다.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그림은 어렵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업하며 폐쇄적이었던 생각이나 마음이 그림을 통해서 어느 정도 치유되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내가 느꼈던 것처럼 보는 분들에게도 내 그림이 어렵지 않게 다가가길 희망하는 마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았다.

<꿈을 꾸다> 연작의 시작

풍경 위주의 그림을 그리다가 금붕어를 그리면서 <꿈을 꾸다> 연작이 시작되었다. 어항 위로 떠올라 있는 금붕어 그림은 아주 단순하지만, 금붕어의 위치나 어항과의 관계가 새롭다.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는 다른 사람의 풍경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림에서 나를 조금 더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던 차에 화실에서 지도하는 선생님도 비슷한 조언을 해주었다. 생각이 많아졌던 때다. 어떤 소재로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다 어항 속에 있는 금붕어가 생각났다. 어항 속에서만 갇혀 사는 금붕어와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사는 내 모습이 어쩌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붕어를 자유롭게 내보이면 어떨까 생각했다. <꿈을 꾸다> 연작은 자유, 자유에 관한 꿈, 세상과 소통하는 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끔 금붕어 말고도 거북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거북이는 느릿느릿하다. 내가 하는 작업 역시 비장애인에 비해 속도가 매우 느리다. 입으로 붓을 들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작업 시간은 상대적으로 느리더라도 꾸준히 묵묵하게 이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에 등장한 동물이다.

그림을 그릴 때 연필 스케치를 먼저 하는가?

비장애인은 스케치할 때 손목을 돌려가면서 연필을 눕히거나 세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오롯이 나무에 연결된 연필을 입으로 물고 그려야 해서 연필심 부분이 마치 송곳처럼 느껴진다. 그에 비해 유화는 스케치할 필요 없이 바로 캔버스에 그릴 수 있다. 붓은 연필보다 그 끝이 부드러워 붓으로 하는 스케치는 훨씬 유연하다. 물감이 마르는 대로 다시 층을 얹어가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유화의 장점 또한 선호한다. 연필과 수채를 사용하던 작업에서 유화로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선호하는 재료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지금 그리는 그림은 모두 유화다. 색으로 말하면 푸른색을 가장 좋아한다. 작가는 고정관념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푸른 계열의 색을 좋아해서 많이 사용한다.

파란색은 작가가 가장 선호하는 색상이고, 그만큼 많이 다뤄온 색상이며, 이해가 더 깊어진 색상일 수 있다. 그림을 통해서 혹은 그림에서 더 성취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

<꿈을 꾸다> 연작을 계속해나가는 과정에서 색의 변주도 과제 중 하나다. 전체적으로는 ‘이 시리즈를 어떻게 끌고 나가느냐’ 또 ‘어떻게 변화를 주면서 작업을 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꿈을 꾸다> 연작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꿈을 계속 꿔야 할 것 같고, 꿈을 꾸다 보면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아, 당분간 <꿈을 꾸다> 연작을 이어 나가려고 한다.

그림을 보면 현실적인 요소가 들어있지만, 그것이 그림 안에서 배치된 방식은 굉장히 환상적인 것 같다.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에서도 집, 사람, 금붕어, 고래가 있지만 그것들이 원래 응당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장소에 있지 않고, 떠 있거나 그 크기가 사실과 같지 않다.

그게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집이라던가, 어항이라던가 소재의 큰 틀을 설계한 뒤 작업하며 순간순간 생각날 때 재밌을 것 같은 요소를 추가한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동심 어린 느낌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런 방향의 아이디어로, 몽환적인 느낌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 느낌에 맞는 아이디어를 찾아 그린다. 그래서 이 <꿈을 꾸다> 연작이 나에게 더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물론 생각에는 고통이 따른다.

  • 휠체어를 탄 구족화가 임경식
  • 휠체어를 탄 구족화가 임경식

창작을 함께할 장소

지금 안양에 있는 장애예술인 창작공간 소울음아트센터에서 이사로 계신다고 들었다. 어떤 단체인가?

소울음아트센터를 만드신 고 최진섭 원장님도 나처럼 중증장애인이셨다. 1992년에 선천적, 후천적 장애를 입은 사람들의 “장애인 그림공간 소울음”으로 시작했으니 꼬박 30년이 된 단체다. 장애 작가들은 대부분 소울음아트센터를 알 정도로 원장님께서 상당히 공을 들여 운영했다. 처음에는 원장님 혼자 사비와 민간 지원으로 꾸려가다 얼마 전부터 사단법인으로 바뀌면서 안양시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원장님의 취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그림 그리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고, 그 취지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매주 현직 작가 세 분이 센터에 온다. 그림을 배우고 싶은 장애인이나 재능 있는 장애인이 전문 미술 교육을 받으면서 정서적으로 재활치료를 한다든가, 전업 작가로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살고 계신 인천과 안양은 거리가 꽤 멀다. 그런데도 소울음아트센터를 찾는 이유가 있는가?

그림을 시작하면서 한 1년간은 홀로 집에서만 그렸다. 점차 그림에 욕심이 생기다 보니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인천 이곳저곳을 알아봤는데, 그 당시에는 마땅한 곳이 없었다. 장애인을 교육하거나 장애인이 모여서 그림을 그리는 곳이 없어서 서울까지 찾아가 배울 정도였다. 홍익대학교 미술교육원에 갔었는데 수업하는 학생 스무 명 남짓 중에 장애인은 나 혼자였다. 그런데 소울음아트센터에 가보니 원장님도 중증장애인이신데다 지도도 열심이셨고, 다른 장애인들도 많았다. 작업하는 환경이 무척 편안하게 다가왔다. 그러다 보니 매주 가게 된 것이 벌써 10년이 되었다. 처음 작업을 해나갈 때 지금 회원들이 많이 도와주었고,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었다. 미술 재료를 보내주기도 하고 시도해보라는 응원을 많이 해줬다. 그렇게 도움을 받으며 ‘업으로 삼고 자립할 수 있는 게 그림이다’라는 목표가 생기면서 그동안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었던 그림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인천에 거주하는 예술가로서, 인천 지역 문화예술기관이 장애예술 지원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라는 부분이 있나?

우선 인천에 예술을 하는 장애인분들이 많이 드러나면 좋겠다. 작업하는 분들이 많아져야 우리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시를 하고 있는데 전시장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이다. 그래서 정작 참여작가인 나는 올라가 보지 못하고 영상과 사진으로 전시장을 봤다. 인천만 열악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당장은 어떤 식의 정책적 개선보다는 오히려 장애예술인들의 활동 자체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활동량이 기반이 된 뒤에 여기에 더해 시 차원에서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장애예술 활동을 지원한다거나 매개하는 등의 지원 사업이 있겠지만, 그 밑바탕에 어떤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관심일 것 같다. 행정적으로 지원해주는 것보다는 개인의 관심이 있어야 지원을 해도 사업 운영하는 방식이 다를 게 아닌가. 거시적인 차원의 관심보다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한 명의 개인으로서 그리고 또 작가로서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개인적인 꿈은 간단하다. 나는 중증장애인이라 건강상 매우 취약하다. 합병증이나 욕창이 늘 도사리고 있다. 만약에 욕창이라도 생기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만 누워있어야 한다. 작업을 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기 위해 계속 꾸준히 그림을 그리는 게 나의 꿈이다. 중증장애인으로서는 꾸준함에 대한 절실함이 더욱 크다.

그동안 전시를 꽤 많이 했는데, 전시하면서 받은 피드백 중 인상 깊었던 코멘트가 있었나?

전시 관객은 아닌데 유튜브에 올라간 내 자료에 달린 댓글을 살피다가 어떤 분이 내 그림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써놓은 글을 봤다. 나도 상황이 많이 힘든 가운데서 했던 작업이었다. 그 그림을 보며 자신이 엄청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림이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고 ‘내가 가졌던 감정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감정하고 비슷할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원래 댓글을 안 남기는데, 내 그림을 통해서 아픈 마음이 좀 가라앉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직접 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림이 원래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가는 시간이 쌓일수록 우리는 계속해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언제 누구를 알게 될지 모르면서 그 만남의 시간을 기다리다 보면 삶이 채워지고야 마는 것이다. ‘꿈을 그리는 화가’ 임경식이 지난 시간 동안 만나온 관객만큼이나 그가 알게 될 관객은 아직도 많은 것 같다. 임경식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작업을 통해 얻는 기쁨은 선명하다. 이 동력과 기쁨을 나누고 넓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자연스럽고 꾸준한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 우리는 어떤 꿈을 어떻게 꾸어야 할까?

  • 임경식 작가가 붓 끝에 길게 연결한 나무 부분을 입에 물고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 긴 나무 막대를 연결한 여러 개의 붓

임경식

세계구족화가협회, 한국장애인미술협회 회원, 소울음아트센터 이사. 지체장애로 집에서만 지내다가 그림을 접하고 수소문 끝에 소울음작가회를 알게 되었고, 2008년부터 미술을 시작했다. 2012년 홍익대학교 미술디자인 교육원 수료하고 같은 해에 대한민국 환경미술대전에서 입상했다. 2013년 장애인 기능경기대회, 2014년 장애인 미술대전 등을 수상했고, 2021년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일어서는 사람들의 기록전, 한중일 장애인 미술교류전, LG U+ 구족회화 특별전 등 다수의 그룹전 및 단체전에 참여했다.
soopulim3@hanmail.net

박수지

독립 큐레이터. 큐레토리얼 에이전시 뤄뤼(AGENCY RARY)를 운영하고, 기획자 공동 플랫폼 웨스(WESS)를 공동 운영한다.
suzysomapark@gmail.com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gmail.com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 제공. 임경식

2022년 11월 (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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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8 14:3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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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작품들 정말 좋은데요? 구족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어떤 분야이던지 마찬가지이겠지만 꾸준한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서 전진하는 게 중요한 것 같네요. 임경식 작가님의 노력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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