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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진 미술작가

인터뷰 소리 너머의 열망과 오래된 그리움을 그린다

  • 천윤희 독립연구자
  • 등록일 2023-02-01
  • 조회수705

인터뷰

광주 장애예술인창작지원센터 ‘보둠’에서 김봉진 작가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오직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어 기쁘다는 작가의 작업실에는 작품을 살짝 움직일 때마다 몸살 하듯 삐걱거리는 오래된 이젤이 하나 놓여 있다. 그렇게도 미술 하는 것을 반대하던 아버지는, 작가가 유화로 전향하고 밤낮으로 공부하고 있을 때, 문득 “상 탈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셨다. 그러고는 목재를 사서 손수 이젤을 만들어 선물해 주셨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났다. 작가는 오늘도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이젤 앞에서 한결같이 그림을 그린다.

어떻게 미술을 만나고 작가가 되었나.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선생님이 너무 잘한다고 칭찬하시면서 나를 그림 동아리에 보냈다. 그 선생님께서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계속 미술을 가르쳐 주셨다. 참 감사한 분이다.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목공소에 취업해 일을 시작했고, 그 뒤로도 가구 공장, 신발 공장 등 여러 곳에서 일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다. 그러던 중 예쁜 아내를 만나서 결혼했다. 내가 옛날 스타일이라 그랬는지 처음에 아내는 나를 싫어했다. 하지만 취직하여 성실히 일하던 어느 날 양복을 멋있게 차려입고 가서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행복한 연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 후 비로소 아내에게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엔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냐며 걱정했지만, 아내는 나를 지지해 주었고, 뜨개질을 해서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그렇게 1987년에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화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평생 공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모님은 그림 그리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먹고살기 힘들다고 반대하셨다. 그림도 잘 그리고 상도 많이 받는 청인이 얼마나 많은데 농인인 네가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냐, 농인은 성공할 수 없다고 모진 말을 쏟으셨다. 대학교에 가서 배우고 싶다고도 말씀드렸지만, 그 역시 반대하셨다. 결국 아내의 도움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한국화를 하던 내게 농인 친구들은 좀 더 현대적인 유화를 추천하였다. 내심 유화를 하기로 결정하고도 비싼 유화물감을 사야 하는 게 걱정이었다. 이 역시 아내 덕분에 서툴지만 새롭게 유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조선대학교에 가서 몰래 문 열고 그림 그리는 것을 보며 특별한 기법이 있는지 연구하고, 미술관에서 전시와 작품도 보고, 미대생에게 묻기도 하고, 미술 서적을 보며 밤낮으로 공부했다. 지금은 유화만 그린다. 나는 기름 냄새가 좋다. 사람들은 기름 냄새가 싫다고 도망가기도 하는데, 나는 익숙한 그 냄새가 좋다.

작가로서 전환점이 있었다면 언제인가.

그렇게 작업하며 몇 년 동안 씨름했지만, 작가의 길은 늘 어려웠다. 급기야 대한민국미술대전 접수 마감 전날, 생계가 어려운데 작업만 하는 내게 아내가 화를 냈고 싸움이 커졌다. 아내가 몹시 화가 나서 캔버스를 칼로 다 잘라버리려고 하기에 내가 잘못했다고 사정했더니 결국 또 나를 이해해주었다. 그런데 액자 만들 돈이 없었다. 만 원을 들고 함께 시장에 가서 나무를 사 와서 사포로 문지르고 색칠해서 직접 액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마감 전에 겨우 출품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 연락이 왔다. 내가 특선이라고 했다. 아내와 나는 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놀랍고 감동스럽고 행복한 마음에 많이 울었다. 초창기에는 매일 밤낮으로 그림을 그렸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7개월도 더 걸렸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비로소 상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작업하는 게 어려웠지만 지금은 모든 게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졌다. 이제는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1개월 정도 소요된다.

어려서부터 그림이 좋았나.

어렸을 때 꿈은 지휘자였다. 여러 악기가 연주되고 그것을 지휘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지 않은가. (지휘하는 몸짓)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내 그림을 보고 잘 그린다고 칭찬하시면서, 지휘자는 농인이 하기 어렵지만 그림은 계속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 선생님이 그림을 가르쳐주시고 도와주셔서 상도 받고 지금까지 활동하게 되었다.

작가님에게 그린다는 행위는 무슨 의미인가.

밤낮으로 색과 대상에 대해 집중하다 보면 생각이 없어지면서 그냥 그리고 있게 된다. 가끔 청인들의 잘 그린 유명한 작품들을 보면 그것들을 꿰뚫어 보고 싶다. 내 그림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더욱 많이 깊숙이 보게 된다. 집중해서 보고 듣고 공부하고 그 그림을 꿰뚫어 보아 완전히 알고 싶어진다. 어려운 것도 잘하고 싶다. 많이 배우고 싶다.

작업할 때, 영감을 받기 위해서 하는 습관이 있나.

무언가 생각나면 바로 일어나서 그림 그린다. 꿈을 꾼다든가 여행 다녀왔을 때도 밤낮 가리지 않고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그린다. 그러다가 작업이 잘 안되거나 막히면 며칠이고 그림을 뒤집어 놓는다. 그러다가 사나흘 후에 다시 그린다. 그림을 안 보다가 다시 보면 또 다른 지점이 보인다.

대표작이랄까, 제일 좋아하는 그림은 무엇인가? 최근 작업도 소개해달라.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구상회화로 특선을 수상한 <옛:정(古情)>이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고향 장흥을 연상시키는 옛 물건들과 풍경을 통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그리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어느 미국 관람객이 한국 역사와 전통문화가 보여서 좋다며 이 작품을 구입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건 바다를 그린 작품들이다. 바다에 가면 가슴이 뻥 뚫리고 파랗고 시원해 보인다. 파도칠 때 그 느낌이 있다. 파도가 부딪쳐 철썩철썩하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기에 바다 그림을 그려서 그 소리를 듣고 싶었다. 파도 소리, 새소리, 그 어떤 소리도 들어본 적 없기에 그 마음을 그림에 담았다.
최근에는 새롭게 작품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옛날 서책을 캔버스에 붙여 그 위에 유화로 다시 그리는, 한국화와 유화를 통합한 작업을 해보고 있다. 나는 한국 스타일,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전통문화와 그리움, 정을 그리고 싶다.

  • 미술작가 김봉진
  • 미술작가 김봉진
  • 미술작가 김봉진

광주 장애예술인창작지원센터 ‘보둠’의 1기 입주작가이다. 보둠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데, 어떤가.

보둠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어 고맙다. 얼마 전에도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다. 집에서 작업할 때는 너무 좁고 집중하기 힘들었는데, 온전히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이라 너무 기쁘고 즐겁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여기에 와서 밤까지 작업한다. 현재 4명의 작가가 입주해있는데, 목공예와 금속공예 작가도 있다. 다른 작가들은 이들이 작업할 때 시끄럽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안 들리니 편안히 그림 그리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작업하다 보니 이곳도 조금 좁게 느껴질 때가 있어서, 공간이 좀 더 넓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청각장애가 있어 다른 작가들과 의사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내가 아무리 수어로 이야기해도 소통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행사가 있는 경우에는 수어 통역을 해주지만, 통역사가 상주하지는 않는다. 가끔 궁금하고 알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를 때는 소통의 어려움, 답답함, 부담감 등을 느끼기도 한다.

한국청미회, 한국농미회, 국제농아인미술협회 등 예술을 통한 사회적 교류 및 연대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다.

한국농미회를 통해 김기창 화백을 만났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집을 오가며 종종 뵈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만나 이야기 나눈 적도 있다. 활동을 좀 더 자연스럽게 하라고 조언해주시고, 그림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가르쳐 주시면서 더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주셨다. 자신의 뒤를 잇는 훌륭한 작가가 될 것이라는 격려도 해주셨다. 당시에는 그림에 관해 지적받을 때 부끄럽고 당황해서 말도 못 했지만, 그 말씀에 힘입어 더 열심히 하는 계기도 되었다.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된 것 아닌가 싶다.
세계 곳곳에 농인 예술인이 많다. 하지만 재능이 뛰어나도 발휘하기 힘든 어려운 환경 속에 있다. 그들은 이러한 한계 상황에서도 함께 교류하며 작품도 발표하고 활동하고 싶은 마음들이 크다. 전 세계 농인의 그림을 초대하고 교류하고 싶다. 2023년 제주도에서 열리는 세계농아인대회와 관련해서도 전시 계획을 구상 중이다.

작가로서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작업한 지 30여 년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죽을 때까지 그림 그리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한다. 과거에 어떤 장애예술 관계자가 나에게 그림을 잘 못 그린다고 상처 주는 말을 한 적도 있지만, 인내하고 그림 그리는 데만 집중하여 상도 받고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은 그런 말들이 없어졌다. 김기창 화백은 열심히 해서 꿈을 이루라고, 앞으로 세계적으로 나갈 수 있다고, 농인도 할 수 있다고 늘 나를 격려해주셨었다. 그분의 뒤를 따라서 열심히 하고 있다. 꿈이 있다면, 미술관을 세우는 것이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든 사람에게 전시, 교류, 교육의 기회를 주고 싶다. 장애인을 비롯한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회와 도움을 주고 싶다. 최근에 사회복지학도 공부했다. 더욱 배우고 배워서 나의 세계를 확장하고 싶다.

  • 진한 연두색 배경에 붉은색 천과 흰색 항아리, 그릇에 담긴 작물, 들풀들이 그려진 커다란 미술작품. 그 액자 앞에 팔짤을 끼고 서 있는 미술작가 김봉진.

    <옛:정(古情)>과 김봉진 작가

  • 파도와 하늘, 바위가 그려진 바다를 주제로 한 네 개의 그림.

    바다를 소재로 그린 작품들

김봉진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해 지금까지 30여 년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00년 국제농아인미술협회를 창단하여 세계농아작가미술교류전을 개최하며 국내외 미술작가들의 교류를 견인했다. 1994년 광주시 미술대전 대상, 2022년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 부분 특선을 수상했다. 2022년 광주 장애예술인창작지원센터 보둠 1기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bongjin1963@hanmail.net

천윤희

국문학, 예술경영, 교육학, 미술사, 사회복지학 등 마음 끌리는 대로 공부했고 공부 중이다. 20대에 광주비엔날레가 좋아서 광주에 내려온 이래, 20년 8개월간 후회 없이 일했으며, 2022년에 꿈꾸던 자유인이 되었다. 지금은 독립연구자로서 문화예술교육, 생애주기(생애전환), 예술경영, 지역, 미술 등을 주된 테마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글 쓰고, 강의하고, 연구와 컨설팅을 한다.
uni94@hanmail.net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gmail.com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수어통역. 이혜진 baboqt15@naver.com
자료 제공.광주문화재단

2023년 2월 (39호)

상세내용

인터뷰

광주 장애예술인창작지원센터 ‘보둠’에서 김봉진 작가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오직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어 기쁘다는 작가의 작업실에는 작품을 살짝 움직일 때마다 몸살 하듯 삐걱거리는 오래된 이젤이 하나 놓여 있다. 그렇게도 미술 하는 것을 반대하던 아버지는, 작가가 유화로 전향하고 밤낮으로 공부하고 있을 때, 문득 “상 탈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셨다. 그러고는 목재를 사서 손수 이젤을 만들어 선물해 주셨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났다. 작가는 오늘도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이젤 앞에서 한결같이 그림을 그린다.

어떻게 미술을 만나고 작가가 되었나.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선생님이 너무 잘한다고 칭찬하시면서 나를 그림 동아리에 보냈다. 그 선생님께서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계속 미술을 가르쳐 주셨다. 참 감사한 분이다.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목공소에 취업해 일을 시작했고, 그 뒤로도 가구 공장, 신발 공장 등 여러 곳에서 일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다. 그러던 중 예쁜 아내를 만나서 결혼했다. 내가 옛날 스타일이라 그랬는지 처음에 아내는 나를 싫어했다. 하지만 취직하여 성실히 일하던 어느 날 양복을 멋있게 차려입고 가서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행복한 연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 후 비로소 아내에게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엔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냐며 걱정했지만, 아내는 나를 지지해 주었고, 뜨개질을 해서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그렇게 1987년에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화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평생 공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모님은 그림 그리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먹고살기 힘들다고 반대하셨다. 그림도 잘 그리고 상도 많이 받는 청인이 얼마나 많은데 농인인 네가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냐, 농인은 성공할 수 없다고 모진 말을 쏟으셨다. 대학교에 가서 배우고 싶다고도 말씀드렸지만, 그 역시 반대하셨다. 결국 아내의 도움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한국화를 하던 내게 농인 친구들은 좀 더 현대적인 유화를 추천하였다. 내심 유화를 하기로 결정하고도 비싼 유화물감을 사야 하는 게 걱정이었다. 이 역시 아내 덕분에 서툴지만 새롭게 유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조선대학교에 가서 몰래 문 열고 그림 그리는 것을 보며 특별한 기법이 있는지 연구하고, 미술관에서 전시와 작품도 보고, 미대생에게 묻기도 하고, 미술 서적을 보며 밤낮으로 공부했다. 지금은 유화만 그린다. 나는 기름 냄새가 좋다. 사람들은 기름 냄새가 싫다고 도망가기도 하는데, 나는 익숙한 그 냄새가 좋다.

작가로서 전환점이 있었다면 언제인가.

그렇게 작업하며 몇 년 동안 씨름했지만, 작가의 길은 늘 어려웠다. 급기야 대한민국미술대전 접수 마감 전날, 생계가 어려운데 작업만 하는 내게 아내가 화를 냈고 싸움이 커졌다. 아내가 몹시 화가 나서 캔버스를 칼로 다 잘라버리려고 하기에 내가 잘못했다고 사정했더니 결국 또 나를 이해해주었다. 그런데 액자 만들 돈이 없었다. 만 원을 들고 함께 시장에 가서 나무를 사 와서 사포로 문지르고 색칠해서 직접 액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마감 전에 겨우 출품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 연락이 왔다. 내가 특선이라고 했다. 아내와 나는 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놀랍고 감동스럽고 행복한 마음에 많이 울었다. 초창기에는 매일 밤낮으로 그림을 그렸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7개월도 더 걸렸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비로소 상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작업하는 게 어려웠지만 지금은 모든 게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졌다. 이제는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1개월 정도 소요된다.

어려서부터 그림이 좋았나.

어렸을 때 꿈은 지휘자였다. 여러 악기가 연주되고 그것을 지휘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지 않은가. (지휘하는 몸짓)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내 그림을 보고 잘 그린다고 칭찬하시면서, 지휘자는 농인이 하기 어렵지만 그림은 계속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 선생님이 그림을 가르쳐주시고 도와주셔서 상도 받고 지금까지 활동하게 되었다.

작가님에게 그린다는 행위는 무슨 의미인가.

밤낮으로 색과 대상에 대해 집중하다 보면 생각이 없어지면서 그냥 그리고 있게 된다. 가끔 청인들의 잘 그린 유명한 작품들을 보면 그것들을 꿰뚫어 보고 싶다. 내 그림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더욱 많이 깊숙이 보게 된다. 집중해서 보고 듣고 공부하고 그 그림을 꿰뚫어 보아 완전히 알고 싶어진다. 어려운 것도 잘하고 싶다. 많이 배우고 싶다.

작업할 때, 영감을 받기 위해서 하는 습관이 있나.

무언가 생각나면 바로 일어나서 그림 그린다. 꿈을 꾼다든가 여행 다녀왔을 때도 밤낮 가리지 않고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그린다. 그러다가 작업이 잘 안되거나 막히면 며칠이고 그림을 뒤집어 놓는다. 그러다가 사나흘 후에 다시 그린다. 그림을 안 보다가 다시 보면 또 다른 지점이 보인다.

대표작이랄까, 제일 좋아하는 그림은 무엇인가? 최근 작업도 소개해달라.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구상회화로 특선을 수상한 <옛:정(古情)>이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고향 장흥을 연상시키는 옛 물건들과 풍경을 통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그리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어느 미국 관람객이 한국 역사와 전통문화가 보여서 좋다며 이 작품을 구입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건 바다를 그린 작품들이다. 바다에 가면 가슴이 뻥 뚫리고 파랗고 시원해 보인다. 파도칠 때 그 느낌이 있다. 파도가 부딪쳐 철썩철썩하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기에 바다 그림을 그려서 그 소리를 듣고 싶었다. 파도 소리, 새소리, 그 어떤 소리도 들어본 적 없기에 그 마음을 그림에 담았다.
최근에는 새롭게 작품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옛날 서책을 캔버스에 붙여 그 위에 유화로 다시 그리는, 한국화와 유화를 통합한 작업을 해보고 있다. 나는 한국 스타일,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전통문화와 그리움, 정을 그리고 싶다.

  • 미술작가 김봉진
  • 미술작가 김봉진
  • 미술작가 김봉진

광주 장애예술인창작지원센터 ‘보둠’의 1기 입주작가이다. 보둠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데, 어떤가.

보둠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어 고맙다. 얼마 전에도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다. 집에서 작업할 때는 너무 좁고 집중하기 힘들었는데, 온전히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이라 너무 기쁘고 즐겁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여기에 와서 밤까지 작업한다. 현재 4명의 작가가 입주해있는데, 목공예와 금속공예 작가도 있다. 다른 작가들은 이들이 작업할 때 시끄럽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안 들리니 편안히 그림 그리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작업하다 보니 이곳도 조금 좁게 느껴질 때가 있어서, 공간이 좀 더 넓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청각장애가 있어 다른 작가들과 의사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내가 아무리 수어로 이야기해도 소통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행사가 있는 경우에는 수어 통역을 해주지만, 통역사가 상주하지는 않는다. 가끔 궁금하고 알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를 때는 소통의 어려움, 답답함, 부담감 등을 느끼기도 한다.

한국청미회, 한국농미회, 국제농아인미술협회 등 예술을 통한 사회적 교류 및 연대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다.

한국농미회를 통해 김기창 화백을 만났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집을 오가며 종종 뵈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만나 이야기 나눈 적도 있다. 활동을 좀 더 자연스럽게 하라고 조언해주시고, 그림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가르쳐 주시면서 더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주셨다. 자신의 뒤를 잇는 훌륭한 작가가 될 것이라는 격려도 해주셨다. 당시에는 그림에 관해 지적받을 때 부끄럽고 당황해서 말도 못 했지만, 그 말씀에 힘입어 더 열심히 하는 계기도 되었다.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된 것 아닌가 싶다.
세계 곳곳에 농인 예술인이 많다. 하지만 재능이 뛰어나도 발휘하기 힘든 어려운 환경 속에 있다. 그들은 이러한 한계 상황에서도 함께 교류하며 작품도 발표하고 활동하고 싶은 마음들이 크다. 전 세계 농인의 그림을 초대하고 교류하고 싶다. 2023년 제주도에서 열리는 세계농아인대회와 관련해서도 전시 계획을 구상 중이다.

작가로서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작업한 지 30여 년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죽을 때까지 그림 그리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한다. 과거에 어떤 장애예술 관계자가 나에게 그림을 잘 못 그린다고 상처 주는 말을 한 적도 있지만, 인내하고 그림 그리는 데만 집중하여 상도 받고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은 그런 말들이 없어졌다. 김기창 화백은 열심히 해서 꿈을 이루라고, 앞으로 세계적으로 나갈 수 있다고, 농인도 할 수 있다고 늘 나를 격려해주셨었다. 그분의 뒤를 따라서 열심히 하고 있다. 꿈이 있다면, 미술관을 세우는 것이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든 사람에게 전시, 교류, 교육의 기회를 주고 싶다. 장애인을 비롯한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회와 도움을 주고 싶다. 최근에 사회복지학도 공부했다. 더욱 배우고 배워서 나의 세계를 확장하고 싶다.

  • 진한 연두색 배경에 붉은색 천과 흰색 항아리, 그릇에 담긴 작물, 들풀들이 그려진 커다란 미술작품. 그 액자 앞에 팔짤을 끼고 서 있는 미술작가 김봉진.

    <옛:정(古情)>과 김봉진 작가

  • 파도와 하늘, 바위가 그려진 바다를 주제로 한 네 개의 그림.

    바다를 소재로 그린 작품들

김봉진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해 지금까지 30여 년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00년 국제농아인미술협회를 창단하여 세계농아작가미술교류전을 개최하며 국내외 미술작가들의 교류를 견인했다. 1994년 광주시 미술대전 대상, 2022년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 부분 특선을 수상했다. 2022년 광주 장애예술인창작지원센터 보둠 1기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bongjin1963@hanmail.net

천윤희

국문학, 예술경영, 교육학, 미술사, 사회복지학 등 마음 끌리는 대로 공부했고 공부 중이다. 20대에 광주비엔날레가 좋아서 광주에 내려온 이래, 20년 8개월간 후회 없이 일했으며, 2022년에 꿈꾸던 자유인이 되었다. 지금은 독립연구자로서 문화예술교육, 생애주기(생애전환), 예술경영, 지역, 미술 등을 주된 테마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글 쓰고, 강의하고, 연구와 컨설팅을 한다.
uni94@hanmail.net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gmail.com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수어통역. 이혜진 baboqt15@naver.com
자료 제공.광주문화재단

2023년 2월 (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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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9 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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