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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이음

A의 특별한 손님③ 황시운 작가

인터뷰 ‘우리’를 알리는 ‘입’으로서의 이야기

  • 노지영 문학평론가
  • 등록일 2023-11-29
  • 조회수730

인터뷰

장애 감수성을 기르는 본격 문학방송 〈A의 모든 것〉에서는 초대 손님과 함께 작가의 작품 세계에 관해 깊이 있고 생생한 이야기를 나눈다. 올해는 웹진 이음을 통해서도 만나보자. 2020년부터 다녀간 특별한 손님들은 팟빵과 팟캐스트에서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

황시운 작가는 1호, 2호, 3호 조카들에게 진심이다. 소설가, 산문가, 여성 작가, 장애예술가, 연필수집가…. 그녀를 칭할 수 있는 정체성은 다양하지만, 자신의 가장 사랑스러운 정체성은 조카들의 고모일 때 발현된다고 하였다. 조카들에게 용감한 사람이라고 기억되고 싶은 마음에서 황시운 작가는 자신을 ‘용감한 고모’라는 별칭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

원체 용감한 성격이었다. 어느 뜨거운 한낮, 그녀는 서점에 붙은 포스터를 하나 보게 되었다. 전경린, 공지영 등 여성 작가들을 소개한 포스터였다. 그 포스터에 새겨진 ‘우리 시대의 마녀가 온다’라는 카피에 그녀는 돌연 매혹되었다. 그동안 글쓰기와 전혀 관계없던 삶을 살면서 기계적으로 직장을 오갈 뿐이었지만, 그녀는 그 순간부터 ‘마녀’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즉각 서점에 들어가서 전경린 작가의 소설집 『바닷가 마지막 집』을 집어 들었고, 집에 들어앉아 무작정 소설이라는 것을 써보기 시작했다. 전공이 수학인 것도, 그동안 글쓰기 훈련을 안 해 본 것도 상관없었다.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무식해 보일 정도로 열심히 소설을 써댔다. 용감하다 못해 무모해 보였지만, 8년 동안 포기하지 않았다. 특별한 다른 재능은 없을지라도, 포기 안 하는 재능만은 있다고 자평했던 그녀는 마침내 소설가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아름답던 봄밤이었다. 두 번째 장편소설을 쓰러 온 토지문화관에서 그녀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작가들과 산책을 나섰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마비의 몸으로 책상에 앉는 하루하루가 도전이었으나, 그녀는 연필 깎는 일만은 놓지 않았다. 생활세계에 깊숙이 침투한 작품을 써나갔고, 표상에 그치던 시간을 현존하는 시간으로 탈바꿈해 나갔다. 그렇게 사고 이후 십 년이 지나서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라는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소설집과 쌍생아처럼 닮은 산문집까지 연이어 빛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용감함에 있어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 무작정 용감하게 쓰는 고모임이 분명했다.

노지영(이하 노평)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교유서가, 2022)라는 산문집을 출간했다. 소설 형식이 아닌 산문 형식으로 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하다.

황시운(이하 용감한 고모)특별한 계기가 있지는 않았다. 추락 사고 이후에 산문집에 대한 제안이 있었으나 그동안은 거절해왔다. 두려움과 일종의 회피 같은 것이 작동하여 과거의 사건을 반추해 보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 기억력이 급격히 나빠졌음을 느꼈다. 언젠가는 사고 났던 날짜가 기억나지 않더라. 그런 것은 메모해 두면 되겠지만, 사고 당시 있었던 일이나 그때의 마음 같은 것들은 메모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번은 천천히 돌아보면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출판사에서도 산문집 출간을 다시 제안해 주어서 책이 나오게 되었다.

노평소설집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 출간되고 반년쯤 지나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그래서인지 소설 쓰는 자아와 산문 쓰는 자아가 두 책 안에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첫 장편소설 『컴백홈』에서 첫 소설집 『그래도, 아직은 봄밤』으로 건너오는 동안 작품 세계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용감한 고모사고 이전과 이후에 일어난 변화를 묻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사고 전까지는 세상을 다소 단순하고 만만하게 생각했었던 면이 없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대부분 시간을 소설 쓰는 데만 매진하면서 긴 습작 기간을 보냈다. 당시는 여간해서는 기죽는 일이 없었다. 전공하거나 소설 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무조건 무식하게 쓰는 방식으로 습작했지만, 미래가 두렵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사지가 멀쩡한데 뭐가 겁나냐,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고가 난 후로 삶이 달라졌다.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같은 생각이 더는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거다. 경제적으로도 걱정이 많아졌고,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을 영위해 나가는 데도 여러 가지 걱정이 생겼다. 장애를 갖고 나니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히 나 같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쓰이게 됐고, 나처럼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은 사람, 그렇게 그냥 지워져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게 됐다. 그전까지는 그냥 관찰자의 입장에 지나지 않았다면, 이제는 한 세계의 일원으로서 그 세계를 알리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돼서, 이전까지의 소설과는 좀 다르게 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노평“사고 이후에 갖게 된 정체성”으로 인해 소설에 많은 변화가 오게 되었다. 자신의 소설이 “세상을 관찰하는 눈”에서 “세상에 ‘우리’를 알리는 입”으로 변화하였다고 스스로 이야기한 적도 있다. 그러나 새 책이 나오고 나서 주변에서 소설 자체보다 장애에 더 주목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마음이 복잡했을 것 같다. 중도에 다가온 장애예술과 장애문학이라는 명칭이 어떻게 느껴졌을까. 장애문학은 어떻게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용감한 고모처음에 소설집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인터뷰 같은 것을 하면서도 소설보다는 내 장애와 장애를 입게 된 과정 등에 관심을 두는 것 같아 서운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소설보다는 장애에 더 주목한다고 해도 그런 시선도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견뎌야 하는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잊히고 있는 존재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내가 가진 재주가 쓰일 수 있다면 그런 시선 정도는 견뎌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커졌다. 장애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서운해하기만 했던 걸 반성하기도 했다. 넓은 의미에서는 사회운동 하는 분들, 그리고 좁게 들어가면 최근에 이동권 투쟁하며 장애운동 하는 분들, 그런 분들에게 평화로운 일상을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들과 함께 운동에 뛰어들 만큼 스스로가 단단한 그릇이 못 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매우 크다. 그러나 내가 단순히 장애인의 정체성으로만 인식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나 또한 똑같이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봐주기를, 내 소설 또한 장애문학의 범주에만 묶이지는 않기를 바란다. 장애문학이라고 불리는 많은 소설이나 창작물이 단지 장애예술이라는 카테고리에만 묶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노평많은 장애 당사자 창작자가 문학을 하는 것이지 장애문학을 지향하면서 창작활동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문학의 하위장르나 비인기 장르로서의 장애문학이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장애학이라는 학문을 횡단하는 소수자 감수성을 보이는 문학이 있고, 소재와 스타일에서도 특징을 보이는 문학이 있다. 그런 영역을 가장 잘 감각하여 쓸 수 있는 문인이 바로 장애 당사자 작가가 아닐까 한다. 그러한 변방의 감각과 관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취재의 영역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특히 용감한 고모처럼 장편소설도 쓰는 작가의 경우는 취재가 더욱 중요할 것 같은데, 장애를 얻고 취재 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궁금하다.

용감한 고모요즘은 주로 장애인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주변의 친구들을 취재하곤 한다. 그 외에 다른 디테일한 부분을 취재할 때는 직접 가서 취재할 수 없으니 무조건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과의 연결을 꾀했다. 나의 단편 중에 「금」이라는 소설이 있다. 특수 청소, 즉 고독사한 분들의 자리를 청소해 주는 분들의 이야기다. 그 소설을 쓸 때는 무작정 관련 회사 게시판에 글을 올려 나를 소개하고 인터뷰를 청했다. 여건 때문에 전화나 이메일로 인터뷰할 분을 찾는다고 하면 간혹 연락해 오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께 질문지를 보내드려 답변을 받았고, 내가 쓴 부분을 수정받기도 하면서 취재했다. 평소에는 각종 동영상을 끊임없이 찾아서 보는 편이다. 인터넷 정보가 예전에 비해 무궁무진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디테일한 부분까지 찾아서 보고, 파도타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다시 찾아본다. 하지만 직접 취재하는 것 자체는 어려움이 많다. 특히 외국의 전경이나 특별한 지역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해서 쓰는 분들의 소설을 보면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는 것이 부럽기도 하다. 나는 그럴 수 없으니까, 다른 방법으로 쓰려고 노력한다.

노평신변 처리와 같은 문제를 이렇게 섬세하게 다룬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당사자로서 ‘자기 취재’를 철저히 해나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에피소드들도 말할 수 없이 강렬하다. 기존의 소설 작업을 통해서는 대상과의 거리 두기가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어서, 산문집을 쓰면서는 지나친 감정의 과잉이 아닐지 의심하면서 글쓰기를 해나간 흔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주변의 평가나 시선에 좌우되지 않고 산문집을 통해 과감히 밀고 나간 영역이 있다면 무엇일까?

용감한 고모산문을 통해서 가장 확실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겪고 있는 불편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반신이 마비되었거나 전신마비이거나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볼지라도 그저 그림처럼 앉아 있는 모습만을 보게 된다. 그들이 대소변을 해결하기 위해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하루를 지내는 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를 모른다. 비장애인 시절에 어떤 드라마에선가, “장애는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 같다”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표현이 정말 공감된다.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괴로움이 동반되는지를 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해서 책의 제일 첫 장의 에피소드를 더욱 강렬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다만 그런 표현을 산문으로 쓸 때 감정의 과잉이라고 느낄 때도 많다.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나 고민도 된다. 그래도 분명히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영역을 쓰고 싶다.

노평산문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를 언급할 때 통증과 고통의 문제에 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고통을 기록한다는 것, 그리고 남의 고통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일까?

용감한 고모고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가 객관적으로 쓰고 있는 건가 의심도 많이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초산의 산통을 7.5 정도의 통증 지수로 본다면 작열통 같은 게 있을 때는 7, 8, 9 정도의 고통으로 통증이 느껴지곤 한다. 살이 불타고 껍질이 벗겨진 곳을 어딘가에 문대는 듯한 느낌에 숨이 넘어갈 것같이 아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진다. 그런데 그렇게나 통증이 심각한데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신경병증성 통증 자체가 뇌가 잘못 인지해서 신경의 교란으로 아픈 것이기 때문이다. 뼈가 부러지거나 살이 찢어지는 등의 실재하는 통증과는 또 다른 종류의 통증을 겪고 있다. 고통이라는 게 그토록 주관적이다 보니, 통증이 정말로 존재했는지, 통증을 있는 그대로 쓴다는 것 자체를 의심하면서 통증에 대해 써나가게 된다.

노평주관적이고 절대적이고 불가해한 고통에 대한 더 많은 서사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집필 계획이 더욱 기대된다. 지금은 어떤 소설을 쓰고 있나?

용감한 고모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 그전까지는 이런 생각을 크게 한 적은 없었는데,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 기울여주고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물론 많이 읽힐지는 모르겠지만 내년 출간을 목표로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한 가족이 공유하고 있는 통증에 관한 이야기다. 장애 당사자보다는 장애인을 부양하고 돌봐야 하는 책임을 강요당하고 있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소설을 쓰고 있다.

  • 컴백홈

    『컴백홈』 (창비, 2011)

  • 황시훈 홈HOME

    『홈 HOME』 (테오리아, 2017)

  • 그래도, 아직은 봄밤

    『그래도, 아직은 봄밤』 (교유서가, 2021)

  •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교유서가, 2022)

황시운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그들만의 식탁」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장편 『컴백홈』으로 2011년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소설 『컴백홈』(2011), 소설집 『홈(HOME)』(2017) 『파인 다이닝』(2018, 공저) 『그래도, 아직은 봄밤』(2021), 산문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2022) 등이 있다.
greentea0704@hanmail.net

노지영

문학평론가. 2010년 계간 [내일을여는작가] 등을 통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몇몇 대학에서 문학과 교양 과목을 강의하고 있으며, 계간 [시와시학] [백조] [영화가 있는 문학의 오늘]에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대담집 『뒤를 보는 마음』을 펴냈고, 『정본 노작 홍사용 문학 전집』 『오장환 전집』 등을 함께 펴냈다. 현재 [A의 모든 것] 고정 게스트로 출연 중이다.
norae@hanmail.net

장애 감수성을 기르는 본격 문학방송 ‘A(able)의 모든 것 시즌4’

제5회. 황시운 작가

▸ 유튜브에서 [전체방송 듣기]
▸ 팟빵에서 [전체방송 듣기]
▸ 팟캐스트에서 [전체방송 듣기]

사진.이효영 사진작가
자료사진 제공.창비, 테오리아, 교유서가

2023년 12월 (48호)

상세내용

인터뷰

장애 감수성을 기르는 본격 문학방송 〈A의 모든 것〉에서는 초대 손님과 함께 작가의 작품 세계에 관해 깊이 있고 생생한 이야기를 나눈다. 올해는 웹진 이음을 통해서도 만나보자. 2020년부터 다녀간 특별한 손님들은 팟빵과 팟캐스트에서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

황시운 작가는 1호, 2호, 3호 조카들에게 진심이다. 소설가, 산문가, 여성 작가, 장애예술가, 연필수집가…. 그녀를 칭할 수 있는 정체성은 다양하지만, 자신의 가장 사랑스러운 정체성은 조카들의 고모일 때 발현된다고 하였다. 조카들에게 용감한 사람이라고 기억되고 싶은 마음에서 황시운 작가는 자신을 ‘용감한 고모’라는 별칭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

원체 용감한 성격이었다. 어느 뜨거운 한낮, 그녀는 서점에 붙은 포스터를 하나 보게 되었다. 전경린, 공지영 등 여성 작가들을 소개한 포스터였다. 그 포스터에 새겨진 ‘우리 시대의 마녀가 온다’라는 카피에 그녀는 돌연 매혹되었다. 그동안 글쓰기와 전혀 관계없던 삶을 살면서 기계적으로 직장을 오갈 뿐이었지만, 그녀는 그 순간부터 ‘마녀’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즉각 서점에 들어가서 전경린 작가의 소설집 『바닷가 마지막 집』을 집어 들었고, 집에 들어앉아 무작정 소설이라는 것을 써보기 시작했다. 전공이 수학인 것도, 그동안 글쓰기 훈련을 안 해 본 것도 상관없었다.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무식해 보일 정도로 열심히 소설을 써댔다. 용감하다 못해 무모해 보였지만, 8년 동안 포기하지 않았다. 특별한 다른 재능은 없을지라도, 포기 안 하는 재능만은 있다고 자평했던 그녀는 마침내 소설가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아름답던 봄밤이었다. 두 번째 장편소설을 쓰러 온 토지문화관에서 그녀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작가들과 산책을 나섰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마비의 몸으로 책상에 앉는 하루하루가 도전이었으나, 그녀는 연필 깎는 일만은 놓지 않았다. 생활세계에 깊숙이 침투한 작품을 써나갔고, 표상에 그치던 시간을 현존하는 시간으로 탈바꿈해 나갔다. 그렇게 사고 이후 십 년이 지나서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라는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소설집과 쌍생아처럼 닮은 산문집까지 연이어 빛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용감함에 있어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 무작정 용감하게 쓰는 고모임이 분명했다.

노지영(이하 노평)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교유서가, 2022)라는 산문집을 출간했다. 소설 형식이 아닌 산문 형식으로 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하다.

황시운(이하 용감한 고모)특별한 계기가 있지는 않았다. 추락 사고 이후에 산문집에 대한 제안이 있었으나 그동안은 거절해왔다. 두려움과 일종의 회피 같은 것이 작동하여 과거의 사건을 반추해 보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 기억력이 급격히 나빠졌음을 느꼈다. 언젠가는 사고 났던 날짜가 기억나지 않더라. 그런 것은 메모해 두면 되겠지만, 사고 당시 있었던 일이나 그때의 마음 같은 것들은 메모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번은 천천히 돌아보면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출판사에서도 산문집 출간을 다시 제안해 주어서 책이 나오게 되었다.

노평소설집 『그래도, 아직은 봄밤』이 출간되고 반년쯤 지나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그래서인지 소설 쓰는 자아와 산문 쓰는 자아가 두 책 안에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첫 장편소설 『컴백홈』에서 첫 소설집 『그래도, 아직은 봄밤』으로 건너오는 동안 작품 세계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용감한 고모사고 이전과 이후에 일어난 변화를 묻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사고 전까지는 세상을 다소 단순하고 만만하게 생각했었던 면이 없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대부분 시간을 소설 쓰는 데만 매진하면서 긴 습작 기간을 보냈다. 당시는 여간해서는 기죽는 일이 없었다. 전공하거나 소설 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무조건 무식하게 쓰는 방식으로 습작했지만, 미래가 두렵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사지가 멀쩡한데 뭐가 겁나냐,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고가 난 후로 삶이 달라졌다.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같은 생각이 더는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거다. 경제적으로도 걱정이 많아졌고,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을 영위해 나가는 데도 여러 가지 걱정이 생겼다. 장애를 갖고 나니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히 나 같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쓰이게 됐고, 나처럼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은 사람, 그렇게 그냥 지워져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게 됐다. 그전까지는 그냥 관찰자의 입장에 지나지 않았다면, 이제는 한 세계의 일원으로서 그 세계를 알리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돼서, 이전까지의 소설과는 좀 다르게 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노평“사고 이후에 갖게 된 정체성”으로 인해 소설에 많은 변화가 오게 되었다. 자신의 소설이 “세상을 관찰하는 눈”에서 “세상에 ‘우리’를 알리는 입”으로 변화하였다고 스스로 이야기한 적도 있다. 그러나 새 책이 나오고 나서 주변에서 소설 자체보다 장애에 더 주목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마음이 복잡했을 것 같다. 중도에 다가온 장애예술과 장애문학이라는 명칭이 어떻게 느껴졌을까. 장애문학은 어떻게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용감한 고모처음에 소설집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인터뷰 같은 것을 하면서도 소설보다는 내 장애와 장애를 입게 된 과정 등에 관심을 두는 것 같아 서운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소설보다는 장애에 더 주목한다고 해도 그런 시선도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견뎌야 하는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잊히고 있는 존재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내가 가진 재주가 쓰일 수 있다면 그런 시선 정도는 견뎌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커졌다. 장애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서운해하기만 했던 걸 반성하기도 했다. 넓은 의미에서는 사회운동 하는 분들, 그리고 좁게 들어가면 최근에 이동권 투쟁하며 장애운동 하는 분들, 그런 분들에게 평화로운 일상을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들과 함께 운동에 뛰어들 만큼 스스로가 단단한 그릇이 못 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매우 크다. 그러나 내가 단순히 장애인의 정체성으로만 인식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나 또한 똑같이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봐주기를, 내 소설 또한 장애문학의 범주에만 묶이지는 않기를 바란다. 장애문학이라고 불리는 많은 소설이나 창작물이 단지 장애예술이라는 카테고리에만 묶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노평많은 장애 당사자 창작자가 문학을 하는 것이지 장애문학을 지향하면서 창작활동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문학의 하위장르나 비인기 장르로서의 장애문학이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장애학이라는 학문을 횡단하는 소수자 감수성을 보이는 문학이 있고, 소재와 스타일에서도 특징을 보이는 문학이 있다. 그런 영역을 가장 잘 감각하여 쓸 수 있는 문인이 바로 장애 당사자 작가가 아닐까 한다. 그러한 변방의 감각과 관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취재의 영역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특히 용감한 고모처럼 장편소설도 쓰는 작가의 경우는 취재가 더욱 중요할 것 같은데, 장애를 얻고 취재 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궁금하다.

용감한 고모요즘은 주로 장애인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주변의 친구들을 취재하곤 한다. 그 외에 다른 디테일한 부분을 취재할 때는 직접 가서 취재할 수 없으니 무조건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과의 연결을 꾀했다. 나의 단편 중에 「금」이라는 소설이 있다. 특수 청소, 즉 고독사한 분들의 자리를 청소해 주는 분들의 이야기다. 그 소설을 쓸 때는 무작정 관련 회사 게시판에 글을 올려 나를 소개하고 인터뷰를 청했다. 여건 때문에 전화나 이메일로 인터뷰할 분을 찾는다고 하면 간혹 연락해 오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께 질문지를 보내드려 답변을 받았고, 내가 쓴 부분을 수정받기도 하면서 취재했다. 평소에는 각종 동영상을 끊임없이 찾아서 보는 편이다. 인터넷 정보가 예전에 비해 무궁무진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디테일한 부분까지 찾아서 보고, 파도타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다시 찾아본다. 하지만 직접 취재하는 것 자체는 어려움이 많다. 특히 외국의 전경이나 특별한 지역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해서 쓰는 분들의 소설을 보면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는 것이 부럽기도 하다. 나는 그럴 수 없으니까, 다른 방법으로 쓰려고 노력한다.

노평신변 처리와 같은 문제를 이렇게 섬세하게 다룬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당사자로서 ‘자기 취재’를 철저히 해나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에피소드들도 말할 수 없이 강렬하다. 기존의 소설 작업을 통해서는 대상과의 거리 두기가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어서, 산문집을 쓰면서는 지나친 감정의 과잉이 아닐지 의심하면서 글쓰기를 해나간 흔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주변의 평가나 시선에 좌우되지 않고 산문집을 통해 과감히 밀고 나간 영역이 있다면 무엇일까?

용감한 고모산문을 통해서 가장 확실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겪고 있는 불편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반신이 마비되었거나 전신마비이거나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볼지라도 그저 그림처럼 앉아 있는 모습만을 보게 된다. 그들이 대소변을 해결하기 위해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하루를 지내는 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를 모른다. 비장애인 시절에 어떤 드라마에선가, “장애는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 같다”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표현이 정말 공감된다.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괴로움이 동반되는지를 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해서 책의 제일 첫 장의 에피소드를 더욱 강렬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다만 그런 표현을 산문으로 쓸 때 감정의 과잉이라고 느낄 때도 많다.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나 고민도 된다. 그래도 분명히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영역을 쓰고 싶다.

노평산문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를 언급할 때 통증과 고통의 문제에 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고통을 기록한다는 것, 그리고 남의 고통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일까?

용감한 고모고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가 객관적으로 쓰고 있는 건가 의심도 많이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초산의 산통을 7.5 정도의 통증 지수로 본다면 작열통 같은 게 있을 때는 7, 8, 9 정도의 고통으로 통증이 느껴지곤 한다. 살이 불타고 껍질이 벗겨진 곳을 어딘가에 문대는 듯한 느낌에 숨이 넘어갈 것같이 아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진다. 그런데 그렇게나 통증이 심각한데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신경병증성 통증 자체가 뇌가 잘못 인지해서 신경의 교란으로 아픈 것이기 때문이다. 뼈가 부러지거나 살이 찢어지는 등의 실재하는 통증과는 또 다른 종류의 통증을 겪고 있다. 고통이라는 게 그토록 주관적이다 보니, 통증이 정말로 존재했는지, 통증을 있는 그대로 쓴다는 것 자체를 의심하면서 통증에 대해 써나가게 된다.

노평주관적이고 절대적이고 불가해한 고통에 대한 더 많은 서사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집필 계획이 더욱 기대된다. 지금은 어떤 소설을 쓰고 있나?

용감한 고모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 그전까지는 이런 생각을 크게 한 적은 없었는데,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 기울여주고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물론 많이 읽힐지는 모르겠지만 내년 출간을 목표로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한 가족이 공유하고 있는 통증에 관한 이야기다. 장애 당사자보다는 장애인을 부양하고 돌봐야 하는 책임을 강요당하고 있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소설을 쓰고 있다.

  • 컴백홈

    『컴백홈』 (창비, 2011)

  • 황시훈 홈HOME

    『홈 HOME』 (테오리아, 2017)

  • 그래도, 아직은 봄밤

    『그래도, 아직은 봄밤』 (교유서가, 2021)

  •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교유서가, 2022)

황시운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그들만의 식탁」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장편 『컴백홈』으로 2011년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소설 『컴백홈』(2011), 소설집 『홈(HOME)』(2017) 『파인 다이닝』(2018, 공저) 『그래도, 아직은 봄밤』(2021), 산문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2022) 등이 있다.
greentea0704@hanmail.net

노지영

문학평론가. 2010년 계간 [내일을여는작가] 등을 통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몇몇 대학에서 문학과 교양 과목을 강의하고 있으며, 계간 [시와시학] [백조] [영화가 있는 문학의 오늘]에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대담집 『뒤를 보는 마음』을 펴냈고, 『정본 노작 홍사용 문학 전집』 『오장환 전집』 등을 함께 펴냈다. 현재 [A의 모든 것] 고정 게스트로 출연 중이다.
norae@hanmail.net

장애 감수성을 기르는 본격 문학방송 ‘A(able)의 모든 것 시즌4’

제5회. 황시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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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에서 [전체방송 듣기]

사진.이효영 사진작가
자료사진 제공.창비, 테오리아, 교유서가

2023년 12월 (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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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8 17: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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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이후에도 작품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고 있는 황시운 작가님의 용기와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좋은 인터뷰 글 잘 읽었습니다.

2023-12-08 17: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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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쓴다고 남성 소설이라고 하지 않듯이, 장애인이 쓴 소설을 장애문학이라고 하는 건 어폐가 있다고 인터뷰를 통해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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