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지난 4월 20일, 제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사회를 보러 갔다. 이 영화제에서 오랫동안 심사위원을 맡아왔는데, 올해는 공동 사회까지 보게 되어 어깨가 무거웠다. ‘사회를 본 경험이 거의 없던 내가 사회자를 한다고?’ 나에게는 나름의 큰 도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온몸이 긴장되었다. 긴장은 곧 걱정으로 이어져 ‘말이 잘 안 나오면 어쩌지?’ ‘발음을 또박또박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걱정만 한가득한 상태에서 영화제 현장에 도착해 이미 심사를 보기 위해 여러 번 봤던 영화를 무심히 지켜봤다. 영화를 보며, 내가 지금 긴장하고 있는 게 무엇 때문일까 생각했다. 나는 똑 부러지게 말도 잘하고 재치 있게 입담을 할 수 있는 전문 사회자의 모습을 그렸던 것 같다. 영화를 보며 마음을 다시 가다듬었다. 나는 전문 사회자도 아닐뿐더러 언어장애를 가진 중증장애인이다. 조금 실수해도 괜찮고, 말을 잘하지 못해도 괜찮을 것이다. 이 말을 되새기며 1부 행사 사회는 그럭저럭 마쳤다. 그런데 한 시간 뒤에 2부 관객과의 대화가 또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체력은 전날 무리한 외부 활동으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곧바로 2부 행사가 시작되었다. 몸의 에너지는 빠르게 방전되어 말 한마디 하기도 힘든 상태가 되어버렸다. 결국 옆에서 같이 공동 사회를 보던 분에게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못한 채 모든 사회를 맡기다시피 했다. 그렇게 2부 관객과의 대화 행사는 혼자 식은땀만 잔뜩 흐른 채 끝났다.
몇 주가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며 그때의 일을 다시 생각하니 또 식은땀이 난다. 그리고 나의 망한 사회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사회를 못 본 탓에 어렵게 기획된 자리를 안타깝게 날려버린 것은 아닌지 미안한 감정이 든다. 관객과의 대화에 초대된 영화 관계자들이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임에도 자리를 지켜준 관객들에게 뒤늦게나마 이 글에서라도 좋은 작품을 알릴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올해 유난히 장애예술 관련 내용의 영화가 꽤 많이 출품되었다. 출품된 영화 중에는 고개를 조금 갸우뚱하게 만드는 작품도 있었고, 지금껏 보지 못했던 내용을 담은 영화도 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 최근 들어 장애예술이 조금씩 주목받고 있는 시점에서 장애예술 관련 영화가 출품되니 왠지 반갑게 느껴졌다.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은 작품들이 많았지만, 그중에 〈함께 구르는 기술〉과 〈지금, 네 곁에 있어〉라는 작품을 소개해 볼까 한다.
데굴데굴 데구루루
먼저 ‘2023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 창작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된 〈함께 구르는 기술〉(연출 김윤진)은 8명의 배우가 장소를 바꿔가며 함께 구르는 영화이다. 이 한마디 소개로 ‘참 이상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화에 대한 정확한 소개이다. 영화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르는 장면만 나오기 때문이다. 구르는 사람들은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지 않았으며, 구르는 장소도 어디든 상관없이 오로지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왠지 장애와 비장애의 정체성에 대한 차이를 지운 채 같은 동작을 함으로써 ‘우리 모두 똑같다’라는 선언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 같아서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또는 내가 예술적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그래서 영화를 한 번 더 봤다. 두 번째 보고 나서야 다른 생각이 들었다. 수없이 구르는 장면 속에서 배우들의 시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선은 나를 어린 시절로 소환했다.
나는 혈연 가족과 살 때 집에서 휠체어를 타지 못했다. 휠체어 바퀴가 방바닥을 망가지게 한다며 못 타게 한 것이다. 휠체어를 못 타니 방으로 이동할 때 낮은 포복 자세로 기어다녀야 했다. 낮은 포복 자세로 기어다닐 때면 나의 시선은 늘 가구 밑이나 방바닥을 향해 있었다. 그래서 가족들이 무심코 밟고 지나치는 방바닥을 꼼꼼히 보는 습관이 생겼다. 가끔 바닥 구석에 떨어진 물건을 찾을 때면 가족들은 못 찾아내도 나는 찾아냈다. 시선의 익숙함 때문일 것이다. 영화 〈함께 구르는 기술〉을 보며 생각했다.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를 지우기보다 보행자 중심의 구조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해 낸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은 마치 두 발로 서서 땅을 밟고 걷는 것만이 당연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 편의 연극을 만들기까지
두 번째 영화인 〈지금, 네 옆에 있어〉(연출 여인서)는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과 공연예술창작터 수다, 노드트리가 〈메마른 땅 위의 동물왕국〉이라는 미디어 오페라 형식의 연극을 준비하고 공연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발달장애인, 지역 공동체 사람들, 공연을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등장한다. 한 편의 연극을 만들기 위해서 모두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특히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이 서로의 차이 때문에 삐그덕대는 장면, 연극의 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의견을 좁혀가며 노력하는 모습 등 공연 연습 안에 그들의 삶이 보였다. 나는 그들이 시끌벅적한 작은 동네 주민처럼 느껴졌다. 영화에서도 즐겁고 재미있는 일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찌그렁빠그렁대는 관계도 거침없이 드러내 보였다. 또한 발달장애 예술인들의 장애 특성이 문제로서만 소환되는 것이 아니라 재능으로 전환되어 하나의 연극 요소로서 무대로 끌어냈다. 나는 이것이 장애예술만이 가진 예술적 세계라고 생각한다.
두 편의 영화에서 장애예술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엿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며 장애예술은 무한 상상력과 한계가 없는 도전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예술이 꼭 어려운 의미와 특별한 소재를 담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언가 표현할 때 그 행위 자체도 예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아직 장애예술은 미지의 세계이다. 정형화된 비장애 중심의 구조를 깨고 무언가 말하기 시작했고, 그 시작이 어떤 형태로 변화하고 완성되어 갈지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제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함께 구르는 기술〉 〈지금, 네 옆에 있어〉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2024.4.18.~4.20.|마로니에공원, 이음센터 이음홀
2003년에 시작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장애인의 인권과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더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창구가 되고자 한다. 올해 22회를 맞아 ‘잊지마! 원래 내꺼야!’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장애인의 시민권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원래 장애인의 것이었음을, 더는 미룰 수 없는 권리임을 선언한다.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비마이너] 칼럼니스트로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을 연재하는 등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차별적인 사회를 향한 저항하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장애여성 활동가이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ster9079s@gmail.com
사진 제공.©최용석(함께 구르는 기술),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지금, 네 옆에 있어)
2024년 6월 (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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