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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드라마나 영화에 장애인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어디에 조명을 밝혀 어떤 이야기와 이미지를 생산해 내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등장만큼이나 다양하고 다채로운 이야기와 역할로 기존과 다른 장애인 캐릭터가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가장 본질적인 원인은 제작 현장과 제작진의 인식 부족이다. 생득적으로 폭넓은 대중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대중문화는, 대중이 사랑하는 익숙함과 친숙함을 버릴 수가 없다. 이 말을 역으로 짚어보면 대중은 기본적으로 변화와 진보를 그리 선호하지 않으며, 그래서 대중문화는 변화를 수용하기까지 대중의 저항과 충돌을 최대한 피하려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대중의 인식을 이끌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왜 맡겼을까? 다른 문화에 비해 불특정 다수, 다양한 계층이 쉽게 접하고 향유할 수 있는 매체의 특성이 그 이유다.
최고의 화두, 장애 없애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후 최근 2년은 대중문화 콘텐츠 속 장애와 관련한 서사와 이미지는 정체기를 넘어서 퇴행기다. 우려스러운 일이다. 작금의 콘텐츠들이 사회에 던지는 가장 큰 화두는 ‘어떻게 하면 장애를 없애고 비장애인이 될 수 있을까?’이다. 이보다 더한 장애 부정과 장애 혐오가 있을까? 오랫동안 극 중 장애인 캐릭터의 서사에서 기본 매뉴얼처럼 이어져 왔으며, 21세기를 사는 대중에게는 조금 더 판타지적인 소재와 자극적인 설정으로 재현되고 있다.
〈선재 업고 튀어〉(2024)는 요즘 핫한 타임슬립을 소재로 남자 주인공 류선재를 살리기 위해 여자 주인공 임솔의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임솔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하반신마비 장애를 입게 되고, 장애를 가지고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오히려 살려준 이를 원망하는 일상이 재현된다. 그러다 타임슬립으로 걸을 수 있게 되고, 선재 살리기는 물론이고, 장애를 갖게 되고 접었던 영화감독의 꿈을 장애 없애기를 통해 모두 이룬다. 〈반짝이는 워터멜론〉(2023)은 농인인 아빠의 학창 시절로 우연히 타임슬립을 한 주인공 은결이 아빠의 청력을 잃게 만든 과거의 사고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내심 농인 가족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청인인 ‘코다(CODA)’ 이야기를 다뤄 방송 전부터 기대가 컸다. 하지만 결국 사고는 막을 수 없었고, 농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빠를 비극이나 불행으로 인식하는 우리 사회와 대중문화의 인식과 다시 마주해야 했다.
이 밖에도 현재 방송 중인 KBS 주말극 〈다리미 패밀리〉(2024)에서는 보통 사람은 평생 만져보기도 어려운 8억으로 볼 수 있게 된다는 발상을 한다. 넷플릭스의 〈경성 크리처2〉(2024)에서는 생체실험에 성공하면 걸을 수 있다는 말에 서슴없이 동의하고 괴생명체 나진이 담긴 물을 마시는 소아마비장애를 가진 청년이 나온다. 그는 죽을 만큼의 고통을 견뎌 결국 실험 참가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걸을 수 있게 되고, 그의 몸속에서 자란 나진을 척추마비장애를 가진 동생에게 이식하며 더 이상 장애를 가지고 살게 하지 않겠다는 쿠로코 대장의 대사가 재현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농인 차진우와 청인 정모은의 사랑을 그린 〈사랑한다고 말해줘〉(2023)에서는 모은의 꿈속에서 진우가 청인이 되어 모은과 귓속말을 나누며 행복해하는 장면이 나오고, 장애 당사자 감독의 영화 〈똥 싸는 소리〉(2024)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주인공이 꿈속에서 스스로 일어나 연인과 바닷가를 거니는 장면이 연출된다.
상상은 자유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늘, 언제나 장애가 사라지는 상상만 한다. 극 중 장애를 가진 인물들은 이렇게 자신의 장애를 원망하고 경멸하며 부정한다. 요즘 들어 부쩍,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날까지는 현실성 제로인 방법들로 장애 소멸에만 매진한다. 장애가 모든 문제와 갈등의 원흉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세상이 비장애중심 사고에 길들어 보지도, 생각지도 못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경사로만 설치되어도 누구나 건물과 식당에 들어갈 수 있고, 애초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지하철이나 공공화장실 등을 설계했다면 누구나 안전하고 편히 다닐 수 있는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장애 때문이 아니라, 비장애중심 사회여서 장애를 가지고 사는 것이다.
두 번째 화두, 장애와 형벌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2023)가 좋은 드라마인가 내게 묻는다면, 좋은 부분을 가릴 만큼 실망이 큰 작품이었다고 답할 것이다. 그 이유로 가장 컸던 것은 결말에 가해자들이 받는 형벌이다. 박연진의 영혼을 파괴하고, 전재준의 두 눈을 멀게 하며, 남의 고통에 크게 웃었던 최혜정은 목소리를 잃는다. 맞춤형 형벌이라는 평을 듣지만, 죄의 대가를 신체 일부의 영구적 손상, 즉 장애를 입히는 것으로 물었다. 사회가, 대중이 장애를 바라보는 익숙한 시선, 장애는 업보 또는 형벌이라는 장애 혐오의 시선이 어김없이 그대로 녹아든 재현이다.
장애를 단순히 신체적 손상으로 보는 의학적 관점에서 인식하는 과거에 머물면, 이렇게 장애는 결함, 결핍, 무능, 개인이 짊어져야 할 형벌이 된다. 〈더 글로리〉가 징벌의 도구로 장애를 택한 것 역시 과거 장애인식의 끈을 끊어내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이도 오랜 세월 반복해 온 장애 왜곡의 서사 중 하나이며, 대중문화가 그동안 장애를 신체적 손상으로 한정 짓는 오류를 정당화하며 장애를 위치적·사회적 차별에 의한 것, 상호 관계성에서 인식해야 하는 대중의 의식 확장을 막고 있던 것이다.
세 번째 화두, 헌신적 조력과 맹목적 부정 사이
최근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에 조명을 밝힌다. 드라마 〈나쁜 엄마〉(2023)에서 강호의 엄마는 사고로 전신마비 장애를 갖게 된 아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혼자서 밥을 먹지 않으면 밥상을 치워버리는 등 매정하고 다그치는 재활 훈련을 강행하며 결국 아들을 걷게 만든다. 〈다리미 패밀리〉(2024)에서는 장애를 가진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엄마가 등장한다. 주인공 이다림은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퇴행성 희귀망막 질환으로 시각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 다림의 엄마는 결국 남의 돈을 훔쳐 딸을 볼 수 있게 하는 나쁜 엄마가 된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이려니 하면서도, 이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모성애에 빗대 사회의 장애 부정과 혐오, 불행의 인식을 이식하는 스토리텔링은 매번 우려를 넘어 무섭다. 무엇보다도 장애를 고칠 수 있다는 원시적인 인식은 왜 이렇게 뿌리가 깊은지.
또 다른 엄마들의 목소리와 이야기에 조명을 밝힌 드라마를 볼 수 있다. 정신질환과 정신장애를 사회문제로 풀어내 대중의 공감을 얻었던 넷플릭스의 〈정신병원에도 아침이 와요〉(2023)에서였다. 마지막 12화에 딸의 장애를 인정하고 현실에서 딸의 최선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제도와 정책의 문제를 드러내는 엄마가 등장한다. 딸의 꿈이 비행기 조종사인 것을 알지만,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엄마는 직업훈련을 하는 특수학교에 보내기를 원한다. 기준보다 높은 딸의 지능검사 결과를 들은 엄마는, “2점, 5점 때문에 특수학교에 보낼 수가 없다고요. 평범하지 않은 애를 평범하게 키워야 한다고요!”라고 절규하듯 말한다. 결국 드라마는 다니던 학교에서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열어주기로 하며 끝났지만, 이 서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론 궁극적으로는 통합교육을 지향해야 하지만, 우리나라 학교의 대부분은 아직도 교육이나 환경, 인식이 비장애중심이다. 무엇이 더 장애 학생에게 도움이 될지 경험해 볼 기회와 선택권 존중에 대해 대중의 생각을 이끈다.
장애배우와 장애 현실의 부재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정은혜, 이소별 배우 등장 이후,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장애배우가 보이지 않는다. 장애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콘텐츠는 늘어나지만, 배역은 장애배우에게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일례로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 네 명의 농인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실제 농인배우는 단 한 명도 없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제작진의 의지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대중문화 콘텐츠 제작 현장의 낙후한 장애인식을 보여준다. 이 문제의 본질은 장애배우를 배우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다름에 대해 폐쇄적이고 경직된 미성숙한 사회이고 대중문화라는 것과 깊이 관계된다.
장애 배역을 장애배우가 연기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은 장애 현실과 장애와 관련된 것들의 사실성일 것이다. 외출 시 구형 수동휠체어를 탄다거나, 목발이 키에 맞지 않는다거나, 청각장애·시각장애 보조기구의 잘못된 사용이나 묘사 등 자주 지적되는 문제는 장애배우의 존재만으로도 어느 정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장애인식이 성숙하지 않는 한, 〈선재 업고 튀어〉에서 류선재 사망 소식에 임솔이 구형 수동휠체어를 타고 병원까지 달려가다 넘어져 결국 못 가는 무모하고 현실성 없는 장면들은 번번이 재현될 것이다. 장애를 보조하는 것들의 사실적 재현은 장애가 결함이나 불행이 아니라, 다채롭고 개성으로 인식시키는 시각적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사실적인 연출이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며, 장애의 자존감과 활동의 주체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대중이 사랑하는 익숙함을 깨다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차진우가 미술을 가르치는 농인 학생 김기주와 이지민, 그리고 청인 학생 강시후라는 캐릭터 덕분이다. 강사와 학생 모두 농인인 교실에 어느 날 갑자기 청인 학생이 들어오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그동안 청인 중심의 사회와 학교에서 농인 학생들이 겪었을 소외감은 물론, 소통과 수업 참여의 어려움 등을 역지사지해 볼 수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요즘 농인 청소년들의 문화도 살짝살짝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무시와 차별이 늘 도사라는 일상이지만, 이 교실 안에만 들어오면 서로의 다름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고, 상호 보완관계임이 녹아 있다. 현실과 다른 평화로운 모습을 보면서 대중은 이것의 당연함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까?
순간순간 모두가 다운증후군인 세상에 다운증후군이 아닌 아기가 태어나 살아가면서 겪는 시선과 차별, 그의 성공담을 그린 벨기에의 단편영화 〈다운사이드 업〉이 떠올랐다. 이런 역지사지의 이야기는 새로움과 낯섦에 대한 거부감을 낮춘다. 그리고 익숙함의 관성을 자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가장 큰 의미는 수어를 하나의 언어로 대중이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 비평 글을 쓰다 보면 종종 감독의,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 달까? 세상이 향해야 할 방향, 최후까지 지켜야 할 태도와 가치를 이토록 치밀하게 정성 들여 이야기하고 있었구나 싶은 작품이 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이 내겐 그런 작품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자폐성 발달장애 청년 현수오가 자신이 목격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결국 사건의 진범들과 거짓과 조작으로 은폐하려던 사람들을 밝혀내는 이야기에 메인 조명을 밝힌다. 표현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존중받지 못해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고 무시되는 것에도 조명을 밝힌다. 주인공이 전과자로 낙인찍혀 억울하게 산 세월의 인과관계에는 현수오의 진술이 무시된 조사 관행도 있음을 인식시키려 한 구성으로 보였다. 그래서 조금만 현수오에게 집중해서 본 대중이라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사회통념(불편한, 아픈, 부족한, 모자란, 할 수 없는)으로 인해 가족과 사회의 짐처럼 여기는 인식은 실상 이 사회가 책임과 의무를 회피해서라고 콕 짚어 말하지 않아도 정말 잘못된 인식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장애 당사자의 미디어운동이 필요하다
최근까지도 대중문화 콘텐츠 속 장애를 가진 인물들은 장애 없애기에서부터 비극과 불행 그리고 형벌 등 장애 편견과 혐오, 배척의 대상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는 대중이 장애를 바라보는 익숙함의 재현이기도 하지만, 이를 대중문화 콘텐츠가 영상의 실물감과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공해 대중의 잘못된 인식을 더욱 다지는 역할에만 머무는 것이다. 이런 지적들은 장애계는 물론 여성계, 그 외의 소수 계층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왜 이럴까? 왜 지적하는 데도 변화가 없을까?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여론을 이끄는 대중문화는 조금 더 강하고 다수인 대중에 편에 서기 쉬운 인식과 구조, 환경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런 모순을 지적하고 제작진의 장애에 대한 무지함을 꼬집고 바로잡는 장애계의 미디어운동이 필요하다. 요즘처럼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커진 시대에는 더욱더 제작 단계에서 장애를 가진 대중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장애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하고, 그 필요성을 인식시켜야 한다.
최근 장애 당사자가 감독으로 참여해 비장애인과의 연애를 담아낸 영화 〈똥 싸는 소리〉,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어머니의 에세이를 영화화한 〈그녀에게〉가 개봉했다. 〈그녀에게〉는 원작자가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해 자폐성 발달장애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와 대중의 시선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담아내 우리 안의 다름에 대한 인식과 혐오를 직시한 영화로 대중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작업을 보면서 역시 드라마보다는 영화가 진일보한 매체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한다. 이들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떠나 이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고 환영하며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앞으로 더 많은 작품에서 장애를 가진 배우와 감독, 작가, 스태프들이 참여해 목소리를 내면 좋겠다. 당연해야 할 이런 작업이 진정 당연하게 여겨질 때 대중문화가 밝히는 조명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며 대중의 장애인식도 변화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연결고리 중 하나인 장애 당사자의 피드백과 대중문화비평 활동도 활발해질 수 있도록 양성하고, 장애 당사자성을 전문성의 영역으로 인정해야 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대중은 웃고 울며, 공감하고 감동하지만, 이들 콘텐츠 속 장애 인물들을 보는 어느 대중은 이질감과 굴욕, 상처와 좌절을 경험한다. 이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대중문화 전반의, 특히 드라마, 영화 제작 현장과 제작진이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지점이 아닐까?
백수정
어릴 적 친구였던 TV가 일이 되어, 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대중문화를 읽고 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방송모니터 자문위원, 서울YMCA 어린이영상문화연구회 부회장으로 다양한 미디어 모니터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언론인을 위한 장애인권 길라잡이』를 함께 썼고, 디지털 언론매체 [함께걸음]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s-j0611@hanmail.net
2024년 12월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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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날이 춥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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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드라마에서 장애를 다루고 있는데, 이렇게 방대하고 깊게 살핀 글을 보니 드라마가 달리 보입니다. 소개해준 영화들도 찾아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