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광장
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자연과 사람, 삶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으며 나만의 예술세계를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붓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결혼과 함께 두 딸을 양육하면서는 정신적·육체적으로 두 배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행여나 장애가 있는 엄마라서 아이들이 불편해할까, 마음이 편치 않아 학교 활동을 하며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을 변화시키려고 애를 많이 썼다. 30년 전부터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했던 건 아닐까?
시간은 흘러 마흔 중반에 나를 돌아보게 되면서 다시 붓을 들었다. 자연의 품은 늘 위안을 주고 희망을 꿈꾸게 하며 나의 부족함을 대신해 준다. 나에게 있어서 그림은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언어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 역할을 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가 느꼈던 따뜻함을 문화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함께 전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던 차에, 복지관에서 장애 청년들에게 그림을 지도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림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며 지도할 수 있을까 고민도 앞섰다. 그러나 함께 나누고 싶었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각자 성향이 다르고 장애도 달랐지만, 순수한 마음과 눈빛은 나의 마음을 분주히 움직이게 만들었다. 하이파이브를 무척 좋아했던 참여자가 기억에 남는다. 손바닥이 아프도록 세게 부딪칠 때마다 더 열심히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였고, 땀을 흘리면서 자유로운 색연필의 움직임으로 도화지를 메꾸곤 했다. 칭찬과 관심은 모두에게 힘이 됨을 느꼈다. 또 한 참여자는 갑자기 뒤에서 내 머리를 잡아당겼다. 평소에 악수를 좋아했는데 악수를 하지 못해서 그런 건가,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괜찮아”라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더니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리며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갔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미술 수업이 잠정 중단 되어버렸다. 순수한 눈빛들이 많이 생각나고 보고 싶었다.
2023년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진행하는 ‘장애예술인 강사 양성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예술로 나눔을 실천하고자 했던 내 마음과 꼭 맞는 길이었다. 처음에는 어떤 교육 대상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 ‘내가 휠체어를 타고 강사로서 통합문화예술을 잘 진행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소심해지기도 했다. 강사 양성과정은 동작과 음악, 춤 등 다양한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엔 소극적이었으나 두 번 세 번 할 때마다 조금씩 용기가 생기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장애예술인 강사로서 나 자신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처음엔 교육 기간이 왜 이리 길까 생각했으나, 교육과정을 통해서 장애에 대한 인식과 접근법, 문화예술의 역할을 깊이 있게 배우면서 점차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예술은 단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가 감동이고 소통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무엇보다 그 예술이 ‘누구나 가능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발산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수료 후 지역 복지관과 복지센터 등에서 통합문화예술 강의를 시작했다. 처음 만나는 참여자들에게 다가가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지만, 우리가 함께 붓을 들고 색을 입히는 순간 경계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손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아도, 말을 천천히 해도, 여러 가지 선과 색처럼 나 자신도 그들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강의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참여자들의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창의력이었다. 기존의 규칙이나 기법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과 색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모습은 오히려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한 참여자는 노란색과 초록색을 사용하여 반복적으로 꽃을 그렸는데, 언니가 좋아하는 색이라는 말을 한 후 한참 동안 자신의 도화지만 바라보았다. 어떤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예술은 기억을 되살리고 마음을 여는 통로였다.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것은 서로가 예술을 통해 ‘소중한 존재’임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림을 함께 그리며 자신을 표현하고 서로를 잘했다고 응원하고, 함께 웃었다. 누군가에게는 일상 속 낯선 경험이었을 수 있지만, 그 시간만큼은 모두가 예술가였다.
장애예술인 강사로 활동하면서 나 자신이 더 성장했음을 느꼈다. 혼자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릴 때와는 다른 깊이의 감정과 교감을 경험했고, 예술의 본질에 더 가까워졌다. 장애예술인 강사의 길은 단지 누군가에게 예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음 해인 2024년에 열린 ‘장애예술인 강사 심화 과정’도 수강했다.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나만의 교안을 짜며, 문화예술 통합 프로그램 진행에 자신 있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예술을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공감하고 사회로 한발씩 내디디며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과 연결되는 소중한 기회였다. 예술강사로서 다양한 공간에서 만난 장애인들과의 시간은 내게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그것은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그 안에서 위로받고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로 친해지기 과정에 만든 자화상
미술·무용 통합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필자

이순화
자연과 삶의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담아내는 화가이다. 《자연-바라보다》(2023) 외 7회의 개인전과 200회 이상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교육 강사, 예술인강사, 휠체어합창단원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 개인 작업실 ‘아뜰리에 SOON’을 오픈하여 작업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soonhwale@hanmail.net
사진 제공.필자
2025년 7월 (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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