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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시선 농인의 시각으로 오디즘 읽기① 낯선 단어가 내게로 번지던 시간

  • 옥지구 시인
  • 등록일 2026-06-24
  • 조회수 33

모두의시선

나는 세 살에 사고로 청력을 잃었다. 그리고 일곱 살부터 이십 대가 될 때까지 청인처럼 듣고 말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시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인공와우 수술을 했고, 소리를 구별하는 감각을 익히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청능 훈련을 받았다. 빛을 내어 어둠을 밝히는 물체가 [물]인지 [풀]인지 [불]인지 정확히 알아듣기 위해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고 또 봤고, 매번 불러야 하는 ‘선생님’은 하필이면 음절마다 받침이 달려 있어 제대로 발음하려면 진땀을 빼야 했다. 가족들은 내가 한계를 극복하고 청인처럼 살 수 있기를 희망했다. 나도 그 희망이 정답이라 믿었다. 그러니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내 직장은 ‘농사회’가 아닌 ‘청사회’에 있어야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나를 동료가 아닌 배려해야 할 대상으로 대하는 청인을 많이 만났다. 내가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고 밝히면 ‘어떻게 저 사람과 같이 일하지?’라는 난감한 표정과 기꺼이 배려해 주겠다는 눈빛이 돌아왔다. 그들은 나를 동료로 대하기보다 신체에 문제가 있는 사람인 듯, 어린아이인 듯 대했다. 나는 원치 않은 배려를 받게 된 처지가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불편함을 이야기하면 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두려웠다.

그 시절 나는 청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으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농인을 받아주는 회사는 많지 않으니까. 나를 향해 소리 지르는 것은 답답해서가 아니라 안타까워서라고, 내 팔을 잡아당기는 것은 참을성의 한계를 드러낸 게 아니라 배려의 표현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하지만 인내심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나는 청인들이 내 앞에서 입 모양을 과장해서 말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었고, 나에게만 다른 말투를 쓰는 것을 이해하기 버거웠다. 청인 사회에서 살아가려 노력했지만, 청인처럼 살 수는 없었다. 내 노력을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욕심일까? 사회가 내 존재를 이해하기를 바라는 건 이기적인 걸까? 정체성의 혼란이 깊어졌다.

어느 날 퇴근길, 차가운 바람에 차오르는 눈물을 견디지 못한 채 서점에 들렀다. 그곳에서 이길보라 감독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창비, 2023)을 골라 들었다. 평소 각주에 눈을 두지 않던 내 눈에 낯선 단어가 쏙 들어왔다. ‘오디즘(Audism)’과 ‘에이블리즘(Ableism)’. 나는 두 단어의 의미를 곱씹었다. 듣는 능력을 갖춘 청인이 우월하다고 믿고 농인에게 청인처럼 행동하라고 하는 청능주의 ‘오디즘’, 비장애인의 신체를 기준으로 삼는 사고 ‘에이블리즘’. 두 단어에 내 농정체성을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불편함이 분명해졌다.

그대로 책을 구매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와 끝까지 샅샅이 읽고는 곧바로 펜을 들었다. 그렇게 30분 만에 “난 절망한 당신의 눈빛을 관찰하고 싶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오디즘Audism」 초고를 완성했다. 내 몸에 엉겨 붙어있던 불편함이라는 찌꺼기를 뜨거운 흥분으로 씻어내던 감각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 시는 나의 첫 번째 시집 『어느 누구에게도 다정함을 은폐하기로』(출판사핌, 2024)에 수록되었다.

나는 여전히 청사회에서 일한다. 직장에서는 동료들과, 집에서는 가족과 구화(口話)로 소통한다. 농 지인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수어로 대화한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불편함을 무조건 참아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인과 대화하며 놓치는 부분이 생기면 필담을 요청할 줄 알게 되었고,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때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하고 부탁하는 일도 예전보다 자연스러워졌다. 음성 통화를 하는 게 당연했던 가족도 어느 순간부터 영상 통화로 내게 입 모양을 보여준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농인’이라는 단어로 나를 소개하는 일도 편안해졌다. 농문화 속에서 한국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나의 일부를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소되지 않은 불편함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감정을 사색하고 시로 기록하는 일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 깊고 선명한 파란색 바탕의 책표지 사진. 상단에는 사각형 손가락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를 끼고 있는 흑백사진이 있고, 하단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다정함을 은폐하기로” “옥지구”라고 쓰여 있다.

    옥지구, 『어느 누구에게도 다정함을 은폐하기로』
    (출판사 핌, 2024)

  • 양쪽으로 펼쳐진 책의 오른쪽 면에 시가 적혀 있다. 오디즘(Audism) 난 절망한 당신들의 눈빛을 관찰하고 싶어 // 약오르게 울고 나서야 오, 오디즘 / 난 그대들이 원하는 일원으로 진실하지 못해 / 굴복하는 연기를 하기 직전에 난 나를 미운 듯이 // 오, 오디즘 (이하 생략)

    옥지구 시 「오디즘(Audism)」 첫 장. 『어느 누구에게도 다정함을 은폐하기로』 수록.

옥지구

옥지구

199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슬픔을 억누르기 위해 유치한 장난을 연구하는 내향인.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다. 시집 『어느 누구에게도 다정함을 은폐하기로』(출판사 핌, 2024), 일기 에세이 『어차피 삶은 이미 아름다워질 준비가 돼 있어』(부크크, 2024)를 출간했다.
ninexnain9@gmail.com

사진 제공.필자

2026년 6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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