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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시선 무장애 여행의 장면들② 통영 동피랑에서 배운 여행의 속도

  • 하석미 한국무장애관광연구센터 대표
  • 등록일 2026-07-22
  • 조회수 39

모두의시선

통영은 내게 바다보다 먼저 ‘언덕’으로 기억되는 도시다. 물론 통영의 바다는 아름답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 바람에 섞여 들어오는 짭조름한 냄새, 골목 사이로 문득문득 보이는 푸른 물빛은 통영을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고 부르는데,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거창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피랑 언덕 위에서 통영항을 내려다본 순간, 괜히 생긴 표현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통영은 멀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당일치기로 가볍게 다녀오기에는 거리도 마음도 조금 큰 여행지다. 그런데도 나는 통영을 좋아한다. 한 번 다녀오면 쉽게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시장의 활기, 항구의 바람, 벽화가 그려진 골목, 그리고 나를 아찔하게 만들었던 동피랑의 가파른 언덕까지.

통영 여행은 중앙시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답게 시장 안에는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하다. 활어 손질하는 소리, 상인들의 목소리, 문어발과 쥐포 굽는 냄새가 뒤섞여 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시장을 지나가면 간혹 “서울에서 여기까지 왔어요?” 하고 말을 건네는 분들이 있다. 그런 말 한마디가 낯선 도시를 조금 덜 낯설게 만든다. 충무김밥과 꿀빵도 빼놓을 수 없다. 충무김밥은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통영 사람들의 삶이 들어 있다. 배를 타고 멀리 나가 일하던 사람들이 간단히 먹기 위해 밥을 김에 싸고, 꼴뚜기무침과 섞박지를 곁들여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여행지에서 먹는 음식은 배를 채우는 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지역 사람들이 어떤 바람을 맞으며 살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하루를 견뎠는지 조금은 짐작하게 해준다.

  • 흰 접시 위에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려진 큼직한 섞박지와 꼴뚜기 무침이 앞쪽에 놓여 있다. 그 뒤편으로는 한입 크기의 충무김밥 여러 개가 층층이 쌓여 있으며, 초점이 흐려져 있다.

    꼴뚜기 충무김밥

  • 푸른색 계열로 칠해진 높은 옹벽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벽면 중앙에는 ‘통영 동피랑’이라는 글씨와 함께 꽃송이, 소나무 그림이 보이며, 아랫부분에는 커다란 나비 두 마리가 그려져 있다. 옹벽 위로는 갈색 나무 울타리와 건물 일부분이 살짝 보인다.

    동피랑

시장 구경을 마치고 동피랑으로 향했다. 동피랑은 통영의 대표적인 벽화마을이다. 골목마다 그림이 있고, 벽마다 이야기가 있다. 높은 곳에 자리한 마을이라 위로 올라갈수록 통영항의 풍경이 넓게 펼쳐진다. 하지만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동피랑은 그저 예쁜 벽화마을로만 기억되기 어렵다. 입구부터 경사가 만만치 않다. 특히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그날도 나는 알록달록한 벽화가 눈에 들어오자 마음이 먼저 앞섰다.

‘조금만 올라가면 더 잘 보이겠지.’
‘저 위에서 내려다보면 통영항이 정말 예쁘겠지.’

그 생각 하나로 경사진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전동휠체어도 잘 올라갔고, 나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덕 중간쯤에서 갑자기 휠체어가 멈췄다. 정말 말 그대로 멈췄다. 컨트롤러를 껐다 켜보아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불도 들어오지 않았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평지에서 멈춘 것이 아니었다. 경사가 있는 언덕 한가운데였다. 전동휠체어는 무겁고, 내 몸은 그대로 휠체어 위에 있었고, 뒤로 밀리면 큰일이었다. 그때의 느낌은 지금도 또렷하다. 당황스러움보다 먼저 무서움이 올라왔다.

‘여기서 뒤로 밀리면 어떡하지?’
‘이 언덕에서 휠체어가 완전히 고장 난 거면 어떻게 내려가지?’
‘혼자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해서 모든 순간이 익숙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이 다녀봤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얼마나 순식간에 생길 수 있는지도 안다. 그때는 정말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주변에 관광 온 사람이 있었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전동휠체어를 두세 사람이 잡고 수동으로 전환한 뒤 안전한 곳까지 밀어 달라고 부탁했다. 낯선 분들이 함께 도와주셨고, 겨우 평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과부하로 인해 퓨즈가 나간 것이었다. 예비 퓨즈를 가지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없었다면 여행은 그 자리에서 멈췄을지도 모른다. 다른 분의 도움을 받아 퓨즈를 교체했고, 다행히 전동휠체어는 다시 움직였다. 그제야 굳어 있던 몸이 풀렸다. 그날 이후 내 여행 준비물 목록에는 반드시 예비 퓨즈가 들어갔다. 누군가는 “그 작은 걸 꼭 챙겨야 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동휠체어 사용자에게 작은 퓨즈 하나는 여행 계속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물건이다. 이제는 퓨즈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분리하고 교체하는지 휴대전화에 영상으로 찍어둔다. 내가 직접 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누군가에게 영상을 보여주면 훨씬 설명하기 쉽다. 낯선 여행지에서 당황한 채 말로만 설명하는 것과 영상을 보여주며 부탁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한 가지 습관도 생겼다. 경사가 심한 길에서는 한 번에 무리해서 올라가지 않고 중간에 잠시 멈춘다. 전동휠체어도 숨 고를 시간이 필요하니. 무리해서 끝까지 올라가는 것보다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동피랑에서 배웠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동피랑 골목을 둘러보았다. 처음에는 벽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금 전 일이 너무 생생해서 풍경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다시 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들, 좁은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 사진을 찍으며 웃는 여행객들, 그리고 언덕 아래로 펼쳐진 통영항. 동피랑에는 통영 사투리로 적힌 문구도 있었다.

“우와, 몬당서 채리보이 토영항 갱치가 참말로 쥑이네~”

처음에는 무슨 뜻인가 싶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풀어보면 “와,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통영항 경치가 정말 끝내주네”라는 말이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웃음이 났다. 조금 전까지는 무서워서 식은땀이 났는데, 어느새 나는 통영 사투리 문구 앞에서 웃고 있었다. 여행은 그래서 묘하다. 힘들었던 순간도 풍경 속에 섞이면, 나중에는 이야기로 남는다.

통영은 동피랑만으로 끝나는 도시가 아니다. 중앙시장 앞 포구를 따라 걸으면 거북선이 보이고,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통영은 바다 풍경이 아름다운 도시이면서 동시에 역사의 기억이 살아 있는 도시다.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이순신공원에 오르면 한산도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공원 안에는 산책로와 데크길이 있어 천천히 둘러보기 좋다. 다만 올라가는 길에 경사가 있으니,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한다면 전망대 가까운 곳에서 내리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밤의 통영을 보고 싶다면 디피랑도 추천한다. 디피랑은 동피랑과 서피랑의 벽화를 모티브로 만든 미디어아트 공간이다. 사라진 벽화들이 밤이 되면 빛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두운 숲길 사이로 빛과 영상, 음악이 이어지는데, 낮의 통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다만 밤에 이동하는 곳이라 바닥 표시를 잘 보고, 경사 구간에서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휠체어 이용자는 낮보다 더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좋다. 통영케이블카도 많은 사람이 찾는 코스다. 미륵산에서 내려다보는 한려수도 풍경은 통영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전동휠체어 이용자는 수동휠체어로 갈아타야 한다. 방문 전 탑승 방식과 도움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여행지에서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도 필요하지만, 휠체어로 첫 여행에서는 “미리 확인하고 가자”는 마음이 훨씬 안전하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욕지도도 좋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라 준비할 것이 더 많다. 신분증은 반드시 챙겨야 하고, 배 시간도 꼼꼼히 봐야 한다. 휠체어 배터리 용량도 중요하다. 섬에서는 충전할 곳이나 도움받을 곳이 제한적일 수 있으니, 갈 수 있는 거리뿐 아니라 돌아올 거리까지 생각해야 한다. 욕지도는 바다를 옆에 두고 달리는 길이 참 좋지만, 섬 여행은 욕심보다 계산이 먼저다.

통영에서 내가 배운 것은 풍경보다 속도였다. 전동휠체어가 멈춘 그날, 나는 여행을 포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무리하지 않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 내 여행은 조금 달라졌다. 더 많이 준비하고, 더 자주 확인하고, 더 천천히 움직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여행의 설렘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준비가 있으면 낯선 길도 조금 덜 두렵다. 휠체어를 타고 여행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일을 자주 만난다. 경사로가 너무 가파를 때도 있고, 문턱 하나 때문에 들어가지 못할 때도 있다. 충전 걱정을 해야 하고, 화장실 위치를 먼저 확인해야 하고, 배나 케이블카를 탈 때도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이 여행의 전부는 아니다.

여행은 늘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잠시 멈춘다고 해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멈춘 자리에서 배울 것이 있고, 다시 움직일 방법이 있다. 통영은 내게 그 사실을 알려준 도시다.

  • 어두운 밤하늘 아래, 울창하게 뻗은 나뭇가지와 잎사귀 위로 보라색, 파란색 등 알록달록한 레이저 조명 빛이 흩뿌려져 있다. 조명을 받아 신비로운 색으로 빛나는 숲의 풍경이 화면 가득 담겨 있다.

    디피랑

  • 푸른 바다 위에 사각형 모양의 양식장 시설들이 군데군데 떠 있다. 바다 뒤편으로는 완만한 능선의 산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산꼭대기 부근에는 송신탑 하나가 솟아 있다. 화면 가장 아래쪽에는 초록색 소나무 가지들이 보인다.

    욕지도

[알아두면 좋은 정보]

 

통영중앙전통시장

충무김밥, 꿀빵, 활어, 건어물 등 통영의 간식거리를 즐길 수 있다. 시장 주변은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지만, 사람이 많은 시간대에는 통로가 좁게 느껴질 수 있다. 가능하면 한산한 시간에 둘러보는 것이 좋다. 장애인화장실이 있고, 주출입구에 단차가 없다.

 

동피랑마을

벽화가 그려진 골목과 동포루, 통영항 전망이 볼거리다. 입구와 골목 경사가 가파르니 전동휠체어 이용자는 혼자 무리해서 오르지 말고, 동행 도움을 받거나 하차 위치를 미리 조정하는 것이 좋다. 장애인전용 주차 구역이 있다.

 

디피랑

미디어아트와 빛의 산책길, 통영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야간 관람지라 바닥 표시와 경사 구간을 잘 살피며 이동해야 한다. 어두운 곳에서는 속도를 줄이고 동행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좋다. 홈페이지에서 운영시간과 입장 마감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순신공원

이순신 장군 동상과 한산도 앞바다 전망, 데크 산책로가 있다. 올라가는 길이 다소 가파르니 장애인콜택시 이용 시 전망대 가까운 위치에서 하차 요청을 하면 이동이 더 수월하다.

  • 주소 : 경상남도 통영시 정량동 688-1
  • 추천 : 이순신 장군 동상, 한산도 앞바다 전망, 산책로
 

기타 정보

  • 통영케이블카 :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정상까지 오르며 한려수도의 전망을 바라볼 수 있다. 전동휠체어 이용자는 탑승 방식과 수동휠체어 대여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혼자 수동휠체어를 구동하기 어려운 경우 동행 여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 욕지도 : 통영항 여객선을 이용해 이동하며, 날씨 확인, 신분증, 배 시간, 배터리 잔량을 미리 챙기는 것이 좋다. 섬 안에서는 전동휠체어 배터리 충전이나 지원을 받을 곳이 많지 않을 수 있다. 돌아올 거리를 먼저 계산하고 이동하는 것이 안전하다. 장애인 화장실은 터미널 주변에서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 통영 엔쵸비 관광호텔 : 장애인 객실이 마련되어 있다. 휠체어 이용자는 예약 시 장애인 객실 이용 가능 여부를 미리 확인하고 요청하면 보다 편안하게 숙박할 수 있다. 장애인 객실은 수량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사전 예약을 권장한다. (경남 통영시 동호로 56, 전화 0507-1426-6002)
  • 경남 장애인 통합콜 : 전화 1566-4488. 마산역이나 진주역 도착 전 미리 연락해 통영 이동 시간을 여유 있게 잡는 것이 좋다. 지역과 시간대에 따라 배차 상황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일정은 넉넉하게 계획하는 것이 좋다.
하석미

하석미

장애 인식개선 강사이자 여행작가, 문화접근성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국내외를 여행하며 무장애 환경과 문화적 권리를 알리고, 여행 정보를 공유해 장애인의 이동권 확대에 힘쓰고 있다. 현재 한국무장애여행연구센터 대표로서 방송, 강연, 집필 활동을 통해 모두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chanmee07@naver.com

사진 제공.필자

2026년 7월 (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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