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나지 않는 것들의 소리를 상상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작품 '햇빛소리'는 두 명의 농인 무용수가 펼치는, 수어를 활용한 듀엣안무에 대한 댄스필름이다. 햇빛은 자연의 모든 생명체들을 어루만지면서도 소리가 없다. 다만 햇살이 쏟아지는 소리를 상상해본다면 ‘사르르’ 같은 소리일 수도, 새가 지저귀는 듯한 소리일 수도,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 같은 소리일 수도 있겠다. 안무가로서 수어를 접했을 때의 감상을 말하자면, 소리 없는 몸짓이 마치 햇빛처럼 소리가 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사용하는 사람들의 손짓과 표정이 생생해서 기호체계로서가 아니라 감각 그 자체로 의미를 전달받는 것 같았다.
이 영상 속 춤에는 음악이 없다. 대신 언어와 숨, 발걸음으로 박자를 맞춘다. 두 무용수는 자연과 계절의 순환을 나타내는 수어들을 읊으면서 그 움직임들을 발전시켜나간다. 때로는 춤이 의미요소와 함께 나아가기도, 때로는 두 무용수 간의 관계가 단어들과는 전혀 다르게 제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표정은 경계와 적대를 느끼게도 하지만 수어에서는 ‘구름’이나 ‘눈’처럼 흰색의 물체를 묘사할 때 이빨을 손으로 가리킨다. 나는 적게나마 두 명의 무용수분들로부터 단어를 배우면서 이러한 지점들, 말하자면 비언어적 몸짓과 언어적 몸짓이 때로는 비슷하다가도 전혀 다른 순간이 있다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 영상을 보는 관객분들에게 나는 두 가지의 서사를 보여주고자 한다. 수어가 말하는 단어들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메시지, 그리고 메시지와 함께 가다가도 전혀 다른 상황과 관계를 그려낼 수 있는 두 사람의 움직임. 동시에 펼쳐지는 이 두 가지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어느새 조용한 가운데 머릿속이 떠들썩한 상상력으로 가득 차지 않을까.
-안무/감독 성승정-
ㅇ 제작·배급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1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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