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이야기
쥐들이 모여사는 마을
다른 들쥐들이 겨울 양식을 모으는 동안,
작은 들쥐 프레드릭은
가만히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다른 쥐들이 밀과 옥수수를 모으는 동안,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춥고 힘겨운 잿빛 겨울,
모아두었던 양식이 떨어지자
굶주린 쥐들은 프레드릭에게
모아두었던 것들을 보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프레드릭은 쥐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찬란한 금빛 햇살과
초록빛 딸기 덩굴과
아름다운 사계절의 풍경을...
프레드릭의 이야기에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왔습니다.
모두 행복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프레드릭입니다.
세상을 잘 보고
속속들이 배우며
우리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대안학교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고요하게 맞이하는 아침.
따뜻한 차 한 잔에 몸을 깨우고 호흡에 집중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명상은 우리의 오랜 루틴이죠.
명상이 끝나면 예정된 오늘의 일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을 엽니다.
오늘은 예술 수업의 일환으로
벽화 그리기가 진행되는 날입니다.
예술 수업은 우리와 인연이 깊은 예술인들과 협업해 진행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심사를 주제로
다양한 예술적 표현을 경험하고 실험하는데 집중합니다.
최근 이사한 새터전의 마당 한쪽 작은 벽이 우리의 캔버스입니다.
함께 지내온 날들을 떠올리며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 작은 벽 안에 담아내고 있죠.
우리의 소중한 공간을 우리만의 이야기로 채우는 시간.
함께 했던 추억이 담벼락 위에 방울방울 맺힙니다.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은 농아동과 농청소년이
바른 농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대안학교입니다.
흔히들 ‘소보사’라 짧게 줄여 부르고 있죠.
소보사는 2006년 농인들을 위한 공부방에서부터 시작해
2017년 정식 대안학교로 거듭났습니다.
소보사는 농인의 모국어인 수어를 가르치고 수어로 교육합니다.
수어의 문법과 특성을 배우고 수어 문학을 공부하며
국제 수화나 ASL과 같은 외국어로서의 수어도 익힙니다.
공교육기관에서 가르치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의 교과목도
수어로 수업합니다.
수어로만 수업하는 교육기관은 아직까지 전국에서 소보사가 유일하죠.
소보사에는 공동체 활동을 위한 공유 공간과
연령대별 활동 공간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소보사의 모든 공간에는 방문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소리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죠.
우리의 공간은 서로가 서로를 잘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소보사는 수어를 아이들의 언어로 인정하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자기 언어를 습득하고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는 그 모든 환경의 공동체를 만들어준다
농인들은 원래 있어야 할 무언가가 없어진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그냥 애초에 소리와 무관하고
소리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들이고
굉장히 잘 보고 보이는 언어인 수어를 사용한다는 거예요
농인으로서 내가 어떻게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찾아가도록 돕는 단체예요
이게 저희 아이들이 프로젝트 활동하면서...
소보사에서는 학습자 중심의 프로젝트 수업을 많이 합니다.
주제부터 그에 대한 연구 방법과 실행까지
모두 학생 스스로 기획하고 진행하죠.
아이들이 유행어처럼 소보사에서 쓰는 단어들을...
아이들과 선생님들 얼굴이에요
예술 수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관심사
함께 경험하고 해결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나누고 드러냅니다.
농인이 보는 세상
그 안에서 농인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농인의 문화 안에서 표현합니다.
최근 네 명의 청인 예술인들과 함께 진행했던 예술 수업에서는
<마주보기>, <내가 본 세상은>이라는 제목의
짧은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는 3명의 고등부 학생들과 청인 예술인들이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는 과정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었죠.
학생들은 청인 예술인들과 만나며 농인으로서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드러냈고
예술인들의 시선으로 재해석된 농인의 정체성을 흥미롭게 지켜보았습니다.
그야말로 우리가 본 세상을 마주보는 경험이었죠.
우리가 말하는 농문화가 무엇인가?
청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 문화와 굉장히 다른데
무엇이 다른가라는 것들을
자기 언어로 재구성하고 정리하고 표현하는 과정들을 많이 다뤄요
그때 많이 주목되는 게 수어문학이라든지 수어예술의 형태인 거죠
시각적이고 직관적인 언어인 수어를 예술로서 드러내는 부분들도
농문화의 하나로 차지하고 있어요
지금은 천하제일탈공작소와 함께
탈춤과 수어를 결합하는 맞장구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문 예술인들에게 탈춤을 배우는 동시에
수어를 비롯한 우리의 농문화를 결합해
새로운 공연 예술로 만들어가고 있죠.
곧 작은 발표회를 앞두고 있어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틈나는 대로 연습합니다.
변호사를 꿈꾸는 가은이는 누구보다 당찬 친구입니다.
매사 논리가 뚜렷하고 자기 주장이 분명하죠.
언제나 똑 부러지게 자기 일을 스스로 해내는 가은이
뒤끝없이 시원시원한 성격까지 그야말로 매력 만점입니다.
키가 큰 상일이는 천진한 소년미가 넘치는 친구입니다.
장난기가 많고 게임을 좋아하죠.
몸도 잘 쓰고 잔머리도 잘 쓰는 상일이
언제나 우리에게 유쾌한 웃음을 선사합니다.
유도선수를 꿈꾸는 요셉이는 그야말로 만능 스포츠맨입니다.
특유의 밝고 친화력있는 성격으로 다른 나라 농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한 요셉이는 사랑이 많고 따뜻한 친구입니다.
소보사가 정말 제2의 가족이 돼요
우리가 이 안에서 안전할 수 있는
수어 언어 환경이 제공된 이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갔고
함께 그렇게 성장해 왔기 때문에
가족 같은 끈끈함이 있는 거 아닌가
소보사는 수어로 농정체성을 배울 수 있는 곳이고
정체성이 약해졌을 때 회복할 수 있는 곳이에요
농인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죠
저한테 소보사는 항상 긍정적인 곳이예요
그 영향으로 저도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거 같아요
또 가족같은 공동체예요
저희끼리는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초등학교때부터 다같이 자랐거든요
저희는 전승되는 문화들이 중요하잖아요
그것들이 이어져서 농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데
소보사가 그런 문화들을 이어가는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한테 소보사는 물음표였어요
소보사가 뭐지?
그런데 돌아보니 소보사는 나에게 쉼터이자
조언을 해주고 멘토가 되어주는 공동체였어요
이곳이야말로 공동체의 기본인 거 같아요
이곳이 아니었다면 저는 사회에 나가서 엄청 흔들리고
제대로 자립하지 못 했을 거 같아요
소보사가 곧 저의 터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보는 사람이라는 농인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수어를 쓰고 농문화를 긍정하며
농인으로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합니다.
농인이 농인으로 가장 농인다운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잘 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수어로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따뜻한 농인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현장탐방은 장애 예술단체의 창작활동이 이루어지는 다양한 공간과 활동 사례를 발굴하여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 현장탐방: 예술해볼라GO 시즌2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기사가 궁금하시다면 웹진이음에서 확인하세요. [기사 바로가기](링크)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gmail.com 이근영 사진작가 studioowau@naver.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