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안녕하세요 외규장각의 계실 전시
해설을 해드릴 국립 중앙박물관 학계
연구사 김진실
있니다 외교 장각 의기는 해외로 무담
반출되었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대표적인
환수 문화 유산입니다 2011년
프랑스로부터 돌아온 외교 장각 의는
국립중앙 박물관에
자리잡았습니다 13년 동안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는 두 차례의 특별전과 일곱
건의 연구서를
발간했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토대로
외교 장각 의만 위한 공간인 왕해
서고가 문을
열었습니다 전시실 입구에서 천천히
걸어들어오면 수백개의 책표지로
이루어진 도입부 공간이 보
입니다이 공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번 천천히 둘러
보세요 조명 사이로 초록색 비단으로
만들어진 의계 표지들이
보이시나요이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외교 장각 의계 원래
표지들 있니다 외교 장각 의기는
1866년 프랑스로 건너간 뒤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나
이후 약 100여년 동안 관리받지
못하다가
1970년대고 박병선 박사가 파손도서
창고에 있던 의를 발견하게 됩니다
발견 당시 대부분의 의계 a 비단
표지가 삭고 해져서 표지 가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떼어진 의계 표지들은
그대로 보관되다가 2011년 외교
장각 의계 함께 돌아왔습니다
여기에 동그란 스티커가
보이시나요이 스티커는 프랑스어로 중국
도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외교장관 의기는 한문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중국 도서로 분류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중국 도서로 분류되어
있다가 1970년대 박병선 박사에
의해서 발견되면서 외교 장각 의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이 낯선 나라의 언어로 붙어
있는 동그란 분류번호 스티커는 외교
장각 의가 지나온 역사를
[음악]
상징합니다 표지들 이루어진 도입을지나
꺾어 들어오면 패널을 만나게 됩니다
우선 세종대왕이 의에 대해 언급한
실록 기사의
일부입니다 의는 단지 한때에 행하는
것이 아니요 실로 만세 토록 행해야
할
제도이다 이러한 언급으로 우리는 의가
조선 전기부터 꾸준히 만들어져 왔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의는 왕실의 중요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꼼꼼히 기록한 책 자
만세 전할 모범을 담을
[음악]
[박수]
책이었습니다 외교 장각 의는 대부분
국왕이 보기위에 만든 어람용
의입니다 당대 책 중에서도 가장
귀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외 의계 중에는 지금
단 한부 밖에 전하지 않는 유일본
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돌아
들어가는 전시실에서는 바로 어람용
의의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의와
유일본 의를 전시합니다
[음악]
어람용 의와 유일본
의입니다 제작 당시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외교 장각 의는 총
책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장렬왕후 존도 의와
종묘 수리도 의를
전시합니다 전시실 내부는 왕의 서라는
부제
연출했습니다 외규장각 규장각 경복궁
등 왕실 전통 건축에서 영감을 받아
재해석한
공간입니다 장렬왕후 존도 의는 제작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어용 의계 중
하나입니다 책 표지는 초록 비단의
구름이 사선으로 상승하는듯한
무입니다 표지와 내지는 다섯개의 구을
황으로 만든 금속인 변을 되고
황동으로
고정했습니다 그리고이 튀어나온 곳은
국화 모양으로
마감했습니다이 의는 17세기 숙종대
왕실 최고의 어른이었던
왕에게 존호를 올린 이을 기록한
의입니다 노란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왕실의 어른에게 올렸던이 중에
입니다 장렬 왕후는 인조의 계비인
1638년 15살에 나이로 왕비가 된
뒤 효종 현종 숙종 등 3대에 걸쳐
40년 동안 왕실의 최고
어른이었다 국왕인 숙종에게 증조할머니
격이
됩니다이 의회를 만든
1686년 장렬 왕우가 환갑을 맞이한
해였습니다
[음악]
종묘 수리도 의는 현재 하나밖에
전하지 않는 유일본
의입니다 인조때 병자호란으로
훼손되었던 종묘의 신주를 수리한
과정을 기록한
의입니다
1636년 청나라 군대가 압록강을
넘어 한양을 침략했을 때 조선 왕실은
종묘의 신들을 먼저 챙겨 강화도로
보냈습니다 당시에도 강화도가 안전한
곳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청나라 군대가
강화도까지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때
신주를 보호하기 위해서 땅에 급히
묻었는데 청나라 군대가 다시 파냈다
기록도 의교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양으로 돌아온 직후인
1637년 그때 훼손되었던 신주를
고치는 일에 바로 착수하게 됩니다
이 유일본 의에는 당시 국왕과
신하들의 논의 내용부터 당시 신주의
상태를 알 수 있는 목록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 왕실의 행사는 왕실의
위험을 드러내는 동시에 백성들의
유교적 생활의 모범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왕실에서는 중요한
행사를 치른 뒤에는 어김없이 의를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의를 실을 때
형식과 절차의 모범을 보이고 또
잘못을 줄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의에는 내용이 자세해서
행사를 그대로 제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를 통해
조선 왕실의 각종 을의 내용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국왕의 결혼식은
어땠을까요 지금도 결혼을 준비하는
일은 간한 일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국왕의 결혼은 국혼
대원으로 불리는 나라의 큰
경사였다 절차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꾸몄습니다 국왕의 결혼 절차는 크게
간과 육로
난입니다 간택은 왕비가 될 사람을
여러 후보 중에 정하는 절차로 총 세
번에 걸쳐
이루어집니다내는 가래의 여섯 가지
절차인데요 간택을 받은 여성의 본가에
혼인의 징표와 예물을 전달하고 왕비를
모시고 군로 들어오는 등의 절차입니다
특히 왕비를 국왕이 직접 모시고 걸로
들어오는 친형 절차는 왕실 결혼
의식에서 중요한
의식이었습니다이 모든 절차는 대체로
두 달 정도
걸렸습니다이 진열장은 3개월에 한
번씩 주제를 바꾸어 다양한 의를
소개하는데요 이번에는 숙종 세 번의
결혼식입니다 숙종은 왕세자 때의
세자빈을 맞이하는 가래를 올렸고
구강으로 하던 중 두번의 가를 려서
숙종의 가래 이게는 총 세 책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의 국왕들 중
유일합니다이 세 책을 비교해 보면
세자빈과 왕비의 의물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고 친형과 관련한 세부
절차들이 점차 세분화되어 간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국왕은 죽은 뒤
5개월 동안 궐에 더 머무는 사실을
아시나요 의를 보면 조선시대 국왕의
장례인 흉내 절차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조선 국왕의 장례를
국장이라는
진행되는데 개월 수로는 약 27개월
있니다 국왕이 승하하면 5일 이내에
궁궐에 있는 정각을 빈전 마련하여
시신을 모십니다
그동안은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아침
저녁으로 음식도 올리고 시신을
모신간에 칠도 더하는 등 절차가
이루어집니다 그 5개월 동안은 왕릉을
조성하는 공사를
[음악]
진행합니다
5개월이지나 빈전 시신을 왕릉으로
옮겨가 묻고 국왕에 혼이깃든 신주를
다시 걸로 모셔와 혼전에 봉 니다
혼전 빈전 마찬가지로 궁궐내 한
정각을 정해 차리게
됩니다 혼전에서 각종 제사를 때에
맞추어 지내다가 승하한 날로부터
27개월이지나 신주를 종묘로 옮겨
보안하면 국장 절차가
끝이납니다이 국장을 치르고 난 뒤에도
의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한 종류의 의가
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빈전
혼전 산능 국장 등 각각의 절차를
담당한 기간인 도감들도 각각 의계
만들었습니다 흉내 파트의 이번 주제는
가래와 동일하게 숙종 있니다 숙종은
재위 기간이 0조 다음으로 길었던
국왕이었던이 넘는 재위 기간 뒤
1720년 6월 승하 있습니다
지금의 경희궁은 경덕궁 ES 승하의
경덕궁 내 자정전에 빈전 했고
5개월이 지난 10월에
발인하고 고향에 있는 명령에
안장했다 서울으로 부르는
곳입니다 그리고 숙종의 신주는 창경궁
문정전 봉안했다 승하한지 27개월이
지난
1722년 8월에 종묘로 옮겨
봉안했던 도감 의에는 빈전 내부에
설치한 각종 기물의 도서를 확인할 수
있고 국장도감 의외에 서울까지 가는
발인 행렬을 그린 반차도 있습니다 또
왕릉의 조성과 매장은 어떻게
진행했는지 산릉도감 의계 알 수
있습니다이 의는 숙종의 빈전 있었던
일을 모두 도맡아 했던 빈전 도감의
일을 기록한 의계 있니다이 빈전 도감
의의 앞부분에는 이렇게 그림으로 된
기록들이 확인되는데요 이것들을 보면
빈전 내부에 어떤 가구를 어떻게
설치했는지 그리고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제작을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이 의기는 숙종의 그 시신을
왕릉으로 옮겨가는 절차인 발인의
행렬을 린 반차도 있니다이 반차도
안에서는 구강의 상여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의계 속 기록이 얼마나
자세하면이 상여를 들 때에 몇 명이
들었는지 그리고
왕릉지구대 몇 번 정도 바꾸어
주었는지 아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이 그림은 숙종 산능 도감
의에 있는 도입니다
[음악]
국왕의 관을
왕릉지구대
노출시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을
보호하는 집 모양의 구조물인 천궁을
설치하게 되는데요 여기에 나오는이
도설 그 창국 내부의네 면에 붙였던
그림들입니다 흔히 우리가 사수도
부르는
그림들입니다이 천궁은 국왕의 시신을
안하고 나면 어디론가 옮겨서 불태웠기
때문에 사수도 그림은이 의에서 밖에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의교 실물 전시를
보셨다면 지금부터는 직접 눌러보고 또
넘겨 볼 수 있는 디지털 서고가
펼쳐집니다
[음악]
[음악]
[음악]
의외는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읽기가
어렵습니다 또 진열장 안에 있는 계는
단 한 면만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이 디지털 고에서는 마음껏 보고
또 넘겨볼 수 있습니다
[음악]
[음악]
도설 아카이브는 다양한 의속 그림
도서을 기반으로 구축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화면에는 반차도
속 인물들이 걸어가는 장면을 할 수
있 눌러서 보면 메인 화면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도은 행사에 실제로 사용한
물품의 형태를 알 수 있도록의 속에
그려 놓은
그림입니다 외교 장각 의계 속에는 약
3800개 도이
있는데이를 기반으로 관람객이 직접
흥미로운 테마를 선택하여 도과 관한
확인해볼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60개의 테마가
교차되는데 눌러볼수록 더욱 많은 의계
속 도설 이야기를 알 수 있습니다
[음악]
이 전시는 기간에 정엄 없이 언제든지
보실 수 있는 상설
전시입니다 새롭게 문을 연 왕해
서고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음악]
o 시청 안내
일시 : 2025.2.5.(수) 저녁 8시
채널 : 국립중앙박물관 유튜브
해설 : 김진실 학예연구사(고고역사부)
외규장각 의궤는 해외로 무단 반출되었다가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돌아온 대표적인 문화유산입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은 13년 동안 두 차례의 특별전 ('11년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22년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과 일곱 권의 연구서를 발간했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토대로 2024년 11월 외규장각 의궤만을 위한 공간이 '왕의 서고'가 문을 열었습니다.
김진실 학예연구사와 함께 새롭게 문을 연 외규장각 의궤실을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외규장각 의궤실 신설
왕의 서고, 어진 세상을 꿈꾸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2층)
*외규장각 의궤실은 3개월에 한번씩 전시품이 교체됩니다.
'25.2.14.(금)부터는 새로운 의궤로 교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