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애가 있는 우리는 원어민 선생님에게 외국어를 배우거나 미술관에서 그림을 본 적은 없어도 각자의 몸짓과 말하기 방식, 삶을 향한 독특하고 드문 태도를 나누었다. 계단과 언덕으로 가득한 고등학교 생활에서 내 휠체어를 밀어준 친구들의 몸은 내 몸의 한 곳에 새겨졌다.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상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 나를 돌본 사람들, 내가 만나고 나를 도와주고 나와 함께 배우고 무대에 오른 여러 개개인의 몸이 모두 연결되어 내 안에 있었다.”
- 김원영 저서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2024) 중에서
우리는 모두 다르게 감각한다
전시장 로비 한편에 검정 좌대가 놓여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건 뭐야’ 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어 지나가려 하는데, 가까이 와서 손을 대어 보라고 한다. 처음엔 잘 느껴지지 않았다. 나만 그런가 하고 쑥스러움과 두려움이 올라온다. 위아래로, 옆으로 손을 조금씩 움직여 본다. 그때야 알아챘다. 어떤 미세한 공기 흐름인지, 바람인지 다른 게 느껴진다. 손을 움직여 그 공기의 흐름과 결을 더듬어 보니 형상이 있다. 집중하려고 눈을 감아본다. 손으로 어루만지며 빚어서 공기를 조각해 본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형상이다.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는 타인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송예슬 작가의 〈보이지 않는 조각들: 공기 조각〉이다.
하얀 벽면에 검은색 원형 스피커 네 개가 나란히 설치되어있다. 이 스피커 주변으로 한글 모음 조형이 설치되어 있고, 천천히 회전하면 스피커에서 소리가 난다. 같은 소리일 것이라 생각하고 지나치기 쉽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아, 오, 어, 우’ 네 개의 소리가 반복되는데 저마다 다른 소리이다.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이 다를 수 있다. 같은 소리여도 다르게 들을 수 있다. 해미 클레멘세비츠의 〈궤도(토토포노로지 #4)〉는 지각의 다양성으로 긴장감을 일으킨다.
한편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시각장애 학생들과 다양한 작업을 하는 엄정순 작가는 거대한 조형물 〈코 없는 코끼리 no.2〉와 39점의 드로잉 작품 〈들리지 않는 속삭임-39번의 흔들림〉을 통해 600여 년 전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코끼리의 이주 서사가 담고 있는 혐오, 분리, 결핍에 관한 이야기를 선보인다. 보이는 것과 손으로 만져보는 것이 다르다. 손끝으로 대상을 이해하고 상상으로 형상을 만들어가는 또 다른 관점을 경험하게 한다.
서로의 언어가 달라도 연결될 수 있을까
전시장 한쪽 벽면에 고요히 영상이 흐르고 있다. 영상 안에서 한 여성은 침대에 누워있고, 남성은 등을 돌린 채 책상 앞에 앉아 있다. 10분 33초 동안 단 한 번의 소리가 등장한다. 여성이 남성에게 말을 걸기 위해 손으로 침대를 치는 소리이다. 여성은 농인, 남성은 청인이다. 여성은 과거 여행에서 느꼈던 상대방의 말, 행동, 상처를 손의 언어로 표현한다. 손은 중간중간 머뭇거리며 말을 고르기도 한다. 남성은 여성의 말에 미안한 듯 달래며 어루만지기도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듯, 그도 화가 나는 듯, 더 이상 소통하고 싶지 않은 듯, 그녀의 손을 힘써 누르며 멈추게 한다. 그 힘줄이 보이는 거센 손의 억압에, 여성의 손과 몸에서는 소통 불능의 좌절감과 분노, 먹먹함이 느껴진다. 얼굴이 거의 가려진 두 남녀의 손짓과 몸짓만으로도 감정의 역동이 느껴진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어느 일상이어서, 나는 잠시 슬프고 마음이 아팠다. 경쟁과 공연을 위한 춤이 아닌, 사회적 관계 맺기와 상호작용을 위한 파트너와의 춤을 소셜 댄스라고 하는데, 아야 모모세는 이 작품을 〈소셜 댄스〉라 명명했다.
이번 전시에서 참여자들이 흥미롭게 참여한 작품 중 하나는 송예슬 작가의 〈아슬아슬 Balancing Act〉이다. 두 개의 플랫폼이 나란히 놓인 공간에서 두 명의 참여자는 접근성 매니저의 안내를 받아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쓰고 각각 플랫폼에 서서 가로놓인 장대 양 끝을 잡는다. 두 사람은 6미터 정도의 굴곡진 두 개의 길을 장대를 들고 나란히 걸어가야 한다. 걷는 이들이 들고 있는 장대가 수평을 이루면, 장대에 부착된 조명이 켜진다. 장대 전체가 아름다운 빛으로 차오르고 화음을 내며 주변을 밝힌다. 두 사람의 호흡과 움직임으로 계속 균형을 맞추어가면 이 장대의 불빛은 지속된다. 참여자 간에 말은 통하지 않기에 두 사람은 눈빛, 손짓, 속도 등을 세밀히 감각하며 서로를 위한 움직임으로 반응해야 한다.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는 나에게 집중하는 순간 균형은 깨진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상대방에게 집중하고 배려하며 조심스럽고 다정한 에너지를 전달할 때, 상대방이 서서히 나를 신뢰하는 것이 느껴질 때, 느리지만 천천히 균형을 조절해 가기 시작한다. 균형이 맞춰진 순간 장대가 빛나며 사랑스러운 소리가 전해질 때의 고요한 만족감이 온몸에 따뜻하게 퍼져간다. 서로의 존재에 대한 신뢰와 배려, 함께 걷기의 힘이다.
전시장 가장 안쪽에는 하나의 무대가 놓여있다. 거기에 편안히 눕거나 앉아서 천장에 프로젝션된 영상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김원영·손나예·여혜진·이지양·하은빈이 함께 만든 작품 〈안녕히 엉키기〉의 공간이다. 이들은 지난 2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워크숍을 진행한 바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움직이고, 쓰고, 이야기하면서 몸을 통해 감각을 탐구하는 움직임 연습이었다. 서로의 몸이 천천히 엉키며 몸과 마음이 기대어간다. 우리가 되어가기 위해 서로의 몸짓에 귀 기울여가는 과정이다. 장애무용수인 김원영 작가는 그의 책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에서 누군가는 춤을 잘 추는 ‘능력’으로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 접속하는 다양한 방법을 제안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몸에 깃든 오랜 ‘힘’, 춤출 수 있는 힘이 있음을 깨달았을 때, 타인의 ‘능력’이 뛰어남에 좌절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각각의 차별적인 능력을 지닌 개인들이 서로의 동등한 힘에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는 고유한 개인이면서도 더 큰 세계의 일부가 된다는 저자는 당신의 ‘힘’을 믿으면서 나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할 방법을 고안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워크숍과 작품은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개인들로 이뤄진 공동체 춤으로의 초대장이다.
전시의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들
이번 전시는 전시 기획부터 전시 디자인, 참여프로그램, 전시 출판 등 접근성 강화를 위해 세심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전시장에는 어린이와 시각장애인 참여자 동선 안내를 위해 벽면에 촉감 바를 설치하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신체 기관을 촉감 타일로 부착했다. 전시 공간을 사전에 탐색할 수 있는 촉지도, 점자 도록, 게임 방식의 오디오 가이드, 어린이 참여자를 위한 상설 교구재 등을 마련했다. 곳곳에 접근성 매니저가 상시 근무해 전시에 관한 이해를 돕는다.
전시 리플렛은 저시력 참여자의 감상을 위한 음성해설, 작품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쉬운 설명을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와 협력하여 제작했다. 리플렛을 열면, 맨 처음 만나는 것은 이 전시의 의미가 담긴 『나를 움직이는 길』이라는 서유진 글·그림의 동화 같은 그림책이다. 작품 소개 글은 쉬운 설명과 함께 작품에 접근하기 위한 맥락의 질문, 참여자의 삶과 세계와 감각을 연결하고 경계를 넘나드는 질문을 던진다. 만약 시각장애인 친구와 함께 간다면, 이 리플렛의 설명과 질문을 그대로 읽어주며 대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김원영·손나예·여혜진·이지양·하은빈, 송예슬, 아야 모모세, 엄정순, 해미 클레멘세비츠가 참여하였다. 이들은 상호작용 예술, 참여적 예술 언어로 ‘배리어프리’의 사회적 소통 공간을 창조해 내었다. 시각 중심 예술의 경계를 넘고자 한 이번 전시는 사회적 약자뿐 아니라 누구나 살아가면서 마주할 수 있는 물리적 장애물, 심리적 벽, 그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을 경험하고 사유하게 한다. 예술가는 자신이 가진 독창적인 예술 언어로 자신의 감정과 세계를 표현하고 소통하길 원한다. 선입견과 편견이 눈과 마음의 벽을 세우지 않을 때, 관객은 예술의 세계에서 함께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는 각자의 연약함과 고유한 힘을 가진 존재로서, 예술을 통해 다른 존재에 대해 자각하고, 소통하며 연결된다. 서유진의 그림책 마지막 글귀처럼.
“내가 느끼는 것들을 나만의 방법으로 간직하는 방법을 배웠다. 모두가 닮은 듯 다른 듯 서로에게 깃들며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해미 클레멘세비츠의 〈궤도(토토포노로지 #4)〉
엄정순 〈코 없는 코끼리 no.2〉
송예슬 〈아슬아슬 Balancing Act〉
어린이 참가자용 감각 키트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25.4.17.~6.29.|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전시 6관
2025 ACC 접근성 강화 주제전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는 ‘경계 넘기’를 주제로 존재의 ‘다름’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존재에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고민하는 전시이다. 우리 안에는 ‘안과 밖’, ‘우리와 타인’,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 ‘나 그리고 나와 다른’ 등의 언어처럼 다양한 경계가 있다. 내가 나인 채로 당신이 당신인 채로, 우리는 어떻게 비대칭적으로 소통하고 함께할 수 있을까? 전시는 무장애, 장애예술, 참여적 예술, 상호작용 예술을 연구해 온 국내외 5인(팀)의 작가들과 함께 예술을 통해 경계를 넘어가는 연습을 시도한다. 이 전시는 7월(7.23.~8.22.)에 모두미술공간 순회 전시로 이어진다.

천윤희
현대미술과 비엔날레에 매혹되어 20대에 겁 없이 광주에 내려온 이래 지금까지 지역살이 중이다. 문학과 미술 사이, 교육과 전시 사이, 미술관과 비엔날레 사이, 광주와 비광주 사이, 엄마와 직업인 사이에서 살아온 날이 길다. 삶에 질문하며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다정한 동반자로서 미술과 책, 사람, 산책, 자연을 아낀다. 나로서 더욱 아름답고 의미 있게 나이 들어갈 수 있도록 스스로 처음이 되는 힘을 키우고 싶다.
uni94@hanmail.net
사진 제공.국립아시아문화전당(촬영. 김선우, 박선호)
2025년 6월 (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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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동적인 전시 후기와 깊이 있는 해설이네요. 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는 말이 더욱 와닿았습니다. 예술이 단순히 보는 것, 듣는 것을 넘어 다양한 감각과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특히 장애와 비장애, 서로 다른 언어와 감각이 만나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연다는 부분에서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참여형 작품을 통해 서로를 배려하고 신뢰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전시의 접근성에 대한 세심한 고민과 실천도 정말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이 모두를 위한 것이 될 때, 우리 사회도 한층 더 넓고 깊어질 수 있겠죠. 다양한 차이와 감각의 공존을 응원합니다. 이런 전시가 더 많이 열렸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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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이해하고 함께 공존하는 것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던 기사라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