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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앤무브먼트 <그렇게 다시… 영웅이 되었다>

리뷰 초월 아닌 초과를 향한 충만한 몸짓

  • 허명진 무용평론가
  • 등록일 2021-10-27
  • 조회수1054

리뷰

<그렇게 다시… 영웅이 되었다>

관객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 입장하면서 눈가리개를 하나씩 받는다. 이윽고 빔프로젝터를 통해 스쳐 가는 무용수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우리는 어쩌면 시선의 편견과 장벽을 먼저 의식할 수 있다. 저 얼굴이 본래의 것인지 카메라의 왜곡에 의한 것인지 헷갈릴 무렵, 눈가리개를 착용하도록 권유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어둠을 맞이하며 그것은 체험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감각이 한 차례 조정받고 나면, 이제 공연과 본격적으로 만날 준비가 되는 것이다.

그처럼 케인앤무브먼트의 <그렇게 다시… 영웅이 되었다>는 시선의 거리가 덜 느껴지는 소규모 공연 공간의 이점을 최대화한 버전으로 새롭게 제시된다. 대극장 버전에서 보았던, 마치 삶 그 자체를 은유하듯 그려지는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서 떠도는 유랑민 같은 이미지는 최소화되고, 무용수 각자가 펼쳐내는 몸의 축제가 한껏 도드라진다. 객석 바로 옆에서 연주되는 밴드의 라이브 음악 또한 몸에 다가와 부딪히며 축제의 감각을 더욱 북돋는다.

이 작품의 제목에서 ‘영웅’이라는 단어는 ‘다시’ 새로운 의미와 함께 도래한다. 흔히 픽션에서 접하는 초인간적인 이미지보다는, 출연자가 대사 중에 인용한 동화 <강아지똥>에서처럼, 가장 비루함에도 자기희생을 통해 타 존재의 밑거름이 되는 차원까지도 되짚어보게 한다. 나아가 신체나 감각의 제한과 장애를 서로의 연대를 통해 보충하고 초월하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한다. 말하자면 어떤 한계와 초월에 대해 다루지만, 형이상학적 초월의 거대 담론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기존에 살아가는 삶의 상태에 대한 초과 혹은 덧붙임, 과잉의 에너지가 충만한 가운데 도달하는 존재의 향유로서 드러난다.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는 분방한 몸짓의 단편들이 활기를 띠고 순간순간 빛을 발하며 각자 천진하게 즐기는 광경이 줄곧 이어진다. 한쪽 다리를 잃어 의족을 부착하거나 심지어는 의족 없이도 춤추는 비보이, 뇌성마비의 불편한 몸으로도 더없이 충만한 몸짓을 보여주는 무용수 등 기존의 통념에서 자유롭고 거침없는 가치 전도의 카니발적 장면들에 매혹된다. 이러한 일련의 장면들은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는 아이들의 놀이를 보는 것처럼 다가온다.

여기서 아이의 이미지가 니체적 의미의 ‘초인’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낙타처럼 삶의 무게에 허덕이거나 사자처럼 저항하는 것을 넘어선, 기존의 가치에 구애됨 없이 매 순간 지루할 틈 없이 즐기고 노는 아이와 같은 자를 말한다. 슈퍼맨과 같은 상상 초월의 힘을 가진 이도 아니고 말 그대로 ‘무엇인가를 넘어선 자’로서, 초자연적인 세계보다는 단단한 대지에 발을 디딘 채 창조하고 도약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처럼 삶은 끝없이 창조될 뿐이며 어떤 고정 관념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의 불공정한 경쟁의 구도는 일종의 굴레와 같기도 하지만, 그것을 타고 넘으며 새로운 리듬과 순환을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반전은 거저 주어진다기보다 일종의 자각을 필요로 한다. 각자 한 명씩 무대 앞으로 나와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호명하며 이곳이 자신의 자리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더는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고 굴복하기를 거부한 채 각자의 자리를 찾고 자신의 존재를 선언하는 이들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은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자유롭게 각자의 몸짓을 즐기고 표출한다. 장애인과 협업하는 비장애인 무용수라도 위계를 형성하기보다는 나름의 장단점을 가진 인간으로서 드러난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장애인 무용수, 샹송을 부르거나 막춤을 추는 무용수 등 각자의 독특성이 발휘되는 장면들이 춤연극의 방식을 통해 완성된다. 무대와 객석의 단차도 없는 작은 무대여서인지, 늘 새롭게 생성되는 몸과 삶의 다양한 국면이 더욱 풍부하게 와닿는다.

각자의 몸의 형태도 움직임도 다 다르니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배우는 법을 다시 배우기, 이는 관점을 재조정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만들어낸다. 아기였을 때처럼 몸을 뒤집는 법, 걷고 서는 법은 물론, 웃는 법, 소리 지르는 법, 하늘을 올려다보는 법, 떨어진 구슬처럼 산산조각이 나는 법 등 삶의 여러 국면을 새롭게 배우기를 권하는 대사가 귀에 들어오고, 그와 함께 병치되는 몸짓들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다름 아닌 장애의 몸 자체는 그러한 재발견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몸이기도 하다. 또한 그 몸은 의족과 같은 유사의 몸이나 타인의 몸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역능의 몸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넘어섬, 초월, 영웅의 의미는 이렇게 재발견되며, 결국 장애란 더 이상 장애가 아니라 연결과 연대를 자극하는 하나의 계기임을 깨닫게 한다.

  • <그렇게 다시… 영웅이 되었다>(부산)

  • <그렇게 다시… 영웅이 되었다>(제주)

케인앤무브먼트 <그렇게 다시… 영웅이 되었다>

2021.9.16. 행운동작은무대

케인앤무브먼트의 CANE은 ‘Contemporary Art Natural Extension’의 약자로, ‘자연스러운 움직임의 확장을 추구하는 현대 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신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이끌어내며 몸의 한계를 뛰어 넘어 내면을 표현하는 케인앤무브먼트는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일상을 살아내는 작은 영웅들을 잔잔히 그려낸다. 이 작품은 5월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초연을 올리고, 6월 제주와 부산, 9월 서울에서 공연했다.

허명진

무용전문지 [몸] 기자를 거쳐 2003년 무용예술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공연예술지 [판] 편집위원, 국립현대무용단 교육&리서치 연구원을 거치면서 무용의 접점을 다변화하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choreia@hanmail.net

사진제공. 케인앤무브먼트

2021년 11월 (25호)

상세내용

리뷰

<그렇게 다시… 영웅이 되었다>

관객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 입장하면서 눈가리개를 하나씩 받는다. 이윽고 빔프로젝터를 통해 스쳐 가는 무용수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우리는 어쩌면 시선의 편견과 장벽을 먼저 의식할 수 있다. 저 얼굴이 본래의 것인지 카메라의 왜곡에 의한 것인지 헷갈릴 무렵, 눈가리개를 착용하도록 권유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어둠을 맞이하며 그것은 체험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감각이 한 차례 조정받고 나면, 이제 공연과 본격적으로 만날 준비가 되는 것이다.

그처럼 케인앤무브먼트의 <그렇게 다시… 영웅이 되었다>는 시선의 거리가 덜 느껴지는 소규모 공연 공간의 이점을 최대화한 버전으로 새롭게 제시된다. 대극장 버전에서 보았던, 마치 삶 그 자체를 은유하듯 그려지는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서 떠도는 유랑민 같은 이미지는 최소화되고, 무용수 각자가 펼쳐내는 몸의 축제가 한껏 도드라진다. 객석 바로 옆에서 연주되는 밴드의 라이브 음악 또한 몸에 다가와 부딪히며 축제의 감각을 더욱 북돋는다.

이 작품의 제목에서 ‘영웅’이라는 단어는 ‘다시’ 새로운 의미와 함께 도래한다. 흔히 픽션에서 접하는 초인간적인 이미지보다는, 출연자가 대사 중에 인용한 동화 <강아지똥>에서처럼, 가장 비루함에도 자기희생을 통해 타 존재의 밑거름이 되는 차원까지도 되짚어보게 한다. 나아가 신체나 감각의 제한과 장애를 서로의 연대를 통해 보충하고 초월하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한다. 말하자면 어떤 한계와 초월에 대해 다루지만, 형이상학적 초월의 거대 담론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기존에 살아가는 삶의 상태에 대한 초과 혹은 덧붙임, 과잉의 에너지가 충만한 가운데 도달하는 존재의 향유로서 드러난다.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는 분방한 몸짓의 단편들이 활기를 띠고 순간순간 빛을 발하며 각자 천진하게 즐기는 광경이 줄곧 이어진다. 한쪽 다리를 잃어 의족을 부착하거나 심지어는 의족 없이도 춤추는 비보이, 뇌성마비의 불편한 몸으로도 더없이 충만한 몸짓을 보여주는 무용수 등 기존의 통념에서 자유롭고 거침없는 가치 전도의 카니발적 장면들에 매혹된다. 이러한 일련의 장면들은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는 아이들의 놀이를 보는 것처럼 다가온다.

여기서 아이의 이미지가 니체적 의미의 ‘초인’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낙타처럼 삶의 무게에 허덕이거나 사자처럼 저항하는 것을 넘어선, 기존의 가치에 구애됨 없이 매 순간 지루할 틈 없이 즐기고 노는 아이와 같은 자를 말한다. 슈퍼맨과 같은 상상 초월의 힘을 가진 이도 아니고 말 그대로 ‘무엇인가를 넘어선 자’로서, 초자연적인 세계보다는 단단한 대지에 발을 디딘 채 창조하고 도약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처럼 삶은 끝없이 창조될 뿐이며 어떤 고정 관념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의 불공정한 경쟁의 구도는 일종의 굴레와 같기도 하지만, 그것을 타고 넘으며 새로운 리듬과 순환을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반전은 거저 주어진다기보다 일종의 자각을 필요로 한다. 각자 한 명씩 무대 앞으로 나와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호명하며 이곳이 자신의 자리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더는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고 굴복하기를 거부한 채 각자의 자리를 찾고 자신의 존재를 선언하는 이들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은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자유롭게 각자의 몸짓을 즐기고 표출한다. 장애인과 협업하는 비장애인 무용수라도 위계를 형성하기보다는 나름의 장단점을 가진 인간으로서 드러난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장애인 무용수, 샹송을 부르거나 막춤을 추는 무용수 등 각자의 독특성이 발휘되는 장면들이 춤연극의 방식을 통해 완성된다. 무대와 객석의 단차도 없는 작은 무대여서인지, 늘 새롭게 생성되는 몸과 삶의 다양한 국면이 더욱 풍부하게 와닿는다.

각자의 몸의 형태도 움직임도 다 다르니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배우는 법을 다시 배우기, 이는 관점을 재조정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만들어낸다. 아기였을 때처럼 몸을 뒤집는 법, 걷고 서는 법은 물론, 웃는 법, 소리 지르는 법, 하늘을 올려다보는 법, 떨어진 구슬처럼 산산조각이 나는 법 등 삶의 여러 국면을 새롭게 배우기를 권하는 대사가 귀에 들어오고, 그와 함께 병치되는 몸짓들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다름 아닌 장애의 몸 자체는 그러한 재발견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몸이기도 하다. 또한 그 몸은 의족과 같은 유사의 몸이나 타인의 몸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역능의 몸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넘어섬, 초월, 영웅의 의미는 이렇게 재발견되며, 결국 장애란 더 이상 장애가 아니라 연결과 연대를 자극하는 하나의 계기임을 깨닫게 한다.

  • <그렇게 다시… 영웅이 되었다>(부산)

  • <그렇게 다시… 영웅이 되었다>(제주)

케인앤무브먼트 <그렇게 다시… 영웅이 되었다>

2021.9.16. 행운동작은무대

케인앤무브먼트의 CANE은 ‘Contemporary Art Natural Extension’의 약자로, ‘자연스러운 움직임의 확장을 추구하는 현대 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신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이끌어내며 몸의 한계를 뛰어 넘어 내면을 표현하는 케인앤무브먼트는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일상을 살아내는 작은 영웅들을 잔잔히 그려낸다. 이 작품은 5월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초연을 올리고, 6월 제주와 부산, 9월 서울에서 공연했다.

허명진

무용전문지 [몸] 기자를 거쳐 2003년 무용예술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공연예술지 [판] 편집위원, 국립현대무용단 교육&리서치 연구원을 거치면서 무용의 접점을 다변화하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choreia@hanmail.net

사진제공. 케인앤무브먼트

2021년 11월 (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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