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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일상

이음광장 휠체어 타는 사람 넷, 보행하는 사람 셋의 소소한 문화

  •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
  • 등록일 2021-12-14
  • 조회수1025
  • 극단 애인 단원 7명의 단체사진. 원형 테이블에 모여앉아 카메라를 보며 환히 웃고있다. 테이블 위에는 케이크가 놓여있다.

위드 코로나의 시대로 접어든 어느 주말 오후. 극단 배우들이 출연한 공연을 나누어 본 단원들이 다시 모여 저녁을 먹기로 했다. 코로나가 시작된 후 정말 오랜만에 외부에서 만나기로 하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우리의 선택에 대해서 상기하게 되었다.

극단 단원이 함께 이동하거나 모임을 하고 장거리 여행을 갈 때 자연스럽게 유지하는 몇 가지 문화가 있다. 우선 다 같이 이동을 할 때는 두세 명 정도로 팀을 나눠서 서로 다른 루트로 이동해서 헤쳐모이는 방식을 선택한다. 보행이 가능한 사람은 택시를 타거나 자가용에 나눠 타고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웬만한 거리는 드라이빙으로 가기 위해 나뉘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를 여러 번 타야 할 경우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보행하는 사람이 적절히 섞여 팀이 되기도 한다. 지하철을 탈 때도 칸을 나눠서 탄다. 어찌 생각하면 같이 탈 수 있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야말로 ‘대중교통’이니 많은 사람과의 조화로운 삶을 위한 선택이라고나 할까.

두 번째, 장소를 고를 때 내부로의 접근성부터 살피고 턱이 없는 곳에 주로 가지만, 턱이 없는 곳과 한 개의 턱이 있는 곳이 있을 때는 내부 사정과 그날의 몸컨디션을 고려한다. 한 개의 계단 정도는 도움을 받으면 들어갈 수도 있지만, 구성원들의 몸컨디션에 따라 도움을 받는 것도 힘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테이블을 선택할 수 있다면 원형 테이블이 좋다. 대부분 음식점에 있는 사각형 테이블에 앉을 때는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 둘이 같이 앉기에는 좁아서 의자에 앉는 사람들과 적절히 자리 안배를 해야 하지만, 원형 테이블은 상관없이 가깝게 때로는 넓게 앉고 싶은 자리에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음식을 고를 때는 굽거나 조리하는 음식보다는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택한다. 우리 극단의 인적 구성을 볼 때 즉석에서 굽거나 볶거나 조리를 해야 하는 음식을 먹게 되면 팔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많은 일이 집중되기 때문에 굽는 고기, 감자탕, 볶아먹는 요리, 샤브샤브, 월남쌈처럼 손을 많이 사용하는 음식은 각자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먹기로 한다. 음식을 먹을 때는 젓가락이 편한 사람, 포크가 편한 사람이 있고, 손잡이가 있는 컵이 더 편리한 사람도 있고, 손잡이 없는 컵이나 그릇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밥그릇보다는 대접처럼 넓은 그릇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무거운 그릇이 더 안정적이어서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빨대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고, 먹여주는 게 더 편할 때도 있다.

우리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작은 움직임을 할 때도 당사자는 완벽하게 편안한 상태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는 불안해 보일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또 초감각적으로 타인의 시선에 담긴 감정을 읽을 수 있어서 찰나의 순간에 다른 사람의 생각과 바람, 나의 욕구와 감정 사이에서 ’제가 할게요‘와 ‘해주세요’를 선택한다. 공연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간이 걸려도 내가 하는 것이 더 좋은지, 편한지, 도움을 받는 게 서로에게 필요한 때인지를 가늠해야 한다.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지는 않다. 10년 넘게 만난 우리도 종종 서로에게 질문한다. 어떤 게 더 편한지, 무엇이 불편한지, 귀찮은지, 필요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올해는 극단 배우들의 외부 작업이 특히 많았다. 앞으로도 장애 배우의 외부 캐스팅이 더 늘어나리라 생각한다. 코로나가 사그라들면 작업 시간 외에 일상을 나누는 시간도 늘어날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많이 알게 되겠지. 장애인 창작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구분하고 작품에서 무엇이 왜 필요한지에 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함께 작업하는 비장애 창작자도 장애인에 대한 일반적인 배려나 준비보다는 당사자에게 물어보자. 함께 방법을 찾아가는 걸 두려워하거나 너무 조심스러워하지 않으면 좋겠다. 쓰고 보니 모두 나 자신에게 더 필요한 이야기다. 우리 극단보다 더 다양한 장애 유형의 장애인과 작업하는 분들의 경험이 궁금하다.

김지수

김지수 

2007년부터 극단 애인 대표를 맡고 있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러브MT> <으랏차차>, 장편 희곡 <대바늘 코바늘> <알록달록 한땀한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을 썼다. 연출, 작가, 배우이자 장애인 연극교육, 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auleala@daum.net

사진제공. 필자

김지수

김지수 

2007년부터 극단 애인 대표를 맡고 있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러브MT> <으랏차차>, 장편 희곡 <대바늘 코바늘> <알록달록 한땀한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을 썼다. 연출, 작가, 배우이자 장애인 연극교육, 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auleala@daum.net

상세내용

  • 극단 애인 단원 7명의 단체사진. 원형 테이블에 모여앉아 카메라를 보며 환히 웃고있다. 테이블 위에는 케이크가 놓여있다.

위드 코로나의 시대로 접어든 어느 주말 오후. 극단 배우들이 출연한 공연을 나누어 본 단원들이 다시 모여 저녁을 먹기로 했다. 코로나가 시작된 후 정말 오랜만에 외부에서 만나기로 하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우리의 선택에 대해서 상기하게 되었다.

극단 단원이 함께 이동하거나 모임을 하고 장거리 여행을 갈 때 자연스럽게 유지하는 몇 가지 문화가 있다. 우선 다 같이 이동을 할 때는 두세 명 정도로 팀을 나눠서 서로 다른 루트로 이동해서 헤쳐모이는 방식을 선택한다. 보행이 가능한 사람은 택시를 타거나 자가용에 나눠 타고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웬만한 거리는 드라이빙으로 가기 위해 나뉘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를 여러 번 타야 할 경우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보행하는 사람이 적절히 섞여 팀이 되기도 한다. 지하철을 탈 때도 칸을 나눠서 탄다. 어찌 생각하면 같이 탈 수 있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야말로 ‘대중교통’이니 많은 사람과의 조화로운 삶을 위한 선택이라고나 할까.

두 번째, 장소를 고를 때 내부로의 접근성부터 살피고 턱이 없는 곳에 주로 가지만, 턱이 없는 곳과 한 개의 턱이 있는 곳이 있을 때는 내부 사정과 그날의 몸컨디션을 고려한다. 한 개의 계단 정도는 도움을 받으면 들어갈 수도 있지만, 구성원들의 몸컨디션에 따라 도움을 받는 것도 힘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테이블을 선택할 수 있다면 원형 테이블이 좋다. 대부분 음식점에 있는 사각형 테이블에 앉을 때는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 둘이 같이 앉기에는 좁아서 의자에 앉는 사람들과 적절히 자리 안배를 해야 하지만, 원형 테이블은 상관없이 가깝게 때로는 넓게 앉고 싶은 자리에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음식을 고를 때는 굽거나 조리하는 음식보다는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택한다. 우리 극단의 인적 구성을 볼 때 즉석에서 굽거나 볶거나 조리를 해야 하는 음식을 먹게 되면 팔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많은 일이 집중되기 때문에 굽는 고기, 감자탕, 볶아먹는 요리, 샤브샤브, 월남쌈처럼 손을 많이 사용하는 음식은 각자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먹기로 한다. 음식을 먹을 때는 젓가락이 편한 사람, 포크가 편한 사람이 있고, 손잡이가 있는 컵이 더 편리한 사람도 있고, 손잡이 없는 컵이나 그릇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밥그릇보다는 대접처럼 넓은 그릇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무거운 그릇이 더 안정적이어서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빨대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고, 먹여주는 게 더 편할 때도 있다.

우리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작은 움직임을 할 때도 당사자는 완벽하게 편안한 상태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는 불안해 보일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또 초감각적으로 타인의 시선에 담긴 감정을 읽을 수 있어서 찰나의 순간에 다른 사람의 생각과 바람, 나의 욕구와 감정 사이에서 ’제가 할게요‘와 ‘해주세요’를 선택한다. 공연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간이 걸려도 내가 하는 것이 더 좋은지, 편한지, 도움을 받는 게 서로에게 필요한 때인지를 가늠해야 한다.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지는 않다. 10년 넘게 만난 우리도 종종 서로에게 질문한다. 어떤 게 더 편한지, 무엇이 불편한지, 귀찮은지, 필요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올해는 극단 배우들의 외부 작업이 특히 많았다. 앞으로도 장애 배우의 외부 캐스팅이 더 늘어나리라 생각한다. 코로나가 사그라들면 작업 시간 외에 일상을 나누는 시간도 늘어날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많이 알게 되겠지. 장애인 창작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구분하고 작품에서 무엇이 왜 필요한지에 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함께 작업하는 비장애 창작자도 장애인에 대한 일반적인 배려나 준비보다는 당사자에게 물어보자. 함께 방법을 찾아가는 걸 두려워하거나 너무 조심스러워하지 않으면 좋겠다. 쓰고 보니 모두 나 자신에게 더 필요한 이야기다. 우리 극단보다 더 다양한 장애 유형의 장애인과 작업하는 분들의 경험이 궁금하다.

김지수

김지수 

2007년부터 극단 애인 대표를 맡고 있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러브MT> <으랏차차>, 장편 희곡 <대바늘 코바늘> <알록달록 한땀한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을 썼다. 연출, 작가, 배우이자 장애인 연극교육, 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auleal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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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4 13: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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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라 많은 공연과 전시가 있는데요. 극단 애인의 작업과 극단 애인 배우분들의 활약을 여기저기서 많이 봅니다. 극단 애인의 연극 일상, 반갑고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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