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허리 통증으로 찾은 병원. 2주면 괜찮아질 거라는 의사의 수술 권유. 의사: 수술하고 2주면 괜찮아져요 애니홍: (순진순진) 아.. 그렇군요 그림: 하늘색 바탕에 말풍선이 그려져 있다. 순진했던 나와 우리 엄마는 수술이 잘 됐다는 의사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애니홍: (에구.. 아파라..) 그림: 흰색 배경의 병원 입원실 침상에 두 눈을 감고 앉아있는 애니홍. 침상 왼편에는 링거가 스탠드에 걸려있고, 침상 오른편에는 휠체어가 놓여있다. 의사: 이제 한번 걸어봅시다. 애니홍: 네.. 어..?? 엄마.. 나 몸이..!! 제목. 나는 두 바퀴로 달린다 글·그림. 애니홍 그림: 배경 이미지로 파란색과 보라색이 섞여서 중심에서 바깥으로 옅게 퍼져있다. 꿍!! 그 짧은 굉음과 함께 사라진 삶의 조각들.. 아픈지 슬픈지도 몰랐던 그 찰나의 시간. 그림: 검정색 굵은 테두리로 그려진 흰색 구름 안에 꿍!! 글씨가 쓰여 있고, 선이 바깥쪽으로 뻗어나간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바쁜 삶을 살던 1993년 6월 초 여름의 어느 날” 스물아홉.. 나의 삶은 송두리째 뒤엎어졌다. 엄마: 힘내야 한다. 내 딸아.. 그림: 힘들어하는 얼굴로 침상에 앉아있는 애니홍. 애니홍 옆에는 갓난아기가 잠들어 있다. 엄마는 침상 옆 의자에 앉아 애니홍을 바라보고 있다. 침상 앞에는 휠체어가 놓여있다. 나는 수술 후 한 달 만에 앰뷸런스에 실려 집으로 돌아와 앉았다. 그림: 방 안. 정면에 초록색 커튼이 쳐진 창문이 있다. 커튼 한쪽은 젖혀져 있다. 창문 앞에 놓인 낮은 침대에는 애니홍이 무릎을 구부린 채 앉아 있다. 침대 발치 쪽 방바닥에는 강아지 두 마리가 작은 매트 위에서 서로 기대어 누워 자고 있다. 침대 머리맡에는 휠체어가 놓여있다. 나이 어린 손주와 몸도 성치 않은 딸자식을 바라보는 내 부모님의 탄식 애니홍: 왜 나한테 이런 일이.. 그림: 할머니 품 안에 안겨 있는 훈. 그 옆으로 장난감이 여러 개 놓여 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애니홍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옆으로 휠체어가 놓여 있다. 내 자식조차 건사할 수 없는.. 나를 나조차 감당하기 버거웠던 그때. 매일 매 순간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며 죽음을 생각했다. 그림: 회색벽, 회색 문 앞에 앉아 울고 있는 애니홍 어느 날인가.. 식구들의 귀가가 늦어지고 불도 켜지 못한 캄캄한 방 안에서 아이와 단둘이 눈만 꿈뻑이고 있을 때. 애니홍: 훈아.. 뭐해? 그림: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워 눈을 크게 뜨고 아이를 바라보는 애니홍. 아이는 침대 옆에 앉아 두 손으로 책을 들쳐보고 있다. 아이 주변에는 장난감이 놓여 있다. 침대 발치 쪽에는 휠체어가 놓여있다. 아이는 어둠 속을 더듬어 책 한 권을 꺼내 내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바짝 다가와 큰소리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훈: 엄마! 무서워하지 마 그림: 아이는 두 손으로 책을 펼쳐든 채 반짝이는 눈으로 애니홍에게 말한다. 엄마가 무서워할까봐 책을 읽어준다던 내 아이의 초롱한 눈망울을 마주한 순간..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 엄마: 여기가 제일 유명한 곳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더라 그림: 00재활병원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2층 건물이 있고, 건물 좌우로 나무 세 그루가 서 있다. 엄마와 휠체어를 탄 애니홍이 병원 건물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엄마 옆에는 짐 가방이 놓여 있다. 나는 내 어린 자식에게 내 손으로 밥 한 끼, 세수라도 시켜주자는 각오로 재활을 결심했다. 치료사: 조금만 힘내세요! 그림: 침상 위에는 애니홍과 치료사가 앉아있다. 애니홍은 두 다리를 앞으로 내놓고 팔로 상체를 지지하고 있고, 치료사는 애니홍의 두 발을 붙잡고 있다. 갈색 머리끈으로 머리카락을 묶어 올린 모습의 애니홍. 애니홍: (힘들지만.. 참자..!) 그림: 휠체어에서 몸을 떼어 책상에 손을 짚고 두 다리로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애니홍과 옆에서 살피는 치료사. 하루라도 빨리 몸을 추슬러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나가자는 생각으로 온종일 운동에만 매달렸다. 애니홍: (으으.. 힘들어!) 그림: 휠체어에서 몸을 떼어 앞에 놓인 침상을 붙잡고 간신히 일어선 채 재활 중인 애니홍.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애니홍: 아아! 드디어! 그림: 휠체어에 앉아서 헤어드라이어로 아이의 머리를 말려주고 있다. 아이는 애니홍을 향해 서서 머리를 살짝 숙여 머리를 만지고 있다. 아이 옆에는 샴푸통과 비누가 놓여 있다. 혼자 힘으로 일어나 앉고 휠체어를 타고.. 그리 바라던 내 아이의 머리를 감겨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애니홍: 나 나가서 우리 아들이랑 잘 살 거야 엄마: 안돼! 어떻게 하려고! 재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두 달 만에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며 아이와 둘이 생애 첫 독립을 했다. 훈: 진짜 높다! 그림: 건물이 여러 채 있고, 건물 입구에 행복동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건물 양 옆으로 나무가 한두 그루씩 서 있다. 휠체어를 탄 애니홍과 아이가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애니홍의 눈도 커지고, 아이도 두 팔을 들어 흔들며 즐거워한다. 애니홍 옆에는 짐 가방과 물품들이 놓여있다. 독립 후 함께 맞이한 첫날 우리는 밤하늘의 별을 헤며 행복해했다. 집 안 베란다에서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을 바라보고 있는 애니홍과 훈이의 뒷모습. 방 안에는 왼쪽으로 꽃화분이 놓인 서랍장이 있고, 오른편으로 냉장고가 있다. 어미의 세심한 손길이 절실했을 내 아이에게는 어쩌면 힘듦이 더 컸을 그 아픈 순간에도.. 나의 아이와 함께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저 감사하고 행복했다. 애니홍: 어서와! 그림: 아이가 노란색 00유치원 버스에서 내려 애니홍을 향해 뛰어오고, 휠체어를 탄 애니홍이 웃는 얼굴로 맞이하고 있다. 이듬해. 지인으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았고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반년이란 시간을 고민들로 보냈지만.. 고민의 끝에는 양가의 반대가 있었고, 나는 혼인신고뿐인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애니홍: (고민되네..) 그림: 한 남자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애니홍 앞에 서서 곷다발을 내밀고 있다. 가족.. 나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아이에겐 아빠라는 부재가 채워졌지만 문득 돌아본 아이 눈에서는 왠지 모를 외로움이 묻어났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내 새로운 희망을 맞이했다. 그림: 작은 요람에 갓난아기가 분홍색 아기 이불에 싸인 채 잠들어 있다. 애니홍과 아이가 가까이 앉아 갓난아기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행복했다. 늘 마음속에 그려왔던 완벽한 가족의 모습이 이런 건가 싶었다. 그림: 남자는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고, 휠체어에 탄 애니홍은 남자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남자아이와 어린 여자아이가 서 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림. 3년이랑 결혼생활을 정리하며 준비했던 내 마지막 꿈. 그 흔한 취미나 예술이 아닌 오로지 두 아이의 양육과 생계수단이 선택한 이유의 전부였던 그것. 그림: 휠체어를 탄 애니홍이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펜을 들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책상 위 모니터 옆에는 꽃화분이 놓여 있다. 낮엔 작은 아이를 데리고 관내 복지관 만화창작반에서 그림을 그리고, 훈: 어부어부 그림: 방에서 두 아이와 놀아주고 있는 애니홍. 작은아이는 엄마 옆에 바짝 붙어앉아 있다. 주변에는 장난감 자동차와 인형이 놓여 있다. 방의 왼쪽에는 꽃화분이 놓인 서랍장이 있다. 밤엔 아이들을 재워놓고 다음날 동틀 무렵까지 한 장에 천 원 남짓한 그림 채색이나 학습만화를 그려 생계에 보탰다. 애니홍: 피곤해도 참자..! 그림: 애니홍은 조명이 켜진 좌식책상 앞에 앉아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구겨진 종이들이 책상 주변과 책상 옆 쓰레기통에 쌓여 있다. 애니홍 뒤편에는 두 아이가 잠들어 있다. 큰아이는 몸을 옆으로 돌리고 얌전한 모습으로 자고 있고, 작은아이는 이불 밖으로 몸을 내밀고 팔다리를 사방으로 뻗은 채 자고 있다. 긴 머리카락도 사방으로 헝클어져 있다. 그렇게 앉아 일하는 생존 싸움에 매달리며 산 지 1년째 되는 날- 전국의 장애인,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만화대회에서 초등학교 5학년생 아들은 특별상을, 나는 대상을 받게 되었다. 그림: “제0회 전국장애(비장애)인 만화페스티벌 주최 (사)000재단”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배경으로 시상식 모습이다. 안경을 쓴 사람이 대상 상장을 휠체어를 탄 애니홍과 아이에게 전달하고 있다. 애니홍과 아이는 그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대회 수상을 계기로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각 방송사와 전화기 속 음성: 저희는 여성잡지, 여기는 KBC... 애니홍! 감사합니다! 그림: 방 안에는 전화기가 놓인 서랍장이 있고, 애니홍이 의자에 앉아 밝은 표정으로 전화를 받고 있다. 신문, 잡지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림: 방송 스튜디오 안에서 휠체어에 탄 애니홍과 다른 두 사람이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마이크를 앞에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테이블 정면에는 KBC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우리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고 난 후 나는 그림뿐 아니라 다양한 장애인 문화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었다. 그림: 한 사람이 삼각대로 고정한 카메라로 휠체어를 탄 애니홍과 다른 한 사람을 촬영하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애니홍 옆에 한쪽 무릎을 구부리고 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세 사람 모두 밝게 웃고 있다. 2010년 중반, “거주 지역 내 예술도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한국장애인국제문화예술원을 설립했다. 그림: 정면 중앙에 건물이 있고 “한국장애인국제문화예술원”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건물 입구에는 화환과 축하 리본을 단 큰 화분이 놓여있다. 건물 양옆으로 나무가 두세 그루 서 있다. 우리가 추구했던 사업의 방향은 실질적인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지역 내 일자리 창출. 그림: 사무실 실내에서 애니홍이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뒷면 벽에는 보드가 걸려 있다. 보드에는 한국장애인국제문화예술원이라는 큰 제목 아래 지역 내 일자리 창출, 만화가양성프로그램, 청소년예술교실, 국제문화예술교류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책상 양옆으로 축하 리본을 단 큰 화분이 놓여있다. 그리고 문화예술인 양성 교육 프로그램 확대였는데, 여러 방면에서 사업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림: 강의실에서 한 사람이 칠판 앞에 서서 강의를 하고 있고, 기다란 책상 두 개에는 수강생이 앞을 향해 앉아 강의를 듣고 있다. 칠판에는 “만화의 기본”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이런 활동은 문화예술 관련 관내 기관과 단체, 타 지역으로까지 이어졌다. 전화를 하거나 방문을 하여 연대를 하자는 사례도 많았다. 그림: 사무실에서 애니홍과 한 사람이 책상을 사이에 두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있다. 뒷면 벽에는 한국장애인국제문화예술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책상 왼편에는 큰 화분이 놓여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렇게 정신없이 바쁜 내게 새로운 통증이 찾아왔다. 의사: 이건 척수공동증 같은데.. 그림: 의사가 책상을 앞에 두고 몸을 돌려 앉아 벽에 걸린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말하고 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애니홍은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척수공동증.. 방치하면 전신마비. 나는 또다시 끔찍한 수술대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수술..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원인만 제거하면 통증 없이 편해질 거라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편하지 않다. 그림: 복도 끝 정면 중앙에 커다란 양문이 있다. 문 위 벽면에는 “중앙수술실”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문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편하지 않다. 하반신의 완전 마비 증상으로 인한 전신 통증을 또다시 참아가며 6년을 투병했다. 그러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원으로 두 차례의 개인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림: 전시장 코너에 그림 두 작품이 걸려 있고, 휠체어를 탄 애니홍은 그 중 하나를 밝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애니홍은 손에 꽃다발을 들고 있다. 주변으로 사람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작품에는 고양이와 꽃, 동물과 꽃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발판 삼아 얼마 후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특선과 장려상을 수상했고, JW아트어워즈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애니홍: 정말 잘됐어! 그림: 벽에 두 개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휠체어를 탄 애니홍이 두 손에 꽃다발을 든 채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작품 밑에 “장려상”과 “특선”이라고 쓰여 있는 카드가 붙어 있다. 카드에는 분홍색 리본이 달려있다. 왼쪽 작품은 밝은 노란색 그림이, 오른쪽 작품은 빨간색 파란색 등 여러 색이 섞여 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나는 연극 <나인 프리다>에 참여해 프리다를 연기했다. 사진: 연극 <나인프라다> 장면 사진으로 휠체어를 탄 채 멕시코 의상을 입고 프리다로 분장한 애니홍. 사진 위로 “지금 나에게 예술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최고의 명분이고 나를 살게 하는 유일한 숨구멍이다. 2022년 1월 애니홍”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나는 두 바퀴로 달린다. 캔버스 위를. 그리고 무대 위를..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