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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장애와 예술, 구색 맞추기를 넘어

이슈 질문과 시도가 존재할 뿐, 완벽은 없다

  • 고주영·김민솔·김지수·이진희 
  • 등록일 2023-11-29
  • 조회수816

이슈

장애·비장애 예술가의 협업이 활발해지고 장애예술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늘어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떠한 사유나 질문 없이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장애예술인을 캐스팅하기도 하고, 하나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관계 맺고 익숙해지는 과정을 매뉴얼이 대체할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공연계에서 활동하며 그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다양한 사례를 통해 ‘구색 맞추기’를 넘어서 균형을 찾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이야기 나눴다.

개요

  • 일시2023년 10월 7일(금) 오후 7시

  • 장소모두예술극장 회의실

참석자
좌장.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패널.
김민솔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김지수 극단 애인 단원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 네 사람이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앉거나 서 있다.

왼쪽부터 김지수, 고주영, 김민솔, 이진희

장애예술을 둘러싼 주목할 만한 변화

고주영장애예술과 관련된 관심과 실천이 늘어나는 건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구색 맞추기 같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다. 요즘 장애예술을 둘러싼 여러 가지 변화 중에서 무엇이 눈에 띄고, 어떤 것에 주목하는가.

이진희작년과 올해 OTT 서비스에서 장애를 소재로 하거나 장애인 배우가 출연한 작품이 늘어난 게 눈에 띄는 변화인 것 같다. 최근에 본 공연에서 농인인 우지양 배우가 수어통역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장애 당사자가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여러 포지션에 참여하고 있는 것, 접근성을 확보하는 역할로 드러나는 것 같아 그 부분을 주목해서 보고 있다.

김민솔불과 2~3년 전과 달리 창작자들 사이에서 공연 접근성을 준비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제일 큰 변화인 것 같다. 민간에서 펼쳐온 활동과 태도가 공공극장이나 공공기관으로 확대되어 창작자들과 협의 지점을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김지수제일 많이 달라진 건 나의 기대다. 예전에는 공연을 볼 때 휠체어 접근성을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했는데, 이제는 자막이나 수어통역, 음성해설이 있는지도 함께 확인한다. 휠체어석은 한번 만들어지면 없어지지 않지만, 음성해설이나 자막, 수어통역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크고, 하더라도 정해진 날짜에만 한다. 예전에는 내가 갈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면, 지금은 더 많은 것을 살피게 된다. 또 하나는, 장애인 창작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찾아보게 된다. 공연에 참여하는 일은 늘어나는데, 주체로서의 활동은 잘 안 보인다. 장애예술은 확산되고 있는데, 거기서 장애예술가들은 어딨는 거지?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이진희변화된 태도나 정책, 예산 등을 말할 때 ‘총량’을 짚어봐야 한다. 전체 운영 예산에서 몇 퍼센트인지, 어느 정도 확보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지금은 사실 총량 자체가 많지 않아 모든 게 다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장애예술 실태조사 같은 큰 접근도 필요하지만, 실질적이고 세밀한 접근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질 필요가 있다.

고주영우리는 사실 실태를 잘 모른다. 굉장히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실상 소위 ‘배리어프리’, 장애인 관객 접근성, 장애예술 창·제작이 전체 공연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도 안 될 것 같다. 장애예술에 관한 인식 자체가 없는데 벌써 구색을 이야기하는 건 아닌가 싶다. 서울과 달리 지방에서는 음성해설, 접근성이라는 말조차 처음 들어본다는 얘기도 있어서, 여전히 구색이라도 맞춰야 하는 상황인가 싶기도 하다.

김민솔지방에서는 배리어프리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접근성이라는 낯선 단어보다는 건축이나 방송에서 많이 접한 단어를 쓰는 거다. 그래도 관객에게 접근성 안내 문자를 보내면 예전보다 많이 알아보는 것 같아 이것 역시 변화라고 느낀다.

편중과 편향으로 시작하는

고주영장애인 역할 혹은 장애인 배우가 등장하는 방송이나 연극이, 여전히 미미하지만, 늘어난 것 같다. 물론 여기에도 구색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있다. 구색은 결국 균형이 잡히지 않는 어떤 부분이 있다는 말일 거다. 장애인 창작자 섭외에서 보이는 편중도 있고, ‘협업’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동등한 주체로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장애인과 함께하는 창작에서 ‘구색’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어떤 것이 있을까.

김지수배우라는 포지션은 어디서 불러줘야 연기를 할 수 있으니, 구색이라도 많아져야 설 무대가 많아지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구색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장애인과 예술 활동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먹고 시도하는 사람이 늘어난 거니까.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함께 있을 때 여태까지 해보지 않은 창작 활동을 해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 그런 반면 쉽게 도구화될 수 있겠다는 걱정도 든다. 예술가 스스로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내가 하는 작업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생각하고 얘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고주영장애 유무를 떠나서 공연계 프로덕션 구조상 배우는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기 쉽지 않은 포지션인데, 장애·비장애 협업에서 장애예술인은 배우로만 거론된다. 모두 퍼포머로서만 장애인을 원한다는 거다. 장애인 연출자, 장애인 극작가를 기용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김지수이 역할을 꼭 그 장애를 가진 사람이 해야 했을까 싶은 작업도 있다. 그 사람의 고유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그냥 장애인이 참여했다는 것만 남는 공연이나 예술 활동에 참여하는 게 바람직할지 고민이 들 때면 그거야말로 구색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진희춤추는허리는 왜 캐스팅되지 않는 걸까. 어떤 배우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캐스팅할까. 캐스팅된 것도 그렇지만, 캐스팅 안 되는 이유도 주목해 봐야 한다. 장애의 특성이나 고유성이 주는 어떤 힘이나 매력을 느껴서 캐스팅하더라도, 혼자서 신변 처리가 가능한 사람, 활동지원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 언어장애가 덜 한 사람을 찾는 것 같다. 너무 중증이거나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몸은 캐스팅되기 어렵다. 좀 더 자주 호명되는 장애는 무엇인지 짚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김지수장애인극단 중에도 구성원들이 다양한 장애 유형을 가진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비장애인 창작자가 팀을 꾸릴 때 지체장애나 척수장애, 그중에서 뇌병변장애, 그중에서 보행이 가능한 사람, 그다음으로 휠체어 탄 사람을 캐스팅하는 비율이 높다. 휠체어 탄 사람이 나와야 그림이 된다고 대놓고 얘기하기도 한다.

고주영기본적으로 비장애인 주도로 프로덕션이 구성되는 데다, 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하더라도 지금까지 했던 방식을 크게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작업할 수 있는 협업자를 찾는다면, 무대에서 장애인 배우의 고유성을 부각하거나 잘 활용하지는 못할 것 같다.

김민솔어쩌면 가시성, 보여지는 것이 중요해서 장애가 확연히 드러나는 배우를 섭외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작 그들과 함께할 준비는 잘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가령 농인 배우와 작업한다고 하면 연습실에서의 준비와 공연장에서의 준비가 필요하다. 연습실에서 수어통역사나 속기사를 섭외하지 않아서 팀 내에서 자체적으로 문자통역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서툴게 문자통역을 하다 보니 놓치는 부분도 있고 말의 속도나 어감을 전달하기 어려워서 오해가 쌓이기도 한다.

김지수장애를 가진 예술가들과 작업하는 것은 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나고 더 확장해야 하는 거다.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연습실, 농인의 경우 수어통역이나 문자통역이 갖춰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캐스팅된 장애인이 불편하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프로덕션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할 거라고 믿는 데다, 예산도 한정된 것을 아니까. 그런데 그런 불편함과 부당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한번 감수하면 또 다른, 더 많이 감수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 모두가 편안하게 창작하는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개념을 명확하게, 처음부터 약속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이진희정말 중요한 말씀이다. ‘모두를 위한다’는 말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모든 권력과 불편함에 대해 서로 긴장하고 살피며 의심하는 관계와 문화를 만들자는 거다. ‘다 준비하고 모셔 오라’는 말로 오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게 바로 시혜적인 접근이다. 같이 준비할 수 있는 권력과 권한을 나누고 싶고, 동료가 되어 협업하고 싶은 거다. 참여가 확보되지 않은 사람들은 “괜찮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지금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불편함이나 문제에 관해 누구든지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시작이다. 이에 대한 인식과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장애인 배우가 캐스팅되면 그냥 그 사람이 감내하고 감당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개인화되는 거다. 그건 사회의 장애인 차별 문제와 다르지 않다. 프로덕션 과정에서 기계적으로 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하고, 그가 적응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개인화시키면, 도구화되기 쉽고 얘기하기도 어려워진다. 장애인 배우가 그냥 감사해야 하는 위치에 계속 머물도록 하는 것, 그 권력이 이 프로덕션 과정 안에서 강력하게 구조화되어 있는 것 같다. 구조적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같이 살펴야 한다.

김민솔동료성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대부분 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하겠다는 결정은 연출이 내린다. 그러면 모든 배우와 스태프까지 오리엔테이션 되면서 프로덕션의 속도도 달라져야 하고, 의사소통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호흡이 다르다는 이유로 불편해하고, 어떤 부분에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동료 배우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마음을 갖고,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같이 하는 시간이 충분히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주영기존에는 연출자 한 사람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관계로만 존재했다면, 다른 몸이나 감각을 가진 협업자가 들어옴으로 인해 습관적으로 해왔던 방식이나 구조가 실은 ‘적폐’였음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현실은 그런 도전으로 인해 큰 변화가 일어나기보다는 그냥 잘 ‘수습’해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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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하지 않는 관계, 배제되는 몸

김지수외부 작업에 출연하는 배우를 보면, 가끔 연기 디렉팅을 받았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연출로서는 의사소통도 어렵고, 배우가 할 수 없는 걸 요구하는 건 아닐까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하는 모습을 계속 같이 찾아가고, 필요할 땐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훨씬 더 연기 잘하고 잘 표현할 수 있는데, 왜 요구하지 않는 걸까? 정확한 발음만 중요한 게 아니다. 장애 배우들이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이 어떻게 접점을 이룰지 고민할 여지가 없는 게 구색 맞추기다.

이진희장애인 배우건 비장애인 배우건, 배우의 몸 안에서 여러 변주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좋은 연기라는 건 뭘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냐다. 춤추는허리는 그것을 ‘충동’이라고 표현한다. 좋은 연기라는 어떤 틀에 딱 맞추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의 경험과 자기 몸의 고유성을 가지고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토론해 나가는 과정인 것 같다. 서로 의견을 얘기할 수 없거나 의견을 묻지 않는 관계, 서로 궁금해하지 않는 관계 속에서는 토론이 만들어질 수 없다. 공연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대본은 왜 그런지,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서로 계속 궁금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배우의 표현을 궁금해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문화와도 연결된다. 으레 그렇겠거니,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물어보면 어떨까. 얼마나 천천히 말해야 잘 전달되고 이해되는지 물어보는 것의 핵심은 궁금함이다. 내 얘기를 잘 이해했으면 좋겠고, 대화하고 싶으니까. 이 자체가 상호 교육·훈련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고주영복합적인 것 같다. 저는 장애 유무를 떠나서 연극계의 위계가 드러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연출은 배우의 욕망에는 관심 없이 어떻게 자신의 그림을 충실하게 구현해 낼지만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위계가 깨지지 않으면 장애인 혹은 또 다른 존재감 있는 사람이 들어왔을 때 버텨내지 못한다. 버틸 만큼의 유연성이 없는 거다.

김지수무용에서도 장애인을 많이 캐스팅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소비된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장애인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데, 무용을 하면서 내면의 욕구와 욕망, 충동, 움직였을 때의 쾌감을 경험한다. 하지만 안무가가 원하는 그림, 딱 거기까지만이다. 배우들 역시 더 많이 몸을 쓰고 꾸준히 훈련해 보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다. 어떤 욕망이나 충동이 생겼을 때 되든 안 되든 해볼 수 있는 게 진짜 중요하다.

고주영일회적인 프로젝트가 대부분이다 보니 장애예술인의 욕망과 욕구를 파악할 시간 없이 프로덕션 시작할 때 장애인 배우를 처음 만나서 같이 하고 끝나면 헤어진다. 나쁘지 않았으면 그다음에 또 잠깐 같이하고. 그러니 결국 손님일 수밖에 없지 않나.

이진희다른 몸이 극장 안에 들어오면 모든 관계가 바뀌어야 하는데, 장애가 있는 몸들이 이 안에서 느끼는 불화가 결국은 공연계 자체가 가진 보수적인 위계와 만난다는 게 참 답답하면서도 신기하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몸의 위계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그 상황을 감각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극단 애인도, 춤추는허리도, 다른 장애인극단도 당사자가 연출하는 힘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데 공공극장에서 장애인 배우들은 캐스팅하면서, 왜 장애인 연출은 섭외하지 않을까? 짜인 판에서 전시되는 몸으로는 불러내지만, 주체적인 창작자로는 보지 않는 것 아닐까?

김민솔장애예술 창·제작 현장에서 연출과 퍼포머 말고 기술 스태프 등 다른 역할을 하는 장애인이 있는지 궁금하다. 접근성이 있는 공연장도 관객의 객석 접근성을 말하는 곳이 대부분이고, 접근 가능한 분장실, 조종실을 갖춘 곳은 거의 없다. 그나마 모두예술극장이 이러한 것들을 구현했지만 높이 조절 등이 필요해 보이긴 한다. 퍼포머 외에 기획이나 기술 영역에도 더 많은 장애인이 진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지수우리 극단은 배우들이 기획이나 다른 역할도 한다. 근데 장애 유형이나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다. 휠체어 탄 사람들은 일단 조종실 접근이 안 되고, 뇌병변장애가 있는 분 중에는 타이밍에 딱 맞춰서 조작하는 게 힘든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계속 뭔가를 해봐야 좋고 싫고 선택의 여지가 생긴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갖기가 쉽지 않다.

이진희애초부터 기회가 없는 것과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은 너무 다르다. 하기 어려워도 욕망은 있을 수 있고, 경험하면서 자기 판단이 생기는 건데, 할 수 없고 욕구도 없을 거라고 판단하는 선입견이 무서운 것 같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

고주영관람 환경에서 접근성과 관련해 여러 가지 시도가 늘어나며 특히 접근성 매니저라는 역할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짚어볼 만한 것이 있을까.

김민솔저는 주로 공연기획을 하고 가끔 접근성 매니저 역할도 맡는다. 접근성 매니저로 프로덕션에 참여해도 그 역할만 떼어놓을 수 없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그런데 서로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걸림돌처럼 취급되거나, 정작 필요한 자료를 체크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요구가 들어오는 상황도 있다. 누군가는 자신을 외딴 섬으로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막의 경우, 롤업으로 한 줄씩 보여주는지, 세 줄씩 보여주는지, 아니면 배우의 호흡에 따라 보여주는지 등 작품의 의도와 자막 노출 방식이 긴밀하게 연결되는데, 연출과 소통하지 못하고 접근성 매니저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자막이 서비스가 아니라 작품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럴 리가 없잖나. 접근성 매니저도 역할이나 범위가 다양하다. 창작 과정에 밀접하게 참여하는 경우도 있고, 관객 접근성을 중심으로 하기도 한다. 저는 지금은 감각 보충형 공연에서의 관객 응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공연기획자로 참여해도 접근성 부분을 함께 진행하는 편이다. 창작의 영역을 연출이 접근성 부분까지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접근성 매니저를 섭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파트 스태프·협업자와 소통하고 함께 결정하는 것처럼, 접근성도 작품의 한 부분으로 바라보고 접근성 매니저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좋겠다.

김지수접근성 매니저가 하는 일이 엄청 많다. 음성해설이나 자막, 수어통역을 조율하는 것뿐 아니라, 관객 개발, 관객 응대, 이동지원까지 다 연결된다. 연출자를 대신해서 장애인 창작자와의 소통을 담당하기도 한다. 역할과 범위가 정해지지 않아 모호한 상태로 가는 것 같다. 그 모든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유능한 걸까, 자기 영역을 가르는 게 유능한 걸까?

이진희접근성 매니저가 슈퍼맨이어야 한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역할이 포괄적이고 권한이 확보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체계 없이 개인의 역량에 맡겨지면 권한과 책임에 한계가 분명하다.

김민솔작품이 다 정해진 상태에서 접근성 매니저로만 참여할 때는 계속 자기검열을 했던 것 같다. 그냥 주어진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는 식이다. 프로듀서로서 프리 프로덕션부터 참여하면 가장 이상적이고 여지도 많지만, 이런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음성해설 여건이 안 되면 위스퍼링(일대일 맞춤 해설)을 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할 수도 있는데, 다들 하니까 그냥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하는 마음과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왜 하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김지수관객 입장에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자막을 봤을 때 ‘저건 누구를 위한 걸까’ 의아했다. 접근성이 시혜적인 서비스라면 ‘공연 특성상’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음성해설이나 자막, 수어통역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작품 안에서 필요 없으면 안 해도 되는 건가.

이진희접근성을 ‘하면 훌륭하고 상황에 따라서 안 할 수도 있는 것’으로 취급하니 자꾸 구색만 맞추는 거다. 자원은 한계가 있고 프로덕션 내부에 접근성 역량을 갖추지 못하니 접근성이 시스템화되지 않고 문제가 자꾸 반복된다. 어떤 장애인예술축제는 홈페이지를 멋있게 만들어놨지만, 정보 찾기도 어렵고 접근성 안내도 없더라. 발달장애인이 많이 참여하는 축제에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온오프라인 자료가 얼마나 될지도 궁금하다. 장애인 행사에서 접근성은 간과해도 되는 요소인가? 접근성이 제대로 확보되어야 자율성이 확보되고, 자율성을 가져야 협업이 가능하다. 그런데 자기가 출연하는 무대에 대해서도 온전히 정보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구색일 뿐이다. 구색 맞추기가 협업을 가로막고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생각이 든다.

구색이 아닌 필수 요소로 바꾸기 위해

고주영과연 이러한 구색을 필수 요소로 바꿀 수 있을까? ‘구색의 제도화’ 경향에 저항하며 무엇을 해야 할까? 거창한 것 말고, 창작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얘기해 보면 좋겠다.

김민솔가깝게는 자막이나 음성해설을 개방형으로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처음에는 관객의 항의도 있었지만, 계속 노출하니 익숙해지고 이해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개방형으로 하는 이유는 ‘선택권이 아니라 기본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품의 콘셉트에 따라 새로운 버전의 공연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랑비에 옷 젖듯, 어느 순간 자막이나 접근성 문자 안내를 보내는 것이 당연해지도록 계속 방식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김지수동의한다. 일단 총량이 늘어나야 한다. 그리고 너무 이상적인 것 같지만, 음성해설이든 자막이든 수어통역이든,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이것이 필요한 사람들이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서비스가 아니라 권리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권리를 지킬 수 있게 더 많이 알려야 한다. 접근성 평가단처럼 현장을 모니터링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이진희영화계처럼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활용해서 집단 차별 진정을 해볼 수도 있겠다.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어떤 침해 요소가 있는지를 찾는 것은 사실 장애인 인권운동이 계속해 왔던 거다. 제도를 활용해서 공공극장에 대한 모니터링이나 전수조사를 한다거나 구색 맞추기 사례를 발굴해서 노출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이야기가 되려면 총량이 채워져야 한다.

김민솔먼저 예술계와 창작자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요즘 준비하는 작업이 있다. 하나는, 접근성 관련 용어를 정리하면서 구조를 살펴보는 거다. 또 하나는, 음성해설과 수어통역 등 점점 작품 안으로 들어오는 접근성을 비평과 연결하는 연구를 기획자, 연구자, 비평가 등이 모여 진행하고 있다. 접근성부터 비평까지 좀 더 적극적으로 연결된다면 작업자들도 구색이 아니라 진정성 있게 작품을 만들지 않을까.

고주영사실 장애예술 비평에도 아쉬움이 있다. 장애인 배우가 나오기만 하면 거의 칭찬 일색이지 않나. 지금까지 무대에서 보기 어려웠던 존재 자체에 감응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무조건적인 호평 역시 시혜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잘했다고 하니 발전이 없는 것 같다. 한편으로, 프로덕션에 장애인 창작자나 퍼포머가 들어왔을 때 장애·비장애 협업을 위해 서로의 관점을 맞추고 공유하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 의외로 이런 곳이 드물다. 공연예술계 미투 이후 「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Korea Theatre Standards, KTS)」이 만들어졌고, ‘성평등·성폭력 예방교육’이 의무화된 것처럼, 장애인과의 협업 관련해서도 이러한 문화가 쌓여야 할 것 같다. 왜 장애인과 작업하고 싶은지, 왜 장애와 관련된 작업을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사실 모든 예술이 마찬가지지만, 특히 장애예술에 대해서는 더 많이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지수구색 맞추기가 프로덕션이나 기획하는 사람들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장애예술인 중에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작품에서 장애 얘기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장애를 벗어나야 진정한 배우,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도 연결된다. 작품 제작 과정 전반과 예술 생태계를 바꿔나가는 것과 동시에 이러한 의식의 변화도 함께 일으켜야 한다. 장애예술인 간의 토론도 중요하고, 장애인과 함께 작업하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토론도 중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장애예술인이 주체가 되어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거대한 정책적 흐름에 휩쓸리기 쉬운 상황에서는 꼭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김민솔외부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창작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하면 좋겠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좀 더 나아질 수 있게 다시 시도하면 된다’라는 조언을 들었을 때 큰 힘이 되었다. 구색 맞추기나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내가 부끄럽지 않게 작업하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이진희구색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계속 구색이 되지 않는 활동을 지켜가며 꾸준히 계속해 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여러 제도화의 폭풍 속에서 구색이 되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뭔가를 창작해 내는 단단함을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현장을 계속 지킬 때, 지금은 말하기 어려워도 앞으로 말할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봤다. 계속 여러 방식을 시도하면서, 실패하면서 단단해지도록 사회적인 목소리나 움직임도 같이 만들고 싶다.

고주영이번 좌담의 목표가 ‘잘하지 못할 거면 아예 하지 말라’가 절대 아니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하시리라 생각한다. 시도를 멈추라는 의미가 아니라, 잠깐의 유행이 아닌 진정한 태도가 되기 위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고, 자기 욕망을 살필 때라는 생각에서 이번 좌담을 진행했다. 큰 자극과 영감이 되는 이야기들을 나눠주셔서 감사하다.

  • 네 사람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다.
  • 네 사람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다.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연극의 확장과 새로운 연극의 발생을 시도하는 ‘연극연습 프로젝트’(2018~현재)와 ‘정상성’에 대해 질문Question을 던지고 ‘별난Queer’ 존재들의 삶을 응시하는 ‘플랜Q프로젝트’(2019~현재)를 기획·제작하고 있다. 연극과 연극 아닌 것, 극장과 극장 아닌 것,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사이에 있고자 한다.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breeeeze@naver.com

김민솔

베짱이를 꿈꾸지만 개미처럼 일하는 슬픈 연극인. 독립 프로듀서이자 접근성 매니저로 활동하며, 음성해설 대본을 가끔 쓰고 있다. 연극을 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중 관객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독립기획자로 일하고 있으며, 〈옥상 위 카우보이〉, ‘2022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접근성 매니저를 했다.
minsol0914@gmail.com

김지수

극단 애인 단원. 연출, 작가, 배우이자 장애인 연극교육, 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부터 연극을 시작했고, 2007년 극단 애인을 창단하고 최근까지 대표를 맡았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러브MT〉 〈으랏차차〉, 장편 희곡 〈대바늘 코바늘〉 〈알록달록 한땀한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을 썼다. 〈고도를 기다리며〉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한달이〉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이음온라인 1기 기획위원으로 활동했고, 장애인문화예술활동지원위원회 1기 위원으로 활동했다.
auleala@daum.net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에서 장애여성 동료들과 연극을 만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wdc214@gmail.com

정리. 최순화 프로젝트 궁리 제작 PD suna.choe@gmail.com
사진.이재범 POV 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2023년 12월 (48호)

상세내용

이슈

장애·비장애 예술가의 협업이 활발해지고 장애예술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늘어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떠한 사유나 질문 없이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장애예술인을 캐스팅하기도 하고, 하나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관계 맺고 익숙해지는 과정을 매뉴얼이 대체할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공연계에서 활동하며 그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다양한 사례를 통해 ‘구색 맞추기’를 넘어서 균형을 찾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이야기 나눴다.

개요

  • 일시2023년 10월 7일(금) 오후 7시

  • 장소모두예술극장 회의실

참석자
좌장.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패널.
김민솔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김지수 극단 애인 단원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 네 사람이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앉거나 서 있다.

왼쪽부터 김지수, 고주영, 김민솔, 이진희

장애예술을 둘러싼 주목할 만한 변화

고주영장애예술과 관련된 관심과 실천이 늘어나는 건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구색 맞추기 같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다. 요즘 장애예술을 둘러싼 여러 가지 변화 중에서 무엇이 눈에 띄고, 어떤 것에 주목하는가.

이진희작년과 올해 OTT 서비스에서 장애를 소재로 하거나 장애인 배우가 출연한 작품이 늘어난 게 눈에 띄는 변화인 것 같다. 최근에 본 공연에서 농인인 우지양 배우가 수어통역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장애 당사자가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여러 포지션에 참여하고 있는 것, 접근성을 확보하는 역할로 드러나는 것 같아 그 부분을 주목해서 보고 있다.

김민솔불과 2~3년 전과 달리 창작자들 사이에서 공연 접근성을 준비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제일 큰 변화인 것 같다. 민간에서 펼쳐온 활동과 태도가 공공극장이나 공공기관으로 확대되어 창작자들과 협의 지점을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김지수제일 많이 달라진 건 나의 기대다. 예전에는 공연을 볼 때 휠체어 접근성을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했는데, 이제는 자막이나 수어통역, 음성해설이 있는지도 함께 확인한다. 휠체어석은 한번 만들어지면 없어지지 않지만, 음성해설이나 자막, 수어통역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크고, 하더라도 정해진 날짜에만 한다. 예전에는 내가 갈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면, 지금은 더 많은 것을 살피게 된다. 또 하나는, 장애인 창작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찾아보게 된다. 공연에 참여하는 일은 늘어나는데, 주체로서의 활동은 잘 안 보인다. 장애예술은 확산되고 있는데, 거기서 장애예술가들은 어딨는 거지?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이진희변화된 태도나 정책, 예산 등을 말할 때 ‘총량’을 짚어봐야 한다. 전체 운영 예산에서 몇 퍼센트인지, 어느 정도 확보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지금은 사실 총량 자체가 많지 않아 모든 게 다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장애예술 실태조사 같은 큰 접근도 필요하지만, 실질적이고 세밀한 접근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질 필요가 있다.

고주영우리는 사실 실태를 잘 모른다. 굉장히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실상 소위 ‘배리어프리’, 장애인 관객 접근성, 장애예술 창·제작이 전체 공연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도 안 될 것 같다. 장애예술에 관한 인식 자체가 없는데 벌써 구색을 이야기하는 건 아닌가 싶다. 서울과 달리 지방에서는 음성해설, 접근성이라는 말조차 처음 들어본다는 얘기도 있어서, 여전히 구색이라도 맞춰야 하는 상황인가 싶기도 하다.

김민솔지방에서는 배리어프리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접근성이라는 낯선 단어보다는 건축이나 방송에서 많이 접한 단어를 쓰는 거다. 그래도 관객에게 접근성 안내 문자를 보내면 예전보다 많이 알아보는 것 같아 이것 역시 변화라고 느낀다.

편중과 편향으로 시작하는

고주영장애인 역할 혹은 장애인 배우가 등장하는 방송이나 연극이, 여전히 미미하지만, 늘어난 것 같다. 물론 여기에도 구색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있다. 구색은 결국 균형이 잡히지 않는 어떤 부분이 있다는 말일 거다. 장애인 창작자 섭외에서 보이는 편중도 있고, ‘협업’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동등한 주체로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장애인과 함께하는 창작에서 ‘구색’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어떤 것이 있을까.

김지수배우라는 포지션은 어디서 불러줘야 연기를 할 수 있으니, 구색이라도 많아져야 설 무대가 많아지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구색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장애인과 예술 활동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먹고 시도하는 사람이 늘어난 거니까.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함께 있을 때 여태까지 해보지 않은 창작 활동을 해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 그런 반면 쉽게 도구화될 수 있겠다는 걱정도 든다. 예술가 스스로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내가 하는 작업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생각하고 얘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고주영장애 유무를 떠나서 공연계 프로덕션 구조상 배우는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기 쉽지 않은 포지션인데, 장애·비장애 협업에서 장애예술인은 배우로만 거론된다. 모두 퍼포머로서만 장애인을 원한다는 거다. 장애인 연출자, 장애인 극작가를 기용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김지수이 역할을 꼭 그 장애를 가진 사람이 해야 했을까 싶은 작업도 있다. 그 사람의 고유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그냥 장애인이 참여했다는 것만 남는 공연이나 예술 활동에 참여하는 게 바람직할지 고민이 들 때면 그거야말로 구색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진희춤추는허리는 왜 캐스팅되지 않는 걸까. 어떤 배우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캐스팅할까. 캐스팅된 것도 그렇지만, 캐스팅 안 되는 이유도 주목해 봐야 한다. 장애의 특성이나 고유성이 주는 어떤 힘이나 매력을 느껴서 캐스팅하더라도, 혼자서 신변 처리가 가능한 사람, 활동지원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 언어장애가 덜 한 사람을 찾는 것 같다. 너무 중증이거나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몸은 캐스팅되기 어렵다. 좀 더 자주 호명되는 장애는 무엇인지 짚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김지수장애인극단 중에도 구성원들이 다양한 장애 유형을 가진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비장애인 창작자가 팀을 꾸릴 때 지체장애나 척수장애, 그중에서 뇌병변장애, 그중에서 보행이 가능한 사람, 그다음으로 휠체어 탄 사람을 캐스팅하는 비율이 높다. 휠체어 탄 사람이 나와야 그림이 된다고 대놓고 얘기하기도 한다.

고주영기본적으로 비장애인 주도로 프로덕션이 구성되는 데다, 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하더라도 지금까지 했던 방식을 크게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작업할 수 있는 협업자를 찾는다면, 무대에서 장애인 배우의 고유성을 부각하거나 잘 활용하지는 못할 것 같다.

김민솔어쩌면 가시성, 보여지는 것이 중요해서 장애가 확연히 드러나는 배우를 섭외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작 그들과 함께할 준비는 잘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가령 농인 배우와 작업한다고 하면 연습실에서의 준비와 공연장에서의 준비가 필요하다. 연습실에서 수어통역사나 속기사를 섭외하지 않아서 팀 내에서 자체적으로 문자통역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서툴게 문자통역을 하다 보니 놓치는 부분도 있고 말의 속도나 어감을 전달하기 어려워서 오해가 쌓이기도 한다.

김지수장애를 가진 예술가들과 작업하는 것은 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나고 더 확장해야 하는 거다.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연습실, 농인의 경우 수어통역이나 문자통역이 갖춰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캐스팅된 장애인이 불편하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프로덕션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할 거라고 믿는 데다, 예산도 한정된 것을 아니까. 그런데 그런 불편함과 부당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한번 감수하면 또 다른, 더 많이 감수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 모두가 편안하게 창작하는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개념을 명확하게, 처음부터 약속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이진희정말 중요한 말씀이다. ‘모두를 위한다’는 말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모든 권력과 불편함에 대해 서로 긴장하고 살피며 의심하는 관계와 문화를 만들자는 거다. ‘다 준비하고 모셔 오라’는 말로 오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게 바로 시혜적인 접근이다. 같이 준비할 수 있는 권력과 권한을 나누고 싶고, 동료가 되어 협업하고 싶은 거다. 참여가 확보되지 않은 사람들은 “괜찮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지금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불편함이나 문제에 관해 누구든지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시작이다. 이에 대한 인식과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장애인 배우가 캐스팅되면 그냥 그 사람이 감내하고 감당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개인화되는 거다. 그건 사회의 장애인 차별 문제와 다르지 않다. 프로덕션 과정에서 기계적으로 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하고, 그가 적응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개인화시키면, 도구화되기 쉽고 얘기하기도 어려워진다. 장애인 배우가 그냥 감사해야 하는 위치에 계속 머물도록 하는 것, 그 권력이 이 프로덕션 과정 안에서 강력하게 구조화되어 있는 것 같다. 구조적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같이 살펴야 한다.

김민솔동료성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대부분 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하겠다는 결정은 연출이 내린다. 그러면 모든 배우와 스태프까지 오리엔테이션 되면서 프로덕션의 속도도 달라져야 하고, 의사소통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호흡이 다르다는 이유로 불편해하고, 어떤 부분에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동료 배우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마음을 갖고,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같이 하는 시간이 충분히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주영기존에는 연출자 한 사람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관계로만 존재했다면, 다른 몸이나 감각을 가진 협업자가 들어옴으로 인해 습관적으로 해왔던 방식이나 구조가 실은 ‘적폐’였음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현실은 그런 도전으로 인해 큰 변화가 일어나기보다는 그냥 잘 ‘수습’해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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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하지 않는 관계, 배제되는 몸

김지수외부 작업에 출연하는 배우를 보면, 가끔 연기 디렉팅을 받았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연출로서는 의사소통도 어렵고, 배우가 할 수 없는 걸 요구하는 건 아닐까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하는 모습을 계속 같이 찾아가고, 필요할 땐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훨씬 더 연기 잘하고 잘 표현할 수 있는데, 왜 요구하지 않는 걸까? 정확한 발음만 중요한 게 아니다. 장애 배우들이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이 어떻게 접점을 이룰지 고민할 여지가 없는 게 구색 맞추기다.

이진희장애인 배우건 비장애인 배우건, 배우의 몸 안에서 여러 변주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좋은 연기라는 건 뭘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냐다. 춤추는허리는 그것을 ‘충동’이라고 표현한다. 좋은 연기라는 어떤 틀에 딱 맞추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의 경험과 자기 몸의 고유성을 가지고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토론해 나가는 과정인 것 같다. 서로 의견을 얘기할 수 없거나 의견을 묻지 않는 관계, 서로 궁금해하지 않는 관계 속에서는 토론이 만들어질 수 없다. 공연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대본은 왜 그런지,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서로 계속 궁금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배우의 표현을 궁금해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문화와도 연결된다. 으레 그렇겠거니,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물어보면 어떨까. 얼마나 천천히 말해야 잘 전달되고 이해되는지 물어보는 것의 핵심은 궁금함이다. 내 얘기를 잘 이해했으면 좋겠고, 대화하고 싶으니까. 이 자체가 상호 교육·훈련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고주영복합적인 것 같다. 저는 장애 유무를 떠나서 연극계의 위계가 드러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연출은 배우의 욕망에는 관심 없이 어떻게 자신의 그림을 충실하게 구현해 낼지만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위계가 깨지지 않으면 장애인 혹은 또 다른 존재감 있는 사람이 들어왔을 때 버텨내지 못한다. 버틸 만큼의 유연성이 없는 거다.

김지수무용에서도 장애인을 많이 캐스팅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소비된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장애인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데, 무용을 하면서 내면의 욕구와 욕망, 충동, 움직였을 때의 쾌감을 경험한다. 하지만 안무가가 원하는 그림, 딱 거기까지만이다. 배우들 역시 더 많이 몸을 쓰고 꾸준히 훈련해 보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다. 어떤 욕망이나 충동이 생겼을 때 되든 안 되든 해볼 수 있는 게 진짜 중요하다.

고주영일회적인 프로젝트가 대부분이다 보니 장애예술인의 욕망과 욕구를 파악할 시간 없이 프로덕션 시작할 때 장애인 배우를 처음 만나서 같이 하고 끝나면 헤어진다. 나쁘지 않았으면 그다음에 또 잠깐 같이하고. 그러니 결국 손님일 수밖에 없지 않나.

이진희다른 몸이 극장 안에 들어오면 모든 관계가 바뀌어야 하는데, 장애가 있는 몸들이 이 안에서 느끼는 불화가 결국은 공연계 자체가 가진 보수적인 위계와 만난다는 게 참 답답하면서도 신기하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몸의 위계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그 상황을 감각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극단 애인도, 춤추는허리도, 다른 장애인극단도 당사자가 연출하는 힘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데 공공극장에서 장애인 배우들은 캐스팅하면서, 왜 장애인 연출은 섭외하지 않을까? 짜인 판에서 전시되는 몸으로는 불러내지만, 주체적인 창작자로는 보지 않는 것 아닐까?

김민솔장애예술 창·제작 현장에서 연출과 퍼포머 말고 기술 스태프 등 다른 역할을 하는 장애인이 있는지 궁금하다. 접근성이 있는 공연장도 관객의 객석 접근성을 말하는 곳이 대부분이고, 접근 가능한 분장실, 조종실을 갖춘 곳은 거의 없다. 그나마 모두예술극장이 이러한 것들을 구현했지만 높이 조절 등이 필요해 보이긴 한다. 퍼포머 외에 기획이나 기술 영역에도 더 많은 장애인이 진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김지수우리 극단은 배우들이 기획이나 다른 역할도 한다. 근데 장애 유형이나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다. 휠체어 탄 사람들은 일단 조종실 접근이 안 되고, 뇌병변장애가 있는 분 중에는 타이밍에 딱 맞춰서 조작하는 게 힘든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계속 뭔가를 해봐야 좋고 싫고 선택의 여지가 생긴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갖기가 쉽지 않다.

이진희애초부터 기회가 없는 것과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은 너무 다르다. 하기 어려워도 욕망은 있을 수 있고, 경험하면서 자기 판단이 생기는 건데, 할 수 없고 욕구도 없을 거라고 판단하는 선입견이 무서운 것 같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

고주영관람 환경에서 접근성과 관련해 여러 가지 시도가 늘어나며 특히 접근성 매니저라는 역할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짚어볼 만한 것이 있을까.

김민솔저는 주로 공연기획을 하고 가끔 접근성 매니저 역할도 맡는다. 접근성 매니저로 프로덕션에 참여해도 그 역할만 떼어놓을 수 없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그런데 서로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걸림돌처럼 취급되거나, 정작 필요한 자료를 체크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요구가 들어오는 상황도 있다. 누군가는 자신을 외딴 섬으로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막의 경우, 롤업으로 한 줄씩 보여주는지, 세 줄씩 보여주는지, 아니면 배우의 호흡에 따라 보여주는지 등 작품의 의도와 자막 노출 방식이 긴밀하게 연결되는데, 연출과 소통하지 못하고 접근성 매니저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자막이 서비스가 아니라 작품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럴 리가 없잖나. 접근성 매니저도 역할이나 범위가 다양하다. 창작 과정에 밀접하게 참여하는 경우도 있고, 관객 접근성을 중심으로 하기도 한다. 저는 지금은 감각 보충형 공연에서의 관객 응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공연기획자로 참여해도 접근성 부분을 함께 진행하는 편이다. 창작의 영역을 연출이 접근성 부분까지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접근성 매니저를 섭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파트 스태프·협업자와 소통하고 함께 결정하는 것처럼, 접근성도 작품의 한 부분으로 바라보고 접근성 매니저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좋겠다.

김지수접근성 매니저가 하는 일이 엄청 많다. 음성해설이나 자막, 수어통역을 조율하는 것뿐 아니라, 관객 개발, 관객 응대, 이동지원까지 다 연결된다. 연출자를 대신해서 장애인 창작자와의 소통을 담당하기도 한다. 역할과 범위가 정해지지 않아 모호한 상태로 가는 것 같다. 그 모든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유능한 걸까, 자기 영역을 가르는 게 유능한 걸까?

이진희접근성 매니저가 슈퍼맨이어야 한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역할이 포괄적이고 권한이 확보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체계 없이 개인의 역량에 맡겨지면 권한과 책임에 한계가 분명하다.

김민솔작품이 다 정해진 상태에서 접근성 매니저로만 참여할 때는 계속 자기검열을 했던 것 같다. 그냥 주어진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는 식이다. 프로듀서로서 프리 프로덕션부터 참여하면 가장 이상적이고 여지도 많지만, 이런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음성해설 여건이 안 되면 위스퍼링(일대일 맞춤 해설)을 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할 수도 있는데, 다들 하니까 그냥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하는 마음과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왜 하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김지수관객 입장에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자막을 봤을 때 ‘저건 누구를 위한 걸까’ 의아했다. 접근성이 시혜적인 서비스라면 ‘공연 특성상’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음성해설이나 자막, 수어통역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작품 안에서 필요 없으면 안 해도 되는 건가.

이진희접근성을 ‘하면 훌륭하고 상황에 따라서 안 할 수도 있는 것’으로 취급하니 자꾸 구색만 맞추는 거다. 자원은 한계가 있고 프로덕션 내부에 접근성 역량을 갖추지 못하니 접근성이 시스템화되지 않고 문제가 자꾸 반복된다. 어떤 장애인예술축제는 홈페이지를 멋있게 만들어놨지만, 정보 찾기도 어렵고 접근성 안내도 없더라. 발달장애인이 많이 참여하는 축제에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온오프라인 자료가 얼마나 될지도 궁금하다. 장애인 행사에서 접근성은 간과해도 되는 요소인가? 접근성이 제대로 확보되어야 자율성이 확보되고, 자율성을 가져야 협업이 가능하다. 그런데 자기가 출연하는 무대에 대해서도 온전히 정보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구색일 뿐이다. 구색 맞추기가 협업을 가로막고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생각이 든다.

구색이 아닌 필수 요소로 바꾸기 위해

고주영과연 이러한 구색을 필수 요소로 바꿀 수 있을까? ‘구색의 제도화’ 경향에 저항하며 무엇을 해야 할까? 거창한 것 말고, 창작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얘기해 보면 좋겠다.

김민솔가깝게는 자막이나 음성해설을 개방형으로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처음에는 관객의 항의도 있었지만, 계속 노출하니 익숙해지고 이해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개방형으로 하는 이유는 ‘선택권이 아니라 기본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품의 콘셉트에 따라 새로운 버전의 공연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랑비에 옷 젖듯, 어느 순간 자막이나 접근성 문자 안내를 보내는 것이 당연해지도록 계속 방식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김지수동의한다. 일단 총량이 늘어나야 한다. 그리고 너무 이상적인 것 같지만, 음성해설이든 자막이든 수어통역이든,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이것이 필요한 사람들이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서비스가 아니라 권리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권리를 지킬 수 있게 더 많이 알려야 한다. 접근성 평가단처럼 현장을 모니터링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이진희영화계처럼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활용해서 집단 차별 진정을 해볼 수도 있겠다.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어떤 침해 요소가 있는지를 찾는 것은 사실 장애인 인권운동이 계속해 왔던 거다. 제도를 활용해서 공공극장에 대한 모니터링이나 전수조사를 한다거나 구색 맞추기 사례를 발굴해서 노출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이야기가 되려면 총량이 채워져야 한다.

김민솔먼저 예술계와 창작자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요즘 준비하는 작업이 있다. 하나는, 접근성 관련 용어를 정리하면서 구조를 살펴보는 거다. 또 하나는, 음성해설과 수어통역 등 점점 작품 안으로 들어오는 접근성을 비평과 연결하는 연구를 기획자, 연구자, 비평가 등이 모여 진행하고 있다. 접근성부터 비평까지 좀 더 적극적으로 연결된다면 작업자들도 구색이 아니라 진정성 있게 작품을 만들지 않을까.

고주영사실 장애예술 비평에도 아쉬움이 있다. 장애인 배우가 나오기만 하면 거의 칭찬 일색이지 않나. 지금까지 무대에서 보기 어려웠던 존재 자체에 감응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무조건적인 호평 역시 시혜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잘했다고 하니 발전이 없는 것 같다. 한편으로, 프로덕션에 장애인 창작자나 퍼포머가 들어왔을 때 장애·비장애 협업을 위해 서로의 관점을 맞추고 공유하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 의외로 이런 곳이 드물다. 공연예술계 미투 이후 「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Korea Theatre Standards, KTS)」이 만들어졌고, ‘성평등·성폭력 예방교육’이 의무화된 것처럼, 장애인과의 협업 관련해서도 이러한 문화가 쌓여야 할 것 같다. 왜 장애인과 작업하고 싶은지, 왜 장애와 관련된 작업을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사실 모든 예술이 마찬가지지만, 특히 장애예술에 대해서는 더 많이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지수구색 맞추기가 프로덕션이나 기획하는 사람들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장애예술인 중에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작품에서 장애 얘기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장애를 벗어나야 진정한 배우,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도 연결된다. 작품 제작 과정 전반과 예술 생태계를 바꿔나가는 것과 동시에 이러한 의식의 변화도 함께 일으켜야 한다. 장애예술인 간의 토론도 중요하고, 장애인과 함께 작업하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토론도 중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장애예술인이 주체가 되어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거대한 정책적 흐름에 휩쓸리기 쉬운 상황에서는 꼭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김민솔외부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창작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하면 좋겠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좀 더 나아질 수 있게 다시 시도하면 된다’라는 조언을 들었을 때 큰 힘이 되었다. 구색 맞추기나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내가 부끄럽지 않게 작업하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이진희구색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계속 구색이 되지 않는 활동을 지켜가며 꾸준히 계속해 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여러 제도화의 폭풍 속에서 구색이 되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뭔가를 창작해 내는 단단함을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현장을 계속 지킬 때, 지금은 말하기 어려워도 앞으로 말할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봤다. 계속 여러 방식을 시도하면서, 실패하면서 단단해지도록 사회적인 목소리나 움직임도 같이 만들고 싶다.

고주영이번 좌담의 목표가 ‘잘하지 못할 거면 아예 하지 말라’가 절대 아니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하시리라 생각한다. 시도를 멈추라는 의미가 아니라, 잠깐의 유행이 아닌 진정한 태도가 되기 위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고, 자기 욕망을 살필 때라는 생각에서 이번 좌담을 진행했다. 큰 자극과 영감이 되는 이야기들을 나눠주셔서 감사하다.

  • 네 사람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다.
  • 네 사람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다.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연극의 확장과 새로운 연극의 발생을 시도하는 ‘연극연습 프로젝트’(2018~현재)와 ‘정상성’에 대해 질문Question을 던지고 ‘별난Queer’ 존재들의 삶을 응시하는 ‘플랜Q프로젝트’(2019~현재)를 기획·제작하고 있다. 연극과 연극 아닌 것, 극장과 극장 아닌 것,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사이에 있고자 한다.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breeeeze@naver.com

김민솔

베짱이를 꿈꾸지만 개미처럼 일하는 슬픈 연극인. 독립 프로듀서이자 접근성 매니저로 활동하며, 음성해설 대본을 가끔 쓰고 있다. 연극을 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중 관객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독립기획자로 일하고 있으며, 〈옥상 위 카우보이〉, ‘2022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접근성 매니저를 했다.
minsol0914@gmail.com

김지수

극단 애인 단원. 연출, 작가, 배우이자 장애인 연극교육, 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부터 연극을 시작했고, 2007년 극단 애인을 창단하고 최근까지 대표를 맡았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러브MT〉 〈으랏차차〉, 장편 희곡 〈대바늘 코바늘〉 〈알록달록 한땀한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을 썼다. 〈고도를 기다리며〉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한달이〉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이음온라인 1기 기획위원으로 활동했고, 장애인문화예술활동지원위원회 1기 위원으로 활동했다.
auleala@daum.net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에서 장애여성 동료들과 연극을 만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wdc214@gmail.com

정리. 최순화 프로젝트 궁리 제작 PD suna.choe@gmail.com
사진.이재범 POV 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2023년 12월 (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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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9 12: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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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처럼, 현장의 실천이 정책화되고 정책이 구색이 되는 여러 제도화의 폭풍 속에서, 구색이 되지 않고자 하는 사람이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좀더 단단하게 창작을 이어나가면 좋겠습니다. 몰이해와 차별이 아닌 진정한 함께 하기의 본질적인 철학과 관점이 널리 확산되는 새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2023-12-22 17: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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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장애 예술에 대한 비평적 논평과 고민이 장애예술을 한층 더 발전시키는 초석이 될 것 같습니다. 편견과 편향을 넘어서,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균형적인 예술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우리 사회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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