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웹진 이음

이음광장 영화 <소영의 노력> 음성해설 작성기 장애는 어떻게 말로 번역되는가

  • 오재형 영화감독
  • 등록일 2025-07-30
  • 조회수 202

이음광장

미술, 영화 등 여러 분야에서 작품을 만들고 발표하는 일을 오래 해왔다. 작업보다 모객이 항상 더 어려운 법. 어느 날, 텅 빈 극장에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더 많이 오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음? 또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었던 잠재적 관객에 관한 상상? 작업 10년 차에 겨우 하게 되었다. 이런 빈곤한 상상력으로 예술가라 소개하고 초대장을 뿌려왔다니 부끄러웠다. 그렇게 나는 배리어프리 영화를 연구하게 되었다.

장애학과 접근성에 관한 관심은 점점 커졌다. 〈피아노 프리즘〉(2021)을 시작으로 〈양림동 소녀〉(2022), 최근에는 장애인 무용수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소영의 노력〉(2024)을 연출하고 배리어프리 작업을 겸했다. 영화 후반작업에서 가장 어렵고 신경 쓰는 부분은 음성해설(화면해설보다 이 단어를 선호한다) 대본 쓰기다. 이번 작업도 초반부터 막혔다. 소영이 걷는 ‘간단한’ 장면을 말로 쉽사리 번역하지 못하고 좌절했다. 뇌성마비 장애인의 보행 특징은 영화를 찍는 내내 봐와서 눈으로는 익숙했다. 하지만 말로 옮길 언어가 나에겐 없었다. 번역의 시도와 고민을 기록했다.

첫 번째 고민. 굳이 말로 해설해야 할까? 음성해설의 흔한 오류는 정보과잉이다. 소리로 충분히 전달되는 감각을 굳이 해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걷는 소리가 들리는 장면. 해설하지 말까? 하지만 쿵! 쿵! 크게 들리는 소리는 ‘일반적인 걸음’의 소리와는 확연히 다르다. 비장애인이라면 일부러 의도를 가지고 힘을 주어 내는 발소리와 같기 때문이다. 소리에 의존하여 영화를 즐기는 사람에겐 이 발소리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까? ​

하지만 장애인의 걸음이라는 것을 꼭 설명해야 할까? 비장애인의 ‘일반적인 걸음’과 달리 장애인의 걸음만 콕 집어서 이러쿵저러쿵 묘사한다? 그건 비장애인의 걸음을 기본값이라고 여기는 비장애중심주의적 편견이 아닐까? 가령 어떤 영화에서 장애인이 등장하지만 그 캐릭터가 장애 정체성과 전혀 무관한 배역이라면 이런 생각이 일리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영의 노력〉의 키워드는 장애, 무용, 영화다. 주인공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빼놓고 영화가 성립할 수 없고, 주인공의 걸음걸이를 묘사하지 않고 소영의 무용을 상상하게 만들 수 없다. 영화 초반에 이 장면을 어떻게든 해설하고 출발해야 한다. ​

가장 피해야 할 표현부터 생각해 봤다. “소영이 불편한 걸음으로 복도를 걷는다” 혹은 “위태롭게”나 “힘겹게”라는 표현이 들어갈 것이다. 등장인물의 일상을 건조하게 보여줬을 뿐인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편하고 위태롭고 힘겹다고 제삼자가 정의한다면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음성해설 작가의 빈곤한 시선이 탄로 나는 순간일 것이다.

그렇다고 장애 감수성 충만하게 “소영은 자신에게 익숙한 몸의 감각과 균형으로, 또 존재의 고유한 속도로, 스스로의 리듬과 보폭을 중력에 담아 복도를 걷고 있다.”라고 해설해 볼까. 아니야, 이것도 너무 오그라드는 표현이 아닐까. 영화 초반에 잠깐 스쳐 가는 분위기의 한 컷일 뿐인데 이렇게 느끼하고 장황하게? 안되겠다. 결정적으로, 보통 영화의 음성해설은 이렇게 긴 문장을 소화할 시간적 여력을 주지 않는다(물론 필요하다면 감독인 내가 영상 클립을 늘리면 되긴 하지만). 짧고 담백하게 표현하고 싶다.

장면을 주절주절 설명하는 것보다 의태어나 의성어를 사용하면 직관적이면서도 생생한 표현이 되지 않을까? 당장 떠오른 표현은 “소영이 비틀비틀 걷는다”, “소영이 뒤뚱뒤뚱 걷는다”이다. 의태어는 그래도 중립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써놓고 나니 뭔가 싸했다. “비틀비틀”은 “위태롭게”의 다른 표현일 뿐인 것 같고, “뒤뚱뒤뚱”은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칭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단 패스. ​

고민 끝에 나는 이렇게 썼다.
“까치발로 흔들흔들 복도를 걷는 소영”
음, “흔들흔들”은 충분히 부정적 뉘앙스가 없는 객관적 표현이라 생각했다. 또 뇌성마비 장애인 보행 특성을 감안하여 “까치발”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렇게 녹음해서 일단 영화에 넣었다. 하지만 다시 찬찬히 생각하니 “까치발”이란 표현은 괜찮은 걸까? 괜찮을 것이다! 뇌성마비 딸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까치발〉을 본 기억도 나고. 그러나 시원치 않은 마음이다. 성인 여성의 걸음걸이를 묘사하는 단어로 까치발이 정녕 어울리는 표현일까?

10초 정도의 이 장면, 영화에 삽입된 ‘최최최종’ 표현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발끝으로 흔들흔들 걷는 소영”
완벽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처음 떠오른 말들보다는 확실히 더 나아진 것 같다. 많이 부족하고 불완전하지만 〈소영의 노력〉 러닝타임 75분의 음성해설 대본은 이런 고민들로 시간을 쌓으며 써 내려갔다.

  • 〈소영의 노력〉 영화 스틸컷
    무대 위에서 두 사람이 조명을 받으며 리허설 중이다.
    두 사람은 같은 방향을 응시하며 한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다.

  • 〈소영의 노력〉 영화 한 장면
    실내 복도에 두 사람이 뒷모습으로 나란히 걷고 있다.
    복도 양옆에는 문들이 있고, 멀리 창문으로 빛이 들어온다.
    영상 출처. 유튜브채널 피아노 프리즘

오재형

오재형

이것저것 하는 예술잡상인. 주로 영화를 만든다. 후반작업의 꽃은 배리어프리 작업이라 생각한다. 〈피아노 프리즘〉, 〈양림동 소녀〉, 〈소영의 노력〉 등을 연출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등에서 상영한 이력이 있다.
owogud@naver.com
홈페이지 thelump.imweb.me

사진 제공.필자

2025년 7월 (65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필자의 다른 글 보기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