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는 ‘나’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스스로를 사랑하는 모습뿐 아니라, 어쩌면 피하고 싶었던 모습까지 얼마나 포용하고 다독이고 있을까. 여기, 자신을 솔직하게 말하며 음악을 건네는 작곡가가 있다. 포근하고 따뜻한, 감자 같은 피아노 소리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이정민. 그는 2024년 첫 작곡 발표회 《함께 友(우)》를 동료들과 열고,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있다. 지금, 그 이야기에 천천히 귀를 기울여 보자.
이정민 피아니스트
작곡가·피아니스트 이정민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가 있어 앞을 전혀 못 봅니다. 그래도 음악을 통해 삶을 더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어서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어요. 처음에는 가르쳐 주겠다는 선생님이 없어서 엄마한테 바이엘을 배웠고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는 동네 학원에서 체르니와 소곡집들을 배웠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뷰티플마인드’라는 단체에 들어가 피아노를 더 전문적으로 배우다가 서울예고 피아노과에 입학했는데요. 배울수록 음악이 너무나도 재미있더라고요.
그런데 2019년 2월에 신장병 진단을 받고 1년 가까이 투석을 받다가 콩팥 이식 수술을 받았거든요. 이식 초기에는 신장을 보호하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써야 했는데, 2020년에 코로나가 막 터지면서 결국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휴학했죠. 코로나 시기에 제 소원은 빨리 학교에 돌아가서 공부하는 거였죠. 코로나가 그렇게 길어질 줄 몰랐는데, 자꾸 길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아픈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수업으로 고교과정을 이어갔고, 2024년 2월에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2021년부터 나온 작품이 무척 많은 거군요. 피아노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 많아 보여요. 피아노를 처음 만났던 순간이 기억나세요?
뭔가를 눌렀을 때 소리가 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신기하니까 피아노를 만지는 순간 환상에 빠졌던 기억이 있어요. 피아노 음마다, 악기마다도 소리가 너무 다양하다 보니까, 그게 신기했어요.
뭔지 알 것 같아요. 피아노 건반은 다양한 높낮이가 있잖아요. 촉감도 다양하고요. 어떤 부분이 제일 좋았나요?
지금은 솔직히 그랜드 피아노가 가장 좋지만, 아주 어릴 때는 디지털 피아노의 전자음 소리를 좋아했어요. 음식 중에서 감자를 좋아하는데, 감자의 식감과 약간 느낌이 비슷한 소리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부드럽고 따뜻한 소리랄까. 소리를 들어보면 삼익 피아노인지, 가와이 피아노인지 곧바로 알아채요. 어떤 피아노는 전체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소리가 날 때도 있지만, 어떤 피아노는 약간 부드럽고 기름칠한 것 같은 소리가 나는데 그런 느낌의 소리를 좋아할 때가 있어요. 그리고 피아노 자체의 질감도 좋아해요. 눌렀을 때 ‘땅’ 하는 소리도 좋지만, 피아노 자체의 질감이 주는 느낌이 너무 즐거우니까요.
그런 섬세한 감각이 확실히 작곡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아요. 서울예고에서 수학하기 위해 피아노도 정말 열심히 쳤을 것 같고요. 그런 순간을 지나 처음으로 작곡하게 된 때는 언제인가요?
2021년부터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실용음악 스타일이나 즉흥연주 식으로 배우다가 갈수록 점점 더 체계화하는 과정으로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처음엔 가볍게, 그러다가 점점 체계를 갖춘 형식미가 있는 작품을 발표한 거네요. 즉흥연주 기반이었으니 초기엔 대체로 피아노 솔로 작품이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처음엔 느낌을 따라 만들고 싶었어요. 모티브를 정하고 거기서 발전시켰어요. 피아노를 위주로 하면서 가끔 드럼이랑 섞기도 하고, 여러 관현악기를 섞어 클래식, 실용음악, 댄스곡 등을 다양하게 시도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장르가 다양하군요. 2019년에 아프고 난 뒤 2021년에 첫 음반이 나왔잖아요. 그때 어떤 마음이었어요? 조금 답답하고 조심스러웠을 것 같아요.
작곡을 처음 배웠고, 비장애인과 달리 보고 듣는 것도 한정적이다 보니 작곡을 할 수 있을지 약간 두려움도 있었죠. 음악은 천차만별이고 내가 모든 음악을 다 알지 못하는데, 내가 작곡한 곡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멜로디 같다고 하면 왠지 다른 사람의 곡을 베낀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해서요. 그렇지만 계속 배워나가면서 하니까 작곡이 오히려 재미있어졌어요.
작곡가로서 정말 훌륭한 마음 자세네요. 작품 중 인상적인 것들을 여쭤보고 싶어요. 〈Frustrated〉라는 곡의 부제가 ‘실망이 가슴에 가득 찰 때’인데, 어떤 곡인가요?
말 그대로, 실망이 가슴에 가득 찰 때의 느낌을 표현했어요. 반대로 〈Resolution〉은 실망이 가득 찰 때 답답한 게 풀렸으면 좋겠다는 느낌으로 작곡한 거고요. 때로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에서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때로는 제 곡을 통해 모두가 희망을 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곡해요.
청년 이정민
곡 하나하나의 스토리가 너무 멋지네요. 잠깐 일상 얘기도 해 볼까요? 평소에 어떻게 지내세요?
거의 일정해요. 새벽 6시에 일어나서 40분 정도 스트레칭과 절 수련을 해요. 시각장애가 있기 때문에 공간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는 운동 위주로 하죠. 운동 후에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어요. 주로 간이 안 된 견과류, 과일이나 채소를 먹어요. 그런 다음 마음을 정리하고, 7시 30분부터는 음악을 듣다가 8시부터 점심 먹기 전까지 무조건 피아노 연습을 해요. 오후에는 매일 조금씩 다르지만, 오전에 못 한 것이 있으면 하고, 창작이나 곡 분석을 해요. 음악을 들으면서 여러 장르를 배우는 단계예요. 곡 분석의 경우 비시각장애인은 주로 악보를 보면서 하는데,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음악의 전반적인 느낌이나 흐름을 따라가며 제가 배운 작곡 기법을 생각하면서 들어요. 좋은 부분은 응용해보고 싶고. 메모하기 어려우니 머릿속에서 흐름을 짜는 경우가 많죠.
와, 정말 요즘 말로 표현하면 ‘갓생’이네요! (웃음) 작곡을 위해 여러 장르의 음악을 공부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장르를 많이 듣나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클래식을 했으니까, 아무래도 클래식 곡을 가장 많이 듣게 되죠. 클래식 작곡가 중에서는 모차르트를 제일 좋아해요. 약간 따뜻한 음색이 어울리는 작곡가를 좋아합니다. 요즘 케이팝은 신나는 느낌은 좋지만, 가사가 무슨 말인지 잘 와닿지가 않아요. 가요 중에서는 김광석, 이문세를 좋아해요. 이문세의 노래는 왠지 가요이면서도 클래시컬한 느낌 같아서 좋고, 김광석은 반주 자체가 기타나 드럼을 베이스로 하다 보니 분위기도 옛날 노래치고는 너무나 요즘 감성이라고 느낍니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서른 즈음에〉 〈광야에서〉 〈혼자 남은 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좋아해요. 이문세 노래 중에서는 〈옛사랑〉이 좋아요.
저도 좋아하는 노래들이에요. 스토리가 담긴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직접 쓴 곡 중에 가족과 친구들과의 시간도 들어있을까요?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곡은 없지만, 〈산책 가는 길〉은 코로나 이후 아빠랑 마스크를 벗고 산책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너무나 좋았던 느낌을 담았어요. 발표하지 않은 습작에도 가족들과 여행 갔을 때의 이야기를 담은 곡들이 있어요.
작년에 했던 작곡발표회 제목에 ‘친구’가 들어 있잖아요. 《함께 友》라는 제목은 어떻게 정하게 되었나요?
제 곡을 여러 사람과 함께 연주하기를 원했어요. 아프고 난 후부터 6년 동안 학교를 못 다녔는데, 예고 때 친구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고, 친구들과 발표회를 하고 싶어서 그렇게 정했어요. 가곡도 발표했어요. 시각장애인에게 특화된 사이트에 있는 전자도서로 된 시집을 보는데, 시를 읽고 시어의 의미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며 저의 삶과 연관이 있고 마음에 드는 시들을 골라서 가곡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금, 여기 이정민
곡이 잘 써질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콱 막힐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하나요?
그럴 때가 있죠. 모티브를 짜는 게 제일 중요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왠지 따라 해보고 싶은 곡을 찾아 해설을 읽어보고, 저의 삶과 관련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모티브를 짜고 저만의 방식으로 바꿔 나갑니다. 잘 안 써질 때는 왜, 어디서 막혔는지 생각해 보고, 피아노를 계속 쳐가면서 저만의 코드, 음을 딱 고르는 거예요. 작곡은 주로 미디로 해요.
미디를 배운 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천천히 녹음해도 빠른 속도로 바꿀 수 있고, 소리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으니까요. 근데 처음 배울 때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디 교육을 하는 복지관이 단 한 곳도 없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에요. 비장애인에 맞춰진 유튜브 강의를 듣고 보이스오버와 접목시켜야 하는데, 한계가 너무 많았어요. 저도 가장 기본적인 아이디어 스케치 정도만 하고, 후반 작업은 비장애인에게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해요.
앞으로 프로그램 접근성이 좋아지고 여러 가지가 개선되어야 하겠네요. 이제 거의 마지막 장까지 왔습니다. 지금, 여기 이정민. 오늘의 기분을 음악으로 표현하면 어떨까요?
제가 친구도 없고 혼자서 집에서 지내고, 2019년부터 지금까지 지내왔던 방식이 너무나 누적되다 보니 이제는 부모님과 사는 것에서 변화를 줘서 사회에 나가서 생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늘 인터뷰를 하니 제 이야기를 잘 이해해 주셔서 대화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인데요. 오늘 기분은, 지금 이 순간, 활력입니다. 사실 대학교에 갈 생각이 없다가 최근 마음을 바꿨어요. 작곡도 그렇고, 음악에 관심이 있으니까요. 늦게 대학을 가서 친구들이 저보다 어리더라도 함께 잘 소통하면서 지내기를 원해요. 대학 졸업하고 나면 결혼하고 저만의 가정을 이끌어 가야죠. (웃음) 사회 구성원으로서 저만의 어떤 그룹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것 같고요.
그럴 때 음악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음악이 도움을 주기도 해요. 혼자서 고요히 음악을 듣다 보면 여태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갖게 돼요. 힘들고 부정적인 일들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까지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마음이 생겨요. 자꾸 마음속으로 감사하다고 여기는 거예요. 물론 이런 과정에서 몇몇 시행착오가 있었지만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며 답을 찾아보는 거죠. 그러다 보면 마음이 다스려지고, 다시 힘차게 희망이 솟아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럼 또 이 느낌을 토대로 새로운 작곡을 하게 되죠.
인터뷰하면서 앞으로 작사를 해봐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혹시 직접 작사한 작품을 만나볼 수도 있을까 요?
문학은 별로 안 좋아했지만, 더 많이 접하다 보면 작사하고 싶은 마음도 생길 것 같아요. 이제는 무엇이든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막힘없이, 시각장애를 떠나서,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작사에도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꼭 하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앞으로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으세요?
저는 제 음악을 좋은 공기를 마시는 느낌에 비유하고 싶어요. 제 음악을 듣는 분들이 맑고 따뜻한 좋은 공기를 마시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제 음악을 듣고 너무나도 행복했다는 말을 들으면 더 잘하고 싶은 용기가 나요. 클래식을 메인으로 하고 있지만, 여러 음악 장르를 조금씩 익혀가면서 저만의 세계와 음악을 만들어 연령층 상관없이 모두가 이해하고 함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약간 낭만적인 스타일의 기교도 부분적으로 넣어서 생동감 있는 곡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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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야기를 어떠한 가치 평가도 없이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 나누는 이정민 음악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투명하게 ‘이정민’이고자 하는 그의 마음은 그대로 그의 음악에 실려 ‘이정민답게’ 귓가에 울린다. 예술을 통해 스스로 용기를 내고, 타인에게 희망을 주고 싶은 그의 선율이 앞으로 어떻게 더 아름답게, 그답게 흘러나올까.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정민 피아니스트

이정민
피아니스트, 작곡가. 피아노의 울림과 음색에 매료돼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인연을 맺었다. 비영리 단체 ‘뷰티플마인드’에서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고, 다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신장이식 수술을 받으면서 긴 투병 생활로 힘들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곡가로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2024년 12월 첫 번째 작곡발표회 《함께 友》에서 자작곡 12곡을 함께 음악을 공부했던 친구들과 연주했다.
kane7188@naver.com

심은별
포용적 예술을 통해 예술계에 데뷔 후 통합예술단체 앙상블 조이너스의 리더이자 기획 매개 콜렉티브 앙상블리안의 대표, 사회참여적음악가네트워크(SEM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함께하는 힘을 믿는 긍정과 열정의 예술기획자라는 슬로건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며 ‘함께 예술하며 사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꿈꾼다.
simeunbyul@ensemblian.com
사진. 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자료사진 제공. 이정민
2025년 7월 (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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